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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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는 한때 <82년생 김지영>으로 전 국민을 들썩거리게 했던 논란의 아이콘이다. 나는 일부러 그 책을 읽지 않았는데도 남들이 다 말해줘서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이 왜 그렇게 비난을 했는지도 잘 안다. 나는 원래 좀 꼬인 사람이라 온통 칭찬글로 도배된 작품들은 의심부터 하고 본다. 그 반대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욕먹는 포인트를 알고는 있지만 감정이 일방적인 사람이고 싶지 않아서 그냥 안 읽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이 작가의 신간이 나왔고, 나는 출판사의 서평 제안에 망설이지 않았다. 정말 논란의 작가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전을 정독하듯 한 장 한 장을 차분하고 신중하게 읽었다.


정말이지 모든 이야기가 너무도 좋았다. 나는 저자의 따스함에 물들었고, 그 안에서 작은 인류애까지 느꼈다. <82년생 김지영>처럼 여성의 서사들을 한 권으로 엮었다. 할머니부터 어린 소녀까지 주인공이 되어 들려주는 속 사정은 멀쩡한 사고를 가졌다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내용뿐이었다. 물론 이야기 어딘가에는 논란을 삼을만한 장면도 더러 있다. 남녀를 싸우게 하려는 글이 아님에도 꼬투리를 잡는 사람들은 인물을 그저 생물학적인 남자와 여자로만 인식을 해서 그렇다. 성별을 빼고 하나의 사람으로 바라본다면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을뿐더러, 저자의 의도나 작품의 주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것이다. 모든 편마다 나이대에 겪는 애환과 고민을 담은 소설집인데 페미니즘보다는 휴머니즘에 가까워 나는 그렇게 좋았었나 보다.


등장인물마다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다 보니 누군가는 또 남녀 갈등 조장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봐주길 바란다. 단편집 특성상 모든 내용을 리뷰할 수 없으니 공통된 점들만 짚어보자면, 작가는 잃어버렸던 혹은 잊고 있었던 자아를 되찾는 내용들을 다루었다. 인간은 혼자가 두려워서 관계를 맺고 집단에 소속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나를 알아가고 동시에 나를 잃는다. 그래서 관계를 정리하고 다시 혼자가 되어 나를 찾는다. 속박의 관계가 단절되고서야 내가 이제껏 음지에 있었음을 깨닫고 양지로 나올 수 있게 된다. 자유와 평등은 생각만큼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오로라의 밤>은 남편과 사별한 아내와 시어머니가 과감히 해외여행을 나선다. <오기>는 악플러에게 시달리던 소설가가 자신의 상처를 작품화하여 두려움에 저항한다. <가출>은 집 나간 아빠의 권위에서 벗어난 엄마가 이제야 큰 소리를 뱉는다. <현남 오빠에게>는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사육해오던 남친에게 이별을 선포한다. <여자아이는 자라서>는 성희롱한 반 남학생들의 문제를 통하여 모녀간에 세대 차이를 극복한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참고 살았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들. 눈에 보이는 인물들의 감정선만 따라가지 말고, 관계에서 벗어난 뒤 찾아오는 변화에 더 집중하길 바란다.


산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지 않는 이상 모든 관계를 칼같이 자를 순 없다. 하지만 누군가로 인해 자신이 희미해지고 있다면 그게 건강한 사이가 맞는지 돌아봐야 한다. 만남이 제한되는 이 시국에 방치했었던 나를 돌아보고 홀로서기를 연습해보자.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어려운 일도 직접 해결해보자. 어느샌가 스스로를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어쩌면 여태 우리가 써온 것에는 내가 없었다는 말을 작가는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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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든 읽다 보면 글쓴이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가 있다. 저자의 성격, 가치관, 성장 배경, 직업, 경험들이 결과물의 인풋이기 때문이다. 대개 글 좀 쓴다 하는 사람은 이 양념들을 잘 버무려서 맛있는 글을 써내곤 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재능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므로 부러워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누구든지 살아온 방식에 따라 고유의 글맛을 가지는 법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어떤 자극을 받으면 몇 배나 되는 능력을 발휘하곤 하는데, 트라우마는 순간이 아니라 지속적인 자극을 주기 때문에. 강력한 자극은 넓고 깊은 생각과 사고를 갖게 해준다. 트라우마가 썩 좋은 경험은 못되지만 나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는데, 많은 글쟁이들의 선망인 헤밍웨이도 나와 같은 케이스 중에 한 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가 군인이고 기자였을 때 온갖 끔찍한 상황과 더러운 꼴을 보고 들으며 받은 자극들이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단편 몇 가지와 중장편과 노벨상 연설문, 스콧 피츠제럴드와의 여행 에세이가 담겨있는 종합선물세트이다. 헤밍웨이의 팬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가 없고, 헤밍웨이를 알고 싶은 책린이들에게도 입문용으로 알맞은 책이다. 여러 가지가 실려있지만 <노인과 바다>가 실려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별 다섯 개이다. 그 작품으로 수상하기도 했고, <노인과 바다>가 헤밍웨이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드보일드 문체의 원조인 그의 작품들은 장편도 단편처럼 빠르게 읽힌다. 이 책에는 그의 문체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일화도 담겨있으니 꼭 읽어보시라. 깨알재미가 쏠쏠하다.


헤밍웨이의 작품은 장편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단편소설의 대가라고 한다. 짧은 호흡을 싫어하는 나라서 헤밍웨이의 단편은 이 책으로 처음 읽게 되었는데 장편만큼이나 무게감이 있어서 놀랐다. 그런 무게감이 모든 글에 담기는 이유를 나는 작가의 관심사에서 힌트를 얻었다. 헤밍웨이의 관심사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생명‘이다. 헤밍웨이는 인간의 생사화복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이 작품에 실린 소설들과 그 외의 작품들도 전부 생명, 즉 삶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쓴 톨스토이와는 결이 다르다. 톨스토이는 인간에게 깃들어있는 본질을 꼬집었고, 헤밍웨이가 다루는 것은 존엄에 훨씬 가깝다. <노인과 바다>를 예로 들어보자. 청새치와의 사투에서 노인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 죽음과 맞닿아있는 상황에서도 노인은 자신이 어부임을, 그 위험한 낚시질로 자신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려 한다.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던 노인이 곧 작가이고 그의 평생 관심사가 아니었을까. 이걸 염두에 두면 헤밍웨이의 모든 작품이 대강은 이해가 될 것이니 참고하시길.


사람들이 고전문학을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작품에서 무슨 교훈이나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해서이다. 그런 부담감을 버리고 헤밍웨이의 책으로 고전에 입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절대 글을 어렵게 쓰지도 않을뿐더러 복잡한 내용을 다루지도 않는다. 솔직히 다른 고전 작가들에 비하면 헤밍웨이는 아주 양반이다. 그가 줄곧 얘기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독자가 많아지길 바란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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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24 0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 좋아하는데 이 책 소장하고 싶어지네요.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줘도 좋을것 같아요. 헤밍웨이는 단편도 좋고 단편도 좋고 👍👍

물감 2021-07-24 07:39   좋아요 1 | URL
가격이 좀 쎄긴 하지만 값어치하는 선물이 될거라고 장담합니다. 굳이에요🙂
 
페이즈 2 - 굶주린 사람들
마이클 그랜트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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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의 대전투 이후 3개월이 지났다. 페이즈 구역의 아이들은 점점 식량이 바닥이 나고 있어 비상사태를 맞게 된다. 얼마 없는 식량을 마을 전체 인원에 소량 배분한다 해도 일주일 정도면 끝날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채소밭에는 식인 벌레들이 득실거렸다. 어떤 아이들은 공복감 때문에 먹은 후 곧바로 토해버려 음식 낭비가 끊이질 않았다. 아이들의 불만은 주인공 샘 일행에게 쏟아졌고, 읍장으로써 온갖 뒤치다꺼리를 맡던 샘은 점점 번아웃이 온다. 한편 지난번 전투에서 패한 케인 일행이 마을 전체의 전기를 끊어버리고, 방사능 발전소를 찾아가 우라늄을 훔쳐내려 한다. 케인 일행을 저지하느라 주인공들이 마을을 비운 사이에 마을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초능력이 없는 아이들이 합심해서 초능력자들을 배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부에서는 적들의 침공이, 내부에서는 아군의 비협조가 반복되는 상황. 모두가 굶주려서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고, 샘은 이 모든 것들이 이제 지겹기만 하다.


큼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있어 숨 쉴 틈이 없다. 일단 초능력자들과 정상인들의 사이가 너무 벌어져서 주인공들의 맘고생이 극에 다다른다. 정상인들은 주인공들이 식량 배분해주는 것을 못마땅해하고 위에서 식량을 독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적의 침략을 못 막은 것도, 마을에 전기가 끊어진 것도 전부 샘 일행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정상인 아이들. 굶주림으로 폭력성이 깨어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샘 쪽이나 케인 쪽이나 배고픔으로 아군을 배신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이성을 놔버리거나 놓기 직전인 상태의 아이들이 끝없이 나온다. 이렇게 텐션이 떨어지지 않는 작품은 처음이다.


케인 일행이 우라늄을 빼내어 ‘어둠‘에게 갖다 바치려 한다. 이 페이즈 사태의 중심에는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어둠‘이 있었고, 몇몇 초능력자들의 정신을 지배하며 명령을 내리고 있다. 어둠에게 놀아난 케인과 샘 일행은 지독한 중상을 입어가며 어둠과 맞선다. 적과 싸우면서도 샘의 머리에는 마을의 폭동과 식량문제와 다친 부하들의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나도 연약한 어린애에 불과하다며 리더고 뭐고 때려치우겠다지만 머리 좀 식고 나면 마을 꼬라지를 눈뜨고 볼 수가 없어서 괴로운 주인공. 또한 자신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아이들을 외면하기도 어려워하는 어린 친구가 얼마나 짠한지. 원래 성장물 주인공은 굴려야 제맛이라지만 중딩한테 이건 너무 한다는 생각만 든다. 근데 겁나게 재미있어서 어쩐지 나 변태 된 기분...


총 6편의 페이즈 시리즈는 국내에 2편을 끝으로 더 이상 안 나오고 있다. 드라마 제작으로 만나는 게 더 빠를 듯하다. 여하튼 이 쪄죽을 듯한 더위 속에 스피디한 독서를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완결을 볼 수 없는 작품이므로 리뷰도 걍 대충 썼다. 읽었다는 데에 의미를 두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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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21 0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충쓰셨다고 하셔도 완전 재미있네요^^ 완결을 볼 수 없는 작품이라니 왠지 서글픈 기분이 드는군요 😔

물감 2021-07-21 07:03   좋아요 2 | URL
마케팅만 잘했어도 잘 팔렸을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소량이라도 전권 출간을 해줬다면 중고책이 돌아다닐텐데 아쉬워요ㅎㅎ
 
페이즈 1 - 사라진 사람들
마이클 그랜트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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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디스토피아 판타지 장르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가 있었다. <메이즈러너>, <헝거게임>, <다이버전트> 등등 워낙 좋아하는 장르라 빼먹지 않고 다 챙겨봤었는데, 이번에 읽은 <페이즈>시리즈는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나는 이런 시리즈물의 경우, 완결이 나온 다음 몰아서 읽는 편이어서 국내에 전부 출간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수년째 출판사에서 출간을 안 해주고 있다. 해외에서는 완결까지 총 6편이 나와있는데 국내에는 2편까지만 나와있고 더는 출간 예정이 없는 것 같아 기다리다 지쳐 그냥 읽고 팔아버릴 생각이다. 완결이 없으니 사실 리뷰도 정성스럽게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아무렇게나 휘갈겨보겠다.


이야기는 어른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으로 시작된다. 정확히는 15세 이상부터 전부 사라져버리는데, 정말 한순간에 뿅 하고 사라지다 보니 도로는 교통사고로 가득하고, 집집마다 화재가 나고, 유아들이나 갓난아기들은 쉽게 죽음에 노출된다. 그 외에도 14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잃은 공포에 젖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울고만 있다. 더군다나 통신과 인터넷도 먹통이 되어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보통 디스토피아 소설이 세계관부터가 평범하지 않은데, <페이즈>는 비교적 현실적이어서 더 몰입이 잘 되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남은 자들의 입장과 주어진 현실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어 마냥 판타지 같지 않다는 게 강점이다.


아직 1편이라서 어른들이 사라진 이 현상을 상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마을 밖으로 멀리 나가면 본 적 없는 빛의 장벽 같은 게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곳곳에서는 돌연변이 동물들이 발견되었고, 주인공은 손에서 빛이 나오는 능력이 생겼다. 샘 말고도 각기 다른 종류의 능력자 아이들이 계속 늘어났다. 남은 아이들은 샘이 리더가 되어주길 바라나, 부담스러웠던 샘은 모두를 외면한다. 동료들은 그런 샘에게 실망하며 아이들을 이끌라고 부추긴다. 야 진짜 14세면 우리나라에서는 중1인데, 그렇게 어린애한테 뭐 그리 많은 짐을 씌우는 건지 작가가 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튼 억지로 떠밀려서 리더 좀 해보려는데 옆 동네 문제아 학교의 학생들이 우르르 와서 이럴 때일수록 힘을 모아야 한다며 모두를 꼬드긴다. 샘과는 달리 옆 동네 리더 케인은 결단력도 있고 판단력도 있고 리더십도 있어가지고 결국 그에게 리더를 맡겼는데 어째 점점 마을을 무력으로 점령해가는 게 아닌가. 이로써 샘 파와 케인 파로 갈라져서 싸우게 되는 이야기가 1편의 주 내용이다.


등장인물도 제법 많은 데다 상황도 상황인 만큼 별별 캐릭터가 다 나온다. 박쥐, 헐크, 여우, 겁보, 간신배 등등 다양한 캐릭터의 개성을 되게 잘 살리고 있어서 좀 놀랐다. 어딘가 납득이 좀 안되는 캐릭터들을 잘 만드는 서양권에서 이렇게 균형 있는 인물 설정을 보는 게 신기했다. 더 좋았던 점은 이 작가도 스토리에 막힘이 전혀 없다. 뭐 아직 1편이라 쳐도 약 600장의 분량인데 매끄러운 전개를 보여준다. 작가의 상상력도 대단한데 그 구상을 풀어내는 능력마저 훌륭하다.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알만하다. 중딩은 무서운 게 하나도 없는 나이인데, 그런 애들이 권력을 쥔 세상은 얼마나 엉망진창이겠는가. 그것만으로도 디스토피아는 완성된다. 아이들만 남은 지역, 일명 페이즈에서는 15세의 생일을 맞이한 아이들이 사라졌고, 샘과 케인도 곧 15세의 생일이 다가온다. 어떻게든 생일이 오기 전에 상대를 꺾고 목적을 이뤄야만 하는 두 사람.


쫄깃쫄깃하게 잘 쓴 작품이다. 총 6편으로 되어있어서 템포가 느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고 생략한 장면이 많은 것도 아니다. <메이즈러너>나 <헝거게임>은 건너뛴 장면이 많아서 매끄럽지가 못했는데 <페이즈>는 딱히 아쉽거나 실망한 구간이 없었다. 어떤 사정인지 몰라도 완결까지 내주지 않은 출판사가 너무 원망스럽다. 2편이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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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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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내 이야기가 소설로 나오면 잘 팔릴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내 사연들도 꽤나 복잡하고 다이나믹 했더랬다. 지난 과거에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지금의 글쓰기 활동에 엄청난 보탬이 되고는 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할까. 멜로디를 만들고 설계도를 그리고 비디오를 찍고 나무와 돌을 깎고. 나는 이런 행위들이 내가 더 나일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저 예술가의 혼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 단순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여튼 다양한 형태의 예술 가운데서 유독 문학은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분야이다. 아무래도 글이란 게 누구나 쓸 수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일 테고, 그래서 누구나 엄한 잣대를 쉽게도 들이대는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속 시원하게 반박하고 일침을 놓는 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이 분은 문학에 대한 선입견들을 타파하고 예술에 대한 시각을 뒤집어놓았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소개해본다.


나는 외국인 유부남과 만나고 있다. 연락도 잘 없고 언어도 좀 안 맞지만 열렬히 그를 사랑한다. 내 삶에서 그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내 시간들은 오롯이 그에게 바치는 시간이어야 한다. 나의 존재는 그의 몸을 가졌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그와 떨어져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사랑에 열정을 다한다. 그럼에도 그의 연락은 갈수록 뜸해지고 있다. 이제 내가 싫어서일까. 아니면 입장이 곤란해서일까. 사랑하는 마음 외에 버렸던 것들이 어느덧 제자리를 찾아간다.


사랑에 막 눈을 뜬 사람처럼 안절부절하며 벅차오르는 감정들을 두서없이 작성한 일기장의 느낌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유부녀의 바람난 이야기가 그리 매혹적이거나 끌릴만한 서사는 아니다. 아직까지는 한국의 정서적인 이유도 있고 하니까. 그런데 이 책은 금지된 사랑을 다루고 있음에도 전혀 불편한 기분이 안 든다. 사랑에 흠뻑 젖은 주인공 시점으로만 썼기 때문에, 그녀의 허리케인 같은 감정 씬 외에는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녀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딱 필요한 부분만 조명해주는 일인칭 플롯을 고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금지된 사랑이 위험한 이유는 외부에서 오는 방해가 아니라 스스로를 갉아먹어 피폐하게 만드는 내부의 요인이 더 크다. 내가 사라져가는 그 감정, 겪어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잘 알 거다. 사랑은 서로의 눈높이가 같을 때에 유지된다. 그런데 자신을 너무 낮추고 상대를 높게 여기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동경이 돼버린다. 그런 상황에 중독되면 주인공처럼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되므로 일상생활마저 불가해진다. 사랑 외에 다 갖다 버린 그녀가 기댄 곳은 글을 쓰는 행위였다. 그가 읽어주길 바람도 아니고, 자신의 슬픔을 달래기 위함도 아니었다. 대상도 목적도 없는 말 그대로 기록용 글쓰기를 하는 그녀, 그리고 책 밖에서 같은 글을 쓰는 아니 여사님.


살면서 겪었던 일들과 경험으로 작품을 쓴다고 유명한 작가더라. 자신의 성장과정이 모티프인 모든 작품은 자전소설이나 마찬가지이고, 이 책의 주인공도 작가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이 작품으로 자신의 불륜을 만천하에 공개한 셈인데, 그녀는 커다란 손실보다 작은 이익을 택하였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글이 ‘문학다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방식이 문학에 어떤 진보를 가져다줄 것을 예견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은 나도 이 책에 어떤 깊이와 멋스러움이나 문학성을 발견하지는 못했는데 의도를 알고 나니 작가의 글쓰기 철학에 존경심이 생겼다. 이런 걸 보면 예술의 기준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것이 맞나 보다.


나는 이 책을 한 여인의 이야기보다 자신을 알아가는 글쓰기 쪽에 더 흥미를 갖고 읽었다. 작품 해설에는 자아의 상실을 다룬 책이며, 주인공과 작가가 글쓰기를 통하여 자아를 재확립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 말에 나는 작가가 성냥개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온몸을 다 태워서 불을 밝히고 이어 조용하게 사그라드는. 온갖 풍파를 겪어온 그녀에게 단순했던 것은 사랑하는 것과 글을 쓰는 행위뿐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건조한 문체를 안 좋아해서 별점은 높게 못 주지만 꽤 신선하게 읽었다. ‘소설에 대한 전쟁 선포‘를 했다던데 과연 그에 맞는 개성을 보여주었고, 이내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어졌다. 그녀가 자부하는 ‘문학다움에 미치지 못하는 글‘이 가진 개성과 위력을 알게 된다면 현대의 문학도 한걸음 더 진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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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2 00: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배경을 알고 읽어서였는지, 읽는 내내 생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
이 책 읽고나서 ‘역시 프랑스는 다르군‘ 이런 생각도 들고 ㅎㅎ

물감 2021-07-12 00:23   좋아요 2 | URL
이제 저도 그녀의 작품들을 다르게 생각하며 읽을 것 같아요🙂 어쩐지 프랑스 여성들은 다 멋있을 것만 같은 환상이...ㅎㅎ

나비종 2021-07-22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부터 공감합니다!ㅋㅋ 계곡물 속에 담근 자신의 다리를 보는 상황 비슷하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스스로 내려다보는 다리는 실제보다 더 커보이고 떠올라 보이잖아요. 그래도 보편성에 의한 공감도 못지 않게 영향력이 크니 독특한 해석과 문체만 연마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시다고 봅니다만~^^
확실히 직접 경험한 감정이 담긴 문장은 디테일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줘요.
예술가의 혼.. 우리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영역이 존재하는 걸까요.
문학이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 분야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아마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예술에 개인적인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치더라도 미술 작품은 보자마자 짠! 음악 작품은 대개 몇 분 정도이고 영화나 연극도 몇 시간이긴 하지만 이건 시각적인 요소도 가미되니 흡수가 빠르겠죠. 그림책이 아닌 다음에야 저에게는 문학 작품이 가장 오래 걸리더군요.
확실히 아니 에르노의 글은 독특한 형식을 취한 작품이었습니다. 조개껍데기를 전부 발라버린 바지락국을 후루룩 마신 기분이랄까요.ㅎㅎ

일기장 느낌. 딱이예요~!ㅎ 예. 저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더라구요. 1인칭 시점의 서술 방식이 가장 적절한 형식이었다는 물감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핀 조명을 받으며 독백을 하는 무대 위 주인공을 보는 듯했거든요.

금지된 사랑이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든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회적인 검열 이전에 자기 검열이 무의식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과정을 외면하느냐 직시하느냐의 차이겠죠.
사랑도 대화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일방적이면 외롭거나 괴롭다는 점에서요.^^

그게 과연 커다란 손실이었을까 생각했어요. 글은 사람들의 비난보다 오래 남으니까요. 그녀가 죽은 이후까지도요. 거시적인 안목으로 커밍아웃을 하신 아니 여사님!^^
그녀의 글을 보고, 작가 스스로 인정한 ‘문학답지 못함‘을 보면서 과연 ‘다움‘의 정의가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정해놓은 틀에 너무 얽매이는 것이 아닌가 하구요. 장르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었을 텐데, 표현하는 모든 문학 작품의 범주를 단지 편의상 묶어놓은 것 뿐일 텐데 말이죠.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예술가는 스스로의 작품에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는 거요.ㅋㅋ 천상천하유아독존 마인드로 내가 제일 잘 나가 포스를 고수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ㅎ

저는 숯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본인은 이미 탔지만, 다시 불타서 승화되어 주변에 영향을 주는 그런 ㅋㅋ 문장 문장에서 숯의 뜨거움이 느껴졌거든요.
현대는 다양성의 시대이므로 물감님도 물감님 글의 장르를 한 번 개척해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대까물...이라든지(대놓고 까는 물감의 장르물...)^^;;==33

물감 2021-08-06 15:59   좋아요 2 | URL
ㅎㅎㅎ나비종님은 정말 비유의 달인이십니다. 아니여사의 책을 읽고나니까 리뷰도 ‘문학다움에 미치지 않는 문학‘에 포함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작가 타이틀이 없고, 책을 내지 않았어도, 예술가의 혼과 인생의 경험이 담긴 리뷰를 쓴다면 그 사람도 예술가이고 문학인 아닐까요^^

책을 안 읽는 이들에게 문학은 지루함의 대상이고, 비문학만 읽는 이들에겐 시간낭비의 대상인듯 해요. 문학이 주는 기쁨도 느끼기 힘든데다 그게 뭐 밥 먹여주지는 않으니까요. 가뜩이나 성미 급하고 시간없는 한국인에게 예술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ㅎㅎ

중반까지는 뭐 이런 내용을 책으로까지 냈을까,하면서 읽었는데요. 일인칭시점이 아니었으면 작가의 의도를 전혀 모른채 껍데기만 바라보았을 거 같아요. 대단한 작가입니다ㅎㅎㅎ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고 가치를 가지는 것들이 있죠. 어쩌면 아니 여사의 글들도 그렇지 않나 생각해요~ 지금 시대에 와서 레트로가 다시 유행하는걸 보면, 모든 분야의 장르는 크게 중요하지도 않아보여요. 그래서 말씀하신대로 자존감을 가져야만 해요🙂

숯같은 사람이라... 어쩐지 성냥개비보다 불쌍한데요? 죽어서까지 제몸을 불사르는 운명같은것이...ㅎㅎ 그것이 작가의 열정일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글은요, 어떤 유형이든 눈에 착 감기는, 소위 글맛이 있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딱딱하지 않고 통통 튀는 글을 써서 어린 친구들도 쉽게 읽고 이해시키는 게 저의 목적이랄까요? 그게 잔인한 혹평이라도요ㅋㅋㅋ

진짜 날이 느므느므 듭네요... 이러다 몸이 액체되어 흘러내릴듯요ㅜㅜ 건강 조심하시고요, 다음 선정도서로 인사드릴게요ㅋㅋㅋ

scott 2021-08-06 15: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에르노 여사님이 용돈 주쉼 ㅎㅎ

이달의 당선 축 👆

물감 2021-08-06 17:13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ㅎㅎ 알라딘은 영원하라~~~

초딩 2021-08-06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축하드려요 ^^

물감 2021-08-06 21:32   좋아요 0 | URL
축하 고맙습니다. 나이스한 8월이 되시길🙂

이하라 2021-08-06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08-06 21:34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고맙습니다ㅎㅎ
아름다운 밤이에요~~~!

thkang1001 2021-08-06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08-06 21: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ㅎㅎ
8월도 부지런히 달려봐요!

서니데이 2021-08-06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08-06 21:38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당선작 발표일마다 가장 바쁘신 서니데이님께 이 영광을!

새파랑 2021-08-06 1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완전 축하드려요 별 3개 주신 작품을 당선시키는 이 필력이란 👍👍

물감 2021-08-06 21:40   좋아요 2 | URL
ㅎㅎㅎ그르게요. 보통 별4개는 되야 베스트 리뷰 주던데, 저도 의아합니다^^; 8월도 열심히 버닝하세요!

황후화 2021-08-06 1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물감 2021-08-06 21:43   좋아요 2 | URL
황후화님 감사합니다🙂🙂🙂
8월도 즐독하시고 건강하세요!

강나루 2021-08-06 2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당선 축하,축하, 축하드려요.

물감 2021-08-06 21:45   좋아요 2 | URL
연속으로 당선되다니, 올해는 운이 좋은가봐요ㅎㅎ고맙습니다. 강나루님의 독서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