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 가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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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시험기간이 되면 공부만 빼고 모든 게 재미있어지는. 평소에 안 하던 딴짓 거리에 계속 몸이 가고 또 그게 그렇게 재밌을 수 없더라는 경험들이 다 있을 텐데 이건 뭐 커서도 변함이 없는갑다. 어쩌다 휴일이 생기면 오늘은 온종일 책만 읽어야겠다거나 밀린 서평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꼭 중간중간에 이런저런 잡일들을 하곤 한다. 특히 글 쓰는 작업은 끊임없이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인데, 이 창의성은 두뇌가 휴식 중일 때에 회전이 더 잘 되는 법이라 종종 일부러 딴짓을 할 때도 많았지만 이번 독서는 진짜 집안일이 즐거워서 미치겠을 정도로 따분하고 괴로운 책이었다. 이번 글은 정말 아무런 도움도 안 될 테니 이쯤에서 뒤로 가기 버튼을 클릭하여 금 같은 시간을 아끼시길 권하겠다.


자살하려던 청년이 골동품 가게에서 신비한 나귀 가죽을 얻는다. 여기에 소원을 빌거나 욕망을 가지면 원대로 이루어지나 소유자의 수명이 줄어든다. 여튼 부귀영화를 얻게 된 그는 나귀 가죽이 줄어듦에 따라 자신의 생이 곧 끝날 거라는 노이로제에 빠져 허덕인다. 젊은 날에는 그렇게 죽고 싶어 하더니, 모든 걸 다 갖고 나니 죽기 싫어서 베개에 코 박고 찔찔 짜는 나날만 보내는 주인공. 역시 세상엔 공짜가 없으요.


하, 드디어 올게 왔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고전을 전혀 읽지 않았던 과거의 내가 가졌었던 선입견을 그대로 담고 있는 초강적의 작품이었다. 현재 나로서는 전혀 흡수가 불가한 책이라 이번 리뷰는 깔끔히 포기하고 그냥 하고 싶은 말만 주구장창 적겠다. 먼저 이 책은 특정 대상을 위함이 아닌 작가 자신을 위해 썼다는 인상을 받는다. 넘치는 방대한 지식과 번뇌와 통찰들을 기록하여 본인만의 유산으로 남기고 싶어 한 괴짜의 작품이랄까. 이 책이 재밌었다는 모든 분들을 내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름 불친절한 여러 책을 만나왔지만 이 책은 그중에 원탑이요, 어나더 레벨이었다. 내가 먼 훗날 온 세상을 통달하고 나면 다시 읽고서 누구든 쉽게 이해할만한 리뷰를 남겨보련다.


내 아직까지는 이 책보다 단어를 많이 사용한 책을 보지 못했다. 한 문장에 들어간 단어와 표현이 너무나도 많아서 소화가 안된다. 이 작품은 두세 줄 정도로 짧은 요약이 가능한 데에 비해 분량은 터무니없이 두껍고, 기승전결의 전개보다 주인공의 독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나 진짜 읽다가 정신착란에 빠질뻔했더랬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스킵 하면서 겨우겨우 읽었다. 독서모임만 아니었으면 초반에 덮었을, 나와는 전혀 상성이 안 맞는 넘사벽 책이다. 국어사전도 이보단 재밌겄으요.


자기 연민과 신세한탄으로 가득한 말들을 어쩜 그리 중복됨 없이 내뱉을 수 있는지 놀랍다면 놀라운 언변인데, 제발 엔간히 좀 하라는 친구의 조언에도 꿈쩍 않고 자신의 찌질함을 늘어놓는 주인공. 이제 겨우 이십 년 좀 넘게 살아놓고 뭐 그리 한이 많은지 무슨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팔십 대 노인처럼 굴어대는데, 그냥 궁시렁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동안 공부하며 알게 된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세상 참 부질없다를 읊조리고 있으니 보고 있노라면 피가 쭉쭉 마른다. 발자크도 지식의 저주에 갇힌 사람이었나? 도무지 적당히란 걸 모르는 사람이다. 3~4절만으로도 지겨운 노래를 99절까지 하시겠다? 이런 사람은 마취총이 답이다.


웬 서문이 처음부터 나와서 작품의 글로 저자의 인간성을 판단치 말라는 말을 어디 고대 문자처럼 영 못 알아먹을 말들로 장황하게 설명해서 돌아가실뻔했는데, 알고 보니 그 숨 막히게 답답하고 따분했던 서문이 차라리 작품보다 훨씬 읽을만했더라는 사실에 벽 잡고 공중제비를 돌 뻔했다. 그래 뭐 당시 배경과 분위기에 따라 사회의 이모저모를 비판하려는 것도 대강 알겠고, 작가가 생각하는 철학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것도 알겠으나 당최 파악이 안되는 중에 너무 많은 내용을 와르르 쏟아낸다는 생각이 안드심니꺼? 사백 페이지 넘게 이런 식이니 나 같은 쪼렙에 인내심 부족한 독자는 읽다 말고 자꾸 딴짓을 하게 되더란 말이다. 아니, 어느새 집안 대청소를 해부렀으요.


그나마 3부에 가서는 이야기라고 해줄 수는 있을 만큼의 전개가 나오지만 투 머치 토커의 루즈함은 여전했고, 무엇보다 한번 거부했던 내 머리는 끝까지 이 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았다. 아무리 어렵고 난해한 책이라도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가지자는 편인데 이 책은 그렇지도 않았다. 인간관계에서도 한번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면 다시는 안 보는 나라서, 발자크도 다시 볼 일은 없을 듯. 위에서 말했듯이 내가 세상만사를 통달한다면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지. 아오, 써도 써도 끝이 안 나네. 이만 쓰련다. 님도 여기까지 읽느라 고생했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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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11-21 22: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집안 대청소를 하게 해준 고마운 책이네요 ㅋㅋㅋ 물감님 글이 재밌어요 ㅋㅋ 얼마나 힘드셨는지 팍 와닿네요. 발자크 책은 재미없기로 유명하다고 누가 쓰신 거 봤었는데.. 그말 그대로인가 봅니다. 다음 책은 재미난 걸로 고르세요~^^

물감 2021-11-21 22:24   좋아요 3 | URL
간만에 전투력 샘솟게 해준 책이었습니다ㅋㅋㅋ 아직도 할 말은 많은데 참기로 했어요ㅋㅋㅋ덕분에 집안 깨끗해지고 좋쿤요!!

미미 2021-11-21 2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물감님!!ㅋㅋㅋㅋ읽지 않은 책인데 느낌이 팍팍옵니다. 저 최근 ‘새버스의 극장‘읽으며 그런 투머치에 숨넘어갈뻔 했거든요.
너덜너덜해져서 깔 힘도,용기도 없어 대충 쓰고 말았는데 덕분에 묘한 대리만족. 지금 내리는 비처럼 속이 후련하네요ㅋ👍

물감 2021-11-21 22:26   좋아요 2 | URL
ㅋㅋㅋ과연 우리가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즐겁게 읽었으려나요? 고구마 소설은 진짜 한국인과 안맞아요ㅋㅋㅋ이토록 칼을 갈면서 독서하기도 처음이에요...

페넬로페 2021-11-21 2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점 적게 줄때의 최고의 리뷰는 물감님이 쓰신 글입니다. 재미 있으면서도 이해가 쏙쏙 갑니다. 안그래도 읽을 책이 많은데 걸러야 할 책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물감 2021-11-21 22:33   좋아요 2 | URL
아무런 도움이 안될 거라고 적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게 되었네요ㅋㅋㅋ여튼 올해의 워스트는 이 책입니다. 하하핳

새파랑 2021-11-21 22: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 단편집을 읽고나서 고리오 영감이랑 이 책을 읽어봐야지 했는데 좀 질질 늘어지는 느낌의 책인가 보네요 😅 그래도 완독하신다고 고생하셨습니다~!!

물감 2021-11-21 23:10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은 그어떤 책도 냠냠 맛있게 읽으실 거 같아요ㅋㅋㅋ이 책도 꼭 읽어봐주세요😁

coolcat329 2021-11-23 22:42   좋아요 2 | URL
네~세 권 중 나귀가 제일 재미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이 책 좋네요. 그 특유의 넘쳐남을 미워할 수 없어서요 ㅎ

물감 2021-11-24 07:16   좋아요 1 | URL
쿨캣님, 보니까 이 책을 비평한건 또 저뿐이더라고요. 고로 이 책은 좋은 책이 맞습니다ㅎㅎ 제가 아직 레벨이 낮아서 그래요ㅜㅜ

scott 2021-11-22 00: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세기의 천재 발자크도
물감님에게 💥한개만 받음!ㅎㅎ

물감 2021-11-22 07:04   좋아요 2 | URL
이것이 바로 편협한 독서의 정석 아니겠습니까ㅎㅎㅎ

공쟝쟝 2021-11-23 18:4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닌건 아니라고 말하는 별점 자린고비 ㅋㅋㅋㅋ

물감 2023-01-31 17:23   좋아요 1 | URL
아 그럼그럼요 다 덤벼랏ㅋㅋㅋ

coolcat329 2021-11-23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물감님~글이 너무 재밌어요. ㅋㅋ웃었네요.
저도 이 책 1부는 좀 고생했는데 2부부터는 재밌었거든요. 물감님 아주 제대로 걸리셨군요. 😂
사실 발자크가 정말 적당히를 모르는 사람이긴 해요.
귀족숭배병에 어린애같은 명예욕에 하여튼 문제가 많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자크는 적대감을 갖기엔 너무나 위대하다고 츠바이크가 말했으니 너무 미워하진 말아주세요~~^^

물감 2021-11-24 07:27   좋아요 1 | URL
호평은 널렸으니 비평 한 개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ㅋㅋㅋ서문이 왜 있었는지 갑자기 알겠네요. 작품은 작품으로만 봐달라 이거군요. 여튼 이런 작가도 있구나,하고 넘기겠습니다🙂

나비종 2021-11-24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안일이 즐거워서 미치겠을 정도는 아니었지만ㅎㅎ 읽다 에너지 조금 충전하고 읽어야했던 책이었습니다. 읽기-분노-충전-다시 읽기-한숨-충전-다다시 읽기-체념-충전-읽기-주욱 읽기-가까스로 디엔드. 3주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분노가 사그라들었나 그나마 별점을 후하게 줄 정도로 마음이 드넓어지더군요.

그러게요. 그렇게 죽고 싶어하더니 죽기 싫어 전정긍긍하는 변덕은 또 뭐래요. 역시 세상엔 공짜가 없습니다.ㅋㅋㅋ

‘드디어 올 게 왔다, 그중에 원탑, 어나더 레벨, 온 세상을 통달하고 나면, 정신착란에 빠질 뻔, 국어사전도 이보단 재밌겄으, 피가 죽죽 마른다, 지식의 저주에 갇힌, 마취총이 답, 고대 문자처럼 영 못 알아먹을 말들로, 서문이 차라리 작품보다, 벽 잡고 공중제비, 투 머치 토커의 루즈함‘ ㅋㅋㅋ 물감님 글의 매력이 불을 뿜다 못해 폭발하는 표현들입니다. 참담했던 심정이 다이렉트로 전달이 되는 걸 보니~^^ 고구마를 먹으면서 목이 막혔는데 물이 없어 꾸역꾸역 더 커다란 덩어리로 밀어넣으셨던 상황 같아서요.ㅎㅎ
번역자가 구사하는 어휘 자체가 어려워서 저도 수시로 낱말 뜻 찾아가면서 읽었습니다.^^

저도 인간관계에서 한 번 아니다 싶으면 대체로 다시 안보는 편인데 물감님도 그러시군요. 다시 찾고 싶은 작가가 아니긴 하지만 인생은 또 모르니까요.^^
수고하셨습니다. 오히려 리뷰 한 방으로 마음도 깔끔하게 청소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나름 카타르시스를ㅋㅋㅋ 별 점 한 개를 극복하신 의지력으로 이제 천하무적이되셨겠군요. 드럽게 재미없는 책들도 몽땅 독파할 수 있다!!! 오기만 해! 하지만 웬만하면 그냥 가던 길 가버려~ㅋ
내년에도 유쾌한 리뷰로 뵙겠습니다~^^*

물감 2021-11-24 20:46   좋아요 1 | URL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는 공감대만으로도 족합니다ㅎㅎ 아직은 제가 작품보는 눈이 없나봐요. 내년에는 좀더 내공을 쌓을 예정입니다. 슬슬 분권으로 된 작품들도 선정할까해요^^

저도 이렇게 신랄한 비평을 쓴건 처음이에요ㅋㅋㅋ별 한 개짜리도 완전 오랜만이고요. 덕분에 거침없고 신나게 쓸 수 있었습니다ㅋㅋㅋ저에겐 세상만사를 거부하고픈 욕망이 있다요!!ㅋㅋㅋ

올해의 마지막 모임이 끝났네요. 시간 참 빨라요. 역시 같이 읽으면 즐거워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나봐요ㅋㅋ아오 연말이라 그런지 점점 바빠져서 곧 과로사 하겄어요ㅜㅜ 각자 건강 잘 챙기고 내년에 또 인사나누겠습니다^^

꼬마요정 2021-12-02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앗 그렇군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전 아직도 앞에서 헤매다가 다른 책으로 갈아타고 늘 마음에 저거 읽어야 하는데… 이런 맘입니다. 한동안 그런 마음을 내려놓아도 되겠네요 ㅎㅎㅎ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동욱 참 멋져요 ㅎㅎㅎ

물감 2021-12-02 11:02   좋아요 1 | URL
어우 동지만나 기쁘네요 ㅎㅎㅎ 숨막혀 돌아가실뻔 했어요 ^^
안맞는 책 억지로 잡을 필요 없어요... 쏟아져 나오는게 책인데요 뭐 하하핳
이동욱 괜찮나요? ㅋㅋㅋㅋㅋ공유는 이제 보내줬답니다.
 
면식범 케이스릴러
노효두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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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한 번쯤은 터닝포인트를 가지기 마련인데 어떤 이는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는 반면, 누군가는 실패와 몰락의 길에 들어서기도 한다. 뭔가를 후회할 때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고, 돌아간다면 이전 같은 선택은 절대 하지 않을 텐데 이미 엎질러진 물은 증발해서 구름이 되어버린 지금 이 무슨 쓸데없는 원맨쇼란 말인가. 해도 후회고 안 해도 후회라면 차라리 하고 후회하는게 낫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지나고보니 안 하고 하는 후회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타인의 삶을 무너뜨렸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나 역시도 남에게 씻기 힘든 피해를 주거나 받아본 입장으로써 후회와 탄식 속에 빠져사는 기분을 아주 잘 안다. 아마 과거에 갇혀사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을 텐데, 바로잡을 수 있으면 이제라도 노력해서 후회를 벗어나야 하고, 돌이킬 수 없다면 과거를 거울삼아서 현재의 후회를 줄여가야만 한다. 이번 소설은 후회를 이기지 못하고 굴복당한 상처투성이의 두 남자 이야기이다. 사람이 절망에 삼켜지고 복수에 눈이 멀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따끈따끈한 케이스릴러 신작이외다.


범죄심리학자 도경수는 부친 산소에 갔다가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후 감금되었던 산중 건물에서 탈출한 그는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타지만 또다시 붙잡히고 만다. 놀랍게도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운전자. 자신의 얼굴을 훔친 이 엑스맨은 도경수의 가족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문득 여러 명의 후보자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그를 향한 저마다의 원한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리고... 설마가 맞았다.


일단 스릴 면에서는 합격. 이 작품은 범인을 초반부터 공개하는 대결구도의 방식이다. 스릴러의 거장인 제프리 디버가 자주 쓰는 이 플롯은 범인 찾기보다 범행 동기에 포커스가 더 맞춰져있어서,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대결 구도가 보여주는 액션 스릴감이 작품의 템포를 끌어올려 준다. 몇 년 전, 지적장애를 가진 도경수의 아들이 아파트 지하에서 여자아이를 살해했다. 그의 가족은 다른 범죄자에게 범행을 뒤집어씌우고 사건을 묻은 채로 살아왔다. 피해자 부모인 성형외과의 부부는 긴긴 수사 끝에 도경수를 의심하고 행적을 추적하여 복수를 실행하게 된 것. 면식범은 도경수의 얼굴로 성형까지 감행하고 그의 가족에게서 진실의 조각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한다. 이미 피해자 부모는 업계에서도 밀려났고 가정도 파괴되어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도경수에게 복수하려는 면식범도 이해가 되고, 가족들을 지키려는 주인공도 이해가 되지만 정녕 이렇게 진흙탕 싸움으로 가야만 하나 싶어서 안타깝더라.


도경수의 얼굴을 하고 있는 면식범을 만난 주인공의 아내와 큰딸은 무방비로 당해버린다. 면식범에게 납치와 감금을 당하고 약물 주사를 맞게 되고, 딸의 남친도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러나 도경수만이 목적이었던 면식범은 그의 가족들까지 죽일 마음은 없었다. 단지 진실을 알기 위해서 이렇게 가족까지 건들어야 하는 스스로가 불쾌하기만 했다. 반대로 도경수는 면식범을 쫓아다니는 내내 아들의 사건을 은폐해왔던 지난날들을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범죄심리학자면서 범죄자들의 말과 행동을 하고 있었고, 그러면서 여태껏 태연하게 방송이나 강연을 나가는 등 이 파렴치한 인생에 드디어 벌을 받나 보다 싶었다. 자신의 가족과 피해자 가족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만 같아서, 면식범에게 당하는데도 그를 미워할 수가 없어했다. 자신이 얼마나 싫었으면 이렇게까지 큰 계획을 세워서 복수를 해오겠나 싶은 게지.


복수를 마치면 피해자 부모는 한국을 떠날 생각이고, 가족을 구하고 나면 주인공은 경찰에 실토할 생각이다. 나중에 가서 진짜 진실을 마주한 면식범은 도경수 가족에게 몹쓸 짓을 했음을 깨닫고 크게 절규한다. 알고 보니 도경수 가족도 자신처럼 봉변을 당한 거였고, 자신은 그들에게 의미 없는 공포를 심어준 꼴이었다. 한편 도경수는 사태를 이지경으로 만든 게 자신의 책임이라 여겨 진범을 찾아가 결판을 지으며 비참한 엔딩을 맞는다. 거참 되게 찝찝하고 뒤숭숭한 감정을 남겨준 작품이었다. 피해자였던 면식범은 돌연 가해자가 되었고, 가해자였던 주인공은 졸지에 피해자가 된 이 막장 인생들을 어쩌면 좋으랴. 이렇게 출구 없는 미로의 작품은 참 오랜만이다. 처음 본 작가인데 꽤 재미있게 읽었고, 국내의 스릴러 문학 수준이 많이 올라간 게 느껴진다. 더더욱 흥하여라. 흥.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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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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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업이든지 먹고사는 일은 항상 스트레스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면 내가 잘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흔들리기도 한다. 그냥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받고 적당히 놀고 싶지만 그게 뭐 내 맘대로 되나. 여기저기에서 워라밸이 중요하다며 여가 활동을 강조하는데, 단순히 그 말에 속으면 안 된다. 개인 시간 이전에 근무시간을 무탈히 보내는 게 순서다. 그러면 대체 무슨 수로 일과를 잘 보낼 수 있을까? 나는 과거 김연아 선수의 멘탈에서 답을 찾았다. 훈련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에 김연아 선수는 그냥 하는 거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 워라밸의 조건이다. 워낙 생각이 많은 한국인들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로 사서 고생들을 한다. 물론 그렇게 만든 국내 교육과 경쟁 시스템이 문제긴 한데 아무튼 건강한 멘탈을 갖고 싶으면 일과 감정을 잘 분리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멘탈 관리가 뭔지 모르겠으면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을 읽어보시라. 대충 사는 삶의 미학을 알게 되리라.


두 남녀가 한 남자에게 복수하려 한다. 그리고 찾아간 곳이 (주)달콤한 복수. 그곳 대표는 둘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복수를 돕는다. 이들의 꼬리를 밟은 타겟은 역으로 협박을 해오고, 어찌하다 죽어버려 일행은 멘붕이 된다. 한편 직원들과 계속 엮이는 경관 때문에 피가 마르는 복수회사 대표. 그는 언제까지 직원들에게 끌려다녀야 할까. 어디서부터 일이 틀어진 걸까.


딱히 요나손의 팬은 아니지만 그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찾게 된다. 이 분만큼 꾸준하게 웃음을 선사하는 작가도 없을뿐더러, 정신없이 사는 현대인들의 기분전환을 시켜줘서 고마운 것도 있다. 요나손을 보면서 느끼는 건데 진짜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절대 고수가 되는 거구나 싶다. <100세 노인>으로 인기몰이를 한 그는 계속해서 본인만의 글로벌 B급 병맛 장르를 갈고닦았다. 사실 그의 작품들이 재미는 있지만 전개가 워낙 노답이라서 계속 이런 식이면 손 떼야겠다 싶었는데, 웬일로 이번에는 제법 탄탄한 플롯을 보여줘서 당황스러웠다. 주연 한두 명에게 매력 몰빵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인물마다 꽤 신경을 썼고, 개연성을 첨가하여 병맛 전개임에도 흐름이 매끄럽다. 이제는 늦깎이 루키의 패기보다 베테랑의 노련미로 승부하는 게 느껴진다. 이번 작품은 다른 것보다 작가의 성장 면에서 박수받아 마땅하다. 팩트 하나 짚자면 그렇게나 빵빵 터진다는 그의 유머 코드가 한국에서는 피식 수준이라는...


요나손의 작품들은 꼭 모질이 캐릭터가 등장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 모질이의 돌발행동이 모두를 들었다 놨다 해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게 한다. 이 책에서는 케냐의 마사이족 남자가 아들을 찾겠다며 스웨덴으로 날라오는데, 그의 마사이족 방식에 스웨덴인들은 정신을 못 차린다. 이 좌충우돌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뒤로 갈수록 일행들의 문제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타겟에게서 유명 화가의 그림 두 점을 되찾아야 하는 문제로 골머리 썩고 있던 일행은, 예상치 못한 타겟의 죽음으로 서둘러 사업을 접고 스웨덴을 뜨기로 한다. 경관의 의심을 산 일행은 진실과 거짓을 잘 섞어가 심문을 통과하고 케냐로 가서 해피엔딩을 맞는다. 아이고, 리뷰가 작품의 급전개를 따라가는구나. 이런 병맛 소설을 진지하게 분석하는 건 재능 낭비 아니겠슈? 궁금하면 사다 읽으슈.


이번 신간도 킬링 타임용의 역할을 백 퍼센트 해내주셨다. 요나손의 창조물을 볼 때면 대충 사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탈한 인생을 위해 일에는 너무 감정 쏟지 말고, 여가 생활에는 너무 에너지 쏟지 말기로 또 한 번 다짐한다. 번아웃, 슬럼프, 매너리즘, 권태기 등등 온갖 위기가 찾아들 때면 멘탈의 신 김연아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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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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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피곤해서 일찍 뻗느라 요즘 책 읽을 시간이 잘 없다. 그래서 호흡이 짧은 책이 필요하여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를 집었는데 결과는 매우 만족. 솔직히 국내 에세이들, 다 고만고만해서 안 읽지만 독서나 글쓰기에 관한 거라면 읽어줘야제. 일단 저자가 자신을 작가나 소설가가 아닌 ‘읽고 쓰는 인간‘으로 소개하고 있어, 이건 또 뭔 어그로인가 싶었는데 읽어보니 왜 그렇게 정의했는지 알겠더군. 장강명 작가. 이젠 꽤나 유명하시지. 책도 많이 내고, 상도 많이 타고, 팬들도 많이 확보했고. 그의 작품을 몇 권 읽어본 바 나랑은 잘 맞지 않는 작가 중 하나였다. 내가 또 르포 장르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데 지금은 이 사람이 좀 좋아져 버렸다. 하루키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다는 말들처럼 장강명도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이 분도 타 작가들처럼 생계를 걱정하며 살고 있다. 솔직히 장강명 정도면 스타 작가 아이가? 나야 뭐 안 맞아서 그렇다 치고, 내 주변에 장강명 책 안 읽는 사람이 없던데? 찾아주는 사람도 많고 본업도 부지런히 하는 데다 여러 방송과 강연도 나가는데, 이만하면 충분히 성공한 거 아닌가? 하지만 태생이 아웃사이더인 그는 모든 것이 부담 위에 부담이었음을 이 책으로 고백하고 있다. 작가로서의 고충은 나오지만 그걸로 내내 징징대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근데 기자 활동은 대체 어떻게...


나와 저자의 공통점이 생각보다 많았다. 내 좌우명이 ‘쓰기 위해 읽는다‘인데, 나 또한 읽고 쓰는 인간의 범주에 있지 않겠나. 저자는 나처럼 다독에 집착하지 않고, 한 권을 읽어도 깊이 이해하려는 타입이다. 이런 사람들은 꼭 텍스트를 뽑아내야만 숨통이 트인다. 글쓰기에 어떤 의미나 목적을 두는 게 아닌데 누군가가 왜 글을 쓰냐고 물어오면 달리 할 말이 없어진다. 차라리 잠은 왜 자는 거냐고 물어봐라. 


다양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데 그중 ‘서평‘에 대한 일가견이 가장 와닿았다. 이 분은 국내 서평 문화에 정말 관심이 많다는 게 느껴졌다. 한국 서평은 악평이 없어서 문제라고 한다. 읽는 책마다 만점 주고, 어디가 어떻게 좋은 지도 모르면서 마냥 좋았다는 부류들을 싫어하는 것도 나하고 똑같다. 사실 나는 혐오에 가깝지만. 진정성 있는 서평에 굶주린 저자에게 나의 글들을 읽게 해주고 싶군. 작가님, 제가 솔직함으로는 어디에서도 꿀리지 않는 프로까칠러랍니다. 부디 이 글을 보신다면 흔적을 남겨주십쇼. 저는 인싸보다 아싸를 좋아합니다.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만난 작가들과 신간들, 그리고 방송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그것보다는 저자 본인의 평소 생각을 말하는 장면들이 훨씬 재밌고 유익하다. 그는 말하고 듣는 유형과, 읽고 쓰는 유형으로 사람들을 나눈다. 전자는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여 현재를 살아가고, 후자는 시대를 앞서가느라 미래를 살아간단다. 나는 말하고 듣는 걸 참 좋아하지만 그래도 후자에 가깝다. 뭔가를 쓰기 위해서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그 생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길 반복하다 보면 확실히 현재보다 훗날을 더 내다보게 된다. 단점은 자꾸 시대를 초월하려다 보니 현재가 시시해진다는 것. 그래서 미래로 가기 위해 책을 계속 읽게 되나 보다.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말과 행동에 더 신중해야 한다. 잘못된 사상을 심어준 대가는 서로를 구덩이에 빠뜨린다. 그래서 나는 언변이 뛰어나고 입담이 화려한 사람과는 가까이하지 않는다. 기 빨려서 피곤하기도 하고. 여튼 장강명은 내가 좋아하는 신중한 아싸인데 적당히 대화를 즐기는 사람 같다. 그가 소신 있게 적은 여러 가지 대목 중에서, 꼭 창작을 못하는 것들이 비평을 한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게 정말 멋있었다. 모 축구선수의 유명한 어록이 있었지.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 오죽했으면 그런 말을 했으랴 싶지만,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타인의 평가는 혹독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장강명은 자신의 책을 읽고 신랄하게 까줘도 좋다는 마인드를 보여주어 멋지다 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책뿐 아니라, 한 사람에 대해서도 좀 리뷰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나도 누군가가 나와 내 글들에 대해 리뷰해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설령 그게 악평이라도 진정성이 담겨있다면야.


진짜 간만에 이야기 다운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다. 저자는 좋은 책의 기준을 취향이 아닌 가치관의 차이라고 하였다. 그 말인즉슨 세상에는 가치 없는 책이 한 권도 없다는 말일 테다. 각자에게 맞는 책을 부지런히들 읽고 쓰는, 보다 더 진정성 있는 독자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작가는 작가로써, 독자는 독자로써 의무를 다하기로 하자. 만 권을 읽어도 제자리걸음이면 이 무슨 시간 낭비야, 안 그래? 그럴 바엔 맛집이나 찾아다녀라 말해주고 싶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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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07 13: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 님 넘 공감되는 말씀 좋아요. 열 번 누르고 싶네요. 마지막 문장 특히 !! 그래서 맛집이나 찾아다니더라구요 진짜. 괜한 지적 허영보다 그게 솔직하고 나을 수도 있겠다 생각 드네요 ㅎㅎ

물감 2021-11-07 14:12   좋아요 4 | URL
하는 일마다 꼭 영양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헛고생 하는 데에 시간낭비할 필요도 없으니까요ㅋㅋㅋ공감 감사해요🙂

미미 2021-11-07 13: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좋았는데 물감님 리뷰도 너무 좋네요! 까는 것도 잘 까야하는데 대놓고 토론 많이 하는 문화도 아니고 이른바 전문가들만 자기 썰푸는 정도라 그럴까요. 그렇다보니 일반인들은 좋게 쓰는 것 보다는 잘 까야하는게 힘들어져 못 까는 게 아닐까..(제 경험입니다만ㅋㅋ)물감님은 양쪽다 잘하시는 것 같아 써주신 글 읽으며 실컷 대리만족 합니다ㅎㅎ

물감 2021-11-07 14:15   좋아요 4 | URL
미미님 글 잘 쓰시잖아요ㅎㅎ 눈치보지 마시고 마음껏 쓰고싶은대로 쓰세요! 이게 시작이 어렵지, 나중에는 좋게 쓰는 게 더 어렵다고요ㅎㅎㅎ여튼 대리만족 감사요!

새파랑 2021-11-07 16: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쓰기 위해 읽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 같아요. 글 잘 쓰시는 분들 정말 부럽습니다~!! 저는 읽는데 중점을 두고, 리뷰 쓰기 위해 다시 한번 찾아보면서 정리하다보니 글이 약간 독후감 느낌이 들어요 😅

물감 2021-11-07 16:53   좋아요 3 | URL
저도 글 잘쓰는 분들이 부러워요 ㅎㅎㅎ 어떤 글이든 진심이 담겼으면 됐죠! 성의 없는 글보다는 만 배 낫습니다 😉

공쟝쟝 2021-11-07 18: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뭐야, 장강명 저랑 동족인데. (그리고 저는 동족혐오, 장강명 싫어함ㅋㅋㅋㅋㅋ)

물감 2021-11-07 19:21   좋아요 3 | URL
역시 호불호 극명한 작가여라ㅋㅋㅋ근데 동족이라면 쟝쟝님도 아싸...? 그건 아닐거고, 어떤점이..??

공쟝쟝 2021-11-07 19:28   좋아요 3 | URL
세상에서 지가 제일 잘난 경영학과 예비역이요ㅋㅋㅋ 약간 잘났어, 증말!! 하게 되는 재섭는 캐릭터. 그러나 묘하게 듣게 되는 말발(필력?) 시니컬한 휴머니스트… 제가 싫다고 욕했는 데, 지인이 그거 동족 혐오라고 해서 걍 인정하기로 했음 ㅋㅋㅋ 너 나랑 닮았다 ㅋㅋㅋ

물감 2021-11-07 19:55   좋아요 3 | URL
아 그러니까 캐릭터 겹쳐서 싫은거군요?? 잘났어, 증말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11-07 20:07   좋아요 3 | URL
(그리고 잘났어 증말 ㅋㅋㅋ 이라는 말을 듣는 자신을 멋쩍어하다 점점 뿌듯하게 생각한다.)

coolcat329 2021-11-08 07: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도서관에서 빌려와 다 못 읽고 반납했네요.
이 책에서 가장 기억나는 건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 다알리아> 책소개였어요. 정말 너무 홀리게 하더라구요. 저 읽은 책인데 기억이 안나서 당황했지만 장강명 볼 때마다 블랙 다알리아가 떠올라 꼭 읽어야지 다짐하네요.

물감 2021-11-08 07:34   좋아요 2 | URL
저도 궁금해서 <블랙달리아> 찾아봤는데 의외로 평점은 쏘쏘하더군요. 아마 독자보다는 작가에게 매혹적인 플롯과 문체가 아니었나 싶어요~ 저는 <슬픔이여 안녕>이 읽고 싶어지네요ㅎㅎ

다락방 2021-11-09 14: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강명 안좋아하는데... (시무룩)

공쟝쟝 2021-11-09 16:03   좋아요 2 | URL
저 시러해요? 🥲 저랑 장강명 비슷한데요? ㅋㅋㅋㅋㅋ (쟝무룩, 옆에 강명무룩)

다락방 2021-11-09 16:32   좋아요 3 | URL
비슷하지 않아요 쟝님. 아주 큰 차이가 있어. 그렇지만 그 차이가 뭔지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을 것이고 ㅋㅋ 쟝님은 좋아합니다. 💕💕

공쟝쟝 2021-11-09 16:46   좋아요 2 | URL
저도 좋아합니다 샤라랑🥰 (남의 페이퍼에서 사랑의 작대기 중 ㅋㅋㅋ)

물감 2021-11-09 16:48   좋아요 2 | URL
두분다 머하심까...ㅋㅋㅋㅋ

scott 2021-12-09 15: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 추카!

그레이스 2021-12-09 17:20   좋아요 3 | URL
물감님 저도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12-09 22:42   좋아요 1 | URL
아이고 두분 다 감사합니다!

쎄인트saint 2021-12-09 17: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12-09 22: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세인트님ㅎㅎ

이하라 2021-12-09 18: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물감 2021-12-09 22:44   좋아요 1 | URL
당선이 됐었군요.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12-09 2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12-09 22: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도 당선 축하요!

서니데이 2021-12-09 21: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물감 2021-12-09 22:45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러블리땡 2021-12-10 0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책 이게 뭐라고 요 리뷰 기억나요!!! ㅎㅎㅎ

물감 2021-12-10 07:54   좋아요 1 | URL
ㅎㅎ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럽땡님ㅎㅎㅎ

강나루 2021-12-10 06: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당선 축하해요^^

물감 2021-12-10 07:5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강나루님도 당선 축하해욥😀
 
여름의 끝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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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따스한 가을 햇살이 버스 안으로 들어온다. 쳐다보는 나무마다 얼굴을 붉혔고, 붕어빵은 어느새 차갑게 식었다. 피곤한 두 눈을 감고 들려오는 안내방송에만 집중한다. 갈색 재킷을 입은 엄마는 통화 중이고, 옆자리 아이는 장난감 로봇을 가지고 떠들어댄다. 반복되는 소음에 다시 두통이 찾아와 가방을 열어보니 약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따라 버스기사는 느긋하고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는 작동하지 않는다. 열차가 멈추자 앉아있던 승객들이 우산을 들고 내린다. 오후에 비가 올 것을 알고 있었는데 또 생각 없이 집을 나섰다. 점점 목소리를 높이는 두 노인 때문에 두통이 심해진다. 그냥 오후 반차를 낼까.


내 나름대로 이 책의 분위기를 따라 써봤다. 언뜻 보면 차분한 일상의 감성으로 충만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내용은 없을 거다. 이 책이 딱 그랬는데, 생략된 주어나 문장으로 글의 연결은 부자연스럽고, 그래서 핀트가 안 맞다 보니 묘하게 심기가 불편했다. 이것이 정녕 오리지널 아일랜드 감성입네까? 그렇다면 나는 아일랜드 문학보단 아일랜드 주방 쪽하고 더 잘 맞는가봅네다.


아내와 사별한 남자는 새로 온 하녀와 결혼한다. 형편이 나아진 그녀였지만 여자로서 사랑받지는 못했다. 갑자기 나타난 타지의 남자와 가까워지면서 설레는 감정을 느끼지만,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며 방황한다. 남자를 따라 아일랜드를 떠난다면 행복할지는 몰라도 평생 범죄한 신앙인이 될 것이다. 반대로 남편 곁에 남는다면 안정된 삶을 살겠지만 평생 사랑은 느껴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여자의 고민을 눈치챈 남자의 가슴 시린 혼잣말.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어휴. 중반까지는 내용 파악이 안되어서 애 좀 먹었다. 문단 안에서 자꾸 시점이 바뀌는 데다 이야기에 어떤 알맹이가 없어서 영 집중이 안 된다. 이런 알듯 말듯 아리송한 내용이 몇 가지 시점으로 교차하다 중간에 야금야금 합쳐진다. 그전까지는 여러 단편들을 번갈아가며 읽는 기분이었는데 가독성마저 좋지 않아 나 같은 타입에게는 인내심 테스트에 그만인 작품이었다. 이야기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사건 발생과 인물 갈등이 필수 조건인데, 이 책은 한참 뒤에 가서 숨을 쉬기 시작한다. 게다가 5분이면 될 얘기를 1시간으로 늘려 말하듯 느린 전개이다. 스토리가 안되면 글맛이라도 있던가, 주제가 없으면 재미라도 있던가. 이중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으면서 이상하게 건들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왜인지 읽는 내내 <전원일기>가 떠올랐는데, 그 케케묵은 작품이 모든 면에서 이 책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된다. 


후반부터는 놀라울 정도로 글이 매끄러워지고 알맹이가 생기면서 제법 소설다워진다. 진작 이렇게 해줬음 얼마나 좋았답니까. 일단 세 명 다 가족으로 인해 생긴 상처로 과거 어딘가에 갇혀있다. 남편은 자신의 실수로 아내와 자식을 숨지게 했고, 아내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 출신이었으며, 남자는 죽은 부모에게서 많은 빚과 소송을 물려받았다. 이들의 문제는 극복을 할 수 있고 없고의 무게가 아니었다. 작가는 인물들을 그냥 그렇게 쭉 방치해두는 길을 택했다. 소설이라 해서 어떤 특별함을 부여하기보다 비교적 현실적인, 또 지극히 인간적인 선택과 책임을 쥐여주었다. 반전 없는 결말이 싱거워 보일 수 있겠으나 긴 시간 유지해온 적막과 감정선을 깰 바에야 이 같은 엔딩이 더 어울리기는 하다. 여하튼 상실과 슬픔을 극복하지 않고 침묵으로 대한다는 점에서 독자의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때로는 우는 사람을 곁에서 달래주기보다 멀리서 지켜봐 줄 때도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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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11-01 0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펠리시아> 읽고 나서
보려고 쟁여 두었는데 여기 갔
는지 모르겠네요.

읽을 적에 리뷰 잘 참고하겠습니다.

물감 2021-11-01 13:23   좋아요 1 | URL
독자들의 취향 존중을 떠나서 문법이 영 거슬려서 혼났어요. 번역이 별로라는 평도 좀 있던데 제가 보기엔 번역만의 문제는 아닌듯 합니다. 그래도 <펠리시아의 여정>은 기대해보겠습니다.

공쟝쟝 2021-11-01 08: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ㅋㅋㅋ 앞 문단 너무 서정적인데다 남 한테 관심많아 (이런 캐릭터였나?) 했는 데… ‘제법 소설다워 진다’는 표현에서 (아 이런 글 쓰는 사람이었지ㅋㅋㅋㅋ) 안도 하고 갑니다~
월요일 화이링~~~

물감 2021-11-01 11:51   좋아요 3 | URL
사람은 갑자기 바뀌면 안된다죠 ㅋㅋㅋ 아무도 못믿겠지만 저는 옥구슬 감성의 소유자라서 얼마든지 서정적인 글도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창피함은 읽는 이의 몫이라는ㅋㅋㅋㅋㅋ 출근하면서 이어폰 케이스를 잃어버렸네요... 하아... 월요일 화이링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11-01 1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옥구슬 감성의 서정적인 글도 아주 좋은데요? 자주 써주세요~ ㅎㅎㅎㅎ

물감 2021-11-01 20:11   좋아요 1 | URL
잠깐 흔들렸지만 전 이웃님들을 눈물 글썽이게 만들고 싶지 않으므로 캐릭터 유지하겠습니다ㅎㅎㅎㅎ

공쟝쟝 2021-11-01 18:4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옥구슬 낭창한 글을 읽은지 너무 오래됐네요? 까마득함 ㅋㅋ (가장 최근 읽은 소설은 동네에 숨어든 뱀파이어 찢어발기는 내용이었…)
아니다 엊그제 청춘의 문장들 새삼 읽는데 항마력 딸립디다. 안되겠어 감성을 촉촉하게 하기 위해 다른걸… 좀…

물감 2021-11-01 20:13   좋아요 1 | URL
쟝쟝님, 이제 세상은 아포칼립스라서 촉촉한 감성 같은 건 없어도 된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장르물 즐기셔요ㅋㅋㅋ

붕붕툐툐 2021-11-01 1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 배고파서 붕어빵은 어느새 차갑게 식었다에 꽂혔어요. 붕어빵을 식을 때까지 두다니,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ㅎㅎ
트레버옹 작품이라 읽어보고 싶었는데 심히 고민이 되네요~ 너무 서정서정한 걸 어려워하는 섬세하지 못한 사람이라서요~~ㅎㅎㅎ

물감 2021-11-01 21:01   좋아요 2 | URL
그것은 붕어빵에 묻어있을 미세먼지 생각에 차마 씹지 못하고 있다가 식어버렸다는 비하인드가 있습니다 ㅋㅋㅋ이제 길거리 음식들은 정말 손이 가질 않아요...
툐툐님의 섬세함 정도면 트레버옹 작품은 문제없을듯요! 냉큼 도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