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미트리오스의 가면 열린책들 세계문학 248
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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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도 실망했다면 기대를 했단 거겠지. 스파이소설의 원조라는 에릭 앰블러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와 이렇게 루즈한 첩보물도 다 있나 싶더라니깐. 아무리 뻔한 게 싫다지만 독자들이 어느 정도 바라는 전개가 있잖아? 그런데 자꾸 불길한 길로만 빠지면 읽는 내내 불안해진단 말이지. 혹시 잘못 걸린 게 아닐까, 괜히 시간만 뺏긴 건 아닐까 하고.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은 딱 불안한 독서의 표본이었다. 정성 들여 쓰고 싶지 않으니 후딱 쓰고 끝내련다.


경찰을 따라 한 시신을 참관하게 된 추리 소설가. 살해당한 시신은 악명 높은 범죄자, 디미트리오스였다. 이 범죄자에게 호기심이 생긴 주인공은, 비공식 탐정이 되어 몰래 뒷조사에 들어간다.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얻어낸 정보만 해도 디미트리오스는 위험인물이 분명하지만 많은 베일에 싸여있어 영 파악이 불가했다. 결국 꼬리가 밟혔는지, 디미트리오스와 일했던 X맨이 주인공을 협박해온다. 손 떼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소설가는 이대로 죽고 말 것인가.


이 작품이 노잼인 이유가, 이미 죽어버린 범죄자의 발자취를 알아내서 어쩔 거냐는 말이지. 차기 작품을 구상한다는 핑계야 있지만, 이미 주인공 스스로도 이 짓을 왜 계속하고 있는지를 자문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미결 사건을 풀 것도 아닌데 뭐 하러 계속 파고드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어떤 확신이나 동기 같은 게 없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휘젓고 다니는 주인공이 그저 맥빠져 보일 뿐이다. 또한 디미트리오스가 죽었다는 설정으로 흘러가나, 조만간 진짜가 등장하실 게 뻔해서 일말의 기대조차 생기질 않는다. 늦어진 등장만큼 비중 또한 낮으니 활약이랄 것도 없이 퇴장해버린다. 물론 기대도 안 했지만 중요 인물을 이렇게 막 다뤄도 되는 건가. 보통 스토리가 부실하면 캐릭터빨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X맨은 소설가와 1급 정보를 합쳐 디미트리오스의 재산을 뜯어낼 계획이다. 이 X맨과 엮인 뒤 끌려만 다니는 주인공의 수동적인 플레이는, 디미트리오스가 등장했음에도 분위기를 바꿔놓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스파이가 안 나오는데 스파이 소설이 웬 말인지. 디미트리오스처럼 제 욕망을 가면 쓴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타인의 욕망을 이용하여 제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선하게 사는 사람들도 어떤 상황과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든지 돌변할 수 있다는 인간의 본성을 다루려던 작품이 아니었을지. 아무튼 별로였다. 회사 책 뽀개기 마지막인데 쪼까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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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1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1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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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은퇴 후 사설탐정이 되었다가 경찰국의 권유로 다시 복귀한 해리 보슈. 역시 능력만 있으면 굶어죽을 일은 없다는 거로군. 기존에 액션과 스릴이 가득하던 것과 다르게 매우 잔잔한 작품이다. 그러나 아무리 건조해도 코넬리 글에는 흡인력이 있어 말없이 빨려 든다. 그래서 재미없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작품이 낮은 텐션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경찰국에서 제발 와달라고 사정사정한 게 아니라 전 파트너의 입김으로 겨우 복직한 것이고, 그래서 과거 고참의 파워와 영향력은 행사할 수도 없는 데다, 강력계에서 미제 사건 부서로 발령받기까지 하여 보슈의 말로는 가장 나이 많은 신참이 되어버린 셈. 그러나 그런 조건들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그저 형사 신분으로 돌아와 할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모든 게 반가운 인생 제3라운드의 늦깎이 주인공. 한마디로 나댈 수 없으니까 얌전히 지내는 중이다. 그렇다고 쫄아있을 보슈가 아니다. 다 늙어도 맹수는 맹수다.


이제 보슈와 파트너는 새 부서에서 잔뜩 쌓인 미제 사건들을 해결해 가야 한다. 이미 오래 지난 일인에다 사라진 자료들과 행방불명의 관계자들 등등 온통 맥빠지는 상황뿐인데, 그럼에도 뜨끈뜨끈하게 재수사를 해나가는 주인공들을 보며 작가의 역량에 또 한 번 감탄했다. 공백기가 있었지만 베테랑 형사의 감각이 빠르게 돌아오는 보슈를 보며 파트너는 안심하고, 독자 또한 기대를 부풀게 만든다. 이번 편에서는 사라진 소녀가 총살당한 시체로 발견된 미제 사건을 다룬다. 범인도 용의자도 없어 그대로 묻혀버렸던 옛 사건인데, 범인의 DNA가 묻은 총기가 발견되어 용의자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솔직히 플롯은 너무 평범해서 리뷰하고 싶지 않다. 귀찮아서 생략하는 게 아님을 믿어달라.


소녀가 죽은 뒤로 부모의 삶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아빠는 집 떠나 노숙생활을 하였고, 엄마 혼자 딸의 방을 보존하며 살아왔다. 두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보슈 또한 딸 가진 아빠로써 마음이 찢어진다. 확실히 나이 먹고 자식 생기고 하니까 보슈도 많이 유순해지긴 했다. 이런 변화를 겪는 소설 속 형사들을 볼 때마다 이게 과연 좋은지 나쁜지를 잘 모르겠다. 여튼 그때와 달리 이젠 지문이나 피 검사 같은 과학기술 덕에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는 보슈와 일행들. 먼저 총기에 묻은 피의 주인을 찾아 접촉을 시도한다. 그 용의자를 미끼 삼아 진범을 끄집어낸다는 이 계획은, 중도에 용의자가 살해를 당하면서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그리고 이 수사를 주도한 보슈는 그의 죽음이 제 탓임을 알고 경찰국과 사회에 완전 찍혀버린다. 복직하자마자 잘릴 판이라니. 역시 주인공들은 굴려야 제맛이로다.


수사자료와 관계자들 사이에서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내내 추리만 하고 있다. 보다시피 사건도 수사도 평범해서 별 스릴감은 없다. 그래서 이번 편의 관전 포인트는 단 하나이다. 보슈의 클라스는 여전하다는 사실. 그것 말고는 뭐가 없는 작품이라 썩 리뷰할 게 없네 그래. 분량이나 채울 겸 해리 보슈라는 캐릭터가 이토록 롱런하는 비결을 분석해 보자. 지금껏 지켜본 바로는 보슈가 늘 옳고 멋진 모습만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막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항상 약자의 편에 서는 타입도 아니었다. 한결같이 어둡기만 한 그의 인생은 어찌 보면 독자들을 지치게 만들법한 요인이다. 보고 있으면 주인공 스스로 평생을 패배자처럼 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전 세계 독자들은 이 떠돌이 코요테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그 이유는 바로 ‘찌질함‘에 있다. 어느 작품이건 사랑받는 인물들은 전부 찌질한 면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서 오는 친밀감과 유대감 때문에 온갖 미운 정 고운 정이 드는 거다. 코넬리의 페이소스를 다루는 기교는 가히 넘사벽이다. 이제는 주인공의 사건 수사나 활약보다도, 그의 찌질함이 어디까지 내려갈지가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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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의 작업실 - 김호연의 사적인 소설 작업 일지
김호연 지음 / 서랍의날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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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있는 매화나무에서 치토스 냄새가 난다. 그 덕분에 삼월의 봄날은 고소한 계절로 기억될 듯하다. 돌아보니 식욕이 줄어든지도 꽤 됐다. 작년에 그 일이 있고부터 지금까지 약 반년을 1일 1식 하고 있다. 그 한 끼마저도 살기 위해 먹을 뿐. 지금의 나를 붙들어매는 건 겨우 아메리카노 한 잔이다. 그리고 날마다 생각한다. 내가 붙잡고자 하는 것들은 왜 하나같이 멀어지고 떠나가는지를. 이래저래 해본들 결과는 다 정해져 있다 이건가. 생각의 과부하로 침몰해가던 그때에 한 연락을 받았다.




매번 잊지 않고 신간을 보내주시는 고마운 작가님. 왜 내가 꼭 힘들어하고 있을 때만 맞춰서 책이 나오는 걸까. 그래, 이번에는 작가님 말씀대로 책에 대한 리뷰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나의 글쓰기에 대한 얘기나 실컷 해야겠다. 본디 공부와 거리가 멀었던 나는 책을 정말 싫어했다. 삼십 대가 되고부터 바빠진 인맥들과 멀어지면서 시간 죽이기로 찾게 된 것이 독서였다. 솔직히 독서 자체로는 그리 흥미가 일진 않았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리뷰를 뒤져보다가 글 좀 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십중팔구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글들이었지만 간혹 눈길을 확 사로잡는 내 스타일의 리뷰를 보며 나도 모르게 그런 글쟁이가 되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나의 ‘쓰기 위한 독서‘가 시작되었다.


내가 주로 읽는 분야는 문학, 특히 소설 쪽이다. 비문학을 리뷰해 봤자 뭔 재미가 있나 싶기도 했고. 여튼 쓰기 위해 읽는 거라 독서 도중에도 틈틈이 메모 앱에다 쓸 말을 적어두고 나중에 다시 정리하고, 그렇게 독서와 글쓰기를 병행하느라 완독하기까지 시간을 너무 할애했다. 그렇지만 글쓰기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권 읽는데도 아쉽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뭔가에 열중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했다. 겨우 몇 줄밖에 못쓰던 시절에도 나는 무조건 공개 글만 올렸고, 반응이 있든 없든 만족해하며 그 글쓰기 생활로 밑바닥의 자존감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글쓰기의 롤 모델도 있었고, 내가 원하는 문체나 감성도 정확히 파악했기에 방황 없이 순조로운 글쓰기를 즐겼으며, 그 시간들은 나의 메마른 광야 길에 플레이 리스트가 되어주었다. 글쓰기가 치유의 힘이 있다던데 정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행을 싫어했다. 나만의 선택이 남들과 겹치는 게 맘에 안 들었다. 그런 성향은 글쓰기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이제 막 글쓰기를 해보려던 때조차 남들과 똑같은 표현과 문체는 최대한 피하려 했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그런 글은 절대 쓰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짧든 길든 문장과 글에는 작성자의 개성과 통찰이 담겨있어야 하고, 나의 롤모델이 했던 말처럼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가 이해할 만한 글이어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써보면서 나도 나름의 글쓰기 철학이 생겼는데, 딴 건 몰라도 무조건 쉬운 글을 써야 한다는 게 첫 번째 원칙이다. 위에서 말했던 십중팔구의 글들은 대부분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퀄리티를 떠나 흥미조차 안 생기는 것이다. 기껏 공들여 써놨는데 정작 아무도 안 읽는다면 이 얼마나 허무한가. 비록 자기만족에 쓴 거라 해도 공개 글을 올리는 거라면 독자들 생각도 해가면서 써야 한다. 독자와의 호흡이란 전문 작가들한테만 해당되는 필수 값이 아니거든요.


이 독자와의 호흡이 뭔지를 몰라서 일방통행의 글을 쓰는 분들이 참 많은데, 간단하게 채팅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지금 자신이 쓰는 글의 문체가 평상시 하는 말투인지 돌아보시라. 물론 전혀 똑같을 필요도 없지만 그 차이가 심하게 벌어진 것도 원인이 된다. 흔히 노래를 할 때에도, 말하듯이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의 고유성을 하나하나씩 교정해나가는 것이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재창조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많은 글쟁이들은 이 글쓰기를 너무 신성시한다거나, 소위 있어 보이고 싶어 안달 난 태도를 하고 있다. 그런 계산적인 글쓰기 말고 평소 본인의 말과 생각들을 잘 정돈해서 대화하려는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한다. 한 번 물어보자. 당신은 본인이 쓴 글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내 손을 떠난 글들을 때때로 읽긴 하는가? 분명히 그 글들도 작성할 당시에는 갖은 애정을 담았었을 텐데 그리 쉽게 잊혀져도 상관없단 말인가? 나는 주기적으로 내 지난 글들을 읽어준다. 오만하게 들리겠지만 남들보다 내 글을 읽는 게 더 재밌긴 하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어떤 도피처였다. 늘 진심이었고, 그래서 지금 봐도 버릴만한 글이 하나도 없다. 내 글의 독자 1호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


대체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유형이 글쓰기도 많이 한다. 혼자 있는 만큼 생각 또한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그 많은 생각들을 방치해두면 언젠가는 골병이 난다. 그래서 글로 정리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다만 치유하는 글쓰기에서 멈추느냐, 내 안의 우주를 확장하는 글쓰기로 넘어가냐인데, 이 후자에 대해서 할 말이 좀 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글감도 많아서 좋겠다고들 한다. 그러나 세상과 단절된 이가 저만의 세상에서 내린 정의와 판단의 글은 위험하다. 좋든 싫든 남들과 섞여도 보고 부딪혔을 때라야 사회의 민낯과 인간의 본성과 자기 연민 등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고립된 글쓰기를 고집한다면 이 확장하는 글쓰기에 필시 한계가 온다. 본인이 쓴 글을 본인도 읽지 않는다는 것도 그 증거이다. 나 역시 생각의 저주에 갇힌 사람으로서, 열린 사고를 갖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배우고 있다. 내 맘 같은 사람은 보기 어렵고 현실은 여전히 외롭지만, 읽고 쓰는 삶이 계속되는 한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뭐. 오랜만에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었다. 점심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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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3-19 14: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맛있는 한끼 되시기 바랍니다.

물감 2023-03-19 16:1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웰리 2023-03-19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베란다 앞에서
매화가 피고 개나리가 피고
산수유도 피고 살구나무가
앞다투며 피고 있어요 🌳
우리 아파트에 나무가 많아서
행복합니다....꽃..이어달리기

아침에 새들도 바쁠 예정^^
물감님 글 읽자마자 사진 📷

물감 2023-03-19 17:52   좋아요 1 | URL
꽃나무가 많은 곳에 사시는군요. 복 받으셨습니다 ㅎㅎ
이제 해도 정말 길어졌더라고요. 같이 힐링해요 ^^

scott 2023-03-19 1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작가님들에게 셀럽 리뷰어!ㅎㅎ 본인글을 본인이 않읽는다는 건 마치 식당주인이 자신이 만든 음식 안먹는다는 것 ㅎㅎ 이글 읽고 오늘 제가 쓴 글 제 눈으로 꼼꼼하게 읽고 맞춤법 고쳤습니다. 돌아댕기는게 무서울 정도로 모든 가격이 고공! 물감님의 봄날 따숩게 ^^

물감 2023-03-19 18:40   좋아요 1 | URL
이야.. 요리사가 제 요리를 안먹는단 말로 토스하시다니, 역시 스캇 님은 짱짱맨이심다 ㅋㅋㅋㅋ요즘 미친듯이 글 쓰시던데 건강 꼭 챙겨가면서 하시길요!

2023-03-20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0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0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0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정 폭력 -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되는 폭력 이야기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손희주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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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책 뽀개기도 다 끝나간다. 이번 책은 지금 내 상황과 딱 맞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말 그대로 감정 폭력을 당하는 현대인들의 다양한 고통을 기록한 책이다. 전쟁이나 폭행같이 강렬한 자극으로 인해 생긴 PTSD에 대해서는 많이들 연구하지만, 일상 속에서 겪는 감정의 고통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묵살되곤 한다. 그런 자잘한 감정적 폭력에 당해버린 현대인들의 몸과 정신이 어떻게 파멸하는지를 다양한 사례들로 폭넓게 설명해 주고 있다. 사실 전반적으로 쏘쏘한 일화들 뿐이었는데, 그중에 정말 내 가슴을 찌르고 도려내는 몇몇 내용이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조용한 경멸이었다. 싸우려 하지도 않고 그냥 투명인간 대하듯 대놓고 무시하는 인간들. 그런 취급을 받다 보면 내가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라고 믿게 되어 자기 비난에 빠진다. 그러면 상대방에게 나가야 할 화가 자신을 향하게 되고, 모든 원인을 나에게서 찾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설자리를 잃는 것도 그렇지만, 있어도 있는 게 아닌 존재가 부정당하는 그 기분이 얼마나 비참한지.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고, 왕따보다 은따가 더 악질이다. 누구나 잘 알지만서도 너무 모른 채 한다. 그렇게 늘 당해왔던 감정 폭력은, 소외감이 느껴질 때마다 두려워하는 정신 질환자로 나를 바꿔놓았다. 어떻게든 이겨내보고자 이런저런 노력과 시도를 해보지만, 불가피한 상황은 언제 어디서나 발생하기 때문에 별 수없이 감내하며 사는 중이다. 이 같은 감정 폭력에 상처 입는 건 여리고 예민한 사람들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스트레스가 사람 봐가면서 찾아들지는 않으니까. 여튼 남은 일생의 건강을 위해 각자 관심사에 죽어라 덕질 합시다. 진정 이것이 폭풍 가운데서도 잔잔함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그럼 이만 화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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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9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0 0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3-03-10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악플을 답니다.

물감 2023-03-10 17:01   좋아요 0 | URL
저런

책읽는나무 2023-03-11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에 좋은 책 많네요?
회사 어디 다니세요?ㅋㅋㅋ

물감 2023-03-13 09:45   좋아요 2 | URL
도서관 복지는 좋지만 회사까지 좋은 곳은 아닙니다 ㅋㅋㅋㅋ

자목련 2023-03-13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 님의 회사책 뽀개기, 다음 책이 궁금합니다^^

물감 2023-03-13 14:46   좋아요 2 | URL
다음 책이 끝입니다ㅋㅋ그리고 소설이에요. 역시 전 소설이 좋아요😀

잠자냥 2023-03-17 1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성인이 되어서도 은따 이런 거나 하고 진짜 못난이들... 못난이 나라 한국 대단해요. ㅎㅎ무튼 덕질만이 이 무쓸모 인생의 구원입니다.

물감 2023-03-17 11:21   좋아요 1 | URL
넘나 공감합니다ㅋㅋㅋㅋ 난 정말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싶은데 절대 협조를 안해주는거 있죠 ㅋㅋㅋㅋㅋㅋ제가 미국 살았으면 총기난사로 뉴스 나왔을거에요......
 
성격이란 무엇인가 - 하버드대 최고의 심리학 명강의
브라이언 리틀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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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끌리는 주제나 컨텐츠도 아닌데 왜 빌렸는지 모르겠으나 읽어보니 확실히 알겠다. 나는 이런 책하고 정말 안 맞아. 이 지구별에 별의별 인간들이 다 살고 있는데 어떻게 성격을 딱딱 구분 지을 수 있겠어. 이 정답 없는 분야를 그래도 좀 알아놔야 살아가는 데에 여러모로 편리할 테니 참고용으로 훑어만 봤다. 인간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안정감을 느끼길 원한다. 내 몸과 마음을 둘 곳이 어딘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나 자신을 먼저 알아둬야 하고, 또 그래놔야 타인을 이해할 수가 있는데 물론 쉽지는 않다. 인생...

이 책의 저자는 많은 실험 사례를 통하여 개인의 성격이 결코 고정될 수 없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평소 내 모습과 반대되는 성격들도 내 안에 숨어있음을 설명한다. 성격이란 타고난 기질과 현재의 상황이 맞물려서 돌아가는 것이므로, 내가 생각하는 내 이미지와, 남들이 생각하는 내 이미지가 정반대라 해도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란 뜻이다.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된 책이지만 그다지 흥미로움을 발견치 못해서 그냥 대충 쓴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언젠가 음악방송의 MC가 성시경을 가리켜 이 시대 최고의 발라더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은 성시경은 ‘내가 발라더인가? 나는 다른 장르들도 다 할 수 있는데?‘라는 의문이 들었단다. 물론 성시경이 주로 부르는 곡이 발라드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다. 다만 너넨 다 틀렸어, 난 이런 사람이야라며 어떤 결론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거지. ‘상황‘에 따라 난 이럴 수도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어,라는 열린 사고와 태도를 갖는 게 바로 베스트이다. 어휴, 이쯤하자. 억지로 여기까지 쓴 나 자신 정말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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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3-07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는 심리학이 좋았는데 어느 순간 시큰둥 하게되더군요.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수치화하고 재단할 수 있을까 뭐 그런 회의가 몰려 오더라구요.
그러니까 전 심리학을 할 팔자가 못 되는 거죠. ㅎ
근데 그나마 성시경 발라드도 안 부르잖아요.
요리 프로에 한창 나오던데 요즘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중견가수들은 여간해서 신곡을 내지않고 있으니 뭐하며 사는지 모르겠어요.

물감 2023-03-07 21:27   좋아요 1 | URL
저는 인문/심리쪽은 좋아하는데요, 이렇게 대놓고 공부(?)하는 건 싫어요. 통찰하는 맛을 좋아해서..ㅎㅎ
성시경은 방송보단 유튜브 본인 채널에서 노래하더라구요. 안 보이는 가수들 다 본인 채널로만 활동하는 듯 합니다🙂

잠자냥 2023-03-08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종류의 책 계속 읽을 수 있는 물감 님의 인내력도 칭찬합니다.

물감 2023-03-08 14:24   좋아요 1 | URL
소설을 진득하게 읽을 상황이 못되어서요, 이렇게 휘뚜루마뚜루 읽어도 될 책들만 보고 있어요ㅋㅋ 리뷰쓰기도 전혀 부담이 안되고 좋네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