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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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는 남녀 연애 심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채널이 되게 많다. 온갖 경험으로 무장된 그들의 막힘없는 멘트는 죄다 맞는 말 같고, 그들의 코칭대로만 하면 얼마든지 이성을 공략할 수 있을 것처럼 들린다. 근데 또 길거리 인터뷰를 하는 연애 채널을 보면 생각이 바뀐다. 인터뷰를 보면 자신의 이성 타입이나 연애관이 정말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튜버들의 말을 맹신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본 결과, 좋은 이성의 조건은 내게 꽂히는 포인트를 가진 것이다. 그 포인트는 생선 뼈를 기막히게 발라내는 젓가락질이 될 수도 있고, 휴먼굴림체를 똑같이 따라 쓰는 손글씨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유독 중요시하는 것을 갖춘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호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위의 조건은 소설을 읽을 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유부단한 인물을 좋아하는 독자도 있고, 답답한 고구마 전개를 좋아하는 독자도 있고, 음울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독자도 있다. 뭐가 됐든 본인 취향에 맞으면 좋은 작품인데, 나는 인물이 적고 무대가 좁은 작품이 취향이다. 그 한정된 설정 속에서 쭉쭉 뽑아내는 재미와, 그걸 해내는 저자의 감각을 미친 듯이 좋아한다. 아 그냥 심플한 게 최고입니다요. 이번에 읽은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내가 좋아하는 조건을 골고루 갖춘 나이스 한 작품이다. 수상 타이틀에 납득이 가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겄네. 취얼쓰!


삼 년째 레트리버와 둘이서 전국여행 중인 한 남자. 그가 하는 일은 여행하며 만난 이의 집 주소로 손편지를 써보내는 것이다. 아무한테나 답장이 오는 대로 여행을 끝낼 참인데 아무도 그에게 편지하질 않아 오늘도 방랑하고 있다. 마치 답장을 받고 싶어서 편지를 쓰는 것만 같은 이 남자. 어쩌다 그는 편지에 집착하게 된 걸까. 멀쩡한 집을 놔두고 사서 고생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정처 없이 떠도는 생활도 여행이라 볼 수 있나? 아무튼 여행이란 보통 뭔가를 얻기 위해 가는 건데 이 남자는 현실을 도피하려 집을 나섰다. 그가 가족들에게 쓰는 편지 내용으로 가족관계와 자신의 과거를 소개하고 있다. 유능한 형제들 사이에서 미운 오리 새끼였던 주인공은 집을 나오자 발작 증세가 멈췄고, 달고 살았던 말더듬도 점차 고쳐지게 되었다. 그래서 조부가 키우던 개를 데리고 세상으로 도피했다. 집 밖이 집안보다 편하다는 이유로 삼 년간 떠돌았다는 게 좀 무리수 같지만 그냥 넘겼었는데 여기에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었다. 종이 편지만 쓰는 그의 아날로그 방식도 그저 개인 취향일 뿐이라고 생각했거늘 이런 훼이크를 쓸 줄이야. 이 정도 내공이면 장르소설을 쓰셔도 되겄다. 


남자를 따라다니는 여작가의 설정도 볼만하다. 자신이 쓴 소설을 직접 팔고 다니는 황당한 그녀. 그러나 마케팅에는 조금도 재능이 없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말더듬이 주인공이 유창하게 책을 낭독하여 손님을 끌어모은다. 늘 혼자가 편했던 그녀는 누군가와 같이 뭔가를 한다는 것을 못 견뎌했는데, 주인공을 만나면서 그 철벽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매일 밤 호텔방에서 소설을 쓰는 그녀와 손편지를 쓰는 남자. 성향이 달라도 입장은 비슷했던 이 둘은 각자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갇혀있던 생각과 고정관념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전개 방식과 연출도 훌륭하지만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가장 흥미롭다. 책을 읽게 하려면 궁금해야 한다는 작중 내용이 있는데, 그 말대로 작가는 계속해서 주인공을 궁금하게끔 만든다. 대인기피증 때문에 앞가림 못하던 그가 알고 보니 멀쩡하게 사회생활하던 때가 있었고, 심지어는 누군가와 연애하던 시절도 있었다. 또한 자신의 유일한 장점인 기억력을 활용해서 남들에게 인정받기까지 했었다. 작가는 이렇게 반전 매력을 살살살 흘려가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주인공의 의외성이 독자들을 야금야금 따라오게 만들고, 개와 여자의 양념으로 밋밋할 수 있는 상황을 맛깔나게 살려냈다. 독자를 홀리는 작가의 피리 연주 실력이 정말 대단하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일로 여행을 중단하고 그만 헤어진다. 삼 년 전과 하나도 바뀌지 않은 이 남자. 정녕 그간의 여행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일까. 


남들에게 귀가하면 주로 뭐 하냐는 질문을 자주 한다. 여기서 가장 먼저 나오는 대답이 곧 상대방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장 마음 가는 그것이 그 사람을 숨 쉬게 해주고 있을 테니까. 이런 탈출구가 사람마다 다른데 그것이 이 책의 주인공에게는 편지였던 것이다. 말더듬이가 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손편지였다. 그는 자신의 방식과 신념대로 세상과 소통하며 스스로를 구원했다. 아 진짜 취향 제대로 저격당했다. 이런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들이 꽉 막힌 세상을 움직이고 변화시켜준다고 생각한다. 간만에 아날로그 감성이 솟아나는 기분 좋은 독서였다. 다시 한 번 취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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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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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평을 쓰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다양한 시각과 관점의 글을 쓰고 싶었고, 그래서 좋은 책 나쁜 책을 따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훈련들은 내 글쓰기에 확실한 도움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나와 안 맞는 책을 읽을 때의 에너지 소모도 심해서 독서활동을 지치게 만든다. 이제는 건강한 독서생활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실패가 없는 책을 골라야 한다. 여기에 따른 나만의 책을 거르는 기준이 있는데 일단 추천 도서, 신간 도서, 베스트셀러는 패스한다. 이것만 해도 실패 확률이 매우 낮아진다. 반대로 책을 고르는 기준은 없다. 그때그때 끌리는 책이 있으면 검색해보고 평이 나쁘지 않다면 그냥 읽는다. 쓰고 보니 뭔가 대중없어 보이지만 이렇게 해서 슬럼프 없는 독서를 오래오래 유지하고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고.


필립 로스와는 이번이 첫 만남인데 어쩌다 보니 마지막 작품을 읽게 되었다. <네메시스>는 소아마비라고 불리는 폴리오 바이러스가 미국에 퍼진 이야기이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와 함께 코시국에 제격인 작품이다. 간략히 소개하면 폴리오가 유행하자 감염된 아이들이 하나둘 죽는다. 아이들의 놀이터 감독인 주인공은 죽은 아이들이 제 탓인 양 괴로워한다. 그는 애인의 권유대로 타 지역에 가서 학생캠프 담당 직원이 된다. 곧이어 타 지역에도 폴리오가 나타나자 혹시나 싶어 검사받아본 주인공. 결과는 양성이었다.


이런 실화 바탕의 작품은 확실한 재미를 보장하나, 뻔한 전개라서 독창성이 없다는 게 단점이다. 그 말인즉슨 분석도 비평도 할게 없어서 리뷰할 맛이 안 나기 때문에 대충 쓰더라도 봐주시길. 네메시스의 뜻은 천벌이다. 신이 내리는 벌을 인간이 무슨 수로 피해 갈까. 폴리오가 낳은 삶의 변화는 굳이 말 안 해도 잘 알 테다. 그토록 가깝던 사람들은 남남이 되었고, 꿈을 위한 노력들은 허송세월이 되었으며, 이제 당연한 것들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신을 향한 주인공의 원망은 끝이 없었다.


주인공도 남들처럼 군인이 되어 전쟁터에 나가고 싶었다. 허나 시력이 나빠서 군인이 될 수 없었고, 전쟁이 한창인데 자신만 평안한 듯하여 가시방석이다. 그만큼 영혼을 다해 아이들을 감독했지만 폴리오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죽어가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멘탈이 나간 그는 애인이 있는 타 지역으로 도피한다. 날씨도 좋고, 폴리오도 없고, 미래도 보장되는 그곳은 완전한 에덴동산이었다. 그런데 그가 오고 나서 폴리오가 생겼으니 이 얼마나 멘붕이겠는가. 안 그래도 이전의 아이들을 버리고 왔다는 생각에 죽을 맛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슈퍼 전파자가 되어 모두를 공포에 몰아넣은 것이다. 신은 무엇 때문에 바이러스를 만들었는가. 왜 이 사태를 멀리서 보고만 있는 것인가. 어째서 모두에게 공평한 삶을 허락하지 않은 것인가. 이 모든 게 신한테 책임을 전가해야만 하는 이유였다.


병에 걸리고서 애인을 밀쳐내는 주인공이 참으로 애잔했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자신을 강인한 남자로 키워준 조부의 은혜에 보답하려 군인이 되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 뒤로 자신을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 속에 가두고 살았다. 그런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자다운 결단과 행동을 한 것이고, 그것은 전쟁터에서 팔다리를 잃은 것보다 더한 아픔이었다. 그는 더 이상 천벌을 내린 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병을 옮긴 스스로를 벌하고 고통 중에 살아갈 뿐이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준 책이지만 어째 나는 주인공의 순애보만 기억에 남는다. 작가가 왜 이런 이야기를 마지막 작품으로 장식했는지 알 것도 같다.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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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9-01 23: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한 필립로스.. 아직 못 읽어봤어요. 딱 요즘 코로나시국 이야기 같네요!!

물감 2021-09-01 23:44   좋아요 4 | URL
저도 아무 정보없이 읽은건데 딱 지금과 닮아있는 내용이었어요. 가독성도 좋으니 언젠가 도전해보세요ㅋㅋ

새파랑 2021-09-02 07: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의 책 거르는 기준이 인상적이네요 ㅋ 저도 책 읽기 전에 실눈뜨고 평을 봅니다 😅 책 내용은 정말 코시국에 딱 맞네요~!

물감 2021-09-02 07:22   좋아요 2 | URL
저처럼 다독가가 아닌 사람들한테만 쓸모있을 겁니다...ㅋㅋㅋ근데 왜 페스트만 뜨고 이책은 주목받지 못한건지 의아하네요🙄

다락방 2021-09-02 07:4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땡스투 하겠습니다. ㅎㅎ

땡스투가 뭐냐면요,
다른 분의 리뷰나 페이퍼를 읽고나면 본문의 오른쪽 하단에 <♥Thanks To>라는 표시가 있잖아요? <좋아요>의 옆에 옆에 옆에요. 제가 이 리뷰를 읽고 땡스투를 누르고 이 책을 구매하면, 이 책의 1%에 해당하는 적립금이 물감님에게 지급됩니다. 이 책의 정가가 13,800원이니 물감님께 130원이 적립되는 것이지요. ‘네 리뷰를 읽고 이 책을 읽고 싶어졌어, 고마워~‘ 의 의미랄까요. 후훗.

그러니 부자되시는 건 시간문제... 두둥-

땡스투 적립금은 <나의 계정>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공쟝쟝 2021-09-02 08:14   좋아요 2 | URL
좋은 리뷰에 나타나는 땡스투 요정님… 🥺

붕붕툐툐 2021-09-02 08:15   좋아요 2 | URL
오~ 궁금했던게 다 해소되네용~ 역시 다부장님!!😍

물감 2021-09-02 09:59   좋아요 1 | URL
아 본적은 있었는데 그런 기능인지 첨 알았네요!
그럼 우리끼리 서로 리뷰마다 땡투 해주면 되겠군요ㅋㅋㅋ
정보 감사합니다 ^^

붕붕툐툐 2021-09-02 08: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의 슬럼프 없는 독서는 다 고양이들 덕이라 생각했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첫문장 강렬했습니다! 저도 필립 로스 읽을 작가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걸 첫책으로 갈까 봐요~😊

물감 2021-09-02 10:06   좋아요 0 | URL
오히려 고양이는 독서를 방해하는 존재에요 ㅋㅋㅋ
직접적인 방해도 있지만, 놀아주다보면 독서할 시간이 부족해요 ㅋㅋㅋㅋ

이 책으로 필립 로스를 입문하셔도 괜찮을 듯 합니다.
내용도 복잡하지 않고 가독성 좋아요 ㅋㅋㅋ

coolcat329 2021-09-02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메시스가 천벌이란 뜻이군요.필립 로스는 책은 몇 권 가지고 있는데 딱 한 권만 읽어봤어요. 이 책도 찜해두겠습니다~

물감 2021-09-02 18:19   좋아요 0 | URL
쿨캣님 리뷰 기다리겠사와요ㅋ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 열린책들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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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치킨 부위 중에 퍽퍽 살을 제일 좋아한다. 계란은 노른자만 좋아하고, 카스테라도 음료 없이 잘 먹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이런 식성을 말해주면 다들 놀라워한다. 아니, 취향 존중이라는 말도 있는데 뭘 그거 가지고 심해어 보듯이 미간을 구기냐 그래. 사람들은 타인의 이상함을 느낄 때면 자동적으로 자신이 정한 평범함의 범위와 저울질을 한다. 그 저울이 기울어지면 어떤 경고등이 켜지면서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누구나 타인에게 이해받길 바라면서 정작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근데 반대로 생각해보자. 내가 정해둔 범위가 좁아서 정상인도 문제 있다고 보는 건 아닌지를. 이번에 읽은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 씨도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선입견이 없는 한 소년이 좀머 씨를 소개한다.


좀머 씨는 온종일 쉬지 않고 마을 안팎을 걸어 다니는 워크맨이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고, 늘 걷는 중이었으며,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좀머 씨를 투명인간처럼 인식했다.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 비를 맞던 좀머 씨를 보자 소년의 부친은 그를 차에 태우려고 한다. 끈질긴 요청에 못이긴 워크맨이 겨우 하는 말, 나를 제발 좀 놔두시오!


다 그렇듯 나도 <향수>로 쥐스킨트를 알게 되었다. 그 쫀득쫀득한 스릴러 작품을 썼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좀머 씨 이야기>는 매우 잔잔하다. 두 작품의 온도차가 워낙 커서 작가가 지킬 앤 하이드처럼 느껴진다.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홍철 없는 홍철 팀‘이라고 있었는데 이 책이 딱 그 느낌하고 비슷하다. 분명 좀머 씨에 대한 내용 같은데 화자가 따로 있고, 좀머 씨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다 한 번 소년의 사고 전환을 돕는 촉매제가 돼주었을 뿐이다. 그렇게 병풍 같은 좀머 씨는 소년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피아노 쌤한테 잔뜩 깨지고서 나무 위에 올라가 뛰어내리려던 소년은, 마침 그 밑을 지나던 좀머 씨를 보고 정신을 차린다. 아무 일면식도 없는 워크맨이 소년의 자살을 막은 셈이었다. 몇 년 뒤 좀머 씨의 행방불명으로 마을이 소란스럽던 날, 소년은 호숫가에 들어가는 좀머 씨를 발견하고 그대로 얼어버린다. 자신의 자살을 막아준 그를 도울 차례였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나를 제발 내버려달라는, 좀머 씨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기 때문에.


쥐스킨트는 문학 수상까지 거절하고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향수>에서도 주인공의 은둔생활 씬이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대놓고 은둔형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다. 작가는 좀머 씨를 통해서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였다. 제발 나를 찾지 말아달라고. 좀머 씨가 전쟁을 겪은 뒤로 두려움을 피해 다니는 도망자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역자의 말이 맞다면, 작가의 은둔 생활 또한 이해가 된다. 이런 배경을 모른다면 누구라도 쥐스킨트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겠지. 또 그처럼 범상치 않은 타인을 보면 저울질을 하고 레드카드를 내밀겠지. 그래 뭐,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진 못해도 안 좋게 생각하지는 말자. 물론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내가 닭 가슴살을 좋아하는 게 문제 될 건 없잖아? 오히려 나랑 치킨 먹고 싶다는 사람이 더 많은데, 서로 다른 취향이 좋을 때도 있으니까 좋게좋게 삽시다. 기승전 치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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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26 21: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좀머씨 이야기를 먼저 읽고 향수를 읽었었는데 그게 일반적인건 아니었군요 🙄 물감님하고 치킨 먹으면 행복할거 같아요 😆 역시 치킨은 👍

물감 2021-08-26 21:34   좋아요 4 | URL
치느님 만세입니다ㅋㅋㅋ

coolcat329 2021-08-26 21: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좀머씨, 향수 둘 다 읽었는데 좀머씨는 기억이 안나고 향수는 저는 이상하게도 참 재미가 없었습니다. 물감님 글 읽으니 희미하게나마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좀머씨와 나를 내버려달라던 그 말은 기억이 나네요.

근데 참 반갑습니다. 저도 닭가슴살을 제일 좋아해서 닭볶음탕 만들 때 닭한마리 닭가슴살 한 팩을 추가로 넣는답니다. 저는 닭다리가 젤 맛없고 닭날개는 가슴살과 동급으로 좋아합니다.ㅋㅋ

물감 2021-08-26 21:58   좋아요 4 | URL
두 권 다 스토리 자체가 재밌는 건 아니더라고요. 향수는 전개 방식이 신선해서 좋았고, 이 책은 존재감 없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퍽퍽살 동지 만나니 반갑네요! 최소 배우신 분! ㅋㅋ 근데 저는 모든 부위를 잘 먹습니다요.

scott 2021-08-27 0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혹쉬 냥이 집사여서 퍽퍽한 부위만 드시는거 아님 ??ㅎㅎ

냥이들 사진 시즌 🤞
올려 주삼 3333


붕붕툐툐 2021-08-27 00:48   좋아요 3 | URL
냥이 2탄 저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슘다~ㅎㅎ

물감 2021-08-27 10:19   좋아요 1 | URL
ㅋㅋㅋ어릴때부터 그 식성이라서 고양이들 때문은 아닙니다.

그리고 1탄이 생각한 것 보다 반응이 없어서 2탄은 음... 아직 계획이 없어요...ㅋㅋㅋ

붕붕툐툐 2021-08-27 00: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얼마 전 <좀머씨> 작가와 <향수> 작가가 같은 사람인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물감님과 치킨 먹고 싶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1-08-27 09:33   좋아요 2 | URL
동요와 헤비 메탈의 갭이라고나 할까요, 여튼 저도 깜놀했어요🙄
툐툐님 대기번호는 49517 번 입니다. 물감과의 치킨 데이트를 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

독서괭 2021-08-27 1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기승전 치킨 🍗
전 <좀머씨>와 <향수> 읽고 쥐스킨트에 빠져서 <콘트라베이스>, <비둘기> 등 여러권 찾아 읽었던 때가 있습니다. 눈앞에 잡힐 것 같은 묘사가 탁월한 작가 같아요. 은둔자라 요즘 코로나시대에 딱이네요..^^

물감 2021-08-27 20:12   좋아요 1 | URL
헤르만 헤세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라 하더라고요. 어쩐지 저는 헤세보다 쥐스킨트 작품에 관심이 더 가요. 특히 저는 아싸들을 좋아하거든요ㅋㅋ

페크pek0501 2021-08-27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계란 노른자가 더 좋았는데 이젠 흰자가 더 좋더라고요. 저는 다 먹어요. ㅋ
저도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쓴 적이 있는데 내용이 좀 싱겁다고 생각했어요. 끝은 어처구니 없다고나 할까요? 그게 신선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책보다 <콘트라바스>가 더 흥미로웠어요. ^^

물감 2021-08-27 20:17   좋아요 2 | URL
확실히 싱거운 맛이 있죠. 뭔가 뼈대없는 내용같기도 하고요ㅋㅋ근데 이상 하게 흡인력이 있어서 별생각없이 쭉 읽게되더라고요~
저는 계란 흰자가 아무 맛이 안나요... 무맛이랄까요. 그래서 스크램블로 먹어요ㅋㅋ

다락방 2021-09-01 1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저랑 치킨 드시면 사이 돈독해지겠어요. 저는 다릿살과 날개를 좋아합니다. 흠흠.

물감 2021-09-01 17:26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다락방님. 잊지 못할 첫 댓글이네요 ㅎㅎㅎ
퍽퍽살 빼고 다 드릴테니 저랑 치킨 데이트 해주십시오 ^^

다락방 2021-09-01 14:45   좋아요 1 | URL
둘이서 치킨 두 마리. 콜?

물감 2021-09-01 17:12   좋아요 0 | URL
콜콜. 좋아요 ㅋㅋ

다락방 2021-09-01 17:19   좋아요 1 | URL
실례지만, 귀여우셔요. ☺️

물감 2021-09-01 18:59   좋아요 0 | URL
저 이런 멘트에 약한데...👉👈
감사합니다ㅋㅋㅋ

공쟝쟝 2021-09-01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기.. 저도 퍽퍽파.. 노른자파... 우리 함께 치킨을 먹을 순 없겠지만^^(!) 하지만 내적 친밀감은 상승!

물감 2021-09-01 18:15   좋아요 1 | URL
ㅋㅋㅋ이렇게 캐릭터 겹치면 저는 퍽퍽살 양보합니다요. 그러니까 공쟝쟝님도 저와 치킨을...ㅋㅋㅋ
 
24시간 7일 모중석 스릴러 클럽 25
짐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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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이 년 전만 해도 슬림핏이 유행이더니 지금은 와이드핏이 유행이다. 과거의 각 잡고 꾸민듯한 패션은 이제 동네 마실 나가듯 프리한 감성의 패션으로 바뀌었다. 분위기가 확 바뀐 거리와 사람들을 바라보니 그전의 패션들이 너무 투머치 했었구나 싶다. 사람들은 뭐든 적당한 게 좋다고들 하고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저마다 적당함의 범위는 다를 테지만, 과하다고 느끼는 포인트는 비슷할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볼 수 있는 이 투머치함을 소설에서 만나는 신선한 경험을 하고 말았으니 벌써부터 손가락이 근질근질 거린다. 그러나 리뷰까지 투머치하면 안 되므로 적당히 써보겠다.


열 두 명의 남녀가 한 섬에 모여서 일주일간 서바이벌 게임을 진행한다. 방송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 리얼리티 쇼의 승자가 되면 거액의 상급과 별도의 혜택이 주어진다. 그런데 오프닝 도중 사회자가 죽어버리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이윽고 섬 전체에 들려오는 한 목소리. 참가자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며 7일 동안 24시간마다 백신을 맞아야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의 모습은 섬 전체에 설치된 캠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며, 전 국민의 투표에 따라 매일 한 명씩 죽게 된다. 대체 어떤 정신병자가 이런 엽기적인 쇼를 기획한 걸까. 


규칙을 어기는 행위에는 그만한 응징이 주어졌고, 정체 모를 바이러스 때문에 국방부도 올 수 없었다. 투표수가 많은 사람은 백신을 맞지 못해 죽음을 맞이한다. 딱 추리소설의 밀실 살인사건과 닮아있다. 폐쇄된 공간, 연쇄 살인사건, 그리고 숨어있는 범인. 그런데 전 국민이 다 알고 있으니 폐쇄라 볼 수가 없고, 범인이 직접 죽이지도 않으니 연쇄 살인이라 하기도 애매하다. 진퇴양난의 베이스와 예측불허의 설정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참가자들을 투표해 사형을 내리는 국민들과, 바이러스가 퍼지지 못하게 섬을 지우려는 국방부. 보다시피 미국은 참가자들을 구해낼 마음이 전혀 없다. 이번 쇼의 목적은 잠재돼있는 인간의 악한 면을 끄집어내는 것이었고, 범인의 시나리오대로 국민들은 살인 공범자가 되었으며 미국의 정의나 위상은 완전히 추락해버렸다. 저자가 베테랑 방송인이라는데, 그동안 보고 느낀 미디어의 위험성과 인간의 이중성을 샅샅이 고발하고 싶었던 듯하다. 아쉽지만 실패입니다.


자 이제 비평의 시간. 저자의 투머치한 자신감은 과다한 욕심으로 변형되어 흉측한 괴물을 낳았다. 일단 서바이벌 플롯인 만큼 등장인물이 정말 많다. 그 많은 인원을 일일이 체크할 수 없으니 캐릭터들의 입체감도 그만큼 줄어든다. 비중 없는 인물들이 한 명씩 퇴장한다 해서 남은 이들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작품이 사건 중심이라면 모를까, 참가자마다 사연이 있는데 너무 간소화해서 다루지 않는 것만 못했다. 특히 트라우마와 싸워야 하는 이 중요한 장면들마저 짧게 지나가는데, 분량 조절 문제도 있고 하니 이해한다지만 너무 가벼워서 영 불만스러웠다. 이럴 거면 중요 인물 두세 명만 골라서 집중하는 게 훨씬 나았을거다. 배스킨 라빈스의 서른 세 가지 맛을 다 사 먹으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욕심은 이게 다가 아니다. 인물들도 잘 챙기지 못하는 마당에 섬 밖의 상황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섬에 접근하던 군 헬기는 알 수 없는 오작동에 추락하였고, 통제불능의 두려움과 바이러스의 무서움이 백악관을 지배하였다. 대통령은 기자 한 명을 골라 정보를 흘려주어 언론을 장악하기로 한다. 이 기회를 통해 벼락 스타가 된 기자는 자신의 추리력으로 정보의 조각들을 모아 섬의 진실에 다가간다. 이어서 그 기자를 노리는 또 다른 그림자가 등장하고... 진짜 대책 없이 판을 키운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그 많은 스텝들이 전부 진실에 닿기 위한 것도 아닌 데다, 섬 안의 상황만으로도 모자란 분량을 왜 자꾸 쪼개고 쪼개는 건지 원. 


참가자들은 빠져나갈 구멍도, 역전시킬 카드도 없다. 범인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고, 백신을 맞지 못한 누군가는 무조건 죽어야 한다. 여기에는 변수도 없고 반전도 없으므로 서스펜스 또한 전혀 볼 수가 없다. 이 쇼가 전 국민을 관음증에 걸린 빅 브라더로 바꿔놓았지만 딱 거기까지 일 뿐, 이 현상이 독자에게 아무런 경고장이 되어주지 못했는데 저자는 꽤나 만족했는 갑다. 그리고 죽음이 오늘내일하는 긴박한 와중에 로맨스가 웬 말이며,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데 격정적인 몸의 대화가 웬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실패입니다. 


장르소설이란 집안을 꾸미는 일이다. 벽지와 장판으로 베이스를 갖추고, 가구 배치로 동선을 체크하고, 조명으로 분위기를 만들고, 액자 같은 소품으로 포인트를 줘야 한다. 신경 쓸 게 많아서 힘들다면 적당히 미니멀리즘으로 가도 된다. 허나 저자는 그럴 생각이 1도 없었고, 있는 대로 가구와 소품을 구겨 넣음으로 집안을 무슨 창고처럼 만들어놨다. 혹시나 해서 다른 작품도 있나 했더니 국내에는 이 책 뿐이더군. 이제 책은 됐으니까 본업에 충실하시길 바라바라바라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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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23 23: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저자가 들으면 뼈맞아 아프겠네요~ㅎㅎㅎㅎ

물감 2021-08-23 23:57   좋아요 1 | URL
이렇게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은 좀 아파볼 필요가 있습니다ㅋㅋㅋ

새파랑 2021-08-23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왠지 빡침이 글에서 물씬 느껴지네요. 내 아까운 시간! 하는 물감님의 절규가 눈에 보인다는 😅

물감 2021-08-23 23:59   좋아요 1 | URL
광고에 낚인 제 잘못도 있죠 뭐...ㅋㅋㅋ이젠 예전처럼 정성을 다해서 까는 게 힘드네요😔

독서괭 2021-08-24 0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저자 욕심이 과했군요… 설정이 좋은데 구성력이 떨어지는 소설 보면 좀 안타깝죠^^;

물감 2021-08-24 07:17   좋아요 0 | URL
아이디어가 아까워요. 이걸 다른 작가가 썼으면 좋았을걸,싶어요ㅋㅋㅋ
 
패싱 - 백인 행세하기
넬라 라슨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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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러더라. 자기 연예인 시켜주면 정말 잘 할 자신 있다고. 글쎄, 과연 퍽이나 잘하겠다. 그런 말하는 사람치고 멀쩡한 사람을 본 적도 없지만 혹여 스타가 된다 해도 금방 떨어져 나갈걸. 연예계는 티비에서 보던 거랑 전혀 딴판이거든. 그러니 내 라이프스타일과 맞지도 않는 타인의 삶을 그만 좀 부러워하라고, 신세타령은 그만하고 영단어나 더 외우라고, 저 철없는 친구에게 누가 나 대신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는 쓰리잡을 뛰고, 누구는 범죄도 저지른다. 그렇게 해서 돈 많이 벌고 좋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거지는 거지대로, 부자는 부자대로 살기 힘들다니까 뭐. 자 그럼 본인의 그릇과 맞지 않는 신분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백인의 신체적 특징을 가진 흑인 여성 클레어. 인종을 속이고 백인과 결혼하여 신분 상승에 성공한 클레어. 옛 친구 아이린을 만나고부터 할렘가 죽순이가 된 클레어. 이제서야 본인에게 맞는 옷을 찾아 기뻐하는 클레어. 고삐 풀린 그녀는 개념 밥 말아먹은 행동을 서슴지 않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린의 몫이 되었다. 이제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으려면 클레어를 밀어내야만 한다. 


복잡할 것도 없는 내용이지만 꽤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 책은 패싱을 해온 클레어가 아니라 아이린이 주인공이며, 패싱에 관한 내용보다 아이린의 고군분투 내용에 더 가깝다. 클레어 먼저 말해보자. 백인 사회에서 정체를 감추고 사느라 지쳤던 클레어는 흑인들과 어울리면서 죽어있던 세포들이 눈을 뜬다. 제 정체성을 찾은 그녀는 가족이고 뭐고 최선을 다해 욜로를 즐긴다. 백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클레어의 이기심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다. 그럼에도 세상 혼자 사는 외모와 매력 덕분에 주변이 다 그녀를 좋아한다. 클레어에게 빠진 사람들은 그녀가 어떤 미움 살만한 짓을 해도 다 용서할 분위기이다. 이놈의 외모지상주의...


아이린도 살펴보자. 그녀는 클레어의 갖은 무례함에 얼른 선을 긋고 손절에 나선다. 하지만 클레어의 접근을 막을 수가 없었고, 원치 않게 그녀와 사사건건 엮이게 된다. 그녀에겐 클레어의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패싱에 성공하여 가난의 딱지를 떼어냈고, 패싱을 안 하는 흑인들이 이해 안 된다며 비아냥 거렸다. 그렇게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이 갑자기 흑인 행세를 하는데 납득이 안될 만도 하다. 백인으로 온갖 혜택을 누려놓고 이제 와 자신의 뿌리는 흑인이니까 흑인의 문화를 즐길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재수 없었을 테지. 그래서 클레어 남편에게 패싱을 폭로할까도 했지만 들키든 말든 상관없다는 그녀의 태도에 할 말을 잃고 만다. 클레어에게 그토록 망신을 당해도 화 한번 내지 못하고 이미지 관리하는 아이린은 전형적인 위선자이다.


그런 아이린과 성향이 정반대인 그녀의 남편이 등장한다. 남편은 미국을 떠나 브라질에 가서 자식들을 인종차별 없이 키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내는 지금 생활로도 충분하다며 이주를 거부했다. 남편은 아이들도 섹스나 린치 같은 문제들을 알아야 한다지만, 아내는 그런 조기교육은 필요 없다고 했다. 보다시피 아이린의 일 순위는 안정성인데 남편이 거기에 자꾸 반대를 하니 계속 부딪힐 수밖에. 때마침 나타난 오픈 마인드의 클레어가 남편한테는 거의 뭐 구원자였을 거다. 그래서 아내가 보든 말든 클레어와 꽁냥거렸고,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을 보며 가정의 평화가 흔들리고 있음을 직감한 아이린은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믿으며 쿨한 척을 한다. 참 가관이다.


클레어처럼 아이린도 이기적이다. 그녀는 클레어가 걱정된다 하면서도 정체가 들통나길 바랐다. 그런데 클레어가 자유의 몸이 되면 내 남편하고 바람이 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린은 자기 가족만큼이나 클레어 가족의 평화도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클레어의 말들이 무례하다면 아이린의 말들은 온통 위선이다. 엮여서 좋을 게 없는 두 사람은 서로가 적인 셈이었다. 아이린은 클레어의 정체성을 위협했고, 클레어는 아이린의 가정을 위협했기 때문에.


사자는 고기를 뜯고, 소는 풀을 뜯어야 한다. 고기 맛이 궁금하다 해서 사냥을 하는 소는 없다. 따라서 클레어에게 백인의 삶은 환상일 뿐이었고, 아쉬울 게 없는 데도 흑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남부럽지 않게 살아봅시다. 근데 사실 이 책은 고전이면서도 딱히 메시지 같은 게 안 보여서 리뷰가 꽤 힘들었다. 그러니 아무 말이나 댓글 좀 달아주십쇼.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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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1-08-15 10: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얼핏 부제만 봤을때는 백인의 특징을 가진 흑인 여성 클레어가 주인공인 줄 알았어요ㅎㅎ 클레어나 아이린이나 둘다 인간적으로 보이네요… 요즘 이 책 홍보가 많이 보이던데 리뷰 읽으니 더 흥미롭습니다~

물감 2021-08-15 11:28   좋아요 4 | URL
ㅎㅎㅎ맞습니다. 인물들이 하나같이 밥맛인데 밉지가 않아요. 다 인간미가 있어요. 파이버님의 리뷰도 기대할게요^^

새파랑 2021-08-15 1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첫 문단 팩폭 😢 이 책은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나온건 아닌가 보네요. 메세지가 안보인지만 재미 있을거 같아요 😆

물감 2021-08-15 12:47   좋아요 3 | URL
저도 왜 시리즈로 안나온건지 모르겠어요ㅋㅋ고전치고는 적당히 라이트해서 읽기 수월했네요. 새파랑님도 리뷰 써주세요🙃

구단씨 2021-08-15 14: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아. 이 책 정말 궁금했어요. 물감님 리뷰 보니까 속이 다 시원... ^^
클레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아이린도 만만하지 않네요. 더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민음사와 문동에서 동시에 나왔네요. 문동 세문으로요. 어느 버전으로 구매할까 고민됩니다. ^^

물감 2021-08-15 14:36   좋아요 3 | URL
힘들게 쓴 보람이 있었네요^^
인종 문제가 나오길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겠더라구요. 그냥 편하게 읽으세요 ㅎㅎㅎ

문동은 안봐서 모르지만 민음사는 번역이 매끄러워서 좋았어요. 시리즈 콜렉션을 생각해서 문동도 사야할까봐요🙂

붕붕툐툐 2021-08-17 2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연예인 시켜줘도 못할 듯!
백인의 신체적 특성을 가진 흑인이란 뭘 말하는 걸까 궁금하네용~ㅎㅎ

물감 2021-08-15 16:23   좋아요 2 | URL
백인의 피가 섞인 흑인인데, 생김새도 백인같고 피부도 하얗다고 합니다~ 그래서 겉만 봐서는 잘 구별이 안되니까 패싱이 가능한가봐요!

저도 연예인 절대 못합니다ㅋㅋ 프리한 삶이 좋아요😄

붕붕툐툐 2021-08-17 22:29   좋아요 1 | URL
아~ 진짜 피부가 하얗다고요? 오~ 생각지도 못함~ㅎㅎ
물감님은 북플의 연예인이십니다~

물감 2021-08-17 23:05   좋아요 1 | URL
ㅋㅋㅋ말만이라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