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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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알츠하이머 증세로 계속 헷가닥 하는 킬러 할배의 말년 기록 일지다. 어느 날 동네에서 마주친 꺼림칙한 남자가 갑자기 딸의 결혼 상대라면서 인사를 하러 오는데, 사내의 눈빛이 아무리 감춰도 감출 수 없는 맹수인 거라. 딸을 지켜야 하는데 필름이 계속 끊어져 딸의 보호는커녕 자신도 보호 못하고 점차 선과 악을, 진실과 거짓을, 빛과 어두움을 식별하지 못하는 킬러 할배의 새드엔딩.

왜 이 작품이 주목을 받았고 유명해진 건지 실감했다. 한국에선 좀처럼 볼 수 없던 서양식 하드보일드 한 문체와 유머, 그리고 간결함 속에 깃든 묵직한 울림. ​주인공의 혼돈 그래프가 서서히 치솟는 게 피부로 느껴져서 소름 돋았고 이런 두근거림을 느껴본 게 얼마 만인가 싶었다. 김영하 작가가 이렇게 센스 넘치는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다니.

이 책은 무엇보다도 작품 해설을 꼭 봐야 한다. 어떤 서평도 해설보다 잘 쓰진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얇은 책을 이렇게나 분석하다니, 역시 평론가는 다르군요. 근데 요즘은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럼 나도 치매 증상이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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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스토리콜렉터 37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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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일문학은 유머가 없어서 늘 시크한 인상을 받지만 이건 이거대로 좋다. 간만에 새로운 프로파일러 시리즈인데 이 주인공도 한 싸가지 잡수셨다. 왜 지능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재수 없는 컨셉인지 원. 천재 범죄심리학자와 여경찰의 콤비라. 링컨 라임 시리즈의 독일 버전이로군. 이 시리즈의 주인공도 핸디캡이 있는데 두통이 잦아서 늘 침을 맞고 마리화나를 피운다. 핸디캡 없는 주인공은 아직까진 ‘잭 리처‘ 밖에 없는 듯.

범인이 독일 동화책의 내용을 모티브로 해서 여자들을 납치하고 제삼자에게 전화해 48시간 안에 맞춰보라고 한다. 장난 나랑 지금 하냐. 이게 참 동화 내용을 모르다 보니 재미가 반감되어 아쉬웠는데 다 읽고 나니 책 맨 뒤에 ​동화 내용이 있었다. 장난 나랑 지금 하냐. 맨 앞장에 내용이 있었으면 이해가 더 쉬웠을 것을, 편집부는 무슨 생각인지.

두 권 읽어보니까 이 작가는 욕심이 많구나 싶었다. <여름의 복수>에서는 형사, 변호사, 탐정을 다 사용하더니, 이 책은 해외까지 넘나들며 연쇄살인 하나하나를 다 소개한다. 이것저것 준비는 많이 하셨는데 뿌린 게 많다 보니 정신없고 바쁘게 진행된다. 이런 게 뼈대는 부실하고 살만 잔뜩 붙여서 독이 되는 케이스임. 드리블만 잘해서 뭐 해. 슛이 들어가야 즐거운 게임이지.

가수들도 1집부터 대박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깐 일단 넘어가겠다. 훗날엔 이 작품이 위대한 전설의 시작이었다고 기억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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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샤를로테 링크 지음, 서유리 옮김 / 뿔(웅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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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번잡한 이 스토리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실업자 모태솔로남이 흠모하는 유부녀의 남편이 살해된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 경찰한테 쫓겨 다니고, 그 유부녀의 애인이 뒤편에서 범인을 조사하다가 의외의 인물에게 위험을 감지한다는 다소 뻔한 클리셰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작품이다.

꽤나 시리어스한 전개인데 초반의 어수선한 분위기만 이겨내면 그럭저럭 볼 만하다. 국으로 치자면 약간 소금 조절 실패한 소고기 뭇국 정도의 맛이랄까. 여자 관찰이 취미인 주인공이 범행 현장을 목격하여 사건을 돕는다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쫓기는 시점부터 그의 비중은 확 떨어지고 유부녀 애인의 비중이 대부분이라 ‘주인공은 대체 누구인가‘ 하는 혼란만 가져온다. 무엇보다 범인이 짠하고 등장해서 ‘내가 죽였소‘ 하는 게 제일 어이없었는데 전혀 이렇다 할 복선도 없던 인물이라서 지금까지 뭐 하러 추리했나 싶은 자괴감 들고 괴로워...

읽다 보니 <7년의 밤>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는데 범인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범인의 내면적 세계에 더 중점을 두는 작품 같다. 이 책은 어린아이가 괴물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었는지, 남편에게 학대받은 아내의 영혼이 어디까지 부서질 수 있는지 등등 사회에 드러나지 않는 가정문제의 심각성을 조명하는 사회소설이다. 여기서 중요 포인트는, 피해자를 돕고는 싶지만 엮이고 싶지 않아 외면하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이다.

1부만 보면 별 3개지만 2부는 별 4개인 조삼모사 같은 책이다(뭐래니). 이 책도 겉보기엔 일반적인 수사기법과 별 차이가 없지만 자세히 보면 정황마다 심리적인 요인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게 보인다. 그래서 제목처럼 서로 관찰하는 장면이 많으나 살짝 빈약하여 아쉽다고 느꼈는데 역자 후기에 따르면 이 작가는 내공 빵빵 심리묘사의 달인이라고 한다. 아니 무슨, 읽는 책마다 그 나라의 베스트셀러 작가래. TOP 100명안에만 들면 다 베스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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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8-03-30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속임수를 쓴 작가네요
그 책 별로였어요 저는...
이 책도 어떨지 상상되는데요 ㅎ

물감 2018-03-31 04:42   좋아요 0 | URL
7년의 밤 말하시는거죠?ㅋㅋ
그래도 이 책은 배울점이라도 있어요😀😀😆

秀映 2018-03-31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샤를로테 링크의 속임수라는 책이 별로 였다는 얘기예요ㅎ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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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대시너와 같은 힘 있고 젊은 감각을 가진 괜찮은 작가를 발견했다. 보통 책표지나 날개에 극찬하는 말들은 믿지 않는 편인데, 이 작품의 대한 극찬은 허구가 아니다. 딱 내가 추구하는 글과 컬러를 가지고 있고, 작가라는 직업과 고충에 대해 깊게 느껴볼 수 있는 소설이다.


나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항상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산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 필요한 영양분과도 같다. 겉으로는 스토리에 충실하면서, 속으로는 ‘작가란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독자에게 공급한다. 폭주기관차 같은 힘과 속도로 질주하는 작가의 에너지를 꼭 느껴보길 바란다.

첫 소설로 대박을 터뜨리고 영광을 누리던 신인 작가 마커스는, 차기작의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멘토였던 해리 쿼버트를 찾아간다. 그와 함께 머무르던 중, 30년 전에 실종된 소녀의 유해가 멘토의 집 마당 속에서 발견된다. 용의자로 지목된 멘토의 명성과 명예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체포된다. 억울해하는 그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은 사건의 진실을 소설로 만들기로 한다.

다 끝나가나 싶은데 아직도 한참 남은 분량에 계속 놀라는 희한한 작품이다. 돈이 되는 작품을 쓰라고 재촉하는 출판업자와, 제대로 된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커스의 대립.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잃게 된다. 사는 동안 겪은 많은 실수와 실패들로 얻은 삶의 교훈이다. 글쓰기는 권투와도 같다고 거듭 강조하는 해리의 말은, 사실 우리의 삶도 글쓰기와 같음을 일깨워준다.

그나저나 리뷰가 요새 왜 이렇게 길어지지? 길게 쓰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흠.진짜 궁금한 건데 길게 쓰면 당신은 그걸 다 읽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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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03-26 2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 물감님의 리뷰 길게 쓰셔도 다 읽습니다

물감 2018-03-26 22:48   좋아요 1 | URL
오... 저 감동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스트레인저
할런 코벤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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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처럼 누구나 비밀은 갖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의 비밀을 언급하면 분명 멘붕이 올 것이다. 이 책은 낯선 자에게서 부인의 임신과 유산이 거짓이라는 말을 듣는 데부터 시작한다. 남편은 아내를 신뢰하지만 그런 말을 들은 이상 확인해볼 필요는 있었다.

아내의 카드 내역에는 이상한 사이트의 결제 내역이 확인되고 그 사이트는 놀랍게도 가짜 임신 물품들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1라운드부터 제대로 멘탈 나가는 라이트 어퍼컷. 아내를 추궁했더니 위험하니까 들쑤시지 말라하고 돌연 사라진다. 2라운드는 넉다운 만들어버리는 카운터펀치. 이렇게 가족의 평화를 파괴한 낯선 자는 다른 가정들에게도 접근하여 비밀을 들춰내고 돈을 요구하길 반복한다. 대체 이 남자는 어떻게 남의 비밀들을 면밀하게 꿰고 있는 건가.

기존 작품과는 다르게 잘근잘근 꼭꼭 씹어넘기는 느낌을 준다. 이전까지는 시속 100km로 악셀을 밟았다면 이 작품은 모든 돌다리마다 두드리고 건너느라 진도는 더딘 편이다. 그러나 작가의 특징은 여기서도 두드러지는데 대표적인 예를 들어, 다른 작가들이 연관 없는 큰 줄기들을 후반에
엮는다면 코벤은 작은 줄기들을 초반부터 엮는 타입이다.

잔잔하다가 뒤에서 갑자기 빵 터지는 케이스를 싫어하는데 코벤은 작품 내내 강약 중강 약을 워낙 잘 소화해내니 진정 완급조절의 테크니션이라 볼 순 있지만 늘 소재가 한정적이어서 다양한 컬러를 볼 수 없다는 게 흠이다. 이런 콜드 케이스 플롯을 주로 쓰는 작가가 은근 많은데 그중 베스트는 역시 할런 코벤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작가들은 뭔가를 흉내 낸다는 기분이 드는 반면 코벤 횽은 또 하나의 장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여하튼 불편한 진실이라도 밝히는 게 무조건 옳은 건 아니지만 바지 지퍼가 열린 사람을 보면 근질거리는 입을 참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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