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량스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초등생 주인공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조건게임제시능력‘이다. 이게 뭐냐면 ‘네가 A를 해주지 않으면 B라는 결과가 일어난다‘라는 건데, 이 능력을 쓰면 상대방은 능력자에게 속박되어 제시한 대로 따르게 된다. 언뜻 보면 편하고 좋은 능력인데 엄마는 저주받은 능력이라며 절대 금기시한다.


이후 학교에서 키우는 토끼들이 무참히 찢겨죽은 사건이 일어나고 주인공의 절친이 사건 현장을 목격한 뒤로 패닉 상태가 돼버린다. 범인은 잡혔지만 이미 친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일상생활 불가 상태. 그래서 주인공은 저주라 불리는 자신의 능력으로 범인을 벌하려고 한다. 과연 처벌 다운 처벌 후에 진실한 반성이 있으면 용서도 가능할까.

가볍게 읽고 싶어서 고른 건데 갈수록 가볍지 않았다. 초능력 물이어서 SF 인가했더니 꼭 그런 건 아니었고 능력을 사용할 때 따르는 리스크와 책임에 대한 내용이 더 많았다. ‘능력으로 범죄자를 벌주고 속죄시켜 친구에게 용서를 비는 것.‘ 이것은 친구를 위해 하는 행동인가, 자신이 악의를 못 참고 복수하고 싶은 건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하다는 사고와 논리는 일반적이지만, 만약 복수심에서 비롯된 거라면 벌주는 자 역시 가해자가 된다는 사실. 범인이 토끼의 생명을 해쳤기 때문에 벌받아야 한다면 식용으로 토끼를 죽인 사람도 생명을 해쳤으니 벌받아야 하는가. 모든 생명이 다 소중하다면 어째서 파리나 모기는 그렇게도 쉽게 죽이는가. 생명의 가치는 누가 정하는 것인가.

이 밖에도 팩트 폭력에 가까운 질문들을 쉴 새 없이 던져준다. 말 그대로 가볍게 집은 거라 많은 생각을 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 처음 만난 작가인데 이 분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로의 인형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궁극의 아이‘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이 작품에서도 다시 한 번 느끼는 바, 장용민 세계의 스케일은 참으로 광활하다. 첩보물처럼 이 나라 저 나라 옮겨 다녀서 활동 범위가 넓은 게 아니라 여러 무대를 하나로 엮으면서도 척척 들어맞추는 기교가 매번 정점을 찍는 듯. 저자가 영화감독을 목표로 시나리오를 써왔다고 하니 이제서야 그의 무한한 상상력과 입체적인 표현력이 납득된다.

주인공 정가온은 병원에서 췌장암 진단을 받는다. 수술 성공률은 12%. 괴로움에 울부짖던 중 가족과 수년간 연을 끊은 아버지가 낙사로 운명했다는 비보를 듣고 찾아가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아버지의 휴대폰에 저장된 단 하나의 번호를 따라 찾아간 곳에서 스무 살쯤 된 자폐증의 여자를 만나는데 세상에, 아버지의 배다른 동생이란다.

그녀를 통해서 전달받은 아버지의 유품 상자 안에는 웬 인형이 있는데 이 인형을 뺏으려 괴한과 권력들이 주인공을 위협해오기 시작한다. 대체 이 인형이 무엇이관대 다들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인가.

이번에는 허공에 떠돌던 동양 역사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 오리엔탈 팩션 물을 창조했다. 한중일의 국가대전으로 이어질 국보급 비밀을 지닌 인형의 기원부터 전승 배경과 저주 등등 정말 이 모든 설정이 한 사람 머리에서 나왔다니, 작가의 천재성에 그저 감탄하게 된다. 사실 ‘궁극의 아이‘에서는 개연성 면에서 눈감아준 구간이 많았는데 이번 플롯은 정말 완벽했고 넘치는 장점과 매력으로 빈틈들도 충분히 커버했다. 역사와 허구의 경계 또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자연스러우며, 적당히 하드보일드 하면서 간결한 문체는 익숙지 않은 단어와 문장에서도 힘과 리듬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작가는 동양의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화끈하게 지휘하고 있었다. 동양적인 판타지 요소들도 있어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해도 손색이 없겠다.

​작가가 주인공에게 암이라는 핸디캡을 준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만물을 손에 넣어도 작은 암세포에 무너지는 하찮은 인간의 존재를 되돌아보게 하고, 죽음에 가까이 다가선 사람만이 득도하는 세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욕망을 가진 자들이 치러야 할 대가를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천 년을 살 것처럼 말하지만 십 년 씩 열 번도 못 사는 인생이다. 섭리를 거스르는 ​욕망은 파멸을 잉태할 뿐임을 경고하는 것이 아닐까.


http://ch.yes24.com/Article/View/26116
불로의 인형 - 작가 인터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음꽃
아마노 세츠코 지음, 고주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포르투갈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는 50세가 넘어서 데뷔를 했다는데 이 작가는 무려 60세에 데뷔를 하였고, 있는 영혼을 전부 긁어모아 이 책을 써냈다. 이 데뷔작은 엄청난 판매수를 기록했고, 드라마까지 찍었을 정도로 탄탄한 구성을 보여준다. 작가의 연세가 있어서 그런지 글이 가볍지 않고, 심하게 올드하지도 않다. 내가 늘 지적하는 일본 문학의 단점인 일회용 킬링타임 소설과는 다른 분위기였는데, 담담한 문체로 독자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완급조절이 대단했다.

세노 쿄코는 집안도, 남편도, 본인에게도 만족할 만큼 완벽한 삶이지만 단 한 가지, 불임이라서 오래도록 아이가 없다. 동창회를 다녀온 날, 낯선 여자의 전화를 받았는데 본인은 남편의 애인이며 그의 아이를 가졌으니 이혼해달라는 협박을 한다. 순간 눈 뒤집힌 주인공은 남편의 서재에서 그녀의 집 열쇠를 발견하고 몰래 찾아가 그 집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 병에 농약을 탄다. 이후 그녀가 죽었다는 뉴스는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임신 중이었다는 보도가 없다. 주인공은 무고한 사람을 죽인 걸까? 그 낯선 여자는 누구였던 걸까? 이제는 철저한 연기만이 수사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다.

사실 기본 플롯만 보면 흔하기도 하고 뻔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데 이런 베이직한 내용에 서스펜스 기법이 엄청나다. 단서나 증거가 너무 없어서 이런저런 추측을 해가며 한 걸음 한 걸음씩 수사하느라 진행이 더딘데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또한 주인공이 처음 전화받은 순간부터 밀려드는 불안과 의심들이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올가미가 되어 멘붕오는 장면들도 볼거리이다.

긴 싸움 끝에 쿄코는 검거되었고 배후들도 다 밝혀졌으나 그녀는 재판에서 무죄 판정을 얻어낸 빅 픽처의 끝판왕이었다. 그 빅 픽처를 꿰뚫어보는 수사관의 집념에 존경을 표한다. 이로써 작가의 내공은 100% 증명되었다. 강력 추천.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8-08-01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찜요~

물감 2018-08-01 14:32   좋아요 1 | URL
이 책도 절판되어 구하기 어렵더라구요.
여튼 재미는 보장합니다😀😀😀

페크pek0501 2018-08-01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제 사라마구‘는 50세가 넘어서 데뷔를 했다는데 이 작가는 무려 60세에 데뷔를 하였고...
- 이 말이 저에게 위로를 주네요. (흥, 나도 아직 안 늦었어.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 뭐 이런 생각이 들게 하네요.
노트에 적어 두고 힘이 빠질 때마다 읽어야겠습니다. ㅋ

물감 2018-08-01 14:53   좋아요 1 | URL
제 글이 위로가 되었다니 다행입니다ㅎㅎ
페크님 글 잘읽고있습니다, 댓글은 잘 안달지만요😀 페크님의 글이 빛을 볼 날이 곧 올것입니다ㅎㅎ

레삭매냐 2018-08-01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러티브가 흥미진진하네요...

게다가 품절된 책이라고 하니 책사냥꾼
의 호기심을 더더욱 증폭됩니다.

나중에라도 헌책방에서 찾게 되면 냉큼
데려와야겠습니다.

물감 2018-08-01 18:11   좋아요 0 | URL
조사해보니 초판만 인쇄하고 말았다더라구요. 홍보만 잘 되었어도 더 찍어냈을텐데 말이죠. 암튼 반드시 겟 하시길 바랍니다!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7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7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해리 보슈는 언제나 옳다. 이번에는 스탠드 얼론작인 ‘블러드 워크‘의 주인공인 테리 매케일렙과 해리 보슈의 컬래버레이션 작품이라 하겠다. 그래서 꼭 ‘블러드 워크‘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시인‘ 시리즈 주인공인 ‘잭 매커보이‘도 카메오로 등장하여 이래저래 반가운 작품이다. 여튼 이제는 작가가 주인공 설정의 모든 것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느낀 것 같다. 밤 보다 짙은 어둠의 세계를 시찰하러 떠나보도록 하자.

유명 영화감독이 살인 용의자로 재판에 소환되고 사건 담당 보슈와 검사, 감독과 변호사가 법정 사투를 벌인다. 한편 또 다른 살인사건 프로파일링을 요청받은 은퇴한 FBI 매케일렙은, 사건의 모든 증거와 정황들이 모두 해리 보슈가 용의자라 지목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로써 해리를 신뢰해왔던 동료들이 전부 그를 의심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덫에 걸린 해리는 재판도 이겨야 하고 무죄도 증명해야 하는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해리 보슈보다는 테리 매케일렙 시리즈인데 해리 보슈 시리즈로 된 것은 메케일렙의 시선을 통해 해리가 지닌 깊은 어둠과 고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사건도 사건이지만 해리를 프로파일링함으로써 완벽 분석하였다.

보슈의 팬이라면 7편을 반드시 읽어줘야 하는 이유가 주인공이 왜 화가 이름과 동일한지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인데, 화가 히에로니머스 보슈는 누구보다도 고통과 어둠을 잘 알고 있는 예술가였다. 동시대의 화가들이 기쁨과 희망을 그린 반면, 화가 보슈의 그림은 온통 저주와 파멸뿐이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 화가를 알면 알수록 해리 보슈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빨리 달궈지고 금방 식는 양은 냄비보다 늦게 달궈지고 오래가는 뚝배기 같은 느낌이라 따분할지도 모르겠다. 뭐, 코넬리는 양은 냄비를 사용해도 금방 식지는 않더라. 법정씬이 많아서 속도감은 줄었지만 여전히 묵직한 맛이 있다. 그 외에도 인물 갈등 구조, 선과 악의 외줄 타기 등, 1+1 이벤트 같은 작품이니 반드시 필독하시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패스파인더 2018-09-28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해리보슈는 언제나 옳다. 공감합니다. 이렇게 재미를 보장하는 시리즈도 드물지요

물감 2018-09-28 11:17   좋아요 0 | URL
최고에요ㅎㅎ게다가 작가가 워낙 성실해서 꾸준히 책을 써준다는게 가장 좋네요😀
 
달려라 얏상 스토리콜렉터 9
하라 코이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여러분은 지금 긍지 높은 노숙자들의 고품격 라이프 스타일을 보고 계십니다.

노숙자 신세가 된 주인공은 노숙계의 대부 얏상을 만나 연을 맺는다. 같은 노숙자인데 겉은 말끔하고 몸도 아주 건강하고 길거리 철학에 자부심을 갖고 사는 얏상. 그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체력이 전부라며 도쿄의 도시를 달리고 또 달린다.


아무튼 그를 따라다니며 지켜본 바, 역시 그는 범상치 않은 존재였다. 그가 가는 음식점마다 주인이 반겨주고 밥도 먹여주고 하트 뿅뿅 날리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얏상은 왕년에 잘 나가는 요리업계의 큰 손이었지만 어쩌다가 몰락해버렸고, 이제는 음식점마다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해주는 대가로 끼니를 제공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잘 나가던 백종원이 쫄딱 망해 알거지가 되어 재능기부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고 보면 된다.

유병재 어록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나만 힘든 건 아니지만 니가 더 힘든 걸 안다고 내가 안 힘든 것도 아니다.‘ 나보다 더한 사람을 비교하면서 위안을 얻는 건 전혀 어른답지 못하지만 반대로 늘 패배자 마인드로 살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없듯이 이 책도 등장인물마다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얏상은 그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 흔해빠진 신세타령은 그쯤 하라고. 어린이들도 제 나름의 고민으로 괴로워한다.
그만큼 누구나 힘든 게 당연해져버린 시대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이 노숙자들만큼 불행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역자 후기처럼 가진 게 없으면 욕심 생길 일이 없다.

여튼 픽션투성이지만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