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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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유독 추천이 많았던 작품이라 의무감으로 읽었다. 근래 국내에서 일명 ‘드루킹 사건‘이 언론을 장악한 적이 있었는데 딱 그런 내용이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서 댓글과 추천수 조작으로 정부를 비방한 짓과 동일한 짓을 업으로 삼아 거짓도 진실로 만들어버리는 본격 키보드 워리어들의 무서움을 실컷 볼 수 있다. 어디에나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팩트를 왜곡하는 인간들이 있기에, 그 어떤 깨끗한 글과 정보에도 얼마든지 논쟁은 벌어지고 찬반은 늘 치열하다. 이 미꾸라지들은 그저 지 생각을 말했을 뿐이라지만 사실 남들을 선동시키고 분란을 조장하는 게 목적이다. 바로 이 책 속의 댓글부대처럼 말이다. 그들은 계약금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진실과 거짓의 여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어제는 우파가 되었다가 오늘은 좌파가 되고, 낮에는 이삼십대를 겨냥했다가 저녁엔 사오십대를 저격해댄다. ‘카더라‘식의 SNS 글 하나 올려두면 나머지는 네티즌들이 알아서 일을 크게 벌려놓는다. 사회에 저항심을 갖게 하는 영상을 만들어 잘못된 십대 문화를 형성하고, 인터넷 카페에 반대 글을 쓰고 조회수를 올려서 회원들을 떠나가게 만들어 폐쇄시킨다. 그 방법들이 생각보다 쉬워서 전문 업체가 아니어도 여론조작이 누구나 가능한 세상이 되어있고 우리는 그런 세상에 적나라하게 노출돼있다.


이 작품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도 언급된다. 기성세대는 댓글부대를 이용하여 그런 약자들을 주로 공략한다. 입막음해야 할 이슈가 있다던가, 업체를 문 닫게 하고 싶을 때 댓글부대에 하청하면 법망을 교묘히 피해서 생매장 시켜준다. 약점을 찾아내어 깐 데 또 까고, 한 놈만 패는 것이 그들의 전문 분야가 아니던가. 그렇게 댓글부대를 통해서 효과 좀 봤다 싶으면 청탁자들은 또 다른 제안을 걸어서 눈엣가시들을 차례차례 짓밟아간다. 온라인에서 어떤 식으로 불이 붙고, 어떻게 오프라인까지도 산불로 번지는지 자세하게 나온다. 매크로가 진짜 무서운 게 특정 단어가 들어간 SNS 글이나 댓글이 달리면 자동적으로 지적 댓글이 등록되기도 하고, 한 유저의 과거 글들도 전부 조회하여 집단 폭격도 가능하다. 정말이지 지능적이고 체계적인 조직이며, 공든 탑도 쉽게 무너뜨리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게 하는 전지전능한 프로들이다. 댓글 알바들을 볼 때마다 한심한 잉여인간들이라며 비웃었었는데 그게 다 돈 받고 하는 거라 생각하니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속고 속이는 입장 중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선을 전혀 긋지 않는다. 정보의 사실 판단은 독자가 알아서 하란 뜻이다. 믿든 안 믿는 나만 손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불편한 진실만이 유일한 진실이다. 누군가는 지금도 여론 형성하느라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텐데.


SNS나 커뮤니티 사이트나 그 외 폐쇄 조직의 중독자들을 관찰해보면 대개 성향이 아주 뚜렷하다. 극 보수/부정적이거나 극 진보/공격적이거나. 본인들이 여러 트러블메이커에게 야금야금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해주면 격하게 부정할걸? 현실에서나 올챙이지, 온라인에서는 모두가 개구리니까. 자기는 처음부터 개구리였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을 저격하는 내용이라며 작가를 테러할까 걱정도 된다. 일베나 오유에 대해서도 쓰셨던데 과연 괜찮을는지. 중간중간마다 나오는 댓글 부대원과 기자의 인터뷰 내용은 제법 흥미로웠다. 자신들의 조작 노하우와 사례들을 공개함으로써 기사화 시키려는 건데 결국에는 기자와 신문사를 물 맥이는 짓이었다. 아니, 그런 정보를 다 까발리면 내가 범죄자요! 나 잡아가소! 하는 건데 어째서 순순히 인터뷰에 응대하는지 의심해볼 법도 하잖아. 부대원이 하는 말을 다 믿는 순진한 기자. 이것이 유일한 킬링 포인트입니다, 여러분.


뭔가 두서없는 글이 되었는데 이 책은 어쩐지 서평쓰기가 좀 어렵다. 구성도 독특하고, 문학인지 칼럼인지 연재 기사인지 모를 제3의 장르인데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도 못 느꼈다. 분명 재미는 있는데 왜 재미있는지는 설명 못할, 다른 의미로도 참 대단한 작품이었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과 불신 비슷한 게 있어서 미움받는 직업인데, 장강명은 기자 시절에 진짜 열심이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커뮤니티 눈팅도 많이 한거 같고, 진보와 보수, 부자와 서민, 성차별과 남녀 혐오 등등 조사를 많이 하긴 했더라. 온전한 기자정신이 요즘도 존재할지 모르겠다만 기자 출신이 주장하는 팩트는 허구라 해도 이렇게 분명한 힘이 있다. 그래서 대중들이 이 작가를 유시민만큼이나 옹호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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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8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거 서평쓰기 힘들어 전 포기했는데 물감님 굿뜨!!!

물감 2018-10-08 14:02   좋아요 1 | URL
이제 겨우 두 권 읽었을 뿐이지만 장강명 작품은 서평 의욕을 활활 태우는 매력이 있네요ㅋㅋㅋ도전정신이 생깁니다

카알벨루치 2018-10-08 14:03   좋아요 1 | URL
물감님 응원합니다~ㅎㅎㅎ
 
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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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소녀가 있었다. 언니가 둘 있고, 기센 엄마와 존재감 없는 아빠랑 살고 있었다. 소녀의 스무 살 생일날에 아버지는 실종되었고 빚만 가득 짊어진 집안은 그렇게 풍비박산이 난다. 여차여차해서 세 자매는 뿔뿔이 흩어졌고 막내는 20대를 가난에 허덕이다 작품 속 서술자를 만난다. 서술자는 그녀의 사연을 듣고 인맥을 동원하여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낸다. 여기서부터 이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진행된다. 아버지는 살아있었고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었으며, 서해 해안선에서 소금창고를 운영 중이었다. 왜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을 떠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요즘은 색안경을 벗기 위해 이 작가 저 작가 가리지 않고 섭렵 중이다. 이름만 들었던 박범신 작가도 이번이 처음인데, 역시나 시작부터 내가 기피하는 전형적인 국내 문학 스멜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좋아, 돌파해보자 싶은 심정으로 350쪽 밖에 안되는 이 책을 열흘 넘게 붙들다 이제야 완독했다. 역시 국내 문학은 아직 나에겐 버겁다. ​우리 나라 작가들은 희망을 노래하기보다 지나간 설움과 한을 되새김질하는 데에 더 재능이 많지 않나 싶다. 책 제목의 소금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폭력성을 가리키고 있으며, 부제를 넣자면 ‘아버지들의 자화상‘쯤 될 것 같다. 소금은 사실 여러 가지의 맛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짠맛 하나밖에 기억하지 않는다. 아버지들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어도 자식들에게는 묵묵히 돈 벌어오는 이미지 하나뿐인 것이다. ‘아버지‘가 되는 순간부터 ‘나‘​라는 존재는 버려지고 가족의 생계만이 전부인 아버지들의 인생. 이 책의 주인공도 가족에게 열심히 헌신했으나 자본의 쾌락을 맛본 가족들은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에 전혀 자족할 줄 몰랐고 그렇게 아버지를 세상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후반에 아버지가 가족에게 다시 돌아가지 않은 속 사정이 드러났을 때 나도 모르게 끄덕거리고 말았다. 도저히 나아질 수가 없는 가정. 자신을 묶고 있는 사슬에서, 자신을 가둬두는 독방에서 벗어날 기회를 붙잡은 그가 무책임한 못난 애비라고 비난할 수가 없었다. 빚만 남기고 죽었던 아버지라고 모두가 그렇게 욕했으나 그 빚들은 전부 가족들이 만들고 쌓아올린 더러운 쓰레기 탑이었다. 결국 친가족을 떠나서 모르는 사람들과 가족이 되었어도 아버지는 자신을 돈 버는 기계나 공기 취급하는 피 섞인 딸들보다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이해하는 피 안 섞인 딸들이 더 사랑스러웠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짊어진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반대로 ‘아버지‘니까 얼마든지 희생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은 곳을 찾은 주인공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었다.


어떤 분은 아버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여성들을 폭력적으로 묘사했다고 하는데, 그런 여성들이 모여있는 가정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어째서 가정폭력은 남편이 아내에게, 자식에게만 휘두른다고 생각하지? 아내에게 잡혀사는 남편들도 많이 봐서 그런지 주인공이 전혀 답답해 보이지 않던데. 여튼 이 책을 읽고 다들 본인의 아버지를 떠올렸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아버지를 좋아한다. 날 존중해주시고 이해도 잘 해주시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높고,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지금도 자문을 구하러 가곤 한다. 자녀가 독립해서 잘 살고 있어도 부모님들은 자신의 삶을 즐기질 못하신다. 자식 키우고 집안만 돌보느라 어떻게 즐기는지 잊어버리신 거다. 같이 뭘 좀 해보려 해도 체력이 안 따라주니 할 만한 것도 없다. 그래서 해드릴만한 건 자주 연락하고 대화하는 것뿐이다. 아이고, 자꾸 딴 길로 빠지네. 이 책은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지만 박범신 스타일은 나랑 안 맞군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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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4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가들이 왜 물감님 스탈을 못 맞춰주나요 ㅎㅎㅋㅋ

물감 2018-10-04 12:43   좋아요 1 | URL
그것은! 제가 문학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ㅎㅎㅎ해설을 들어야만 이해되는 글은 그닥 안좋아해요ㅜㅜ
 
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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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됐든 도쿄만 가면 다 잘 될 거라는 믿음 충만한 소년의 낡아빠진 청춘 물이다. 집 떠나 하숙도 해보고, 대학에 들어가 연애도 해보고, 직장에 들어가 프로정신도 배워보고. 비록 꿈꾸던 삶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살고 싶은대로 해가며 서른을 맞이하는 흔한 친구의 흔한 이야기이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지금 내가 어른 다운 어른인지 되돌아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30세쯤 되면 이러이러한 삶을 살아야지 했던 계획은 어디 가고 딱히 이뤄놓은 것도 없이 살고 있다. 젊음과 열정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님을 깨달은 매 순간마다 나는 과연 늦은 걸까, 아님 정상 속도로 가고 있는 걸까, 근심하면서도 그럴 틈도 없이 바쁘기만 한 나혼자 사는 주인공.


일본과 한국은 정서가 참 비슷하다. 도시에 상경해 패션 부심, 외모 부심을 발산하는 주인공이 마냥 귀여운건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단건가. 여튼 그런 자신감도 잠시, 도쿄의 화려한 도시와 사람들에게 기죽고 도심을 만만히 봤던 주인공은 고향이 벌써부터 그립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집안사정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광고사 카피라이터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고생담이 시작된다. 고된 이야기는 말해 뭐 하나. 누구나 다 겪는 내용이다. 그래서 평범한 이야기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평범할 뿐임을 느낀다. 작가를 비하하려는 게 아니고, 진짜 이 정도는 글 좀 쓴다 하는 사람이면 충분히 만들어낼 정도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 되면 대학 가고 직장 다니고, 가정 꾸리는 뻔한 이야기. 누구는 인생 자체가 드라마다, 영화다 하지만 사는 건 그냥 사는 거다. 삶에 한번 의미를 부여하면 계속 그렇게 살아줘야 하는데 그럴 의욕이 없는 나 같은 부류는 하루살이처럼 살면 된다. 욜로니 워라밸이니 딱히 와닿지도 않지만 말이다. 아무튼 점수를 낮게 준 건 너무 평범해서였다. 정말 중간만 하는 작품이라서 욕이고 칭찬이고 날릴 차례가 오지도 않았음. 그냥 하늘에 구름 흘러가는 거 구경하는 게 더 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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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 2018-09-28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 오쿠다 히데오 소설에 빠져서 마약처럼 읽었던 기억이 나내요. 유쾌하지만 삶의 어두운 면도놓치지 않는 그의 이야기. 소설은 조금 편차가 컸던거 같아요. 수작도 있고 범작도 많고...너무 다작하는 느낌. 저는 남쪽으로 튀어!란느 소설이 가장 재밌었습니다

물감 2018-09-28 22:25   좋아요 0 | URL
현재 총 3권째인데 전부 평범해서 계속 읽어야하나 고민입니다...ㅎㅎㅎ남쪽으로 튀어!는 후에 읽어보겠습니다ㅋㅋ
 
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음, 정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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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리뷰를 주 1회 또는 2회씩 꾸준히 써왔고 다행히 지금도 잘 지켜지고 있다. 나는 한 주에 한 권 읽고 글쓰기도 벅차던데, 다독에다 리뷰도 꼬박꼬박 쓰는 사람들은 여가시간을 독서에만 올인하는 걸까. 여튼 주기적으로 글을 쓰다 보니 웹툰 작가들이 마감에 시달리는 심정을 알 것도 같다. 물론 나는 독촉하는 사람도 없고 지킬 의무도 없지만 꾸준히 글을 써보자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인데 이거 참 쉽지가 않다. 왜 작가들이 마감을 못 지킬 때도 많은지 알겠다. 뭐 그건 그거고 역시 나는 청개구리가 맞나 보다. 남들이 다 재밌다는 책은 나랑 안 맞는다. 이 작품도 마찬가진데, 내가 놓치고 읽은 걸 감안해도 내 스타일은 아니다. 뚝뚝 끊기는 듯한 문장 기법이 와일드한 분위기엔 어울리는지 몰라도 읽기엔 많이 불편했다.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을 싫어하는 이유가 불친절한 문체 때문인데 동일한 이유로 이언 맥과이어도 나의 블랙리스트에 추가해드렸다.


1859년 영국. 뱃사람들은 사냥한 고래의 기름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왔지만 이제 더 이상 상인들은 고래기름을 찾지 않고 석유와 석탄가스를 찾는다. 그래도 뱃사람들은 아직까진 고래기름 사업이 죽지 않았다고 믿고 바다로 향한다. 여기 그린란드로 떠나는 포경선에 군의관 출신의 한 남자가 선의를 자원하여 바다여행을 나선다. 선원들을 치료하며 고래도 잡아보고 잘 적응해갈 즈음에 사환으로 있던 소년 하나가 교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범인을 찾아내지만 혈투 끝에 선장은 죽고, 매서운 폭풍을 만나 배가 부서지고 마는데, 이 모든 것은 고래 사업의 종점을 찍고 배의 침몰로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선주와 범인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던 것. 이제 구조선도 없이 선원들은 얼음바다 위에서 표류하다가 다 죽게 생겼다. 작가는 주인공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먼저 중간에 덮지 않고 잘 이겨낸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칭찬은 남들이 많이 해줬으니 나는 비평만 적기로 하겠다. 일단 장르가 되게 애매한 게, 스릴러와 클래식의 어정쩡한 교집합이라고나 할까. 전체적으로 글맛이 없었고, 고래사냥 내용 치고 큰 액션조차 없었다. 아니, 고래 잡는 장면이 어떻게 한두 장만에 끝나? 열 장 넘게 할애해도 부족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름 모험 이야기인데 긴장감도 없고 메인 사건도 없다. 아주 그냥 없는 거 투성이구만. 뭔가 있어 보이는 주인공의 군의관 시절 내용과 과거 사건은 그냥 회상이었을 뿐, 현재 흐름에 별다른 영향도 의미도 없었다. 한 서평가는 군더더기가 많았다고 하던데 듣고 읽으니 정말 그래 보이더군. 소년의 살인사건 구간에서는 잠깐 텐션이 올랐으나, 배가 부서진 시점부터 재미도 기대도 무서운 속도로 떨어진다.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나 싶을 정도로. 선원들의 치열한 생존 게임이 시작되나 싶더니 그냥 각자 흩어지다가 다 동사로 죽었다. 또 북극곰과 싸우는 장면은 어찌나 지루하던지. 차라리 톰과 제리가 싸우는 게 더 스릴 넘치겠던데. 곰과의 사투씬은 진짜 독자 손에서 땀나게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전체적으로 긴장도 안되고, 중요씬들은 분량도 짧고, 그렇다고 딱히 산으로 가는 작품도 아니면서 싱겁고 밍밍한 이 맛은 대체. 무엇보다 여성 비하의 욕이 많아서 여성분들은 읽다가 집어던질지도 모르겠네. 굳이 이렇게까지 직역할 필요가 있었을까. 뜨거운 기대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딱히 남는게 없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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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8-09-20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데니스 루헤인을 완전 애정하는 저로서는 완전 아쉬운 소식이지만.
님의 견해를 존중합니다.^^
소심하게, 번역때문에 그렇게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드는게 아닐까 추측을 해봅니다~--;

책 표지가 ‘열린책들‘서 나온 ‘검의 대가‘와 비슷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전 이상하게 ‘열린책들‘의 책이 버겁더라구요.
이 책 가지고는 있는데, 과연 시도하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여러가지 팁을 주시는 멋진 리뷰 고맙습니다~^^

물감 2018-09-20 10:17   좋아요 1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다른 리뷰에도 썼지만 저도 열린책들 불만 장난아닙니다ㅎㅎㅎ 그리고 저도 이런 불친절 문체의 작품을 만나면 애써 번역탓으로 돌리긴 해요... 왜 나만 참 맛을 못느끼는가 자책도 해가면서요...털썩 ㅜㅜ

카알벨루치 2018-09-20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이 닫힌책들이 되면 안되는데...

물감 2018-09-20 11:09   좋아요 0 | URL
열리다 만 책들이에요ㅋㅋㅋ

북프리쿠키 2018-09-20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체도 글치만, 자간 행간이 넘 빡빡해요ㅎ

카알벨루치 2018-09-20 11:02   좋아요 2 | URL
전 고전은 누구따라 민음사로 하고싶지만 너무 따라하면 표날까봐 문학동네로 갈라고 합니다 ㅋ

물감 2018-09-20 11:17   좋아요 2 | URL
이 정도면 다같이 불만제기해도 되겠어요ㅎㅎㅎ특히 대사에는 이상한 괄호기호 말고 큰 따옴표로 좀 바꿔주었으면....

지나 2018-09-20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데니스 루헤인 불친절한 문체 동의합니다.특히 켄지 시리즈 경우는 좀 이해 안되는 문장이 많아요.혼자 신나게 마구 폭주하는 악동 분위기가 납니다. 그래도 저는 루헤인 좋아합니다.

물감 2018-09-20 13:11   좋아요 0 | URL
루헤인은 만인의 애증 작가군요. 켄지 시리즈는 아직 못 읽었지만 ‘살인자들의 섬‘과 ‘운명의 날‘은 문장 뿐 아니라 장면 전환도 애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원서라고 크게 다를것 같지는 않네요ㅎㅎ
 
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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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소설은 처음인데, 이야 진짜 재미있게 글 잘 쓰시네. 너무 매료돼서 이번 리뷰는 이 작품의 문체처럼 작성하기로 했어. 작가가 기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글이 상당히 깔끔하거든? 근데 또 전달력까지 끝내줘. 이거면 뭐 일단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가지 않겠어? 이 책은 말 그대로 한국 삶에 정떨어져서 호주 시드니로 떠난 한 여성의 내용인데,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 블라블라 수다 떠는 작품이야. 일단 처음 몇 장만 읽어보면 느낄 거야. 이 작가에게서 데드풀 냄새가 난다는걸. 물론 그 정도의 말빨은 아니지만 꽤 찰진 언어를 구사하는데다, 독자에게 말 거는 듯한 느낌도 데드풀하고 비슷해서 B급 장르를 사랑하는 나에게는 아주 그냥 땡큐였지. 뭐 잡설은 이만하고 작품 내용을 읊조려 볼게.


먼저 주인공을 ‘나‘로 바꿔 소개할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가난한 집안에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나 힘들게 살아왔어. 우리 집은 겨울 되면 집안에서 동상 걸릴 정도로 추워 뒤질 거 같아. 가족이 다 같이 돈 모아 이사 좀 가면 좋겠는데 집안에서 제대로 돈 버는 사람은 나뿐이야. 특출난 스펙도 없이 카드회사에 들어가 3년 버티다가 결국 인내심이 폭발했어. 동갑내기 남친은 어딘가 비전이 안 보여. 뭐 그건 그럴 수 있는데, 아 글쎄 남친 부모님은 뭔데 우리 집을 깔보는데? 이런 것들이 겹쳐겹쳐 나는 이 지긋지긋한 한국을 뜨기로 정했어. 이대로 가면 초사이어인 각성도 가능할 것 같아. 차라리 직장을 바꿔보지 왜 그렇게 극단적이냐고 묻지 말아줘. 직장만 문제가 아니잖아. 나이는 먹어가고 스펙은 없고, 어느 회사에서 나를 데려다 쓰겠냐고. 그리고 어느 세월에 우리 집이 보일러 걱정 없는 아파트로 이사 가겠어. 그래서 난 호주로 미련 없이 날아갔지. 여기는 미국 영어랑 달라서 전혀 못 알아먹겠더라. 그거 빼면 뭐 여긴 신세계야. 나보다 날씬한 애도 없어서 아이돌 출신이라고 해도 믿을 분위기야. 물가도 생각보다 싸서 놀랐어. 호주 사람 말고도 외국인들이 다양해서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나. 이 정도면 ‘논스톱‘같은 시트콤도 찍겠더라고. 여튼 이곳에서 4년쯤 지내보니 제법 영어도 늘었고 돈 버는 법도 알 것 같아. 이제 나도 호주 사람이 다 된 건지 한국 친구들의 하소연을 듣노라면 여전히 한국은 몇 년 전이나 후나 변함도 없고 비전도 없다는 확신만 들어. 오랜만에 연락 온 헤어진 남친 목소리에 잠깐 흔들렸지만 역시 한국은 자신 없어. 난 그냥 호주 시민권 따낼라고.


간단하게 요약하려 했는데 너무 주인공에게 빙의 되었나 봐. 말이 너무 길어졌어. 이 책은 아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꿈꾸지만 차마 실행하지는 못할 것들을 시원하게 보여주는 거 같아. 근데 이 책 읽고서 너도 나도 회사 때려치우고 한국 뜰까 봐 걱정된다? 작가가 아주 그냥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심어주는 사기꾼 기질이 있어. 신세한탄 그만하고 함 질러보란 듯이. 만약 외국인 친구가 나에게 한국의 좋은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음 글쎄, 인터넷이 빠르단 거 밖엔 생각나는 마땅한 답변이 없네. 난 그래도 한국을 혐오하진 않는데도 딱히 자랑할 게 없어 보여. 단점을 묻는다면 3박 4일 밤 새가며 설명할 자신은 있는데. 여튼 간만에 재미있는 독서였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관심이 가네. 재미있는 작품 좀 추천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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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14 0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소설은 감칠맛 나죠! 특히 동남아 아시아인들에 대한 한국인의 시선이 날카로웠죠 우린 미국이나 유럽 강대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있으면서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표백>은 좀 우울하고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만약 어설픈 통일이 된다면 이란 가정하에 스토리를 진전시키고 있고 <댓글부대>는 드루킹에 대해 이야기한 소설입니다...장강명의 소설은 다 읽어보려고 하는데 문학동네수상작도 있던데 빌렸다가 못 읽고 다시 빌려리니 대출제한 걸려 못 읽고 있네요 ㅎ

물감 2018-09-14 09:15   좋아요 1 | URL
역시 남다른 통찰력을 지닌 작가군요! 그런데 주로 쓰는 소재가 국가 문제나 이슈에 대한 걸 다루나봐요? 기자라서 이걸 픽션으로 엮는게 가능한건가...대단하네요ㅋㅋ

카알벨루치 2018-09-14 09:20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기자출신이라. 근데 이런 문학적상상력이 있다는게 참 대단한 듯 싶어요 그래서 더 구미가 당기는지도 모르죠 <당선 합격 계급>을 쓴 것도 보면 남다른 시선이 있는거죠 물감님 오늘도 행복하소서^^

물감 2018-09-14 09:22   좋아요 1 | URL
좋은 정보 감사해요! 카알벨루치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봄밤 2018-09-15 0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재밌어요ㅎㅎㅎ 한국이 싫어서를 읽다가 큰 흥미를 못느끼고 내려놓았는데 리뷰는 참 잘 읽혀요ㅋㅋ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물감 2018-09-15 08:59   좋아요 1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그냥 신세한탄만 하는 내용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어요 ! 금방 읽히니까 재도전 꼭 해보세요ㅎㅎㅎ

coolcat329 2018-09-20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댓글부대를 휘몰아치듯 읽은 기억이 나네요. 작가가 직접 옆에서 보고 쓴거처럼 너무 사실적이라 충격을 받았는데 정말 사실이었더군요...글 잘 읽었습니다.

물감 2018-09-20 09: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쿨캣님의 충격을 저도 느껴보고싶네요. 조만간 댓글부대 읽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