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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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나오는 요 시리즈는 하나같이 작품 퀄리티가 상당히 높아 보인다. 지금까지 4권 읽었는데 전부다 소재나 테마가 독특했고, 이슈되는 사회문제를 꼬집는 장면이 꼭 있다. 스토리텔링도 훌륭하고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지고 있어 유명한 일본 사회소설에 전혀 꿀리지 않는다. 시끌시끌했던 ‘82년생 김지영‘도 이 시리즈던데 그 책도 언젠가는 읽을 날이 오겠지. 요즘은 국내 작가 쪽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보려 한다. 한국문학은 유명한 작품 위주로 읽어봤는데 내 코드와 영 안 맞는 작품이 많았고 실망을 거듭하여 선입견이 생겼었다. 꽤 괜찮은 국내 작가들도 많은데 스타 작가들에게 가려져 모르고 지나쳐온 것도 있고 사실 그동안 너무 무관심하기도 했다. 이젠 골고루 좋아해볼게유.


주인공 고요나는 재난 당한 나라에 관광을 보내주는 여행사 과장이다. ​퇴출 대상만을 성추행하는 김 팀장에게 성추행당한 그녀는 결국 사표를 던지지만, 회사는 한 달 휴가와 함께 출장 개념으로 재난 관광지를 보내준다. 무이라는 섬으로 날아가 5박 6일의 일정을 마친 요나는 공항 가는 열차에서 가이드 일행과 떨어지고 섬에 혼자 남겨진다. 회사도 도와주지 않았고, 소지품도 사라져서 불법체류자가 된 그녀는 묵었던 여행사와 계약 맺은 리조트로 돌아온다. 마침 리조트 업체에서 고용한 한국인 작가가 요나를 알아보고 이 섬의 재난 프로그램을 리뉴얼하자고 제안한다. 이 섬은 관광 상품의 수명이 다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제안을 기회로 삼아 상품 가치도 되살리고 본인의 가치도 높여볼 생각이었는데, 어쩐지 작가의 시나리오가 범상치 않다. 인위적인 재난을 발생시켜 여행사에 재계약을 체결하시겠다? 이 계획에 공범이 되는 게 과연 잘한 선택일까. ​​


​재난 지역으로 관광을 간다니, 발상 한 번 프레쉬하다. 재난 지역을 관광하면서 삶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하는 취지라나. 맨날 고객들만 비행기 태워주다가 직접 날아가보니 감회가 퍽 새로운 주인공. 그녀는 관광하며 카메라에 담아둔 섬의 모습과 사람들의 분위기가 이곳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관광이 끝난 다음에야 섬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1달러를 벌기 위해 섬 주민들은 억지로 웃고 노래했다. 그리고 무대가 끝나면 마치 기초생활수급자들만 사는 섬처럼 변했다. 가치를 잃은 관광지는 주민들의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요나의 말대로 재난은 눈앞에서도 진행 중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섬 전체가 아닌 실속을 챙기는 몇몇을 위해 상품을 리뉴얼 한다는 게​​ 어쩐지 꺼림칙하다. 그렇게 무생물 같던 그녀의 심장 속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감수성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요나의 양심을 시험하는 순간이 참 많았다. 섬 주민들까지 동원해 재난 조작극을 꾸미는 황 작가와 업체를 말릴 기회도 많았다. 그러나 제 코가 석자인 요나는 그러지 않았고, 심지어 이 일이 주민들을 대학살 할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번번이 외면하였다. 그리고 끝까지 자신의 안위만을 우선시하였다. 근데 나는 그녀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야망에 눈이 멀어 분별력을 잃은 게 아니라 그냥 피곤한 일에 엮이고 싶지 않은 것이니까. 마치 성추행 당한 직원 그룹에 속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문제는 요나도 본인의 선택이 어떤 운명을 가져올지 짐작하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애써 모른척하기 위해 죽어가는 소금 땅을 살려내는 것만 집중했을 뿐이다. 그러나 공포 앞에서는 다 똑같은 인간이란 사실을 천천히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곧 죽을 사람들에게 별 감정도 없다가, 본인이 죽을 처지가 되고 나니 생명이 귀한 줄 깨달으신 우리 고 과장님.


여행사에 도움을 요청해도 회사는 알아서 하라며 그녀를 모른 척 한다. 그제서야 요나는 고객들의 취소/환불 요청들을 매몰차게 거절했던 자신을 떠올린다. 절실한 고객들에게 갑질로 대응했던 그대로 돌려받은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동정을 해야 할지,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전혀 도와줄 마음이 없는 여행사는, 이윤 없는 일에 힘 쏟지 않는 자본주의사회의 표본이다. 내 밥줄 챙기기도 바빠서 타인을 신경 쓰는 게 오지랖이 돼버린 사회. 그 속에서 벗어나 보려고 떠났던 여행인데, 교만함으로 만든 재난과 대 자연 앞에 요나 일행은 굴복하고 말았다. 역시 사람은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다고 숨 막히는 현실이 달라지기나 할까.


꼭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추격전 같은 액션이 있어야 스릴러, 호러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처럼 철저하게 사람을 고립시키고 궁지에 몰아넣는 것만으로도 극 공포와 긴장감을 보여줄 수 있다. 직장에서 퇴출될 위치임을 감지했을 때, 외국에서 길을 잃고 국제 미아가 되었을 때, 여권이 없어서 귀국할 방법이 없을 때, 재난으로 죽음이 닥쳐오는 게 느껴질 때, 사랑하는 사람이 곧 죽을 예정임을 알고 있을 때. 얼마든지 살면서 이 같은 절대 위기의 상황을 실감할 수 있고 공포를 마주할 수 있다. 웬만하면 피하고 싶겠다만. 작품 해설자는 지독한 현실의 중압감을 다른 방식으로 허구화한 작품이라 했다. 아, 역시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았구나. 현실이라는 재난의 하루를 무사히 버텨내고 살아남은 것에 대하여 감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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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9-06-27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던 클래식도 그렇고 민음사 시리즈 좋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물감 2019-06-27 11:58   좋아요 1 | URL
ㅎㅎㅎ시리즈 전부 줄줄이 읽어봐야겠어요^^

카알벨루치 2019-06-27 1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좋아요 물감님 글은 속도감이 있어요 ㅎㅎ

물감 2019-06-27 14:53   좋아요 1 | URL
크으... 저의 템포를 알아봐주시다니요, 역시 프로 리뷰어 카알님ㅋㅋ

카알벨루치 2019-06-27 12:26   좋아요 1 | URL
물감님 과찬에 점심 안 먹어도 되겠습니다 ㅎㅎ

물감 2019-06-27 13:08   좋아요 1 | URL
ㅎㅎㅎ감사합니당. 남은 6월도 마무리 잘하십시오^^!
 
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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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런 교육이 모두에게 다 잘 먹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수가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자라난다고 한다. 서로 간에 예의를 지키며 조심하는 세상. 이 얼마나 이상적인 유토피아인가. 내 생각, 내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실례이고 상처되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계속 돌아보는 삶. 피곤하게 산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습관화되고 일반화되면 피곤한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 될 것이다. 이런 얘기를 왜 하고 있냐면, 이 책은 자신의 지난 잘못이 뭐가 문제인지, 자신의 태도가 타인에게 왜 상처인지를 모른 채 살다가 땅을 치며 후회하는 한 남자를 말하고 있어서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한다면 타인이 말하는 말에 조금만 귀 기울여도 고치고 달라질 수 있는 것들인데, 자존심이 밥 먹여준다고 믿는 권위적인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을 생각은 안 하고 외부 요인에서 찾으려고만 한다. 그 생각의 결과가 어떤 문제를 낳았는지, 또 이 사회를 어떻게 더럽혀가는지 알아보자.


항공사 승무원인 딸의 장례식 장면부터 시작한다. 유나는 차를 몰고 저수지에 뛰어들어 익사했다. 딸과 남처럼 지내왔던 공군 대령 출신의 아빠는, 딸이 죽고서야 지난 세월을 돌아본다. 현역 시절부터 전역한 지금까지도 아빠는 가정을 소홀히 했고, 10년간 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울고 싶어도, 화가 치밀어도 그럴 자격이 없는 아빠였다. 그는 딸의 일기장에 적힌 의미심장한 글을 발견하고 딸이 자살하게 된 경위를 조사한다. 그리고 딸이 근무하던 항공사에서 딸과 한 부기장의 스캔들 루머를 듣는다. 또한 진실에 다가갈수록 마주하는 건 딸의 심장에 칼을 꽂은 사람이 바로 아빠 자신이란 사실이었다.


유나와 아빠의 사이가 틀어진 두 사건이 있었다. 먼저 딸과 소문난 부기장은 과거 아빠의 운전병이었다. 그의 아내가 아이를 유산하던 날, 대령은 끝내 운전병을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그는 대령에 대한 증오를 분풀이하려 유나를 납치해 집으로 데려간다. 반면 유나는 그의 심경을 이해하고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유나는 납치되었음에도 집에다 가출한 것으로 말했고, 납치된 동안 자발적으로 운전병의 아내를 조리하고 집안일을 도왔다. 아빠 때문에 한 가정이 깨져버린 것을 대신 사과라도 하듯이. 일찍이 철들어 타인의 심경을 이해하고 위로할 줄 아는 성숙한 아이였다.


또 한 사건은, 방산업체가 국방예산을 횡령하는데 동조한 장교들을 폭로하려던 윤 대령의 죽음이다. 그를 압박하여 입을 막고 자살하게 만든 것은 유나 아빠 홍 대령이었고, 이 사건은 사회에 알려져 대령은 불명예 전역했다. 당시 유나는 아빠를 비난했고, 눈 뒤집힌 아빠는 폭력으로 답했다. 한 가정이 무너졌는데 아빠는 고작 딸이 버릇없게 군 것으로 화를 낸 것을 용서할 수 없었던 유나. 그 후로 딸과 엄마는 아빠와 따로 살게 된건데 듣자 하니 이건 도저히 커버칠 수가 없다. 나는 잘못한 거 없다는 태도로 나오는 아빠와 누가 같이 살고 싶을까. 더 충격인 건 어떻게 그 방산업체의 경비원으로 들어갈 수가 있지? 자신이 뭐 때문에 군복을 벗었는지 알면서? 그리고 힘들었던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딸한테 지금도 섭섭하다는 대령 이 인간은 진짜 하이킥 좀 맞아야 한다. 왜 아빠는 가족과 싸우고 해결할 생각보다 각자 갈 길을 택했을까? 더 이상 돌이킬 수도 없고, 선택지도 없다고 판단한 걸까? 자신이 원인이고 가해자라는 인식조차 없으니 해결할 생각을 안 했겠지. 알았다면 딸과 대면해서 풀어볼 기회도 얼마든지 많이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것들은 대령의 집안 사정일 뿐, 유나가 자살을 결심한 계기는 따로 있었다. 직원을 고발하여 성과를 올리는 항공사의 엑스맨 제도가 시초였는데, 유나의 스캔들을 보고한 동료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유나가 잘못한 것처럼 몰고 갔다. 여기서 동료의 적반하장 태도가, 과거 아빠의 모습과 겹쳐진다. 똑같은 상황에서 아빠에게 저항했던 그녀는 세상에겐 저항하지 못하고 끝내 패배한다. 단순히 승산 없다는 사실에 분하여 자살한 게 아니다. 위계질서를 따라 비리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던 아빠가 그제서야 이해된 것이다. 그녀는 군대라는 계급사회를 오랫동안 봐왔으면서도 좀처럼 위계질서 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운전병이 상사의 가족한테까지 기사 노릇하는 게 당연한 건지, 임신한 아줌마를 불러다 일 시키는 엄마의 행동이 당연한 건지 항상 의문이었다. 늘 부조리함에 거침없이 맞서던 그녀였는데, 사회로 나와 겪어보니까 이 바닥의 더러움을 실감했다. 그래서 아빠가 속한 삶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끝냈다.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 각도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작품이다.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이 성장 소설이란 걸 알았는데 딸뿐만 아니라 아빠의 성장까지 그려냈다. 딸은 승무원이 되면서 고객들에게 희롱과 폭행을 당하고, 반성문을 쓰고, 근신 처분까지 받으면서 인생은 실전이라는 것과 혼자만 깨끗해봐야 소용없단 걸 어렴풋이 느끼면서 성장한다. 인생 승리하는 흔한 성장이 아닌 순수함에 때가 잔뜩 묻어 현실을 깨닫게 된 마이너 틱한 성장이었다. 반면 아빠는 딸이 죽고서야 걸어온 길이 오물로 얼룩져있었음을 깨닫는다. 수많은 불편한 진실로 부들부들하다가 끝나는 게 아니라 딸을 위해 달라지려는 아빠도 성장한다. 그리고 작가는 두 부녀를 통해 독자까지도 성장시켜준다. 어째 세상은 의로운 사람일수록 가만 놔두지 않으려는 것만 같다. 심지어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더 문제 삼으려는 썩은 인간들도 많다. 똑같은 세상인데 어째서 누군가는 세상이 아름답다 말하고, 누군가는 세상이 더럽다고 말하는가. 적어도 어린이들만은 세상이 더럽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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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코드 메이즈 러너 시리즈
제임스 대시너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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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퀄 1편에서 마크가 구해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던 소녀는 ‘사악‘이라는 단체로 들어가 ‘테리사‘라는 이름을 받고, 바이러스 치료제를 만드는 실험체가 된다. 이 단체는 테리사처럼 면역력을 지닌 아이들의 뇌를 연구하여 치료제를 만들고 세계를 구원하려고 한다. 그리고 메이즈러너의 주인공 토머스도 어려서부터 이곳에 들어와 실험체로 자라난다. 방사능으로 뒤덮인 세상을 살릴 수 있는 건 자신들 뿐이란 사실을 잘 아는 토머스와 친구들은, 좋든 싫든 사악에 협조해야 했다. 토머스와 테리사는 본부 지하로 내려가 그들의 미로 프로젝트를 돕는다. 그리고 미로가 완성되면 면역인들이 투입되고 여러 시련을 겪으면서 얻은 뇌 감정의 데이터로 치료제를 만드는 것이 사악의 최종 목표이다.


자신들이 인류를 구원할 치료제를 만든다는 희생정신으로 버텨온 면역체 친구들은, 미로 프로젝트를 숨긴 토머스와 테리사에게 배신감을 표출한다. 두 주인공은 중간 입장에서 사악의 편을 들어야 하는 난처함과 친구들의 비난으로 괴롭기만 하다. 미심쩍긴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사악을 믿었던 토머스의 내면은 점점 무너진다. 사악은 병에 감염되지 않은 가정을 협박하여 아이를 강제로 데려오고, 미로에서 친구들이 죽었는데도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플레어 병은 인구 조절 때문에 사악이 인공적으로 퍼뜨린 거란다. 사악이 밤낮으로 해결하려는 바이러스의 문제는 알고 보니 그들이 싸지른 똥이었고 그 더러운 것을 면역인들이 꾸역꾸역 뒤처리하고 있는 꼴이었다. 이 역겨운 곳에 가담하고 있던 자신에게 화나있는데 공터인들을 광인들이 사는 초열 지역으로 보낸다는 말에 폭발한 토머스는 친구들을 구하러 미로에 투입하기로 한다. 이제야 모든 앞뒤 내용이 전부 파악이 되었다. 


프리퀄까지 다 읽고 나니 이 시리즈는 절대 프리퀄을 먼저 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반드시 메이즈러너 1~3편을 먼저 읽고 프리퀄을 읽어야 훨씬 더 재미있다. 공터나 미로의 비현실적인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왜 토머스와 테리사만 특별했는지, 어째서 뉴트가 나중에 감염되어 죽은 건지 등등 모든 비하인드스토리가 다 들어있다. 그리고 미로를 탈출해서 초열 지역으로 이동했던 게 다 짜인 수순이었던 것까지도. 아무튼 드디어 시리즈 전권을 완독했다. 장편소설 한 권 쓰는 것도 어려운데 여러 권을 쓰고 연결하고 대중성까지 갖추기란 더 어려울 것이다. 그 힘든 것을 제임스 대시너는 멋지게 해냈다. 범죄 기자 출신인 마이클 코넬리가 경찰 소설을 쓰고, 의사 출신인 테스 게리첸이 메디컬 스릴러를 쓴 것처럼 전문 분야에서 책을 쓰는 작가들이 많다. 그런데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 것을 다루고 이토록 큰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의 뇌구조는 대체 어떻게 되어있는 걸까.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살며, 어떤 뇌 훈련을 하는지 너무 궁금하다. 아무튼 이전 프리퀄 리뷰에 할 말을 다 써서 더는 쓸 게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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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1 10: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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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0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6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0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킬 오더 메이즈 러너 시리즈
제임스 대시너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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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한다. 사실 스토리보다도 작가의 필력을 더 좋아한다는 말이 맞겠다. 이 책은 메이즈러너의 프리퀄 작품이다. 구매한 지는 되게 오래되었는데 이제서야 읽는다. 메이즈러너, 헝거게임, 다이버전트, 파인즈 같은 디스토피아 시리즈물이 예전에는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게 별로 없는듯하다. 아니면 내가 못 찾고 있는 건가. 여하튼 영화도 너무 잘 봤는데 프리퀄도 어서 영화화되었으면.


태양 플레어 현상으로 온 지구가 황폐해져가던 그 시절, 운 좋게 생존한 마크 일행들의 이야기이다.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숲속에 헬기가 나타나 모두를 몰살하기 시작한다. 습격 받은 마을은 웬 바이러스가 싹 퍼져서 대부분 죽었다. 이곳을 떠나 적의 본거지를 향해 가던 중 똑같은 습격을 받은 다른 마을에서 유일하게 감염되지 않은 소녀를 만나 데려간다. 그러다 마크가 정찰 중일 때 여자 일행들이 납치되고, 적진에서 연합정부가 세계 인구수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듣는다. 그리고 그들이 퍼뜨린 바이러스는 100% 전염되어 죽거나 광인이 된다. 붙잡힌 친구들을 위해 악어떼 속으로 돌진하는 마크의 구출작전은 무사히 성공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작가의 책을 읽고 있으면 머리에 아무 생각이 안 든다. 그냥 물 흐르듯 편안하게 읽어내려간다. 딱히 태클 걸만한 것도 없고 심기를 건드리는 것도 없어서 좋다. 일단 분명 속도감이 있는데 절대 과하지 않다. 작가들이 집필하다가 텐션이 오르면 진도가 미친 듯이 팍팍 나가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제임스 대시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템포를 유지하며 구멍들을 전부 메운다. 이런 게 진정한 절제의 미학이라 하겠다. 그리고 메이즈러너 시리즈를 읽었을 때도 느꼈던 건데, 이 작가는 진짜 끊는 타이밍의 달인이다. 어떻게 하면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런 건 한국 드라마 작가들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 능력자는 많군요.


나는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교차하는 플롯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정신이 사나운 것도 있지만, 잘 보던 채널을 갑자기 다른 데로 돌려서 흐름이 끊어지는 게 싫다. 이 책도 그런 플롯인데 전혀 불편함 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이유는 과거로 넘어갈 때 현재 상황을 뚝 잘라먹는 게 아니라 일시정지를 한 다음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주인공이 잠들거나 정신을 잃은 경우에만 꿈으로 과거 사건들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꿈에서 깨면 자연스레 현재로 넘어오기 때문에 과거와의 연결이 매우 자연스럽다. 그냥 읽어보시면 이해되실 거다.


프리퀄 1권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비상사태가 일어나게 된 경위보다, 병에 감염되어 서서히 변해가는 주인공의 상태변화이다. 인류애 넘치던 마크는 점점 자아를 잃고 흉포한 모습으로 서서히 변해간다. 본인도 그것을 느끼고 초조해하며, 완전히 맛이 가기 전에 트리나를 구출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이 책의 핵심 포인트이다. 정신줄이 점점 끊어져가는 가운데 친구들을 지키려 필사적인 주인공의 위대한 희생정신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제 프리퀄 2편을 읽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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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은네디 오코라포르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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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에는 떨어졌지만 모집할 때부터 관심 가던 작품이었다. 작품 소개 글에서 애정 하는 할레드 호세이니 작가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작가가 미국 출신이지만 부모는 나이지리아 사람이다. 학생 때 운동부상으로 수술받은 후 글 쓰는 쪽으로 전향하여 다양한 글을 쓰며 지금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호세이니와 이력이 비슷하다 해서 글재주까지 닮은 건 아니었다. 일단 내가 싫어하는 글 스타일이 몇 개 있다. 첫째, 몽환적이거나 흐리멍덩한 분위기의 소설. 둘째, 고상한 문장으로 도배된 순문학. 셋째, 어려운 단어와 수식이 가득한 과학소설. 넷째, 상황이나 배경에 대한 설명 부족 및 장면 스킵이 많아 호흡이 뚝뚝 끊기는 글. 이 책은 네 번째에 해당한다. 예전에 ‘연금술사‘를 읽다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 포기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이 책에 비하면 연금술사는 가독성이 좋은 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 탓은 아닌 거 같고 아무튼 고대 문자같이 연구가 필요한 문장이 많은 데다가, 생소한 배경/문화/전통/사상을 묘사하는 글이 영 불친절하다.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견디고 딱 절반 즈음에 덮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모래 늪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숨 막혀. 


아프리카에는 ‘아니 여신‘이 있었고 그 아래 백 피부의 누루족과, 흑 피부의 오케케족이 있었다. 누루족은 오케케족을 노예로 부려먹었고, 오케케족을 집단 강간하여 ‘에우‘를 만들었다. 에우는 폭력으로 태어난 아이를 말하며, 주인공 온예손우도 그 중 하나였다. 누루족의 아이라며 오케케족에게 미움을 받으면서도 두 모녀는 꿋꿋하게 살아왔다. 주인공이 할례를 받는 11살 때 몸에서 여러 변화가 생긴다. 몸이 투명해지기도 하고, 새로 변신하기도 하고, 환영을 보기도 하는 그녀 앞에 어느 날 에우 소년이 나타난다. 소년을 통해 오케케족 마법사의 제자가 된 주인공은 몇 년 뒤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생부인 누루족 남자를 복수하러 먼 길을 떠난다.


줄거리만 보면 무슨 모험 장르같이 보이지만 우리가 자주 보던 액션이나 판타지나 스릴감은 전혀 없는 작품이다. 배경이 배경인지라 전반적인 분위기가 약간 쳐져 있고 건조한 편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 넘치는 주인공의 성격이 유독 튄다. 온예손우가 다른 아이들과 달리 말도 안 듣고 쉽게 욱하는 성격을 가진 것이 환경 탓인지 유전 탓인지 모르지만, 보는 내내 짜증을 유발해대서 맘에 안 들었다. 에우 소년이 그런 주인공을 보며 제발 멋대로 좀 굴지 말라는 말을 반복한다. 나도 이런 캐릭터를 책 속에서든 책 밖에서든 되게 싫어하는 타입이라 작품에 정을 못 붙이겠더라고. 하긴,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캐릭터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읽다 덮은 부분까지는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변화에만 초점이 맞춰질 뿐, 큼직한 사건이나 갈등이랄 게 안 나온다. 오히려 스토리보단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내용이 듬성듬성 나온다. 부족의 전통이라며 할례를 받게 하는 문제와, 여자라서 안된다고 하는 남녀 차등 문제, 타부족과 혼인했다며 따돌림받는 문제 등등. 남녀 차등 문제는 주인공이 ‘여자니까‘라는 이유 따윈 집어치우라고 강력하게 나와주니 시원시원해서 좋았다만, 그 외에는 대부분 잠깐 짚고 넘어가듯 다루어서 작가가 이 문제를 지적하고 싶은 게 맞는지 아닌지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아무튼 스토리 자체가 강한 인상을 주지 않다 보니 그 외에 것들만 기억이 남는 책이다. 물론 뒤에는 안 읽었으니 이런 말하기엔 이를 수도 있겠다. 아, 그리고 여행을 떠나는 과정이 반지의 제왕 스토리와 너무 비슷해서 설마 따라 한 건가 싶었다. 친구들과 산에 가서 반지를 처분하는 선택받은 호빗과, 동기들과 함께 예언자를 찾아 떠나며 생부를 처벌하러 가는 능력자 주인공...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아무튼 기대가 컸던 작품인데 이렇게까지 나랑 맞지 않을 줄이야. 갑자기 이 갈증을 달래줄 냉면이 너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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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콘느 2019-07-08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랑도 안맞아요.과대광고에 낚인 거 ㅠ

물감 2019-07-08 15:39   좋아요 0 | URL
우리는 낚였습니다... 요즘 이런 과대광고가 많아서 저는 신간을 읽지 않아요. 검증된 책 위주로 읽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