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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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읽어야 하나 오랫동안 망설였던 책이다. 장르소설 매니아층에서는 필독서로 알려져 있는 듯한데, 어쩐지 그럴수록 더 손이 안가더랬다. 우연히도 회사 도서관에 고이 잠들어있길래 함 가져와봤는데 세상에 이리 재밌는 걸 왜 이제야 읽게 된 것인지 참으로 한심하도다, 나님이여. 노래도 옛것이 좋았듯이, 소설도 그렇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시겠다. 심지어 내가 싫어하는 독일문학이라니? 이 정도 수준이면 삐뚤어진 내 선입견도 고쳐볼 만하겠는데. 역시 거장은 레벨이 다르다 이겁니까. 분위기나 문체는 ‘주제 사라마구‘와 비슷하고, 비유와 표현력은 ‘토머스 쿡‘의 느낌이며, 재미와 속도감은 ‘장용민‘을 닮아있다. 사기캐를 발견했으니 저자의 다른 책들도 섭렵해봐야겠다. 벌써 기분 좋고 난리다.


어려서부터 후각에 천부적 재능을 가졌으나 정작 제 몸엔 아무 냄새가 없어 늘 기피 대상이었던 주인공. 고아 출신의 소년은 훗날 향수 제조인의 길을 걸으며 무형의 재능을 유형으로 바꾸어 세상을 놀래킨다. 반면 냄새의 수집을 위해 충동적으로 살인을 한 그의 내면에는 엄청난 악마가 깨어나고 있었다. 이제 그는 궁극의 향수 제조와 냄새 수집을 위해 세상을 떠돌며 인간 사냥을 시작한다. 점차 세상을 공포로 몰아가는 이 애정결핍 히키코모리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이 작품은 관점에 따라 냄새에 환장한 변태의 유치뽕짝 이야기일 수도 있고, 전례 없었던 고전과 스릴러를 혼합한 퓨전 판타지 장르일 수도 있다. 일단 만물의 냄새를 맡는다는 설정부터가 비현실적이라 취향 면에서 갈릴만 하다. 그래서 주인공을 선이 아닌 악으로 세워서 살인자의 이야기를 쓴듯싶다. 후각이라는 소재로 뭘 얼마나 보여줄지 기대는 안 했는데 이거 원 예측불가한 참신함의 연속이었다. 보통 악역 시점의 작품들이 심리 쪽도 같이 다루는데 비해 이 책은 감정이 결여된 캐릭터라 심리 장면이 전혀 없다. 그래서 더더욱 앞을 예상하지 못한다. 근데 이렇게 끌려다니기만 하는 플롯도 은근한 매력이 있었다. 


그는 후각으로 세상을 배워나갔다. 사물의 존재를 냄새로 인식한 다음 머리에 입력하였다. 그렇게 점차 모든 냄새를 수집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그의 광기는 깊어져만 갔다. 일생을 혐오 속에서 살아왔지만 그의 광기는 타인의 멸시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첫째는 향에 대한 갈망으로 빚어진 순수함이 악으로 옮겨간 것이다. 그래서 살인을 했어도 그게 죄인지 몰랐고, 향수로 타인을 속이거나 조종하는 행위도 무엇이 잘못인지를 몰랐다. 둘째는 자신의 무(無) 존재에 대한 수치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것이 두려워 7년의 동굴 생활을 떠나 마을을 찾아가고, 인체 향수를 만들어 자신의 무체취를 감추는 등 인간적인 모습도 여러 번 보여준다. 반면 향수 제조를 위한 계획을 실천하는 치밀함도 보여주며 독자를 계속 들었다 놓는다.


냄새에 마음을 뺏겨 살인에 손을 댄 주인공은 마치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였다. 죄악의 눈이 열린 이상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향기에 미칠 대로 미친 그는 결국 연쇄살인을 저지르며 인간의 냄새를 수집한다. 과거에 충동적으로 저지른 살인이 나비효과가 되어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순수한 욕망일 뿐이어서 허무하게 붙잡혀버린다. 이쯤부터 점점 텐션이 떨어져 이 책도 용두사미인가 했는데 또 한번 판을 뒤집어놓는다. 이 살인자는 궁극의 향수로 모든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죄인으로 만들어버린다. 무력을 쓰지 않고도 세상을 정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자신은 사랑이 아닌 증오 속에서 만족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모든 계획을 성취했는데 이젠 뭘 할까 싶던 차에, 작가는 기발한 방법으로 주인공의 운명을 던져주고 깔끔하게 마무리하였다. 살인자의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어도 되나, 기분 참 이상하네.


휴대폰만 보고 있는 사람은 머리 위의 만발한 벚꽃을 보지 못한다. 이 책의 살인자도 그런 케이스이다. 냄새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 외엔 아무것도 보질 못하고 있다. 그게 어째서 안타까웠냐면 어렸을 땐 나름 감정이란 게 있기는 했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비위를 맞추거나 기쁘게 해줄 줄도 알았다. 허나 아무도 케어해주지 않았으니 올바른 길이 어딘지 누가 알랴. 그 결과 악의가 전혀 없는 그의 행동은 극악무도한 범죄가 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이 살인자가 요즘 핫이슈인 N번방 사건의 조 모씨와 여러모로 캐릭터 겹치는 듯. 이런 악마는 소설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즐거운 독서였고,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쥐스킨트 작품 추천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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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shac2 2021-03-26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잘쓰셔서 쓰신거 다보고있어요ㅋㅋ별4개이상인건 다읽어보려구요 감사합니다~@

물감 2021-03-26 18: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ㅎㅎ이웃님 같은 분들이 있어 글쓰는 맛이 납니다^^
 
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
얀네 S. 드랑스홀트 지음, 손화수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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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로 냄새가 진동하는 제목만 보고 또 다른 글로벌 병맛 작가의 등장인가 싶어 냉큼 집어 들었다. 연속으로 하드한 책만 읽어서 확 달궈진 전두엽을 식혀주기에 딱 좋아 보였다. 요즘은 음식도 단짠단짠이 디폴트 아닙니까. 암튼 내가 이 책에 흥미를 가진 건 노르웨이 문학에서 유머와 위트를 다룬다는 의외성 때문이었다. 노르웨이의 문학 컬러가 비비드한 딥 블랙이라고 어디서 들은 건 있었거든. 뭐가 되었건 제목만으로도 한 명 낚았으니 마케팅 성공한 거지 머. 나는 이렇게 문학으로 웃음 주는 작가들을 진정으로 존경한다. 요즘처럼 웃을 일 없는 시대에 작게나마 피식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런 건 언제든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바이다. 그럼 이제 주인공께서 어디 얼마나 불행하신지 함 진찰해드립죠.


대학교수인 주인공은 곧 정리 해고되기 직전이다. 또한 경매로 비싼 집을 더 비싸게 구하고, 현재 집은 안 팔려서 죽을 맛이다. 직장에서는 무능한 직원으로, 집에서는 미련한 아내로 낙인찍혀버린 그녀. 가뜩이나 심각한데 해고를 반대하고자 하극상을 꾸몄다는 누명까지 쓴다. 결국 학과장은 주인공을 자매결연 사절단으로 러시아에 보내버린다. 이후 나사 빠진 파트너들 덕분에 국제 범죄자가 되어 뉴스 헤드라인을 찍게 생긴 빈테르 여사. 대체 불행의 여신께서는 언제쯤 그녀를 떠나시렵니까...


흠. 이것이 노르웨이가 보여줄 수 있는 유머의 한계구나. 나는 요나스 요나손처럼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고 능구렁이처럼 사태를 넘어가면서 나오는 유머를 기대했는데 그런 건 전혀 없었고 그저 사태의 심각함을 가볍게만 다루고 있다. 이건 뭐 어설픈 블랙 코미디만도 못한데 노르웨이에서는 걸작의 탄생이라며 바다 건너 한국까지 왔다는 게 사실입니까.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웃픈 상황의 연속인데, 이런 해프닝을 작정하고 썼다는 사실이 더 웃프시다. 근데 진짜 제목대로 개인의 불행한 이야기가 전부였다니. 제목으로 기대감 잔뜩 올려놓은 거에 비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트콤 같은 코믹 장르도 아니고, 주인공의 성장 드라마도 아니고, 기승전결도 엉망이고 거참 작품의 성격을 모르겠음. 번데기가 되다 만 애벌레 같은 모습이랄까.


어김없이 이번에도 주인공을 신랄하게 까 보겠다. 하기 싫은 컨퍼런스 준비를 최대한 미루고, 툭하면 연구실 문밖에 ‘시험 중‘ 팻말을 걸어놓고 딴짓하며,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거짓말과 변명을 늘어놓는 등 전형적인 뺀질이 캐릭터인데 정작 자신은 품위 있는 컨셉을 유지하고 있다. 어쩐지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구상하신 듯한데, 글쎄요. 아무리 봐도 사랑스러운 구석이 없는걸요? 한국에서는 씨알도 안 먹힐 거 같아서 큰일이네. 암튼 직장 문제, 부동산 문제는 충분히 불행하다 볼 수 있지만, 워낙 분위기를 라이트 하게 깔고 있어, 누구나 겪는 고생 가지고 너무 오버한다 싶더군. 미안하지만 한국에선 매우 흔한 일상이라서요. 나름 빵 터뜨리려는 작가의 노력이 곳곳에 보였지만 컨텐츠부터 이미 실패였음. 당신의 웃음 코드는 애석하게도 전혀 와닿지 않았다요. 겨우 이 정도로 배꼽 잡다니, 노르웨이 국민들은 정말 순수한가 봐.


잠깐 옆길로 샜는데 다시 주인공을 까 보자면, 캐릭터 설정 자체가 큰 모순이었다. 원래부터 그녀가 어리바리하고 미숙하고 칠칠치 못한 게 아니었다. 뭔가를 계획할 때면 별별 상상을 다 하고 최악의 상황까지도 염두에 둘 줄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 멀쩡한 주인공이 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사고 회로가 멈추고 분위기에 휩쓸리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집을 경매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집안 재정을 계산할 정도로 정신머리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뭔가에 홀린 듯이 금액을 올리고 낙찰에 목숨을 건다는 게 말이 돼? 전혀 단가가 맞지 않는 설정이었다. 더 어처구니없는 건 스스로도 선을 넘으면 불행할 것을 잘 안다는 사실. 이건 뭐 지킬 앤 하이드도 아니고요, 매력도 없는 캐릭터에 설정 붕괴까지? 이 분도 헛개수 드링킹이 좀 필요해 보임. 의식의 흐름대로 가는 것도 정도껏 하셔야 욕먹지 않습니다요.


주인공이 다양한 불행을 겪는 동안 변화할 기회나 계기가 많았음에도 어중간한 컨셉 때문인지 달라질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본인이 문제가 생길만한 곳에 항상 발을 담그려 하는 경향이 있단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단 게 유일한 킬링 포인트라 하겠다. 물론 상황들이 그녀에게 워낙 비협조적이지만 자신이 리드해나가는 게 하나도 없고 계속 끌려다니고만 있어, 애교로 봐주던 독자들도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더라. 이런 언밸런스를 보고 난 다음부턴 아무런 기대감 없이 페이지를 넘길 수 있어서 차라리 속 편하고 좋았음. 그래, 이럴 때 낙관적인 독서 습관도 좀 길러보지 뭐. 적어도 한국인을 흡족시키려면 한참은 더 분발해야겠습니다, 드랑스홀트 쓰앵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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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면 - 숨기지 마라, 드러내면 강해진다
브레네 브라운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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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에서 신청한 두 번째 도서다. 미국에서 대인관계 분야 5년 연속 1위라는 책인데, 주로 인간의 수치심과 취약성을 연구하는 내용이다. 깊이감도 있고, 퀄리티도 좋고, 문제점 파악과 피드백도 명확하다. 그리고 자신의 약점마저 과감히 드러내며 강연을 하는 저자의 진솔함이 참 매력적이었다. 저자는 삶에 불이 붙으려면 마음가면을 벗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벗어버리느냐, 바로 수치심을 마주하는 것. 엥? 수치스러움을 권장하다니, 당신 제정신입니까? 삐삑, 정상입니다. 저자의 핵심은 이것이다. 내가 무엇을 아는 것보다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 그러려면 마음가면을 벗고 기꺼이 취약해지라고 말한다. 자 그럼 저자가 줄곧 강조하는 취약성에 대해 알아보자.


첫 챕터부터 흥미롭다. 아픈 사람 혹은 문제적 사람을 보고 쟤는 이렇다,라며 규정하는 것은 전혀 치료나 변화를 줄 수 없다는 것. 진단을 내리면 더 큰 수치심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오히려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패턴을 관찰해야 한다. 우리 집 가족 중에는 엄청 예민한 성격을 가져서 무슨 말만 하면 방어적으로 나오고, 하루도 신경질을 안내는 날이 없는 사람이 있다. 이런 케이스를 두고 저자는 말하길,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정의했다. 더 나아가 평범해질 수 없었던 환경에서 살아온 것의 영향이 큰데, 여기서 자신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박힌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취약함이 곧 나약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더욱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단다. 와 진짜 족집게시네요.


인간이 취약성을 싫어하는 건 어두운 감정과 연결되어서이다. 본능적으로 어두운 감정을 꺼리므로 취약성에 쉽게 뛰어들지를 못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노출하고 나를 내려놓음으로써 사랑도 기쁨도 공감도 얻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쓰는 나의 글이 누군가는 공감이 안된다며 비난과 쓴소리를 한다면 나는 취약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나약함과는 별개이다. 나의 취약함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하나의 원천이 되고 간절함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취약한 상태 그대로 세상에 참여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살면서 이런 식으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저자의 관점이 참 신선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인정하는 건 내가 나약하다는 걸 증명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다른 것이며 그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하였다. 우리는 타인의 진솔한 모습을 원하지만 자신의 솔직함은 보여주길 두려워한다. 어째서 남의 취약성은 용기이고 나의 취약성은 약점이 되는가. 아마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고질병 때문이렸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름 좀 날린 사람들은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한 케이스가 많다. 즉 실패해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서이다. 여기에서 용기를 얻고 부족함에서 벗어날 답을 찾게 된다. 부족함은 그만큼 채워서만이 풍족해지고 완전해지는 게 아니란 말이다.


챕터 4가 가장 인상 깊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누구나 가면을 쓰고 갑옷을 입는다. 그게 오래되면 마치 원래의 몸이고 피부인 것처럼 돼버려 벗지도 못한다. 저자는 수많은 상담자들이 갑옷과 가면을 벗으라는 제안에 겁먹고 있음을 보았다. 다들 가면 쓴 내 모습이 진짜라고 믿어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 기회에 나의 가면도 한 번 돌아본다. 나는 남자치고 살짝 하이텐션이다. 대화를 좋아하고 리액션도 저절로 나간다. 또 타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일할 때는 조급하고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허나 진짜 내 모습은 매우 저텐션에다, 남들이 뭐라 하건 신경 쓰지도 않으며, 느긋한 템포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내 캐릭터를 알면서도 가면 쓴 채로 지내는 걸 택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게 내 생긴 대로 살려면 무인도 가서 혼자 지내지 않는 이상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있어 불편함이 너무 많단 말이다. 둘 다 잘하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얻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게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따라서 가면과 갑옷을 무조건 벗어던지는 건 불가능하므로 자신을 주기적으로 돌아봐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저자는 ‘나는 지금 충분하다‘라는 생각을 가졌을 때 속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했다. 과거에 열등감 덩어리였던 나도 변화하고자 많은 훈련을 했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연습을 했고, 부족함을 채우기보다 잘하는 걸 발전시켜나갔다. 이 과정에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고, 주변에서 좋게 봐줄 때마다 역시 사람은 하기 나름이라는 걸 배웠다. 역시 인생은 실전이라니까.


저자는 강연 중에 영업사원이 질문한 취약성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것이야말로 취약성을 끌어안은 적절한 예라 하겠다. 영업같이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분야에서 신뢰를 주는 것은 신속 정확한 처리도 있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도 포함된다. 나 또한 회사 서비스 담당자 중 한 명으로써 고객들의 난처한 문의를 자주 받는다. 전문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불확실한 내용도 맞는 것처럼 답변했다가 오 안내로 사과드린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왜 그런 객기를 부렸나 후회한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이제는 모른 걸 모른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사로잡혀서 가면을 써왔는데 오히려 그게 더 힘들기만 했다. 멀쩡한 척, 문제없는 척, 멋있는 척 등등. 이런 건 나하고 맞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가면을 벗어던지니 훨씬 더 마음이 편했다. 저자가 강조한 ‘취약성에 빠져들라‘는 것을 나는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거다. 성공이나 출세가 목표인 분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평화롭게 사는 게 더 중요하거든. 물론 마음 좀 편하게 먹는다고 당장 생계가 해결되고 틀어진 인간관계가 좋아지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가면을 써도 그건 마찬가지다. 아무튼 평생 가면을 벗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상황에 맞게 썼다가 벗을 줄 아는 컨트롤이 먼저겠다. 뭐 이리 복잡하냐며 때려치지 마시고 치킨 한 마리 뜯으면서 천천히 생각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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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토끼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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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리뷰 쓰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던 작품이다. 내용이 심오하면 모를까, 어렵지도 않으면서 핵심 주제는 모호한 이런 경우는 분석하기보다 텍스트 그대로 이해해야 속 편하고 정신건강에 이롭다. 그래서 이번에는 힘 빼고 편안하게 써보겠다. 존 업다이크의 토끼 4부작 중 첫 번째 편으로써, 주인공 해리의 방황기를 다루고 있다. 국내에선 그닥 주목받지 못했었는지 지금까지도 1편만 출간되어있다. 솔직히 문학동네 정도면 후속편들도 출간해줄 법한데 안 나오는 건 진짜 재미도 없고 무익해서일까. 이 작품도 우리나라 정서와 다른 장면들이 줄줄이 나와서 눈살 찌푸려질 때가 종종 생기는데, 이런 적이 뭐 한두 번이어야지. 흑인을 비하하는 표현도 너무 잦은 데다, 어르신들을 대할 때의 예의를 짬통에 갖다 버린듯한 주인공의 태도 등등. 서양 문화를 받아들임과 존중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선지 작품에 온전히 녹아들기란 참 쉽지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런 것도 고전문학에 속하나 싶을 만큼 고전치고는 매우 라이트 했던 터라 선정 기준이 대체 무엇인지 의문을 품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했다.


읽어보시면 제목에 ‘달려라‘는 ‘달아나다‘라는 뜻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토끼는 주인공의 별명이다. 과거 화려한 농구스타였던 주인공 해리. 그러나 지금은 꿈도 없고 목적지도 없는 유부남이다. 가진 건 자랑 못할 직업과, 마약중독인 아내와, 먹여살릴 아이와, 말이 안 통하는 양쪽 부모님들이 전부이다. 현실에 숨 막혀하던 그는 갑옷들을 벗어던지고 떠나서 한 매춘부를 만나 같이 지낸다. 그를 찾아온 지인들이 설득해보고 달래보지만 해리의 오춘기는 너무나 강경하였다. 그러다 두 달 뒤, 아내의 출산 소식으로 병원에 간 해리는 딸의 탄생과 아내의 변화에 감동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신의 존재감을 지나간 옛 영광 속에서 찾고자 하는 해리. 그래서 과거의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인정받고 싶어 했다. 아직도 건재하며 모두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확인하는 건 좋았는데, 그 방향과 수단이 영 아니었던 거다. 그는 트러블을 해결하지 못할 바에는 그냥 회피하자는 일차원적인 방안을 택한다. 주변에 도움을 구했다면 금방 해결될 것을, 자존심 상하는 게 싫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린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해리의 미성숙함을 지적하였다. 그런 말 백날 들어봤자 꿈적도 않던 그의 고집이 처음으로 흔들린다. 집을 나간 후 정원사로 일하면서 얼떨결에 이웃에게 기쁨을 주었고, 여기서 어렴풋이 자신의 존재감을 발견한 것이었다. 어쩌면 해리의 진짜 문제는 자존심 찾기가 아니라 자존감 회복이 더 먼저가 아니었을까. 


아무리 주인공이 가장이고 애 아빠라 해도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이다. 이십 대가 어른스러워봤자 얼마나 어른스러울까. 한참 놀러 다닐 나이에 짊어진 게 많다 보니 분명 컨트롤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치만 힘들다고 가족을 버리고 막장 인생을 찍는 건 좀 아니지. 그나마 나중에라도 자신의 죄를 자각한 걸 보면 양심이 있긴 하구나 싶다가도, 목사의 아내를 보며 음욕을 품는 이런 정신 나간 토끼시끼는 개과천선이고 뭐고 확 갈아 마셔버리는 게 정답이다. 그나마 시리즈라니까 참고 보는 거지, 그게 아니면 전혀 공감 안되는 이런 캐릭터를 누가 좋아해 준단 말인가. 잠시 반성했다가 또 정신 나간 모습을 반복하는 이노무 토끼시끼는 죄와 비난 속에서 온통 달아날 궁리만 하고 있어 궁둥짝 스매싱이 좀 많이 필요해 보인다. 


좀 생소한 작가라서 별도 검색을 해보니, 미국의 중산층들을 다루는 소재의 작품이 많더라. 그래서 가난함, 소외감, 비참함 같은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내놓는 작품마다 항상 논란을 몰고 오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목사의 불륜, 테러리스트로 변한 청년, 흑인과 백인의 사랑 등등 왕성히 활동했던 60년대에는 다소 파격적인 장르들을 많이 다루었다. 그러나 문장과 문법이 어딘가 이빨 빠진 것처럼 들쑥날쑥한 것과, 지나치게 성적인 장면을 남발하여 자연스럽게 하루키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이 작가는 하루키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더라. 아무리 그래도 하루키의 농염 주의보는 절대 따라갈 수가 없음. 이분도 미국에서는 엄청 유명하고 각광받는듯한데, 일단 이 책만 놓고 보면 절대 납득하기 어렵다. 시리즈인 걸 감안해도 이야기에 핵심이 빠져있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건지, 주인공의 죄를 회개한다는 건지, 각각의 메시지들이 너무 얕달까. 적당히 순한 맛이면 그냥저냥 먹겠는데, 이거는 간이 안된 밍밍한 맛이라오. 누구라도 읭? 하게 만드는 미완성품이란 말이죠. 요즘에 이런 글을 쓴다면 곧바로 악플 수천 개 예상 각인데, 참 시대를 잘 타고나셨다는 생각이 듭디다, 예.


이럼에도 불구하고 후속편들이 출간되면 읽어보고는 싶다. 주인공의 성공이나 행복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막장이 어디까지인지, 파탄 난 인성의 끝은 어디인지 궁금해서이다. 아무튼 이렇게 진리나 깨달음을 논하기보다 비평 거리만 가득한 고전 작품도 참 보기 드물다. 겨우 이 한 권만으로도 논란이 가득한데 다른 작품들은 과연 어떠려나? 하루키는 단 두 작품만으로 손절하게 만들었는데, 업다이크는 타 작품도 비평해보고 싶게 만드는 오기가 생긴 달까나. 여튼 이번에는 손이 가는 대로 리뷰를 써봤는데, 이야~ 역시 사람은 어디 안가는구만. 내 안의 까칠 요정은 여전히 건재했어 후후. 아주 오랜만에 즐거운 글쓰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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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0-04-01 0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의 태도에서 거슬렸던 부분을 추가하면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도요. 자기합리화도 잦고 결론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캐릭터였어요.

‘달아나다‘에 공감합니다. 달린다는 것 ‘어디로‘라는 방향성이 있는데 반해 고정되어 있는 대상으로부터 달아난다는 건 앞에 보이는 목표가 없으니 여기에서 상황의 모호성이 증폭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잠깐, 딴지! 아내가 마약중독이 아니라 알코올 중독이었던 것 같은데요, 술에 쩔어있는 모습으로 판단해보면^^;

감독님을 찾아간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셨군요. ‘자신의 존재감을 지나간 옛 영광 속에서 찾고자 과거의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인정받고 싶어했다‘는 점이요. 격하게 공감합니다. 안에서 무너져 공허해지니까 밖으로 뻗어나가야 할 관계도 제대로 맺지 못했던 주인공으로 보여요. ‘처음에는 우리의 안이, 다음에는 밖이 쓰레기가 된다.(p322)‘라는 문장이 날카롭게 다가오더라구요.

20대 중반이면 나이만으로도 한창 빛날 나이인데 아내나 매춘부를 너무 퇴폐적으로 굳어진 껍질로 묘사한 점이 거슬렸어요. 묘사한 문장으로만 판단하면 거의 5,60대 이상의 분위기거든요.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에게 노소를 불문하고 정신 나가는 토끼시끼의 뇌구조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껄떡하면 사랑이라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이토록 얄팍한 감정이라니! 싶더군요.

작가의 용기있는 시도는 박수를 보낼만하나 너무 비호감캐릭터라 읽고 나면 찜찜한게 기분도 애매하더군요. 밝히는 건 본능이라고 이해한다쳐도 어찌된 인간이 지 밖에 몰라 툭하면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저는 후속편을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거기에서도 여전히 달리고, 하고^^;를 반복할 것 같아서요.ㅋㅋ 다만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이 책의 내용 말고 문장을 분석하며 다시 천천히 읽고 싶기는 해요. 문장의 표현력이 좋아서 기발한 묘사를 발췌하고 싶거든요.

같은 책을 읽고 의견을 주고 받으며 생각의 폭이 확 넓어지는 것 같은 이 느낌이 저는 참 좋습니다. 잘 지내세요~^^*

물감 2020-04-01 18:03   좋아요 2 | URL
아, 알코올 중독이었나요? 헷갈렸네요ㅋㅋㅋ 독자들 눈에는 그저 도망다니는 해리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작가는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거 같긴해요. 근데 저에겐 그게 도무지 안보여요 ㅋㅋㅋㅋㅋㅋ에잇

나비종님 말대로 인물 묘사를 전부 늙은이로 써놨더군요. 아무리 노화가 빠르다곤 하지만 생각이나 정신마저 이렇게까지 늙나 싶기도 했어요. 아니면 이것마저 작품의 메시지를 위한 장치인가 싶었는데 역시 모르겠습니다. 전체의 큰 틀만 보면 괜찮은 내용인데 디테일이 영 거시기하네요 ^^;

해리가 범죄자나 악인은 아니었지만 인간말종이라 불릴만 했습니다. 이후 후속편들은 해리의 개과천선은 아닐거 같아요. 맞다해도 상관없지만요. 뭐랄까, 뻔한 인과응보 전개가 아니어서 흥미로웠다고나 할까요 ㅋㅋㅋ 여튼 이렇게 또한번 험한 산을 같이 넘어 기분이 좋습니다. 4월은 잠깐 쉬었다가 5월에 또 스타트 하시죠 ^^
 
스테파니 메일러 실종사건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제목에 ‘사건‘이 들어간 것만큼 뻔한 작품이 또 어디 있냐고 했던 나님이 요 책을 읽은 것은 순전히 빠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근데 생각해보니 대부분 이러한 이유로 읽었었네. 내가 ‘OO 사건‘ 제목의 작품을 디스하게 된 데에는, 누구나가 뻔하고 똑같은 플롯을 다루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정해져있는 기승전결에 소재와 캐릭터 설정만 다를 뿐,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나마 조엘 디케르는 요즘 현대작가에게서 보기 힘든 젊은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신뢰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 같은 사람이랄까. 고유의 개성도 가지고 있고, 대중들을 사로잡는 능력까지 갖춘 그런 작가이다. 헤밍웨이 같은 간결한 문체에 적당한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속도감과 무게감의 두 마리 토끼를 잘 잡고 간다. 다만 ‘헤리 쿼버트‘에서 자주 사용했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강렬한 문체가 사라져서 좀 아쉽다. 아무튼 이 책마저 실패라면 다시는 ‘사건‘ 들어간 책을 읽지 않겠다고 이를 갈며 읽었는데 다행히도 책 덮을 일은 없었다. 근데 더 기괴하고 지저분한 책 디자인은 현대 미술인 건가?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네.


은퇴 준비 중인 형사에게 한 여기자가 찾아와 마음을 뒤집어 놓는다. 20년 전 종결된 살인사건의 수사 오류를 지적하며 주인공을 도발하고 떠난 그녀. 결국 은퇴도 미루고 재수사를 하려는데 여기자는 실종되었고 그녀의 집은 불타버렸다. 그녀가 무엇을 알아냈기에 이런 위험에 노출되었을까. 그리고 완벽했던 수사에서 그녀가 지적한 오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주인공은 20년 전 사건 당시의 파트너를 찾아가 헬프를 한다. 작중에서 주인공 시점은 현재를, 파트너 시점은 과거를 조명한다. 그래서 여러 번 시점이 교차되지만 타 작품들처럼 심하게 정신없지는 않았다. 흐름이 끊어진다는 이유로 교차 플롯을 싫어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거북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과거를 제 삼자가 설명해서겠지.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보면 과거와 현재가 좀처럼 구분되지 않아 흐름이 깨지곤 했는데, 그게 다 한사람 시점으로만 썼기 때문이었다. 그런 타 작품들과 다르게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면서 퀄리티도 잃지 않는 것이 위에서 말한 봉 감독과 닮은 점이다. 넘버원은 언제든지 뒤바뀌지만, 온리원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며 존재감을 가진다. 이제껏 내가 봐왔던 온리원들은 규칙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 조엘 디케르도 온리원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은 반드시 초대박 날 사람이야. 그러나 아직은 좀 더 분발해주셔야겠어요.


결과적으로는 우수한 작품이었지만 과정까지는 그렇지가 않았다. 방대한 분량만큼 여러 내용을 담고 있는데, 메인 사건보다 서브 스토리들이 더 비중 높고 흥미롭다는 게 단점이다. 게다가 진도가 너무 느려서 나중에는 스테파니 메일러가 무엇을 알아냈던 건지, 20년 전 사건의 수사 오류가 무엇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주인공도 너무 존재감 없고 활약도 미미했다. 심지어 커크 하비가 더 주인공처럼 보인달까. 글쓴이가 얼마나 센스 있고 감각 있는지 알 수 있는 척도 중에 하나는, 멀티 시점을 다룰 때 이야기가 각자 노는지 아닌지로 구분할 수 있다. 메인 요리를 만드는 식당이 있고, 다양한 메뉴를 만드는 뷔페가 있는데 이 책은 후자이다. 물론 각각의 맛도 중요하다. 그러나 음식끼리의 조화로움 또한 중요하다. 짜장면에 휘핑크림이 웬 말이며, 소고기에 누텔라 잼은 그야말로 신성모독이다. 그러니까 결국 개연성의 문제라는 말이다. 메인 스토리와 연관도 없는 듯한데 어떻게든 끼워 맞추는 기분이 한 번이라도 들면 그다음부터는 계속 삐딱한 시선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는 플롯들은 서브 사건에서 중간마다 복선이든 암시든 넣어줘야 한다. 그래야 독자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란 걸 알고 더욱 몰입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개연성과 이야기 간에 조화로움은 달나라에 가있다고 하겠다. 그나마 후반부에서 진실을 서서히 드러낼 때, 제프리 디버가 말했던 미스 디렉션 기법을 기똥차게 활용한 것에 박수를 주고 싶다. 모든 독자는 스테파니 메일러의 말처럼 눈앞에 있던 진실을 못 보고 지나치게 될 것이다.


천재들이 전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봐온 똑소리 나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융통성이 없었다. 아 물론 머리도 나쁘고 융통성도 없는 친구들은 더 많다. 아무튼 나는 이런 낭설이 한국에만 해당되는 줄 알았더니 서양도 같은가 보다. 조엘 디케르도 천재적인 면모가 분명 있다. 그래서일까, 불필요한 장면을 질질 끌어 분량만 늘린 갑갑한 구간이 많았다. 템포가 느린 플롯은 인간의 심리나 감정선을 다루는 작품에 더 적합하다. 하지만 이 책은 주인공이 형사이고, 실종사건에 연쇄살인까지 나오고 근근이 액션 신도 들어가 있다. 그런 장르에서 스피디함을 제거해버리고 인물에만 포커스를 둔다? 물론 이런 스타일을 지향하는 토머스 쿡 같은 작가들도 있긴 있다. 그렇더라도 완급조절만 조금 신경 써줬으면 좋았을 것을, 수사도 계속 제자리걸음인데 진도마저 민달팽이 걸음마 수준이었음. 융통성 없는 천재가 바보 코스프레까지 하면 어떡합니까. 어째 보면 볼수록 성대결절 걸린 이승철을 보는 느낌이다. 잘 부르긴 하지만 예전의 파워풀함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래도 팬 탈퇴는 하지 않을 테니 차기작들은 분량 좀 줄여서 내줘요, 디케르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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