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그레이스 페일리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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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어로는 어떻게 읽힐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책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고 하면서 질 좋은 오징어를 씹듯이 몇번이고 되새기는 재미가 있는 글이라고 했다. 분명 한글로 적혀 있지만 짧게 끊어져서 연결적인 의미가 종내 잡히지 않는 이 모호함을 일본어로는 어떻게 풀어내었을까. 이 책을 번역한 하루키의 책을 다시 번역해서 그 책을 접해보고 싶다. 이 번역본과는 차이가 있을까.


2. 가지각색의 이야기들.


표제작인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을 포함해서 아주 짧은 단편들이 소복하게 들어 있다. 퐁 17개의 이야기들이다. 단 두장밖에 되지 않은 짧은 이야기들로부터 몇장에 이르는 이야기들에 이르기까지 분량도, 소재도 다양한 저마다의 이야기들. 


전남편 이야기가 처음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였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된다. 작가 이력을 미리 읽고 난 이후라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나 다른 어떤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오면 아마도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주인공에게 투영시켜서 글로써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랬을까.


<나무에서 쉬는 페이스>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대화체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많이 등장을 한다. 그런게 그 이야기는 널을 뛰듯이 급작하게 주제변화가 일어난다. 가령 이런식이다. 생계는 어떻게 해결해요? 프랑스어 선생님? 이라고 묻자 필리핀어도 가능하겠군. 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자신이 프랑스어를 말할수 있다며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요하자 갑자기 다른 이는 너는 아빠를 두명이나 잃었잖아.하면서 다시 주제를 바꾸고 아빠가 두명이에요라고 대답하자 이야기는 다시 급반전되어 내가 네 아빠가 되어 줄수 있어. 아빠 좋아하니? 라는 질문으로 되돌아 온다. 그러면서 결국 대화는 너랑 네 형은 진짜 남자야.(143-145p)라고 끝을 맺는다. 이 대화의 주제는 무엇이며 이들은 이 대화를 하고 난 이후 무엇을 얘기했는지 기억이나 하려는지 모르겠다. 


이외에도 글을 읽다가 뜬금없이 다른 것들이 생각나는 때가 많았는데 표제작품에서 등장한 제목은 '후? 아이'다. 아버지가 누구인가? 나!나!나!나! 내가 아버지다.(197p) 이런 글을 보다가 제목에 꽂혀버린 나머지 미국 드라마 CSI를 떠올렸고 - 순전히 저 제목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주제가는 who, who 라는 반복구가 등장한다. 범인이 누구냐는 것인데 본문에서는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고 있는 셈이다 -  <장거리 달리기>라는 제목의 첫번째 문장인 마흔두살 전후였던 어느날, 나는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했다. 멀리까지 빠르게 달려보고 싶었다.(247p) 이 구문을 읽고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렸다.


중반부에 이르러 검프가 아무 생각없이 그저 뛰던 그 장면들 말이다. 자신은 아무 생각없이 그저 뛰고 싶어서 뛰었고 뛰다 보니 뛰었지만 종내는 그의 추종자들이 생겨서 대규모의 집단이 함께 뒤었던 그 명장면이 갑자기 툭 하고 튀어 나왔다. 이야기속의 주인공은 검프처럼 열심히 뛰다가 어린 시절 살았던 장소로 이동을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가 뛰고 있던 그 길을 따라서 뛰고 있었다.


거기다가 <새뮤얼>이라는 제목의 단편은 정말 밑도 끝도 없다 싶다. 여기 거칠게 행동하는 네명의 남자애들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을 생각지도 않고 자기네 마음대로 시끄럽게 굴며 승강구에서 뛰면서 장난을 친다. 사람들은 화가 났고 결국 비상정차 줄을 잡아 당기게 된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극히 잔인한 장면이 연결되지만 작가는 이보다 더 담담할수는 없다며 차분히 그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이 새뮤얼이라는 제목으로 통해서 그 아이의 상황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장난을 치면 안된다는 경각심이라도 주고 싶었던 것일까.


당신은 마음이란 놀라운 것이며 오래도록 살아 있고 에로틱한 거라고 여겨요.(171p) 그저 단순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저 진한 글씨다. 한국말로 '이란'이라는 단어에 칠해진 진함. 분명 강조하고자 함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일텐데 영어로는 어떤 단어에 핀트가 맞춰져 있음이 틀림없다. 


오래도록 살아있고 에로틱한 것이 '마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분명 마음이 진한 글씨여야 할텐데 그것은 빼고 '이란'이라는 단어에 포커스를 맞춘 것은 왜일까. 그것 자체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원서에는 무슨 단어가 있었을까. 분명 무언가를 꾸며주는 부사어일텐데 그것이 궁금해진다.


3. 마지막 순간에 등장하는 엄청난 변화들


이 책이 처음 나온건은 꽤 오래전이다. 74년 작품. 거의 40년이 넘어가는 이 작품들이 그렇게 구태의연하게 보이지 않음은 단편이라 그럴수도 있겠고 작가의 뛰어난 역량 때문일 수도 있겠다. 거기다 하나 더하자면 소재나 주제에 그렇게 치중하지 않은 작품의 특성 때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제목 그대로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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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윤재희 지음 / 청어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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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맨스에도 격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미국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이 일을 하고 일본드라마에서는 감동을 주고 한국 드라마에서는 연얘를 한다고 한다. 아무리 전문성 있는 드라마라 할지라도 결국은 로맨스로 흘러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한국드라마도 예전과는 달라서 전문성을 추구하는 드라마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그래도 로맨스라는 것은 빼놓을수 없는 양념이다. 

개과천선 또한 전문성을 띄고 있다. 로맨스 소설이기는 하지만 법원 검찰청을 중심으로 해서 검사와 기록실 직원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검사가 다루는 사건들은 꽤 전문성있고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서로의 첫사랑이었으나 가정환경으로 인해서 서로 상처를 받은 두사람 여을과 유제. 사건으로 인해서 지방으로 내려오게 된 예준은 여기서 그녀를 만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우연하게 만난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일하는 장소도 같은데 거기다가 사는 곳까지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 그것도 아랫층과 윗층. 작가는 인위적인 요소를 너무 많이 집어 넣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파트 아래, 윗집에 살면서 자주 보니 더욱 친근감있고 십대 소년을 맡아 그를 돌봐줌으로써 가족 아닌 가족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니 이 또한 이런 설정이어야만 가능하겠다 싶어 작가의 의도를 알 것 만도 같다.

2. 최악의 아버지들
여을은 아버지가 진 빚때문에 팔려갈 뻔한 경험이 있다. 공부하겠다고 겨우 모아둔 돈을 아버지가 가지고 가버렸다. 결과적으로 자신은 검사가 되고 싶었지만 공부를 할수 없었고 그래도 공무원은 되었다. 유제는 학창시절 그저 답안지를 일렬로 찍고 자는 위인어이었다. 여을을 알기 전까지는. 

그녀로 인해서 공부를 하게 되고 그녀로 인해서 앞날을 결정할 수 있었다. 비록 그녀는 없었더라도 말이다. 조폭 아버지를 두었던 그는 검사로 이제 아버지와 대립하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3. 개과천선
검찰청만의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난다. 로맨스 소설이니 당연히 연애가 주가 되어야 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전문성을 잃지 않고 굵직한 이야기를 토대로 해서 꾸준히 밀고 나간다. 서로를 좋아했지만 고백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지나와서 우연히 만나게 된 한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 그들은 사건속에 파묻히면서도 그들의 사랑을 굳건히 쌓아간다. 개과천선. 지난 잘못을 고치고 착하게 바뀐다는 뜻. 이야기 속에서는 누가 개과천선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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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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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노라면 꼭 한번쯤 드는 생각은 이 정도의 분량이라면 나도 쓸 수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소설이라면 플롯을 짜고 등장인물을 정하고 인물들간에 관계를 설정하고 갈등이나 긴장요소를 정해야 하지만 에세이는 그저 마음가는 대로 생각나는대로 쓰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만큼 에세이의 벽은 진입하기에 높지 않은 장벽처럼 느껴진다. 

이런 생각으로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그 벽이 생각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것도 금세 깨닫게 될 것이다. 에세이라고 해서 재미가 없으면 안된다. 그저 자신만의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것은 단지 일상의 기록이자 일기일 것이다. 일상 이야기나 자신이 느낀 것들, 주위에서 보는 것들을 얼마나 맛깔나게 쓰는가가 에세이를 쓰는 비결일수도 있겠다. 그렇게 쓴다는 것은 그저 생각난대로 쓰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그만큼 에세이를 잘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에세이를  읽는 것은 어떠할까. 복잡한 이야기들이나 딱딱한 글과는 다르게 에세이는 잘 읽힌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들이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로 인해서 페이지는 막힘없이 죽죽 읽힌다. 막상 문제는 페이지를 다 덮고 나서이다. 내가 읽고 공감한 이 글들을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소설처럼 줄거리를 나열해서 쓸 수도 없고 주인공들의 행동을 쓸 수도 없다. 기억해야 할 점을 체계적으로 나열할 수도 없다. 그러니 에세이를 읽고 나서의 느낌을 적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에세이는 쓰는 것도 어렵고 읽고 난 이후 쓰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

농도가 짙은 보랏빛이 핑크빛으로 옅어져가면서 그라데이션 되어 있는 표지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짙은 하늘에 적혀 있는 제목은 곰곰히 되새기게 만든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누구나 할수 있는 말인데 이렇게 세로줄로 쓰여진 문구를 보노라니 나는 누군가에게 늘 괜찮다는 말만 해온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괜찮다는 말조차 할수 없었던 작가는 그 말 대신 이 글을 썼을 것이다. 작가의 마음을 하나하나 보듬어 본다.

<당신의 여름은 괜찮습니까>. <검은 숲길을 걸어 한참을>. <내 마른 손으로 너의 작은 손을 잡고>. <사랑에 관한 긴 이야기>. 총 네개로 구성된 작가의 이야기는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때로는 궁금증을 자아내고 때로는 이 곳을 가보고 싶게 만들고 때로는 책을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세부적인 제목으로 나누고 있지만 뚜렷하게 기준이 있다고 느껴지는 편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자신이 여행한 곳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하는가 하면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꾸밈없이 그리고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미지같다는 느낌도 든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보다는 곁가지 들이 없이 말끔한 분재같다는 느낌일까.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프랑스 문학의 이야기들이 많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문학은 장르소설을 빼고는 그닥 가깝게 느끼지지 않아왔다. 묘사가 다르기 때문일까. 번역을 해 놓은 글에서도 프랑스 작품이라는 것을 이내 알아차릴 수가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작가가 직접 설명해주는 책들을 읽고 있노라니 자신이 공부했던 책들 즉 프랑스 문학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지금의 문학이 아닌 고전문학들. 그것들을 읽으면 또 프랑스 문학작품에 대한 생각이 바뀔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부산에 산다. 일 때문애 내려갔었지만 그곳에서 정착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산 달맞이 고개. 그곳은 어떤 곳일까. 혼자 상상상을 해본다. 책의 표지와 같이 아름다운 색의 노을이 보이는 곳은 아닐까. 작은 핸디형의 사이즈라서 가지고 다니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작가의 책을 들고 그곳에 가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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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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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점점 책을 왜 안 사고 빌려 읽을까요? (192p)


- 일단은 사람들이 책을 빌려서라도 읽으니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책을 읽는 인구는 줄었거든요. 예전과 비교한다면 확실히 줄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미디어의 발달과 맞물려있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멀리갈 것도 없이 작가님과 저를 포함한 지금의 기성세대가 어린 시절만 해도 그렇게 놀 거리는 많지 않았습니다. 텔레비젼과 라디오가 전부였던 시절이었죠. 물론 만화방도 있었을 것이고 비디오도 있었고 롤러장도 있었겠지만 가장 흔하게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것은 두가지가 전부였죠. 라디오에서 나오는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하려고 애쓰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보니 재미나는 것을 찾기 위해서 또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자연히 책을 많이 읽었죠. 


컴퓨터라는 물건이 대중화되고 나서 우리시대는 확실히 변했습니다. 컴퓨터 게임이 생겨나고 채팅이 유행을 하고 인터넷이 발달을 하면서 볼 것도 너무 많이 늘어나고 구태여 지식을 책에서 알아 낼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소설책보다도 더 재미난 것들이 가득한 컴퓨터인걸요. 


그나마 거기까지였다면 그래도 책을 보았을지도 모르죠. 스마트폰이 발달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컴퓨터를 한대씩 들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죠. 재미난 것이 바로 손안에 들어있는데 더더욱 책을 볼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책과 멀어질 필연적인 계기가 되어 버린 셈이죠. 


거기다가 여기에 도화선이 되어버린 게 있었으니 도서정가제 이름하여 도정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라에서 지정된 가격에 팔아라 해 버리니 가격은 점점 오르고 고정된 값은 내려오지를 않죠. 북페스티발에 가면 지나간 도서라던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창고에 있던 아이들을 싼 가격에 팔아서 그런 것들을 사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도정제는 그것마저도 못하게 묶어 버렸죠. 


모든 것은 다 올라가고 오르지 않는 것은 월급밖에 없다고 했던가요. 그런 빠듯한 살림에서 줄일 수 있는 것은 책값 뿐이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사람들이 책을 살 기회를 막아 버리는 나라의 법입니다. 이런 법을 만든 사람들은 책을 사기나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작가님의 고민에 진지하게 답변을 해 보았네요. 책을 만들어내는 시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하죠.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죠. 신문도 종이신문보다는 화면으로 읽는 세상이 되어 버렸죠. 책의 미래는 밝아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지 않습니까? 손끝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질과 화면의 차가움은 정녕 다를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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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이며 소설가인 작가가 대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 질문에 자신도 같이 고민하며 답을 해준 이야기.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거친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게도 해주지만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그들에게는 여전히 어렵고 힘든 시기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자아>와 <사랑>과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미래>까지 네부분으로 나누어진 그들의 고민은 자칫 풋 하고 웃음이 터지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 진지하게 모든 그 또래들이 생각할 수 있느 고민들을 다시 생각해보게도 한다. 


나는 그 시절에 어땠는가. 나도 이들처럼 치열하개 고민을 하면서 살아왔던가. 내가 해주는 말을 항상 하나다. 3가지 중에 하나는 치열하게 해보라고. 연애를 하던가, 공부를 하던가 놀아보던가. 미친듯이 해볼 수 있는 기회는 그때뿐이라고 말이다. 


무엇이든 그 마지막을 보게 되면 그 다음은 통달하게 되는 법이 아니던가. 대학생이라는 때에 해보지 못한다면 이 세가지의 끝을 볼 기회는 정녕 없는 법이다. 지금 대학생이라면 미친듯 놀아보던가 미친듯 연애를 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미친듯 공부를 해라. 그것이 나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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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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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가 다르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그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307p)


이 책을 읽기 바로 전 [브레이크 다운]에서는 한 여자가 느끼는 죄책감을 근거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자신이 폭우속에서 보았던 여자가 죽음을 당한 것이다. 자신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자신을 자책하는 한 여자의 모습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스쳐 지나간다. 


내가 죽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사건에 연계가 되어있다면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내가 막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 사와자키 탐정도 분명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사건을 풀어갔을 것이다. 비록 브레이크 다운의 여자처럼 자기 자신의 생활을 하지 못할만큼 심하게는 아니었어도 말이다.


사건을 의뢰하는 한통의 전화. 사와자키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자신의 낡은 블루버드를 몰고 그곳으로 향한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의뢰가 아닌 질문이다. 자신의 딸을 돌려달라는 남자의 울부짖음. 사와자키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무언가 싶을때쯤 어디선가 나타난 경찰들에 의해서 사와자키는 졸지에 연행되고 만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이 범인의 계획인가 하고 느낄 무렵 경찰은 그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작가의 딸이 유괴되었고 몸값을 준비하라는 전화를 받았으며 그 돈이 든 가방을 사와자키에게 맡기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무런 연관도 없던 사와자키는 이렇게 해서 이 유괴사건에 개입을 하게 된다. 


십대의 아직 어린 소녀는 누구에게 유괴가 된 것이며 유괴를 한 사람은 돈 6천만엔을 돌려주면 무사히 그 소녀를 풀어줄 생각인 것일까. 전형적인 유괴사건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끊임없는 사건들이 줄기를 엮어가며 이어진다. 사와자키는 어떻게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현금 1억엔과 각성제를 들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와타나베는 여전히 사와자키의 곁을 맴돈다. 그가 왜 그런 짓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언급되지 않는다. 단지 하루아침에 자신의 가족을 모두 잃은 충격때문에 생을 버렸을 것이라는 추축만 나올 뿐이다. 알콜중독에 걸려서 술만 의지하는 그이지만 자신이 세운 이 사무실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일까. 


광고지에 짧은 글을 적어 사와자키에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린다. 그 종이비행기가 왜 이리도 슬퍼 보이는 것인가. 영화의 장면으로 본다면 분명 종이 비행기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팔랑거리며 날아가면서 장면을 줌으로 당겼을 지도 모르겠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미키마우스가 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131p)

초여름의 하루는 돈을 꾸기 위해 늘어놓는 서론처럼 길어,(387p)


연속으로 하라 료의 사와자키 시리즈를 읽고 있노라니 작가 특유의 담담하면서 세련된 문체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작가들이 흉내낼수 없는 그런 표현들이다. 여름날이 길다는 표현을 돈을 꾸기위해 말하는 서론으로 비유하다니 참으로 신선한 비유법이 아닌가. 진부한 표현보다는 이렇게 새롭고 눈에 익지 않은 표현들을 보는 것은 책을 읽는 하나의 즐거움이다.


푸른빛의 표지에는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은 한 소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바이올린을 켜는 소녀. 천재라 불리웠던 그 소녀는 지금 이 가정에서 사라지고 없다. 한창 보호를 받아야 할 시점에 없어진 소녀. 그 소녀를 데려간 인물은 대체 누구인 것인가. 앞으로도 큰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만큼 그 소녀가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비록 '내가 죽인 소녀'라는 제목이 스포가 될지라도 말이다. 


하라 료의 사와자키 시리즈는 이제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로 2부를 시작했다. 사와자키 탐정의 또다른 하루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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