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회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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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면 배신당하지. 대신 기대하지 않으면 배신당하는 일도 없어. (47p)

 

회사에서는 회의를 한다. 사장단 회의부터 시작해서 각종 작은 미팅들까지 회의는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존재라고 여겨서 그런지, 하나의 주제를 놓고 여러 다른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해서 그런지 끝없는 회의가 이어진다. 회의를 짧게 끝내기 위해서 팔굽혀펴기를 한 자세로 회의를 하는 사진을 보기도 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더 짧은 시간에 끝이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잘 알 수는 없다.

 

물론 회의가 길다고 해서 꼭 좋은 결과물을 배출하지는 않는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집중력을 흐트러지고 결국은 쓸데없는 잡담만 늘어갈 뿐이다. 가능하면 가장 필요한 부분들로만 구성해서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사카도는 늘 양지바른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하라시마는 그늘진 내리막길을 계속 내려간다.(13p)

 

여기 한 회사의 회의가 있다. 영업2부는 자신들이 목표로 한 것보다도 훨씬 더 낮은 결과물을 내밀었고 그로 인해서 위에서부터 줄줄이 좋지 않은 소리를 듣게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런가 하면 엽엉1부는 그야말로 기세등등하다. 자신들이 목표로 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실적을 올린 것이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준 셈이니 칭찬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이렇게 회사란 곳은 경쟁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나 잘한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잘하라는 법은 없고 그것이 꼭 전부는 아닌 법이다.

 

대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하청은 적자가 된다. (87p)

 

회사가 크면 클수록 작은 부서들로 나누어진다. 하나의 일을 하기 위해서 혼자 다해야하는 소규모의 회사가 아닌 경우에는 하청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일거리를 나누어서 작은 기업들에게 맡기게 된다. 대기업의 경우에는 그런 자회사들까지도 자신들의 회사에 일거리를 넘겨서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렇지 못한 회사들이 더 많다.

 

하청을 받은 회사들은 최선을 다해서 좋은 제품을 기한 내에 만들려고 노력을 한다. 그래야만 그들과의 계약도 유지가 될 것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은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그들 사이에서도 비교를 해서 채택을 당하게 될 것이다. 대기업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누리려고 할 것이다. 하청업체들은 한건이라도 더 사업을 따려고 가장 낮은 가격을 입찰할 것이다. 모두가 다 규칙과 규격을 지켜야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손해보는 것은 누가 보상해줄 것이란 말인가. 여기에서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감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일이란 말이지, 돈을 버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거야. 사람들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면 즐겁거든. 그렇게 하면 돈을 나중에 따라와. 손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장사는 방해. (365p)

 

청소년기를 지나고 대학까지 공부를 한 성인들은 자신의 직업을 찾아서 취직을 하게 된다.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직과 전직을 반복하게 되기도 한다. 자신이 무얼을 잘하며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좋은가를 찾지 못해서 방황을 하기도 한다. 일이라는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했는가. 그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었던가.

 

분명 도움은 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기뻐하는 얼굴을 본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이 기뻐하면 돈이 저절로 따라온다고. 그것은 이상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말이기도 했던가. 적어도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회사에 있는 각기 다른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벌어지는 다중화자의 이야기들은 가긱 다른 시점으로 회사의 일들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 사람은 이런 일을 이렇게 해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 입장이라면 그렇게 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래도 옳은 건 옳은 거야. 잘못된 건 잘못된 거고. 그 외에 뭐가 있어. (3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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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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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햄릿이 무의식적으로 클로디어스처럼 자기 자신도 아버지를 죽이기를 바랐고,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한 침대에 들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따라서 클로디어스는 햄릿이 간직한 비밀의 화신이요, 햄릿 자신의 거울이었다. 햄릿의 생각은 복수에서 죄책감과 자살로 곧장 이어졌는데, 이는 삼촌에게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클로디어스를 죽이는 것은 자신의 오이디푸스적 욕망을 재현하려는 행위인 동시에 일종의 자기 학살이었다. (193p)

 

프로이트

심적 작용을 물질적 여러 조건으로부터 분리하여 심적 과정은 물질적 과정과 병행하여 존재하는 독립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정신물리적 병행론을 주장하며 의식의 심층에 있는 특수하며 영구적인 힘이 심적 과정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고 그것으로부터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을 만들어 낸 심리학자이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영향을 받았지만 정신 현상을 성욕에 귀착시켜 설명하는 그에 반대하였고 아들러의 사상을 받아들여 성격에는 내향형과 외향형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미개인의 생활을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심층 심리에는 단순히 개인적인 것 뿐만 아니라, 오랜 집단 생활에 의해 심리에 침전된 '집단무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프로이트와 융 / 네이버 제공>


심리학이나 상담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하더라도 프로이트나 융이라는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 분야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아주 중요한 인물들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능에만 충실한 동물들과는 다르게 생각이라는 것을 하며 그로 인해서 단순한 생각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복잡한 정신세계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 모든 과정들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학일 것이다.

 

지구가 둥글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을 절대 믿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모든 분야에 있어서 초창기 사람들의 반발은 예건된 것일수도 있다.. 이 정신분석학 또한 마찬기지였을 것이다. 심장소리를 듣고 체온을 재고 직접 몸을 보는 것으로써 병의 진단여부를 판단하는 것과는 다르게 단지  질문을 하고그에 대한 응답을 듣고 또는 사람들의 꿈 이야기를 듣고 또는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듣고 분석해서 정신적인 병적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흡사 사이비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뇌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다보니 처음에는 신경과의사들과도 많은 마찰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신분석학의 대가들이 살인사건에 투업되면 일반적인 경찰들과는 어떻게 다르게 접근을 할까. 그것이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1909년 아직 미국이 지금처럼 완전히 발달되기 전이다. 여기저기 공사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오늘 이 빌딩이 가장 높은 빌딩이라고 선언했는데 내일 저 빌딩이 가장 높은 빌딩이라고 다시 번복해야 하는 그런 급변화의 시기인 것이다.

 

이런 시기에 대학의 초청을 받아 뉴욕에 온 프로이트와 융. 그들은 고층빌딩에서 한 여자가 살해된 사건에 연관이 된다. 손이 묶인 채 목이 졸린 한 여자. 몸에는 채찍질의 흔적까지 보인다. 프로이트는 직접적으로 이 사건에 관여하기보다는 자신의 제자인 영거로 하여금 피해자의 정신분석을 의뢰하며 자신은 도움을 주는 존재로 뒤에서 서포트한다. 영거와 프로이트는 과연 이 죽음에 얽힌 모든 비밀을 파헤쳐 범인을 잡을 수가 있을까.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증거 중심인 요즘의 수사기법과는 확연히 다른 측면으로 접근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파해자가 어떠했을 것이라는 그런 분석을 해야 하는 것과 동시에 비슷하게 일어난 다른 사건의 피해자의 생각도 알아내야 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프로파일러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모든 학설과 더불어 셰익스피어의 역작인 햄릿의 이야기까지 인용되어서 실로 방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햄릿을 소설이 아닌 희곡으로 읽었었다. 학교 다닐 때 읽었고 너무 유명한 터라 줄거리만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읽어본다면 아마도 그의 생각과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조금은 다르게 접근해 볼수 있지 않을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확연히 다른 것처럼 나의 생각은 또 그때와 많이 다르지 않을까.

 

원서가 있고 그것을 번역하는 번역자에 따라서 독자들은 원서를 받아들이게 된다. 일단 번역자의 입김이 가해진 이야기를 읽게 되는 것이다. 해석이라는 것이 원래 그러하다. 그렇다면 하나의 살인사건을 두고서도 그 사이에 번역자가 있다면 그 사건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겠는가. 프로이트라는 해석자가 앞에 있는 이 살인의 '해석'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게 될까.

 

인간 두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불완전하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는 약은 없어요. 사람들의 망상을 치료해주는 약도 없고. 성적인 욕망이 세상에 만연하게 하지 못하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풀어주는 방법 같은 것도 없소.(5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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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세계사 - 세상을 뒤흔든 역사 속 28가지 스캔들 테마로 읽는 역사 3
그레이엄 도널드 지음, 이영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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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란 지나간 사건들을 다루기에 당연히 진실일 것이라고 믿어왔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라 그 누구도 바꿀 수가 없기에 더욱 확실하다고 여겨오기도 했다. 그런 사건들이, 내가 알고 있고 믿어왔던 사건들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 충격은 꽤 크고 여파는 오래갈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세종대왕이 실제로 한글을 만든 것이 아니라면(영화 속에서는 그런 설정이 있기도 했었다), 이순신 장군이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한 것이 아니라면, 대동여지도를 김정호 선생이 만든 것이 아니라면 그 느낌은 어떠할 것인가.

 

2

총5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허무와 날조의 역사>를 시작으로 <가짜 항해와 모험담들> 그리고 <살인사건의 진상>을 알려주고 <건축과 종교의 미스터리>와 함께 마지막으로 <분쟁와 재앙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그 사실은 더욱 놀랍다.

 

첫번째 이야기는 프랑스의 잔다르크에 관한 이야기다.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백년 전쟁에 참가하여 승리를 거두었지만 마침내는 마녀사냥에 의해서 화형을 당했다는 그녀. 위인전에서도 그렇게 읽어왔기에 추호도 의심을 해보지 않았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만이 위인이 될 것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잔다르크가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떠할까. 저자는 역사적인 문헌들을 통해서 그녀가 평범한 시골 소녀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녀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기는 했으나 그렇게 뛰어난 전쟁영웅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가 그저 평범한 소녀였다고 상상해본다면 더 가깝게 여겨지는 비유일수도 있겠다.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니고 프랑스 자국 역사를 배우지 않아서 학교 내에서 어던 식으로 잔다르크에 관해서 가르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정말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에서 유관순 열사에 의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진위성에 수많은 의혹을 담고 있는 이 사람에 관한 설명이 학교에서 어떻게 알려주고 있는지가 정말 궁금해진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 - 모차르트와 클레오 파트라를 포함하여-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는가하면 국가 기밀을 알았던 라스푸틴 그리고 아내를 죽여 묻은 의혹이 있는 크리펜 같이 낯설고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존재한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덜해지지 않는다. 연계된 사건들은 충분히 흥미롭고 진상을 알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3

여기의 모든 이야기들이 저자가 자신의 상상으로 이러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문헌을 찾고 그에 관련된 이야기들의 증거를 찾아서 실상을 알려주고 있기에 그것이 사실이기에 더욱 흥미로운 사실들이다. 항상 주장하는 바 비하인드 스토리는 재미난 법이고 사람들이 모르는 그런 숨겨진 이야기는 혼자 숨겨놓고 야금야금 하나씩  빼먹는 젤리처럼 달콤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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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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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는 아주 이상하고 심각한 상황이기 마련이므로 어떤 연유였는지 반드시 알아봐야 한다. 엄격하고 적절한 형이상학적 조사가 이뤄져야만 한다. 어쩌면 내 동생의 죽음을 조사함으로써 내 삶에 다시 활기가 생길 수도 있고, 최종적으로 알아낸 사실들을 양부모에게 알리면 그들의 삶도 안정되고 강해질지 모른다. 나는 내 생각이 합리적이고 의미 있다고 느꼈다. (13p)

 

룸메이트의 새 소파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그날 나는 내 동생, 정확하게는 입양동생의 죽음을 전해들었다. 입양이라는 제도가 아니었다면 만나지도 않았을 인연이었다. 원래부터 내 동생도 아닌 아이었다. 우리는 태어난 곳으로부터 몇천 키로나 떨어진 곳에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양부모에게 입양된 운명공동체였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동생의 죽음과 새 소파 - 내것도 아닌 - 소식은 같은 날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새로운 가구는 내 것이 아니니 아무런 관계 없는 일이다 싶지만 내동생의 죽음은 그렇지 않다. 오랫동안 못 만났어도 어려서부터 같은 집에서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온 사이고 그런 그는 내동생인 것이다. 나는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러 떠난다. 대학졸업자이지만 제대로 된 직장은 커녕  아르바이트로 문제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던 일을 그만둔채 말이다.

 

나는 왜 동생의 죽음이 궁금했던 걸까. 단지 양부모가 직접 그 소식을 알리지 않은 것이 불만이었을까. 아니면 이제서로도 동생의 흔적을 찾아봐야겠다도 느낀 걸까. 동생의 흔적을 찾고 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쩔 것인가. 그것을 이해한다해도 동생은 이미 없는 걸. 그때서야 후회를 할 것인가.

 

특별히 자기 자신을 꾸미는데 존을 들이지도 않던 나는 동생의 장례식에 가기 위해서 검은색 스웨터를 주문한다. 그 스웨터가 상징하는 바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주운 옷으로 해결하고 사이즈도 맞지 않은 짝짝이 신발을 끌고다니던 내가 큰맘 들여 주문한  -새것도 아니지만 - 검은색 스웨터.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제대로 된 누나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일까.

 

집은 오랜만이었다. 어려서부터 자라온 집이었지만 나는 이 집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양부모와의 만남도 역시나 그러하다. 무언가 껄끄럽다. 어색하다. 양부모 또한 내가 집에 돌아온 것이 놀라운 일이고 반가운 일은 아님에 틀림없다. 동생의 죽음을 전한 것은 숙부였지만 어쩌면 양부모가 전해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닐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배후에 가지게 된다.

 

동생이 자살한 원인을 찾겠다면서 돌아왔지만 정작 동생의 방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다. 동생이 어디서 어떠한 방법으로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면서 어쩌면 민폐일지도 모를 일들을 만들어 내고 그것은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기 왜돌아온 걸까.

 

우리 집이 나를 우울하게 했고, 어린 시절이 나를 우울하게 했고, 학교가 나를 우울하게 했고, 우리 개가 나를 우울하게 했고, 내 신발이 나를 우울하게 했고, 내 책들이 나를 우울하게 했고, 누나가 나를 우울하게 했고, 우리 부모님이 나를 우울하게 했고, 내 침실 창밖 나무가 나를 우울하게 했어. (92p)

 

자살하는 사람들은 충종적으로 저지른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죽기전에는 반드시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라고 들었다. 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누나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즉각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런 편지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거나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누나'라는 자격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무딘 것일까 아니면 동생은 너무 믿은 것일까.

 

1) 병리학적 특성 2) 우울증 3) 무분별 4) 비이성적 태도 5)건강문제 6)자제력 상실. 내 동생의 경우에는 병리학적 특성이나 비이성적을 태도를 배제해야 해요.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걔는 자제력을  잃은 적이 없어요. 조직적으로 살아온 것 처럼 조직적으로 자살한 거예요. 늘 계획과 준비에 집착했고 , 뭐든 운에 밑긴 적이 없는 애니까요. (100p)

 

동생을 모르지는 않았다. 어떤 아이인지는 알았다는 소리다. 그러니 자살의 대표적인 여섯가지의 경우를 놓고서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잘 알았다면 왜 막지 못했을까. 늘 사건은 일어난 후에야 후회하기 마련이다.

 

sorry to disrupt the peace. 당신의 평온을 깨뜨려서 미안해. 내가 늘 사과할때 쓰는 말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이해할수도 있는 문구. 나는 어떤 뜻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이것은 동생에게 하는 사과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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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엄마가 산다
배경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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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닌데 왜 자꾸만 마음과 달리 말이 엇나가는지 연화는 답답해 애꿎은 침대 매트리스에 발만 동동 굴렀다. (35p)

 

가은이 네가 쉽게 가르쳐주니까 금방 하겠다. 연화 그건 뭐만 가르쳐 달라고 하면 승질을 부려가지고. (64p)

 

딸이 있는 엄마라면 알 것이다. 엄마에게 딸은 애증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엄마가 있는 딸이라면 알 것이다. 엄마를 분명 사랑하는데 마음과는 다르게 표현된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는 한술이라도 먹고 가라고 성화고 그런 엄마 앞에서 딸은 성질만 버럭 내고는 나간다. 그래 놓고서는 그게 아닌데 하면서 후회를 한다. 분명. 집에 와서 엄마한테 잘해줘야지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그것은 잠시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 생각은 잊고 또 툴툴거리며 엄마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일쑤다.

 

작가는 자신이 그런 딸이기에 엄마와 딸의 관계를 너무나도 잘 아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머릿속을 지배한다. 어느 집이나 모녀관계라면 끄덕거리면서 동감할 이야기들을 전반부에 풀어놓으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엄마와 딸의 관계가 바뀌었다길래 흔히 판타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영혼이 바뀐 것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런 비현실적인 영화와는 다르게 소설이기는 해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잘 다니던 회사를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백수가 된 딸. 그런 딸을 보기 싫은 엄마. 당연한 것이 아닌가. 다 큰 딸이 공부를 핑계삼아 집에 있는 것은 말이다. 그런 딸 앞에 엄마는 자신의 대학합격증을 툭 던져 놓는다.

 

이 모녀, 다른 평범한 집과는 조금 다르다. 스무살에 아이를 가지고 자신의 대학을 포기한 채 혼자서 아이를 키워온 엄마다. 그런만큼 얼마나 그 딸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겠는가. 보통의 가정보다 더욱 특별할 것임에 틀림없다. 아버지는 없지만 아버지처럼 의지하는 엄마의 친구가 있다.

 

그리고 엄마는 딸에게 못다한 사랑을 퍼주기라도 하는 듯이 하숙생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며 하숙집을 꾸려가고 있다. 이제 대학생이 된 엄마에게 하숙집 주인이란 어울리지 않는 지위이다. 딸 앞에 하숙비를 내놓은 엄마는 잽싸게 짐을 꾸려 빈 집으로 이사를 간다. 하숙집 주인은 딸에게 넘겨준 채로 말이다.

 

빠른 전개와 현실적인 감각으로 무장한 이야기는 다음 페이지를 바로바로 연달아 넘기게 만든다. 실제로 밤이 늦어서 시작했지만 결국 손에서 놓지 못하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독서를 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 하숙집에 살아보고 싶어졌다. 집이 멀지 않아서 기숙사나 하숙을 해본 적이 없다. 외국에 살 때는 홈스테이 형태로 살아보기는 했어도 말이다. 혼자 사는 생활이 익숙해져버린 요즘에는 하숙집을 찾기가 더 어려울 형편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하숙집이 존재한다면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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