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 - 원재훈 독서고백
원재훈 지음 / 비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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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와의 일대일 독서토론]이다.

 

2013년 160여권의 책을 읽었고 2014년 훌쩍 뛰어 넘은 이백여권을 읽었고 작년 2015년에는 270여권의 책을 읽었다. 1년에 무슨 책을 그리 많이 읽느냐고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책을 보는 목적은 취미생활이자 재미로 보는 것이다. 스트레스 해소용이라 할수도 있겠다. 그런만큼 목적에 걸맞게 문학장르에 치우쳐있다. 주로 장르문학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소설을 보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설은 상상력을 키워주고 그 속에서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해주며 그럼으로 인해서 공감대를 형성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읽는것이 가장 중요할진대 나는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목적으로라고 이미 밝혔으니 그 목적에 가장 걸맞는 장르는 문학작품, 그것도 소설일수밖에 없다는 결론이고 올해도 부지런히 소설을 읽을 예정이기도 하다.

 

독서고백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이 책은 제목은 거창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한 사람의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어 둔 글이다. 그만큼 개인적인 느낌이 강한 책이라 할수 있다. 여기 나온 여러 책들은 대부분이 문학작품이다. 그것도 소설이다. 고전이냐 하면 그런것도, 그렇지않은 작품도 섞여 있다. 사실 '크리스마스 캐롤'이나 '피노키오'같은 작품은 워낙 유명하긴 해도 고전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은 작품인만큼 자신의 생각과는 어떻게 다른지, 작가는 그 작품을 어떻게 읽었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독서모임을 통해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토론을 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같은 책을 가지고 읽었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관점의 차이가 생기고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비교해보고 공감도 하고 이해도 하고 싶은 것이다. 이 한권의 책을 통해서 작가와 개인적인 독서토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딱 맞을 듯 하다.

 

책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전반적인 이야기의 줄거리를 말하고 있으므로 이 이야기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책에서의 상황이 어떠한지 금방 알 수있다. 그래서 금새 몰입해서 그 상황에 빠져있을 수 있고 더욱 자세한 의견나눔이 있을 수 있게 된다. 오히려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다 말하고 있어서 정작 작가가 말하고 있는 책을 자신이 다 읽었고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책을 사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도 잠시 해보지만 자신이 관심이 있어하는 책은 줄거리를 들었다 할지라도 직접 읽어보고픈 마음이 클 것이므로 기우라고 생각하고 접어두도록 한다.

 

앞에서 말한 두 작품 외에도 '죄와벌'이라던지 '이방인'이나 '변신'같은 고전작품도 물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동화로 알고 있었던 '행복한 왕자'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공포소설로 알려진 '검은 고양이'에 관련된 이야기도 나오게 된다. 소설이긴 하나 어느 특정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전반적인 문학 장르를 두루 걸쳐서 언급하고 있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에 관련된 이야기들만 골라 읽어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책을 읽고 그 책을 사러 나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책을  읽어온 나는 그런 책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오산이었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다. 특히 작가가 언급한 '필경사 바틀비'라는 책이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를 계속 외쳤던 것일까.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그렇게 할 수 없는 때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읽은 책들은 작가의 말에 공감도 하고 내가 읽어온 것과 달라서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도 만들어 준 이 책. 이 책에 나온 책들중 몇 권은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고 몇 권은 읽어보지 못해서 처음으로 읽어보고 싶어졌으며 몇 권은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언젠가 내가 나의 이름을 걸고 독서고백이라는 제목을 달아서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꾸준히 부지런히 읽어가야겠다. 새로운 한 해에도 책은 여전히 내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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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도서관 - 황경신의 이야기노트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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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신의 글은 내게는 들쭉날쭉하다. 어떤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하다가도 어떤  때는 정말 내 맘에 쏙 드는 글로써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어렵다고 느껴서 외면하려고 했다가도 다른 글을 보면 또 그 글에 빠져들지 않을수가 없다. 이번 책은 특히 더 맞장구를 치면서 읽었다. 소실인가 아니면 에세인가 아니면 시인가 하다가 모르겠다 그냥 이야기를 읽겠다라는 심정으로 읽었다. 제목에 자세히 보면 38 True stories & Innocent Lies라고 적혀진 것을 알 수 있다. 진짜 이야기와 순수한 거짓말... 그렇다면 이것은 작가의 생각과 마음과 글이 어울러져 나타난 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한 번만 더. 그가 말했다. 두 사람은 그 노래를 몇 번이나 다시 들었다. 하지만 영원히 그곳에 앉아, 영원히 그 노래를 듣고 있을 수는 없었다.(85p) 오래전 대학로에서 그랬던 적이 있었다. 같은 노래를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끼고서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오래도록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 그 노래까지도 기억이 난다. 성시경의 '두사람'. 나와 같이 그 노래를 들었던 사람은 그 기억이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노래를 들으면 그날 일이 영화를 보듯이 생각이 난다. 이 글을 읽으며 그 생각이 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호텔의 오너는 '게으른 여행자들을 위해' 이 호텔을 지었다고 했다.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시간은 심지어 오후 한 시까지여서,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나서도 신선한 샐러드와 과일, 따뜻한 수프와 부드러운 푸딩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94p) 여행을 가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을 외면할수 가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생각하는 것이 싫어 주로 패키지로 누군가의 일원에 되어서 묻히면서 다니다보니 이런 호텔이 그리워졌다. 게으른 여행자들을 위해 아침이 오후 한시까지 제공되는 호텔. 보통의 호텔은 9시 늦어도 열시면 아침제공이 끝나게 된다. 이런 호텔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늦게까지 자고 느긋하게 게으름을 부릴 수 있을 것 같아서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졌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사랑에 빠졌다면, 그냥 행복한 바보가 되세요. 만약 사랑에 빠질 수가 없어 안달하고 있다면, 그냥 행복한 방관자가 되세요.(129p) 사랑에 빠지면 행복한 바보가, 사랑에 빠질수 없다면 그냥 행복한 방관자가 되라는 이 말이 이렇게 절절할 수 있을까. 나는 잘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내가 너무나도 잘 안다. 나는 행복한 방관자로써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행복한 바보로 만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면 말이다.

 

"그렇게 하면, 이별을 좀 더 잘 견딜 수 있나요?" 당신은 웃지도 않고, 천천히 커피를 마시는 속도로 대답했어요. "이별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과 같아. 너무 성급하게 마시면 마음을 데고, 너무 천천히 마시면 이미 식어버린 마음에서 쓴맛이 나. 이별을 잘 견딜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도 없어. 지금 네가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그 마음을 다하면, 시간이 흐른 후에도 향기는 남는 거니까."(182p)

 

책의 제일 뒷표지에도 나오있는 말. 처음 읽을때부터 어떤 구절에서 이런 말이 이어질까 궁금했던 글귀. 이별을 좀 더 잘 견딜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 놓은 글.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카페인 때문에 커피를 잘 마시지 않지만 가끔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그 마음이 너무 이해가 잘 되었다.

 

처음 아주 진하고 뜨거운 커피를 잘못 마시면 입을 데게 된다. 그리고 마시다 놓아둔 커피는 점점 식어져 그 맛이 쓰게 변한다. 이별도 그와 같은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별에 대한 쓴 느낌이 확 다가왔다. 그래도 커피향은 그대로 남아있듯이 이별 또한 사랑의 향기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별이 결코 두려운 것은 아니라는 말. 그래도 나는 아직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행복한 방관자가 되는 것을 택하는 행복한 바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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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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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는 고전문학부터 지금 이시대를 그려내는 현대의 문제작까지 여러문학들을 모아서 펴내고 있는 모던 앤 클래식 시리즈. 올해 읽었던 작품들 중에는 유난히 일인칭 시점으로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듯이 쓰여진 작품이 많았다. [푸줏간소년]도 그랬고 [스톤다어이어리]도 그랬고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집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심통이 난다는 김점선님의 작품소개에 이어지는 글은 역시 집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오래전만 하더라도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자라고 그 집에서 살다가 그 집에서 죽는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집이라는 개념 또한 약간은 변해오고 있는 듯 하다. 개인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지금은 그냥 정착해 있지만 학교 다닐때는 참 많이도 옮겨다녔었다. 어렸을때는 아빠가 회사때문에 가시면 온 가족이 따라서 왔다갔다를 반복했었고 외국에 나가서 살 때에는 당연히 남의 집에 얹혀 살았고 돈에 맞춰 살아야 했기 때문에 옮겨 다녀야만 했었다.

 

이 책의 주인공에게는 특별한 집이 있다. 자신의 가족이 모두 함께 살았던 행복했던 그 때를 나타내는 그 집.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는 남아 있지 않은 그집. 그 자신의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린 그 집. 그러나 자신은 영원히 그 집을 기억하고 그 집을 추억한다. 자신의 유년시절의 즐거움이 행복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가는 이 책이 일종의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했다. 이 글을 쓰면서 부모님이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순간마다 그때 시절이 생각났고 기억을 되돌렸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작업이기도 했었다고 추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아련한 향수같은 것들이 묻어서 나온다. 소설 같으면서도 에세이같은 느낌이 곳곳에서 넘쳐난다.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써서 그럴까 자연스러움이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담담함도 느낄수가 있다. 최대한 자기자신의 감정을 누르면서 쓰려고 노력한듯한 느낌을 받을수도 있다. 전혀 객관적일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그속에서 혼자만 유영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자신과 같이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러난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은 외롭지 않다. 작가가 혼자서 자기 멋대로 자신의 즐거움에만 빠져서 쓴 것같은 느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유년시절로 초대된듯한 느낌을 받을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어찌 즐거운 일만 있을까. 작가 또한 그랬다. 전쟁 중, 딱 한가운데 있던 집에서 포탄을 맞기도 하고 그럼으로 인해서 집을 떠나야 하기도 했었고 아버지로부터 시달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많은 가족들때문에 자신은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물도 나오지 않고 아이들의 인원수에 비해서 방도 모자라고 난방도 되지 않는 집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행복했었던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아무것 없이 단지 모여있기만 해도 행복한 존재들 말이다. 서로 온기를 나주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면서 없는 것도 서로 보태가면서 살아가나가는 것. 그것이 가족과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점일것이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이 글을  썼다다는 작가. 두 편으로 이루어진 이 글의 첫번째 글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자신은 산 사람들, 죽은 사람들 그 모두와 평화롭게 니내고 싶었다는 그. 그는 과연 그 중간자 입장에서 행복함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앞의 이야기를 펴낸 후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 앞의 이야기가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기의 이야기였다면 뒤쪽의 이야기는 그 후 청년기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두 편의 이야기가 맞물려서 한편의 자서전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앞의 편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면 뒤의 이야기는 역시 어머니의 죽음과 맞물려있다. 두 이야기의 분위기상 큰 차이점은 없다. 하지만 주인공의 나이가 든만큼 그만큼 격동적인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 당시 상황이 그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러저리 방황하는 모습조차 그려내고 있다. 또한 자신이 추구하던 목표도 바뀌게 된다. 그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내었을까.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루하루 늙어가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다. 즉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살아있는 한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인지도 모르겠다. 왠지 울컥하는 감정이 드는 것을 참아낼 수 있을까. 최대한 담담한 필체로 쓰여진 한 사람의 일대기를 좇아가며 우리 모두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임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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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6.1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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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별 다를게 없는 그 날이 그 날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고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 것 같고 결심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달이 바로 1월일 것이다. 해오름달. 해가 올라간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일 것임에 분명한 해오름달. 해가 올라가고 새로운 한해가 다시 시작되고 그 시작을 알리는 1월이다. 얼마만큼 1월을 잘 보냈느냐가 그 해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만 같다.

 

여러 이야기가 모여있다는 의미의 잡지라는 이름답게 샘터도 여러 이야기들이 모여있다. 때로는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있으며 나와 별다를 거 없는 일반 사라마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도 읽을 수 있고 또 그런 삶의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웃음이 지어지기도 하는 이야기들도 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더라도 이렇게 글로 읽으면서 공감을 할 수 있으니 이것이 글을 읽는 매력이 아닐까.

 

발행인의 글에서는 '응답하라 1988'을 언급하고 있었다. 아마도 발행인도 그 시대인가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친구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던 그 때. 사람들의 인심이 그나마 남아 있었던, 정이라는 것이 아직까지는 존재했었던 그 때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글들은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호의 특집은 나이 그 까짓것. 솔직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은 꺼리게 되는 일들이 있다. 이런 짓을 하면 나이에 맞지 않는다던지 또는 해보고 싶어도 내가 지금 이걸 어떻게 할까 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이번호의 주인공들은 중년의 나이에 꿋꿋이 노래방에서 랩을 부르고 노년의 나이에 연극을 시작하고 공부를 시작한다. 무엇이든 늦음이란 없는 것이다가 정답이다. 자신이 하고 싶다면, 꿈이 있다면 Do it now!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달답게 새로운 코너들이 신설되어 더욱 눈을 즐겁게 해준다. '고고학이 살아있다'라는 코너를 통해서 고고학을 재마나게 공부할 수도 있고 재즈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나와서 유명해지신 후포리의 사위 남박사님이 들려주는 남서방의 처방전은 연말이나 새해면 반복되는 술문화를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신설되는 코너가 있는가하면 익히 보던 얼굴들인데 사라져서 아쉬운 코너들도 있다. 공항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공항 24시'라던가 '예술로 다독다독', '사시사철 기차여행'등은 즐겨보던 코너라서 서운하기도 했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그분들의 글들도 기대해본다. 즐겁게 읽었던 서민교수님의 '기생충에게 배우다' 코너는 없어졌지만 서민교수님의 글은 글쓰기 훈련으로 계속 볼수 있어 반가웠다. 한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새로운 글들이 보이고 익숙한 글들을 보이지 않게 되고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새로운 한 달. 이제 마지막 달도 한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마지막 달을 잘 보내고 새로운 달은 새롭게 또 다른 해를 향해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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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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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솔직히 말하자. '방'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나온 책 한 권. 누군가 그 방에 갇혀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아주 센 스릴러 한편을 생각했다. 갇혀 있는 사람이 탈출하려고 노력을 하거나 아니면 주인공이 그 갇혀있는 인물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등의 스케일 큰 한편의 스펙타클한 영화를 생각했던 것이다. 오산이었다. 누군가 갇혀있다. 거기서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와 탈출했다. 그 아이가 적응한다. 한편의 휴먼다큐멘터리가 이어진다.

 

전반부에는 엄마와 아이가 방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은 그곳에서 두렵지 않다. 즐겁다. 해야 할 놀이는 무궁무진하게 많다. 언제 그런것을 생각해냈는지 이런 저런 놀잇거리를 만들어 낸다. 그 좁은 방에서 심지어 체육도 하고 달리기도 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단 하나의 방과 화장실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그 곳에 전부인줄 알고 자란 아이에게는 그 방은 말할수 없이 안락한 곳이다. 엄마와 함께 있는 그 곳이 천국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문도 모른 채 그곳으로 끌려와서 이유없이 그곳에 갇혀 지내야 하는 엄마에게는 감옥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있어서 그나마 버티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몇번이고 죽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 이쯤에서 나는 범인의 입장으로 넘어가보기로 한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또한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잘 학교 다니던 여자애를 잡아다 그 곳에 가둔 그. 그는 그 여학생을 사랑했던 것일까. 그래서 단지 그녀가 아니면 아니었던 것일까. 그래서 미리 철저하게 탈출할 수 없는 방을 준비해두고 그녀를 그곳에 가둔 것인가. 그렇다고 그녀와 함께 생활하고 그녀를 매일 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단지 펫처럼 사육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의 통제하에 그녀를 두고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자신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만 삼았던 것일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이 이야기는 철저하게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을뿐이라 더 깊은 이유를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후반부는 엄마와 아이가 사회에 다시 적응하는 이야기다. 엄마는 그래도 사회에서 생활을 하던 사람이이니 다시 보는 모든 것을이 반갑고 좋다. 오랫동안 못 보았던 부모님들을 보는 것도, 오빠를 만나는 것도, 못 보았던 조카를 보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녀를 귀찮게 하고 들쑤신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각종 미디어에서 몰려든다. 사람들은 왜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꺼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하기야 진짜로 일어났던 실화가 가장 재미난 소재가 되는 것이긴 하지만 조금은 더 그녀에게 여유를 가지라고 해줄수는 없었을까.

 

겨우 방을 탈출한 그녀와 아이에게는 병원이라는 또 다른 방이 존재하고 또다시 그 방에 갇히게 된다. 물론 표면적으로야 자유를 얻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방속에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다섯살이지만 세상이라는 곳에 처음 나온 아이는 모든것이 다 낯설다. 엄마와 함께 한 모든 것들이 이곳에서는 익숙지 않다. 텔레비젼에서 본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사람들도 너무 많다. 그렇다고 자신만 보아주던 엄마가 이젠 자신만 보아주지도 않는다. 아이는 외로운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분명.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혼자서는 살기 힘들다는 뜻이다. 누군가 두루 같이 있었을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일 것이다. 분명 의견차이로 다투기도 하고 분열이 될지라도 말이다. 한때 히키코모리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은둔형 외톨이. 그들도 주인공처럼 방에 갇힌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원해서 자신을 가둔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그 방 바깥으로 나올수 있다. 같은 방일지라도 인간의 자유의지가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너무나도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동일한 시간동안 가둬둔 사람과 은둔형 외톨이를 동시에 이 세상밖에 내놓는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더 빨리 적응을 할 것인가.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광고에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감동이 있는 책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고 했다. 내가 생각한 한 편의 영화는 [디아더스] 였다. 엄마와 아이로 이루어진 구성이 똑같고 자신들만의 유대관계가 끈끈한 것도 닮았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자신들만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그리고 그 한정된 장소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같은 컨셉이다. 단지 주인공들의 존재 자체가 좀 달랐을뿐이긴 하지만 그런 공통점 때문에 더욱 연결시켜 연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태어나고 적응하고 사회에 속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하루 아침에 접한 아이는 혼동스러울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니 실제로도 그 아이는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어린 시절의 모든 아픈 기억들을 잊고 행복하고 살아가고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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