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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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흰색, 하늘의 푸른색, 산의 초록색. 원색 물감을 물로 희석하지 않고 캔버스에 바른 것 같은 여름의 색 대비가 아름답다. (221p)

 

 

본문에 나온 표현은 아마도 이 사진의 산을 설명한 것이 아닐까. 파랗고 하얗고 초록색의 색감이 어울려서 조화롭게 드러나는 이미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색들이 가득해서 이 산에 올라 동서남북 어디로 눈을 돌려도 좋을 듯 하다. 한국에서도 이곳으로 가는 투어가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다.


산은 생각을 하기에 딱 좋다. 동행이 있어도 말없이 한 줄로 걷고 있으면 자기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때 마음속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자기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으면 인생도 자기 발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일상생활에서는 외면하던 문제와 똑바로 마주 봐야 할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발로 정상에 도착하면 가슴속에도 빛이 비쳐드는 것 아닐까 하는 기대가 가는 길을 격려해준다.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과 마주 보면서 걷는 것이 등산이라 생각했다. (361p)

 

[고백]이나 [속죄] 등과 같이 추리적인 면이 강한 미나토 가나에의 책들만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번의 책을 보면서 작가답지 않음이 보인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다. [왕복서간]이나 [꽃사슬]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작가의 또 다른 면이 발휘된 것이 이 작품이라고 같은 선 상에서 느낄수도 있겠다. 범죄가 일어나지 않으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그러면서도 흥미로움을 잃지 않는 이야기. 작가의 책들은 블랙 아니면 화이트. 극과 극을 넘나듦이 보인다.

 

등산이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별로라 생각한다라는 표현이 맞겠다. 어쩌다보니 대학을 다니면서 설악산만 세번을 다녀왔다. 내가 등산동아리도 아닌데 가다보니 그곳이고 잡다보니 그곳이었다. 그 이후로도 또 간 적이 있으니 그 산은 나와는 참 인연이 많은 산이라 하겠지만 그때마다 제대로 정상에 올라본 적은 없고 어느 정도에서 맛만 보고 내려온 셈이다. 태백산은 정상까지 올라간 적 있다. 그외에 내가 스스로 산에 오르겠다 하고 생각한 것은 한국에서는 동네에 있는 산뿐이다. 

 

산에 관한 단상들을 소회하게 된다. 작가의 이 번작품이 등산, 그것도 여자들의 등산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자 혼자 오르는 산. 직장 동료와 오르는 산, 자매가 함께 오르는 산, 조카가 같이 가는 산, 남자친구와 같이 가는 산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등산이 줄줄이 이어진다. 산은 산이로되 그곳을 가는 사람만 다른 유형인 셈이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던가. 산도 마찬가지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서 같은 산이라 할지라도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친한 사람과 가는 것과 조금은 거리감이 있는 사람과 같이 가는 것. 어느 것이 등산에 조금 더 편한 요인이 될 것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아마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 바쁜 나머지 운동할 시간도 없는데 언제 등산을 가느냐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산에 한번 오르면 초록풀과 파란 하늘 그리고 시원한 바람까지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는 쾌감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물론 나부터 컴퓨터 앞에 매여있는 이 엉덩이를 들고 나서야 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올라갔던 6월 백두산>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중국에는 산에 가기 위하여 여행을 갔었다. 태산과 황산, 그리고 백두산까지 중국여행은 산과 관련이 있다. 높은 곳에 올라서 내려다 보는 기분은 마치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달까. 직접 보지 않으면,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런 기분이다. 

 

일본에는 온천을 가기 위해 여행을 가는 편이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곳이라면 사쿠라지마라고 화산활동이 실제로 일어나는 산이었다. 정상까지는 가지 못하고 주변만 돌아보기는 했어도 색다른 체험이었다. 본문 속에서는 많은 산들 중에는 가장 먼저 나오는 묘코산. 니가타에 여행을 갔었고 계곡이 있는 산을 간 적이 있다. 본문의 산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산들이 아니어서 더욱 호기심이 동한다. 언젠가 한번쯤은 이 책을 들고 이 속에 나온 산들을 하나하나 직접 밟아보고 싶다. 

 

<본문 속 등장하는 산>

묘코산/히우치산/야라가타케/리시리 산/시로우마다케/긴토키산/ 통가리로

 

 

일본이 아닌 산으로는 뉴질랜드의 산이 등장한다. 로토루아.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북섬에 살때 엄마와 이모아 함께 여행을 했던 곳이라서 아는 곳이 있을까 하면서 더욱 집중해서 읽게 된다. 하기야 그곳에 살면서 제대로 된 산에 가보질 못했으니 그 간접적인 체험뿐이지만 이로 인해서 다시 한번 핑계거리를 만들어낸다. 

 

뉴질랜드에 가고 싶다는 그런 이유말이다. 로토루아는 들렀지만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가보지 못해서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북섬은 살았던 곳이고 많이 돌아다녔지만 남섬은 스키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돌아보지 못했었다. 언젠가 남섬을 돌아오는 길에 북섬에 다시 한번 들러서 이 이야기속에 나온 산에 꼭 가보리라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그나저나 작가는 이곳을 가본 적이 있을까.

 

훌륭한 사람이라는 건 자기가 안 될 때는 제대로 머리를 숙이며 부탁할 줄 아는 사람 아니야?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생각 될까봐 자기 쪽에서 먼저 밀어내는 건 잘못이야. (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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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가든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6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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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이 별로였던 사람이 나중에 괜찮은 사람으로 변하는 경험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첫인상이 별로였던 작품이 있다. 두번 다시 이 작가의 작품은 보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작가의 다른 시리즈를 보게 되고는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기리노 나쓰오라는 작가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미로야. 남의 원한은 깊이 파헤치지 마라. 남이 보기엔 사소한 일이라도 당사에게는 큰 문제인 법이다.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일이야.(98p)


미로시리즈의 네번째 작품인 로즈가든은 다른 작품과는 달리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총 네편으로 이루어진 이 단편들은 저마다 별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연결되지 않는다. 모두 미로가 직접 사건을 수사하면서 발생한 이야기들이고 단 한편 첫번째 이야기만이 미로의 전남편인 히로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시간 순서상 첫번째 작품인 [얼굴에 흩날리는 비]와 두번째 작품인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사이에 온다고 볼 수 있으며 미로라는 여자 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시리즈는 작가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묵직하고 어둡고 때로는 비참함까지도 들게 만든다. 아마도 주인공의 캐릭터가 그러하기 때문에 독자도 비슷하게 느끼게 되는 것일수도 있다.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은 그녀는 적진에 아무 생각없이 뛰어든다. 직접 몸소 느끼고 체험해봐야 하는 캐릭터랄까. 그로 인해서 전율이 느껴지고 소스라치게 놀라버리는 것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어쩔려고 그래'라는 말도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다. 그런 일련의 다른 책들에 비해서 이 작품의 이야기들은 한숨 돌리는 구간일 것 같다. 마치 롤러코스트가 떨어지기 직전에 템포를 늦추고 쉬어가듯이 말이다. 


우리는 미로라는 별을 나누는 밤과 낮이었다. (64p)


책의 제목과 같은 <로즈가든>은 미로의 전남편인 히로오가 출장을 나가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특성상 섬이 많은 동네이고 비행기를 타고도 차를 타고도 배를 타고도 수십시간을 가야만 도착할수 있는 동네에 수리를 하러 나선 길이다. 동료 한명과 떠나는 여행 아닌 여행에서 그는 미로와 처음 만났던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한다. 지금의 모습이 아닌 고등학생이었던 미로는 어떠했을까.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그녀의 모습이 느겨지지만 그래도 십대스러움이 묻어나는 이야기라서 새롭다.


<표류하는 영혼>에서는 한때 누구라도 들어봄직한 엘리베이터 귀신이 대한 이야기를 수사한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자살사건이 일어났고 그 이후로 그녀의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정말 귀신은 없겠지만 사건의 진모는 무엇이었을까.


<혼자두지 말아요>에서 미로는 두개의 별도의 사건과 엮인다. 하나는 자신이 맡은 의뢰다.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며 남자가 있는지를 알아봐달라는 의뢰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거절한 의뢰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알아봐 달라는 것. 자신이 선물했던 강아지가 다시 팔려서 돌아온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다. 미로는 그 의뢰는 거절해 버리고 말았지만 본디 사람의 마음을 바탕으로 한 의뢰는 비슷한 결론을 가져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사랑의 터널>에서는 아주 간단한 의뢰를 맡는다. 사고로 죽은 한 여대생. 알고보니 그녀는 클럽의 사장이었는데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아버지는 미로를 찾아와서 그녀의 집에 가서 그런 것을 알려주는 모든 증거를 없앨 것을 부탁한다. 죽은 그녀가 숨기고 있던 사실은 무엇이었을가. 그로 인해서 미로는 무엇을 알게 될까. 


사건들이 무겁지 않고 가볍고 가끔은 이런 일도 의뢰를 할까 싶은 것들도 많지만 그로 인해서 더욱 마음을 내려놓고 읽게 된다. 미로시리즈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쉬어가는 코너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겁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이 들어서 외면하고 있었던 미로의 이야기였다. 외면하지 않고 선택하길 잘했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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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
윤재성 지음 / 새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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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곡은 禾谷일까 火哭일까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1학년때까지 나의 유년시절부터 학창시절을 몽땅 화곡동에서 살았다. 서울에서는 화곡동에서만 살았으니 내 서울살이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그곳이다. 많이 변했다. 오래전에 결혼식 때문에 갔었던 그곳은 내가 다녔던 교회가 없었다면 찾기 힘들 정도로 변했다. 그때로부터 또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은 또 변했을 것이다. 땅이 기름져 벼가 잘되는 마을이라는 이름의 화곡. 단지 제목만으로 끌렸던 책. 표지에는 시뻘건 불길이 올라오고 있다. 이 책에서 의미하는 화곡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게 될까.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남을 도우면 도왔지 해코지는 않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누구에게든, 무엇으로든, 이렇게 처참히 곤두박질칠 삶은 아니었다. 그날의 일들은 한바탕 꾼 악몽같았다. (26 p)


운이 없던 날이었다. 동생이 차려준 아침을 맛있게 먹고 그저 한바퀴 동네를 돌았을 뿐인데 도와줄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뒤를 봐주다 보니 알바에 늦었고 한두번이 아니다보니 잘렸고 돈도 십원 한푼 없어서 버스도 못 타고 걸어오던 길이었다. 집앞에 누군가가 있었다. 낙서를 하려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훈계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가 무언가 팩을 던졌고 한순가 불길이 일더니 얼굴이 사라진 채로 병원에 누워있었다. 


시작은 그랬다. 그저 평범한 가족이었다. 형과 여동생이 있는 삼남매. 형은 고시 준비를 하고 동생은 학교를 다니고 문제꺼리는 단지 형진이었다. 방화범을 잡는 경찰이 되고 싶었고 불을 끄는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그에게 형은 학교나 제대로 가라고 했었다. 갑작스런 사건으로 인해서 그는 얼굴이 흘러 내린 화상환자가 되었고 동생은 죽었고 형은 그 와중에도 공부를 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내동생도 사촌동생도 화상을 크게 입은 적이 있어서 화상의 흉터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크게 베인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큰 흉이 지게 만드는 것은 화상이다. 뜨거운 물이나 액체에 의해서 데인 화상도 어마어마한 상처를 남기는데 불에 직접 데인 상처는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직접적으로 불길에 휩싸였던 형진의 얼굴을 상상해본다. 남들처럼 사회생활은 물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대로 치료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버린 화상의 흔적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얼굴을 보면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을 것이고 그로 하여금 사회에 속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그로 인한 동생의 죽음까지. 얼굴의 상처와 마음의 상처. 두가지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해서 그는 알콜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전과까지 있는 그에게 갱생의 여지는 남아있는 것인가. 


그는 단지 동생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그 방화범을 잡고 싶었다. 처음부터 이 시도는 잘못되었다. 그가 분명히 보았던 범인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그저 단순한 실수로 인해서 불이 난 것으로 종결되었다. 그가 아무리 직접 보았다고 해도 경찰들은 믿어주지 않았고 수사를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원하겠는가. 


이미 끝내버린 사건을 다시 캐내는 것은 이 사회에서 누구라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는 직접 나서서 범인을 잡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더더군다나 혼자의 힘으로, 엉망이 된 얼굴로 ,평범한 시민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법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낼 수 있을까. 


방화를 소재로 한 한국 장르소설은 소재부터 특이하다. 점점 스케일을 키워가는 이야기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는 사뭇 장대함까지도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예전에 소방관들을 주인공을 했던 영화가 생각난다. <사이렌>과 <리베라 메>였던가. 그 이후로는 같은 소재로 한 영화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상상해본다. 이 이야기가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어떻게 표현될지를 말이다. 정치와 범죄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까지 영화화 시키기에 충분한 소재들이다. 기대해봐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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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신의 아이 1~2 세트 - 전2권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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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 위해 뭘 할지 생각하는 것은 머리지만, 무엇을 위해 살아갈지를 정하는 것은 어디까지 나 마음이다. (63p)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천사의 나이프>, <악당>, <기다렸던 복수의 밤>까지 작가의 책을 많이도 읽어왔다. 기존의 책들이 사건에 중점을 두고 풀어나가는 사건 미스터리라는 형식을 취했다면 이번의 책에서는 그 행보와 결을 약간 달리한다. 

여전한 미스터리함은 그대로 살려두고 주인공의 감정과 인생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춘 휴먼 미스터리라고도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은 출생에서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성장을 하면서 자아가 생기게 되고 그 이후로 사춘기를 거치면서 점차 자신만의 틀이 생기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사회와 환경과 가정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 모든 것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떨까.

조직은 언제나 주요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윗선은 그대로지만 부리는 용도로 사용되는 밑의 사람들은 늘 바뀐다. 입맛대로 이용하고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린다. 그것이 조직의 생태다. 의리로 뭉쳐진 것이 조직이라고 했던가. 모두가 옛말일수도 있다. 

보이스피싱 회사를 운영하는 하나의 조직.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전화기를 붙들고 주어진 대본대로 연기를 한다. 그 모든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것은 미노루, 아니 그것은 같이 다니는 덩치 큰 친구의 이름일 뿐 자신의 이름은 아니다. 조직의 윗선에서 부르는 이름은 히로시. 십대 후반의 이아이는 비상한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필수적인 교육도 받지 않았고 그 전에 호적이 없어서 이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조차도 주어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아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뛰어난 지능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기야 그 능력이라도 있어서 이렇게 이곳에서 붙어 있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언제나 평안하라는 법은 없는 법. 조직의 세계에서 떨쳐나게 생긴 그는 결국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으로 인해서 감옥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이 아이는 무엇을 배워갈 것인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지적 수준은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인 반면, 협조성이나 사람에 대한 공감성은 현저 결여되어 있다 - 라고 기록되어 있었다.(41p)

지적인 능력과 감성적인 면. 이성과 감성은 늘 상반되는 것 같으면서도 공존하는 것이다. 어느 한 부분이 빠진 인간은 정상적인 인간이지 못할 것이다. 물론 50대50으로 완전히 똑같은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은 없다.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가치관대로 어느 한쪽으로 더 치우칠수는 있겠으나 기본적으로는 그 두상황을 모두를 비교하며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히로시는 지적인 면은 퍼펙트할지 몰라도 그 외의 부분에서는 제로인 셈이다. 그런 그에게 이런 감정을 가르친다고 이해할수 있을까. 머리가 좋다는 것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동일 한 말은 결코 아닐텐데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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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짓말 마틴 베너 시리즈
크리스티나 올손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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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짓말을 다시 파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파묻힌 사건일때는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묻혔다'는 것은 범인을 잡지 못하고 묻혔을수도 있고 다른 잘못된 범인을 잡아 넣고 끝냈을수도 있는 일이며 범인도 알고 증거도 있지만 비리와 뇌물로 인해서 일부러 묻어 버린 것일수도 있다. 마지막 경우의 사건을 다시 꺼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도 그 사건을 다시 꺼내어서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또다른 사건을 불러오게 만든다.


퇴근길 찾아온 한 남자. 그는 자신의 동생의 사건을 변호사에게 의뢰한다. 살인사건의 범인인 동생이지만 자신은 동생이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믿으며 무죄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벌써 몇달전의 사건이다. 거기다 동생은 이미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끝난 것이고 파묻힌 것이다. 그것은 이 남자는 다시 꺼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한장의 기차티켓을 증거로 내밀면서 말이다. 


동생이 살인사건의 장소에 있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지만 지정좌석제도 아니고 동생의 이름이 적혀진 것도 아닌 평범한 티켓으로 알리바이를 삼기란 불충분하다. 무언가 더 결정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 퇴근을 서두르던 그는 일단 한번 살펴보겠다며 남자를 보내게 되는데 이 의뢰를 과연 받아들이게 될까.


변호사 마틴 베너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 변호사 베너와 기자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담담히 털어놓는 베너. 그는 자신이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되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낱낱이 이야기하고 있다. 다섯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 처음 조사에는 극구 자신이 저지르지 않았다며 범행을 부인하던 그녀가 두번째는 180도로 마음을 바꿔서 모든 것을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정말 자신이 저질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서 무언의 압박을 받았던 것일까. 베너는 이 사건에 한발을 살짝 들여놓고 맛만 보려고 했지만 어느틈엔가 사건은 그를 쭈욱 빨아들였다. 조금씩조금씩 그를 집어 삼키던 이 사건은 결국 그를 몽땅 집어 삼켰다. 온몸이 빠져버린 그. 이제 남은 것은 단지 얼굴뿐이다. 이 얼굴을 잘 살려서 사건의 늪에서 빠져나올 것인가 아니면 얼굴까지 잠기고 자멸할 것인가.


오랜만에 만나는 스웨덴 소설. 익숙한 지명들이 반가움을 더한다. 범인의 자살, 누명, 사건의 재조사. 기존의 장르소설들과 비교해 보아도 그리 특별할 것 없이 보이는 이 이야기가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일반적이지 않은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해서 이끌어가는 범죄이야기. 나카야마 시치리의 미코시바, 마이클 코넬리의 미키할러는 모두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시리즈다. 작가 크리스티나 올손도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변호사 베너를 만들었다. 


다른 변호사들과 비교한다면 일단 미국과 스웨덴을 모두 경험해서 좀더 넓게 볼 줄 안다는 점이 있고 죽은 동생의 딸을 입양해서 키울만큼 책임감도 있지만 여자 문제에 대해서 조금은 자유롭고 싶어했고 아마 이 사건이 끝난 이후로 여자친구이자 같이 일하는 루시와의 관계에도 변화가 올 것임이 틀림없다. 


사건을 맡아서 수사를 하는 변호사들은 거의 항상 대부분 위험에 놓여있다. 그것이 파묻힌 사건을 다시 꺼내어 수사를 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자, 마틴 베너 시리즈는 이제 시작이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참고로 1편의 이야기는 아직 완전히 마무리 되지 않았다.


젊은 남자 하나가 사무실로 찾아와 부탁들 했다. 죽은 여동생의 누명을 벗기고 사라진 조카를 찾아달라고 했다. 처음엔 마지못해서였지만 나중에는 내가 이 사건에 점점 빠져들었다. (4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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