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2월 31일로 나는 12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많은 여성근로자들의 제일 큰 문제, 육아였다.
다음해에 둘째를 낳고 다니던 직장에서 지금까지 비정기 아르바이트를 하고있다.
2001년도였나... 회사에선 내 과거의 솜씨와 능력을 믿었기에 평소 하던 가벼운 일보다 조금 무거운, 책임감을 10배 정도는 더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을 부탁해 왔다.
늘 하던 일이니까, 정말 12년동안 밥먹고 하던 일이 그거니까 무리없이 수락을 했고 당일날 아무 문제없이 일은 잘 진행되어갔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사건이 터졌고 난 감히 상상도 못했던 사건이었기에 순간의 판단을 못내리고 조금 시간을 지체했다.
빨리 해결했다고 수백명의 원성이 잦아들 성질의 사건은 아니었지만 내 맘은 쬐끔이라도 덜 미안하지 않았을까 싶은 후회가 늘 따르는 일이었다.
그 날.. 우연히 같이 근무하던(그것도 12년 근무기간중7년을 한 사무실에서, 나머지 5년은 내가 인사발령이 나서 다른 지역으로 옮겼었다) 언니가 내 관할지역에서 수백명 중 한명으로 있었다.
일단 현장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고자 뒷정리를 하고있는데 이 언니가 집에 가려고 나가던 중 나와 마주쳤다.
그리고는 내게 한 마디 던지고 갔다. 그냥 가버렸다.
" 야~ 실망이다. 이렇게 밖에 못하니? "
난... 정말 난... 심장이 찌그러지듯이 아팠다.
그 메가톤급 사고에도 속상하고 화가 나기만 했지 울고 싶진 않았는데 그 언니의 한마디는 내 온몸의 기운을 탈수기 같이 쫙 빼버렸다.
적어도 같은 일을 나보다 더 오래 한 언니가, 그 상황을 누구보다도 더 이해해줄수있는 언니가 내게 걱정 덜어주는 한마디 없이 여느 수백명과 같은 눈으로 입으로 나를 비난하고 그냥 가버렸다.
(변명이 아니고 사실을 적자면, 그 사건은 내가 나갔던 현장은 물론이고 다른 수십개의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0.001%의 잘못도 없이 중앙에서 한 실수로 현장에 나가있던 직원들도 피해자였었다)
난 그 짧은 순간(시간으로 따져도 3초나 될까?)의 언어가 어느 잘 벼려진 칼보다도 아팠고 치명적이었다.
한동안 그 말이 수시로 생각나면서 나를 괴롭혔고 억울하기까지했다.
말이라는게 그렇더라.
그 언니야 작정을 하고 한 말이 아니고 날 보자 순간 생각나는대로 내뱉었을텐데 나는 정말로 아팠고 (현장에서 일어난 메가톤급 사고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될만큼) 내게는 친했던 언니랑 단절하는 계기가 됐고 무차별 언어 폭력이라는걸 한 번 더 경험했었다.
(하는 일이 민원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어서 민원의 무차별 폭격엔 어느정도 무뎌진줄 알았었는데.. ㅠ.ㅠ)
쏟아진 물만 다시 담을수 없는게 아니고 내 뱉은 말도 주워 담을수 없다는걸 항상 기억하길 바란다.
워낙 남에게 싫은소리를 못하는 내 성격에 누가 들으면 콧방귀도 안뀌겠지만 난 어지간한건 다 안고가자주의다.
세상에 이런일도 있고 저런일도 있는법.. 단연코 누가 옳다라는건 그 자체가 틀린말이라 생각하기에 한쪽만 보지말고 사방에서 둘러봐서 옳고 그른걸 판단하는건 자기 몫이고, 판단한대로 살면되고 그렇게 살면서 책임질 일 생겼으면 떳떳하게 책임지고, 누구에게 강요할것도, 뭐 그렇다고 내 소신 없이 휩쓸릴 필요도 없는거고...
며칠동안 알라딘을 더렵혔던 말(글)들에서 내가 제일 가슴아팠던건 말(글)이 가진 독이었다.
정말 독기를 품고 내 뱉는 독설들에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가 속출되고 있다.
자연치유가 가능할까 모르겠지만 치명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