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다.. 태어나서 올림픽이 열리는것도 보고 월드컵이 열리는것도 보고.. 이건 분명 혜택받은 인간이라고.... 정말 그렇다.. 나는 그런 기억을 다 갖고 있으니 얼마나 부자인가..
때론 잊어도 되는 기억들.... 그런데 왜 유독 그런일들은 더욱더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은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 지리적 여건상 여기 저기 많이 착출당하는 학교만 다닌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때는 박정희대통령 서거로 인해 검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대형 태극기가 덮여있고.. 수많은 국화로 장식된 관을 보면서 어린마음에도 우린 정말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렸었다...
당시 일부 고학년은 현충로 길옆으로 쭉 늘어서 울음을 삼켰고 어린 학생은 화동처럼 국립현충원안에 까지 가서 꽃을 헌화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살면서 그때의 그 슬픔을 잊은적이 없다...국화꽃 한송이 올려 놓고 뒤돌아 나올때 그 느낌이란....(그래서 내가 초상난 집에 못가는걸까?)
고학년이 되어선 외국 순방길이나 국빈이 내한했을때 태극기들고 길에 나가 땡볕아래 줄맞춰 앉아 열심히 흔들어 대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살면서 잊을 수 없는 일은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도우미를 뽑는 사건이다.
우리학교가 도우미로 뽑혔다.. 당시 마스게임에 동원된 학교도 있고 그랬는데 우리학교는 경기장 도우미였다.
학교에서 모집을 했고 조건이 키가 커야 하고 험한 인상이 아니여야 한다. 동시에 1학년에 한한다. 이유는 1년뒤에 올림픽이 열리기에 3학년은 졸업을 해야 하고 2학년은 3학년이 되니 공부해야 해서 1학년만이 된단다...당시 키가 165cm이상인 사람들에게 우선권이 있었고 당연히(??) 나는 뽑혔다.
지금 생각하니 한반에서 열명씩은 뽑혔던것 같고..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몫에 받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1년을 기다렸는데 예행연습을 앞두고 올림픽 조직위에서 갑자기 인원을 감원해 달라는 통보가 왔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선생님 재량으로 뒷반부터 잘라 버린것이다.
당시 나는 4반..
베이비붐 세대인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은 보통 14반까지 있었다... 결국 6반에서 잘렸고 1반부터 5반까지 아이들은 너무 억울해서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왜냐면 도우미로 나가면 나중에 가산점도 있고 멋진 츄리닝옷도(기억하시는가 하얀색과 오렌지색이 들어간 그 이쁜 츄리닝..) 한벌 받고.. 무엇보다 코앞에서 돈 안들이고 구경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었으니 난리가 나는게 당연했다.
울분을 참지 못한 한 친구가 대자보를 써서 복도에 붙였고... 그 사건은 아주 커다랗게 불거져서 결국 단체기합이라는 반 아이들을 다 체육관에 불러 모으고 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 붙인놈들 다 나오라구 엄포를 놓던 체육선생님...
아나오면 매질한다는 소리가 있었지만 누가 나가나.... 결국 학생회장이 불려 나갔고... 우릴 대신해서 그 무지막지한 막대기로 엉덩이를 맞았다..
그리고 나선 그 수많은 아이들을 때리려고 했던 무식한 선생님도 생각난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학생을 윽박지르면 다 인줄 알았던 선생님들. 지금은 뭘 하고 계실까..
암튼간에 그런 소동이 있고 나서는 뒷반과 앞반은 앙숙이 되었었다..
아 앞반에서 착출된 예외가 있었다... 키 172이상인자.. 우리반에서 얼굴도 제일 예쁘고 키도 170이 넘는 **이 혼자 도우미로 나갔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은 일반 경기장 도우미가 아닌 시상식 도우미였다...
TV를 통해 멋드러진 한복을 입고 메달을 받치고 서있던 그 친구....
갑자기 그때일이 생각나니 또 속이 쓰려온다.... 친구가 당시 다이빙선수였던 뭐시더라.. 그 사람 머리 다쳤을때 자기가 수건들고 갔었다면서 얼마나 자랑했었는데... (아 맞다 루가니스 던가 그럴것이다..)
이 사건은 아마도 내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못잊을 사건이다.. 기회가 코앞이었는데 타의에 의해 좌절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