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사탕님 페이퍼를 보다 보니 잊고 있던 퍼런 멍자국들이 떠오른다...

내가 학교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멍자국들.. 좋은 기억보담은 슬펐던 기억이 남는건 역시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그 상처는 정말로 오래 간다는 증거인가 보다..

초등학교 1학년..

나현숙 선생님...  정말 인자하고 좋으셨던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아직도 그 퍼머머리에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던 선생님이 잊혀지지 않는다..     1학년때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2학년..

김춘보 선생님...  나이 많은 할아버지 선생님... 내가 다리를 데여서 걷지도 못하고 울엄마가 헐렁한 파자마 만들어 입혀서 학교에 업어 가고 오고를 반복하던 때... 그날도 엄마가 나를 업고 학교에 갔는데 어떤애가 뛰다가 내 발을 건드렸고 난 아파서 울었다... 그런데 대뜸 선생님이 아프면 그냥 집에서 있지 왜 와서 그러냐구...   그래서 결국 1주일 넘게 결석을 했고.. 난 개근상을 못탔다....개근상에 목숨을 거는 울엄마가 제일 안타까워 하신다.. 매일 업어다 주고 업어 올 수있었는데 선생님이 오지 말라고 해서 개근상 놓쳤다고.... 우리 4남매중 유일하게 개근상 없다..

아 이선생님.. 캐스터넷츠라고 하던가.. 짝짝이... 음악시간에 가져 오라고 했는데 울언니가 가져 가는 바람에 내가 가져갈께 없었는데 니네 엄마는 학교 준비물도 안챙겨 주냐고 ... 속상해서 펑펑 운 기억이 있다.. 화장실 가서...

또 슬픈 기억 반장선거를 하는데 집에서 뒷바라지 못할것 같은 사람은 자진 사퇴해...  어린 마음에 4남매 육성회비 내는것도 만만찮을텐데 하는 생각에 떨리는 목소리로 전 반장이 되서 반을 이끌어 갈 능력이 안되어서 사퇴합니다 이소리 하고 교단을 내려오면서 이 앙다물던 기억도 난다..  (어렸을때 부터 너무 많은 걸 알고 살았나 보다..)

초등학교 3학년...

최후식 선생님... 시험이 끝나고 나면 중간고사 월말고사별로 상위 성적을 가진 사람은 우등상을 탄다.  그리고 선생님이 마련한 작은 선물도 주셨다.. 그런 취지 까지는 좋았는데... 내가 상장을 받으러 나갔는데 기분이  왜 나쁘셨는지는 몰라도 상장을 휙하고 던져주셨다. 그게 바람에 날려 교탁밑으로 들어갔다..

엉금엉금 기어서  그 상장을 집어 들고는 집에와서 쫙쫙 찢어 버렸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이 선생님을 너무 좋아했지만 나는 너무 싫었다..   나중에 교감선생님 되셨다고 친구들이 찾아 가자는걸 싫다고 거절했다.

초등학교 4학년...

오정옥 선생님... 우리 친척중에 엄청스레 잘 사시는 분이 있다.. 엄마친정쪽으로 당시 고등학교 교장선생님댁이 있었는데 그집에서 우리 4남매나 된다고 작아진 옷들이나 책같은걸 많이 챙겨주셨다.. 덕분에 초등학교 4학년때 세라복도 입어봤다... 그런 내가 부잣집 딸인줄 알았나 선생님이 무척이나 잘해주셨다...

그런데 학년 마칠때까지 엄마가 한번도 안찾아 오자 방학식날 이런 저런걸 나눠주면서 내가 나갔을때 참 성의 없는 엄마들도 많다고 하면서 어떻게 아이를 맡겨놓고 한번도 안찾아오는 무성의한 엄마가 다 있냐고 하는 소릴 들으면서 그동안 내게 잘해줬던것에 대해 의심했다.

이때 학교에서 우유급식을 했는데  (서울우유.. 당연히 돈을 내야 했지만...) 그 선생님은 우유에 밥을 말아 드셨다.. 소금 살짝 넣어서.. 그래서 우리반 애들도 다 따라 했더니 다른 반 친구들이 그걸 보고 우웩하던 기억도 난다.

초등학교 5학년...

이순옥 선생님..  역시 아줌마 선생님.. 그러나 너무 좋으셨던 분이다... 우리반에 평소엔 말을 잘하던 친군데 책을 읽으라고 시키면 다다다 하면서 더듬던 친구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아 심호흡하고 천천히 한글자씩 읽어보련... 선생님도 예전에 떨려서 잘 못하고 했었는데 그게 니가 못하는게 아니라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거야.  하면서 그애의 더듬는 버릇을 고쳐 주셨다.. 아울러 우리반에 펀치로 색종이를 오려 책을 읽을때 마다 한개씩 붙이는 게시판을 만들었다...

빼곡히 아이들 이름을 적고 그 아이들이 책을 볼때 마다 한개씩 동그라미를 붙였다.. 그리고 제일 많이 책을 읽은 독서왕을 뽑아서 선생님이 선물을 주시곤 했다...   나도 선생님의 편지가 적힌 선물을 받기 위해 죽어라 책을읽었던 기억이 난다..

존경한다.. 지금도...

초등학교 6학년...

문향숙 선생님... 내가 개인적으론 제일 좋아했던 선생님...

모든게 다 좋았다.. 왜냐면... 맨날 나이많은 선생님만 걸렸는데 처녀선생님에 유쾌하고 멋진 선생님이셨다... 24살이던가 25살이셨다.. 우리맡으셨을때가...

중학교 가서도 선생님을 찾아 뵙고 선생님 전근가셨을땐 그 학교로 찾아가기도 했었고... 그러나 소식이 끊어졌나 싶었는데 2001년인가 아이러브 스쿨 바람이 불어서 동창들 만나고 그러면서 선생님까지 만나 뵙게 되었다...   딸둘의 엄마로.. 모습은 변함없으셨다..

나는 마냥 좋았는데 어떤 아이가 선생님께 서운했던 기억을 들춰낸다...   그러자 선생님이... 그래 내가 그랬니... 아마도 그땐 내가 어려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랬을꺼야... 선생님 원망 많이 했겠구나... 녀석.. 하면서 기분좋게 사과를 하시면서... 미안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 친구도 서운한 마음 다 털어 버렸을꺼다..

우리반 제일 말썽 꾸러기 녀석이 제법 잘되어 선생님께 바리 바리 선물을 내밀며 제 이상형이셨잖아요 이렇게 말할때... 저 관심끌려고 말썽 더 피운거 아시죠 그랬을때 선생님이 우릴 바라보던 그 흐뭇해 하시던 표정... 잊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 내 이름을 기억하시면서 왜 내가 너를 모르니... 유일하게 너 고등학교 가서까지 선생님 생일 이라고 인형 사가지고 오고 우리딸 선혜 낳았을때 축하한다고 카드도 보낸 녀석인데 하신다.. 감격이다... 잊지 않으셨구나 해서..

 

 내 초등학교 시절은 이렇게 좋은 선생님 반... 싫은 선생님 반.. 절묘하게 나눠져 있다...

친구들이 내게 늘 그런다.. 넌 참 피곤하게 산다고.. 그렇다.. 나는 지금도 내가 1학년때 몇반 몇번이었던지 까지 기억하고 산다..  

내가 돌이켜 보면 기뻤던 것들도 많고 슬펐던 것들도 많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나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을 돌이켜 얘기한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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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07-2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선생님들 성함을 다 기억하신단 말이에요?
전 초등학교 선생님은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말이죠.

Phantomlady 2005-07-27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 이름도 생각이 안 나요... 그래서 좋은 점은 나쁜 기억이 금방 잊혀졌다는 것.. 나쁜 점은 좋은 추억도 금방 잊혀졌다는 것.. ㅡ_ㅡ;;

날개 2005-07-27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왜 눈물이 찔끔 나는지...ㅡ.ㅜ

세실 2005-07-27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대단한 인터라겐님. 아니 기억력이 어째 이리도 좋으시데요~ 전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이잉

icaru 2005-07-2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순옥 선생님 멋져요!! 그런데 정말...그러네요..전 선생님들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네요...가만 있자...가만 있자...아 기억 나네요... 한분 두분... 성함만...

검둥개 2005-07-27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그 상장 던져준 선생님 너무 나빠요. 저도 그런 적 있었거든요, 아주 어렸을 때 상받았을 때. 그래서 상장이 좋은 건줄도 몰랐다는. 엄마가 사진 찍자고 법석을 떨어서 알았답니다.

인터라겐 2005-07-2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정개님... 전 그 상장 받을때가 제일 수치 스러웠던것 같아요.. 초딩3학년이 뭘 알까 하지만 전 그게 잊혀 지지 않아요.. 원피스 입고 업드려 교탁밑으로 들어가면서 혹시 속옷이 보일까봐 속상하고 이런걸 왜 주면서 이난린가 싶기도 했고.. 울 조카가가 지금 초딩 3학년인데 너무어려 보여요.. 그런데 전 그나이에 그런걸 느꼈으니.. 조숙했나봐요...ㅎㅎㅎㅎ

이카루님.. 정말 선생님이셨어요... 제가 워낙에 쓸데없는걸 많이 기억하는 ...아무래도 전생에 레테의 강을 건너지 않은게 분명합니다...ㅎㅎㅎ

세실님.. 한 기억력합니다...ㅎㅎㅎ 아마도 메모하던 습관때문일런지도 몰라요,,어렸을땐 끄적이는거 무지 좋아라 했거든요..

날개님.. 전 2학년때가 제일 슬펐어요.. 반장선거 나가서 사퇴의사 밝히고 들어올때요.....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 할 수 있지만요.. 지난번 조카가 회장선거에 나간다고 했을때 제가 그랬다니깐요.. 사퇴하는건 비겁하니깐 인기 없더라도 열심히 하겠다고 하고 니가 인기 없어서 떨어지는건 어쩔수 없으니깐 사퇴한다는 소린 하지 말라구말이죠..

스노우드롭님..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생겨먹은게 어찌 이런지 몰라요.. 그래서 사는거겠죠..슬픈일 좋은일 다 공존하니깐요...

유어블루님...반 번호까지어 기억합니다...ㅎㅎㅎㅎ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혼혈 배우 다니엘 헤니가 혼혈아동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26일 오후 3시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펄벅 여름캠프에 참석해 혼혈아동 및 가족들 100여명과 1시간 정도를 함께 했다.

최근 종영된 MBC 수목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다니엘 헤니가 나타나자 캠프에 참석한 혼혈아동들은 큰 환호와 박수로 그를 반겼다.

"이 자리에 올 수 있게 돼 너무 행복하고, 여러분들 모습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문을 연 그는 "미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심한 인종차별을 겪었는데 여러분들도 비슷한 경험이 많을 것"이라며 차별을 극복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어린 시절 미국 미시간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그는 혼자 동양계라는 이유로 항상 친구들의 놀림을 당했으며, 심지어 여러명에게 맞기도 했다는 것.

다니엘 헤니는 "하루는 발에 밟혀서 손가락이 다 부러지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맞기도 했다"면서 "그럴 때마다 그들과 싸우곤 했지만 그날은 '너희는 참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무시했다"고 전했다.

그 이후로 싸워서 맞붙기보다는 공부와 운동을 열심히 했고, 그 때부터 자신을 때리던 아이들이 자신과 친구가 되길 원하게 됐다는 것.

이어 다니엘 헤니는 "혼혈은 단점이 아니고 축복이다"라며 "지금은 이해 못할지도 모르지만 혼혈이기 때문에 남들이 못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그런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또한 그는 "나도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자신감을 얻을 때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면서 "목표를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하고 무엇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다 이룰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날 다니엘 헤니는 아이들과 선물을 주고 받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생일을 맞은 한 혼혈아동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등 혼혈아동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행사를 마친 그는 "내 어린 모습을 보는 것 같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너무 기분이 좋다"면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게돼 감사하고, 앞으로도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날 행사는 혼혈아동을 돕기 위해 설립된 펄벅재단이 26일부터 2박3일간 개최하는 '혼혈아동 희망 나누기 펄벅 여름캠프'의 한 이벤트로 마련됐다. 이번 캠프에는 다니엘 헤니 외에도 김디에나 인순이 등이 참석해 혼혈아동들에 힘을 불어넣어 줄 예정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렀지만 변하지 않은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일것 같다.. 혼혈...  어차피 피와피가 섞이는게 다 혼혈아닌가?  왜 인종이 다르다고 해서 혼혈이니 뭐니 하면서 손가락질 하는것인지..

예전에 인순이씨가 나와서 어렸을때 야 깜둥이 너 영어해봐 그랬을때 자신의 정체성에 많이 흔들렸다는 소릴 하면서 우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외모는 흑인인데 말은 한국말을 하고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니 나는 과연 누군가 해서 어렸을때 많이 울었다는.... 거기다 놀려고 하면 엄마들이 자기 아이들 손을 잡고 들어가면서 저런애랑 놀지 말라고 했다던...

어찌보면 다니엘 헤니는 그렇게 전쟁을 겪으면서 생겨난 혼혈아와는 차원이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국에서 살면서 모습이 다르다 하여 손가락질 당하며 살았던건 같다..

잣대가 무엇일까?   국제결혼을 한 친구가 자식을 안낳고 살겠다고 한다... 이유는 혼혈아로 취급받는 내 자식을 보면 내 가슴이 무너질까봐서도 있다고 한다.

해외 입양아들이 부모를 찾고 싶어하는걸 보면 가슴 뭉클하다..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살면서 겪었을 정체성에 대한 혼동들...나이들고 내 자식을 낳으면서 겪은 이렇게 예쁘고 귀한 자식을 품에서 떠나 보내야 했던 부모의 심정을 이해 하기에 그렇게 하나 둘씩 찾고 싶어 하나 보다.

아 그런데 난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이 이런단 말인가..

이글을 보면서 이글을 쓰면서도 그래 기왕이면 잘생긴 백인남자와의 혼혈이 멋진가봐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만약 다니엘 헤니가 흑인과의 혼혈이었더라면 내가 이런 소릴 할까?

아 버리고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머리속에 남아 있는 이런 거지같은 습성은 어떻게 버려야 할까..

반성한다고 그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봤던것을 반성하다고 입으로 말하면서 머리속에 떠오르는 이런 저런 잡생각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간다는것은 그래서 힘들고 또 힘든 고행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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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7-27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혈이 별거냐,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거다,라고 거창하게 얘기하지만 사실은 저도 잡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네요. 역시 아직 수행이 부족한 거야요^^ 추처언~

Phantomlady 2005-07-27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순이 언니가 딸을 낳고 머리가 곱슬이 아닌 걸 알고 감격해서 울었다는 기사가 생각나네요. 아마 혼혈이라는 편견(이나 환상)에서 처음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정치적으로 공정한 생각과 교육의 힘으로 편견을 없애나가는 거죠.

인터라겐 2005-07-28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사탕님.. 그래서 인간이겠죠.. 생각과 마음이 따로 노니 말입니다요... 도 닦으러 가야 할까봐요...

스노우드롭님.. 그 얘기도 생각나네요.. 교육의 힘이라.... 참 어려운것 같아요...

sweetrain 2005-07-2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 아버지가 일본사람이세요. 음..그래서 저는 겉으로는 표시가 안 난답니다.
우리나라에서 살다보니 이것만도 큰 복입니다..그래두 마음속의 혼란은 참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죄도 아닌데 어디 가서 사람들이
쪽바리 어쩌고 저쩌고 욕하기만 하면 괜히 움츠러들게 되구....
...참..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저도 제가 그렇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 적이 많답니다.^^;)

인터라겐 2005-07-29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비님 반갑습니다.. 마음고생 안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래도 정말 축복아닌가요? 털어버리시고 당당해 지자구요....
 

우리 언니네 집과 골목 하나로 마주하는 집이 있다.. 이 아줌마로 말할 것 같으면 딸내미 스튜어디스 할적에 외국에서 버버리같은 명품을 사가지고 들어와서 비싼 값 붙여 팔아먹던걸 시작으로 아주 나쁜짓은 혼자 다하면서 돈을 왕창 번 아줌마다..

지금 하고 다니는걸 보면 웃기지도 않는데 돈 많이 벌어서 거들먹 거리고 싶으면 이사를 가지 이사도 안간다..

살고 있는 집이 복덩이라나...   그래서 인지 그집은 철갑을 두르듯 외부에서 어디 침입하기도 힘들겠다고 느껴지지만 강도가 3번이나 들었던 집이다.. 마지막엔 아들내미 머리까지 다칠정도로..

아마도 돈 많다고 자랑질하러 다니니 강도가 노리고 들어간것 같다.. 그랬으면 반성하고 잠자코 살지..   아직도 버릇을 못고치고 여기 저기 참견을 하고 다닌다..

언니 임신했을때도 이유도 없이 젊은년이 하면서 욕지기를 퍼붓던 아줌마라 언니가 대판 싸운 적이 있었는데 임신중이라 많이 자제를 했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어제 사건이 또 벌어졌다.. 애들 피아노 학원 보내고 골목 쓸어서 들어 오려는데 같은반 친구 엄마를 만나 서서 이런 저런 얘길 하는데 그 앞집 미친소 아줌마가 나오더니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고 궁시렁 거리면서 젊은년이 어른이 지나가는데 길도 안비켜 선다고 하길래 그렇잖아도 벼르고 벼르던 우리 언니 참을 수가 있을까..  (언니가 그 미친소랑 마주하기 싫어서 조카 데리고 벽쪽으로 자릴 비켜 섰단다..그런데도 우기면서 길을 안비키고 섰다고 해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다 황당해 했다는.....)

싸움이 벌어졌다..  

젊은년이 싸가지 없이 빽빽대기는...

당신 자꾸 젊은년 젊은년 하는데 나이 먹은게 유세야? 

울 엄마 집에 계시다 놀래서 뛰어 나와 싸움을 말리는데 그 미친소가 엄마를 때렸단다... 그래서 언니가  야 미친X  니가 어디 우리 엄마한테 손을 .. 두손을 꽉 잡으니 꼼짝도 못하고 버둥거리면서 별별 욕을 굉장치도 않게 퍼부었단다.

한번만 더 그랬다가 가만 안있는다고 손을 풀어 줬더니 그 미친소가 자기 딸한테 전화를 하고 그 딸이 부랴 부랴 뛰어와선 2:2 대결 구도가 되었고 어른한테 젊은게 어디다 욕을 하냐고 해서.. 그러는 당신네 엄마는 교양이고 그래서 임산부한테 욕을 하고 그러냐면서 너도 마찬가지라고 너 그당시 나한테 뭐라고 그랬어.. 저년이 그년이야 그러면서 욕했지?

나는 니가 임신한줄 몰랐어...

뭐 배가 남산만해서 오늘  낼 하는데 안보였어.. 니눈 삐꾸냐..

너네 두고봐.. 내가 그냥 당하고 있을 줄 아냐?   니 아들 결혼해서 며느리만 얻어 봐라..니들이 한데로 그대로 갚아줄테니...

그 미친소 딸 싸움난 얘길 동네 사람들 한테 듣더니 창피하다면서 자기 엄마를 끌고 내려 가더란다.  

우리 언니는 외모는 미스코리아 감인데 화가 나면 앞뒤 물불 안가리는 성격이다..  물론 언니가 잘못했으면 당연히 잘못했다고 하는데 그 앞집 여자는 말도 안되는것으로 트집을 잡는다..

이날 싸움은 내가 옆에서 보지 않았지만 어땠을지는 상상이 간다..   아마 임신해서 언니 성질데로 당시에 못한게 한이 되어 있었을텐데.. 그 미친소가 잘못 건드린거다..

난 전화로 언니한테 싸운 얘길 듣고는 그 미친소가 때리면 그대로 누워서 경찰 부르고 병원가서 진단서 끊어서 고발해 버려 이렇게 얘길 했다..

우 울 엄마가 저런 미친소한테 맞았다니 부글 부글 끓어 오른다..

싸움만 하면 그 커다란 덩치값 하느라 손 부터 올라가는 여자다..

어쩌다 저런 여자랑 이웃이 된건지..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언니가 분이 안풀렸다고 하면서 미친소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만 해라.. 그래봤자 언니한테 뭐 득될게 뭐있냐?

아니야.. 이제 시작이야.. 맨날 말끝마다 젊은년이 젊은년이 하면서 그러는데 젊은년이 어떤지 맛을 보여 주겠다고...

 

아~ 왜 나이 먹은 사람들은 그게 마치 커다란 무엇이라도 되는양 그러는지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 싸가지없다는등 그런말 하기 전에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안될까?   가끔 버스나 지하철에서 타자 마자 요즘 젊은것들은 싸가지가 없어서 자리 양보할 줄도 모른다는등 하면서 소리를 고래 고래 지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 자리 양보하고 싶은 마음마저 싹 가시게 한다.

그때 앉아서 졸고 있다 벼락맞은 학생이 하는 소리가 귀에 맴돈다..

지랄... 그렇게 대접받고 싶으면 자식새끼보고 차 태워 달라고 하지  그런 주제도 못되면서 이런데서 유세를 떨어요 아주...  뭐 이런 얘기였다.

얼마나 슬픈일인가.. 나이먹고 나이값도 못한다는 소리..

이거 들으면서 사는게 좋을까?

암튼간 당분간은 그 미친소때문에 우리 언니 혈압 안내려 가게 생겼다..

그리고 내가 보건데.. 그 미친소 아들내미 장가가기는 애저녁에 물건너 갔다...  왜냐구?  ㅎㅎ 우리언니 한을 품으면 그거 해결 될때까지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다.. 아 나랑은 너무 다르다..(이거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 언니를 말 하자면 한대 맞으면 열대를 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이래 저래 누군가와 섞여서 산다는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오늘 낼 조만간 2탄이 벌어질 것 같다.

그런데 우리엄마가 더 압권이다.. 내가 왜 맞구 사니.. 신고 있던 슬리퍼 벗어서 그치 등짝을 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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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7-2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석동에 미친소가 있어요? 어이궁.... 이사가는 거 다시 생각해야겠넹^^
정말 나이 앞세워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들, 한심해요.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되는 게 아닌데 말예요. 인터라겐님 언니되시는 분, 무척 궁금합니다. 미인에다 불같은 성질이라니, 오홋!

인터라겐 2005-07-27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사탕님..우리는 곱게 나이 먹자구요.. 조만간 울 언니 사진하나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죽을 각오하고 말입죠..

물만두 2005-07-2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저런... 임신한 분을... 거 참 어디나 꼭 그런 사람이 한명은 있다니... 그래도 잘하셨어요. 화삭히는게 더 안좋아요. 그나저나 언니 괜찮으신가요? 어머님은요?

검둥개 2005-07-2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정말 흥미진진한 페이퍼에요. 추천!
인터라겐님 언니분이랑 어머니분이랑 다 너무너무 멋있어요. ^^*
두 분에 대한 인터라겐님의 생생한 묘사는 더욱더 멋있습니다.
근데 미친소란 무엇의 줄임말이어요? (궁금)

로드무비 2005-07-27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
미친소 이야기 계속 올려주세요.
카테고리 하나 만드시는 건 어떨까?
(전 인터라겐님이 소설을 쓰면 참 잘 쓸거라 생각해요.^^)

인터라겐 2005-07-2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그러게요.. 언니가 임신때만 아니었으면 저렇게 독기를 품지도 않았을꺼예요... 언니는 팔뚝이 벽에 스쳐서 다 긁혔구요.. 엄마는 멍만 좀 들었어요... 다음에 정말 신고해야지...

검정개님.. 그냥 광우병걸린 여자 같아서 미친소라고 했어요...저희 엄마가 이북분이라서 억척스러우세요... 언니가 엄마 기질을 그대로...ㅎㅎ

로드무비님.. ㅎㅎㅎ 이러다 언니한테 걸리면 저 죽어요... 재밌게 봐주시니 감사해요.. 전 로드무비님이 책 나올때를 기다린답니다..

이매지 2005-07-27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에는 진단서부터 끊어서 법적으로 대응을 -_ -;;

인터라겐 2005-07-28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반갑습니다.. 제 생각도 그래요.. 그 여잔 툭하면 폭력을 먼저 휘두르거든요.. 언니보고 다음부턴 무조건 드러 누워 버리라고 했는데 정말 뜨것운 맛을 보여 줘야 할것 같은거 있죠...
 
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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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내력이, 역사가 고스란히 흙바닥에 버려져 있다.  

 "꼭 이렇게까지 하고 떠나야 했을까? " 

"집과 대지 몇 평에 얼마, 전답 몇 평에 얼마, 과수나무 몇 그루에 얼마가 중요하지,  이런 사진첩, 이런 상장 나부랭이, 이런 지나간 고지서 영수증 따위가 새생활을 시작하는 데는 그다지 필요 없는 물건들일 수도 있지.. 흔적이나, 내력이나, 역사 따위들은 돈이 되지 않아"

이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돈에 짓눌려 내 삶이 지나온 길은 중요치 않다니..

가난은 극복하려 들면 더 수렁으로 빠져 든다고 한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듯이  가난을 이겨내려면 어디 조금이라도 비빌곳이 있어야 하건만 왜 그들에겐 이다지도 가혹하기만 한 것인지 모르겠다.

난 예전에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가난하게 사는 이유가 있다고..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허황된것을 찾아 다니는 그들은 평생 가난을 면치 못할꺼야 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뉴스를 통해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 가난에 쫓겨 일으킨 사고들이었다는 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크면서 돈있는 사람들은 그 마저도 기사화 시키지 않기 위해 돈으로 해결하는걸 알게 되었다...

비참하다...유전무죄 유전무죄를 외치던 지강헌이란 사람이 생각나는것은 왜일까...

서울대 신입생중 상당수가 강남의 8학군 출신이라는 보도가 씁쓸한 것은 왜일까?   이젠 가난하면 공부도 못하는 세상이 왔다는 소리라서 그런가.

공선옥의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가슴을 에리게 한다... 작가 한처럼.. 그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것들을 나라에서 대신 해주어야 함에도 우린 그것을 기대할 수 없기에 더 마음 아픈것은 아닐까도 싶다.  행복한 하루를 L.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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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7-2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거 어캐해요? 마지막 도장... 쿵

인터라겐 2005-07-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쉬운것은 그냥 저걸 긁어다 붙여 넣고 테두리 안에 글씨만 바꿔 주심 됩니다...
그리고 제 카테고리 공부합시다 태그방에 도장만들기 있답니다..
 

파란여우님 페이퍼를 보고 나서 기억을 떠올려 보려니 뭘 했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그냥 평범하게 회사 열심히 다니고 있었나?

그래서 앨범을 들춰 봤다.. 내 스물다섯엔 뭘 하고 살았누...

95.5.21 사진은 온양민속박물관이다.   (안타까운건 우리집에 스캐너가 없다는 사실...)

일찍 결혼해서 낳은 친구 딸내미 그네 태워주려 쪼그려 앉아서 헤벌래 하면서 좋아라 하고 있다.

흐드러지게 핀 꽃속에서 친구들과 귀에 꽃한송이씩 꼽고 광녀 컨셉으로 사진 찍다.. 피부가 뽀얀게 역시 이십대 피부는 탱탱하구나 하는게 느껴진다.. 그립다.. 그 시절이...

95.7.2  강릉의 아침... 졸업하고 나서 뭉친 학교 선배 동기들과 밤기차를 타고 강릉에 갔던 사진이다..

얼마나 추웠으면 짧은 반바지에 가디건을 걸치고 목엔 손수건으로 묶고.. ㅋㅋㅋ 완전 그지 컨셉이다..  눈에 힘을 준거 보니 쌍꺼풀테이프 붙인것 같다... 아니 붙였다..  밤새 기차에서 자고 세수도 못했으니 나의 생명인 쌍꺼풀이 풀어질까봐 기차 화장실가서 붙였던 기억이 난다...  어쩐지 눈매가 너무 또렸해...

95.8.14   대천해수욕장 & 원산도...  오 섹쉬하다... 짧은 반바지에 나시티를 입고 머리 틀어 올리고 다리는 약간 꼰 자세로 한손을 이마에 대고 있다... 이런걸 고혹적이라고 표현하나... (아무도 안본다고 북치고 장구치고.. 그런데 이런거 정말 부끄럽다...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스물다섯의 나는 근심걱정없는 표정이 너무 좋다)

95.10.15  전북 진안 마이산..    제일 친했던 친구와 셋이서 참 많이도 다녔다.. (한 친구는 일찍 결혼을 해선 항상 빠졌었다..)주로 내가 충동질을 해서 떠나는 여행이었는데 이날도 터미널에서 우등고속버스를 타고 전주로 가서 거기서 다시 시외버슬 타고 진안으로 거기서 또 버스를 타고 마이산으로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마음에 맞는 친구와 떠난 여행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살짝 비가 뿌려주는 궂은날.....붉고 노란 나무 사이로 ...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으면서 우린 무슨 얘길 했을까?  가끔 이 친구가 너랑 그렇게 다닐때가 좋았어 .. 이렇게 얘기할때가 가장 좋다..

용기없는 친구들에게 있어.. 무식하게 부딪히고 보자면서 길을 떠나는 내가 고마웠단다.. (이거 칭찬인가 욕인가.. 하필이면 무식하게 떠난다고 표현을 했을까???)

95.11.26   밀양 표충사.. 재약산.. 사자평고원...   아 정말 고생은 바가지로 했던 기억이 난다.

기차표를 내가 가지고 있었는데 깜박 잠이 드는 바람에 결국 기차를 놓쳤다.. 간발의 차... 5분차이로..

어찌나 친구들에게 미안하던지...  (밤 12시에 출발하는 야간열차였다..)한창인 억새밭에 간다고 좋아들 했는데.. 결국 작은오빠를 불러냈다.. 기차표값 내가 다 물어내고.. 오빠한테는 도로비랑 주유비 다 준다고 약속하고 ...ㅎㅎ 작은오빠가 밤세 달려 우릴 새벽에 밀양 표충사 앞에 떨궈 주고 오빠는 다시 올라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의없다.. 그 먼길을 ...무려 5시간 반정도의 거리였는데...

그래도 표충사는 아름다웠고.. 재약산을 오르는 우리는 자연에 감탄하면서... 올랐고.. 사자평고원의 드넓은 억새밭에선  여자들의 우정도 아름답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날 내려오면서는 좋은 아줌마 아저씨를 만나는 바람에 대구 공항까지 편하게 갔다.. 산행이 늦어지면서 그 비행기 마저 놓칠뻔 했는데 아저씨가 대구공항 입구에 내려 주시는 바람에 편하게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집에 오니 오빠가 아직 도착을 안했다...

이런 이런... 결국 오빠한테 웃돈 얹어주고 싹싹 빌었었던 기억이 난다.

 

스물 다섯의 나는 여기 저기 싸 돌아 다니기 좋아하던...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던 ....팔팔하던 젊음이 있던 그런 시기였나보다..

행복하다.. 뒤돌아 보니 그래도 나는 후회없이 시간을 보낸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하면서 좋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그렇게 그렇게 내 젊음을 보냈다고 ...여기서  10년이 흘러 내 서른다섯은 어땠노라고 얘기할때.. 난 뭐라 답할까?

그때도 나의 서른 다섯은 알라딘 서재에 빠져 살지언정... 하루 하루가 행복하고 후회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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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5-07-26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지금 앨범 뒤적이며 스물 다섯의 줄리는 뭘 했었는지 찾아보고 있답니다. 사진을 올릴까 말까 고민두 하고요... 전 스캐너가 있걸랑요^^

인터라겐 2005-07-26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리님.. 올려 주세요.. 보고 파요...

icaru 2005-07-2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 근데~ 정말 여러 곳을 누비셨더래요~
저도 스물다섯 시절에...용기없는 나에게 있어.. 무식하게 부딪히고 보자면서 길을 떠나는 님과 같은 친구가 있었음... 엄청 고마웠을 것 같음~~ ..(에고 저 지금....여기저기 많이 보고 많이 듣고 하지 못한 걸... 친구들탓 하고 있는 건가요? )

세실 2005-07-2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스물다섯에 여행 참 많이도 다니셨네요~~
전...그저 도서관 열심히 다닌 기억밖에는 없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