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후...집에 와서 컴을 켰다..

오 놀라워라~

541009

퇴근무렵 33을 보고 왔는데....

30이란 숫자가 넘어가는것도 오늘 처음봤는데  54라...

처음 싸이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방문자수를 늘리기 위해 부지런히 사람찾기하고 1촌맺고 하던 ..

그런데 지금은 싸이가 시들하다.

인간사가 꼭 마치 오고가는게 있어야 너 계속 만나준다는것 같아서 말이다.

그냥 훌쩍 친구 소식이 그리울때 들려 잘살구 있냐..잘있다..

이렇게 안부 전할수 있으면 좋을텐데..그렇지 않고 의무감으로 매일 들려야 내집에도 오니..

다시 서재질을 시작할무렵..

반갑게 맞아주신 분들이 너무 감사하고 오랫동안 찾는이 없던 내 서재에 발자국이 찍힐때마다

가슴한편은 좋고 한편은 이러다 썰렁해지만 외로워서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

.

.

.

.

생각이 많아 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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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4-0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51010  더 이쁜 숫자 여기 있습니다..^^*

인터라겐 2005-04-0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어느새...오늘 정말 저 아주 많이 놀라고 있답니다...

물만두 2005-04-08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51010

많이 오오~~


아영엄마 2005-04-0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60명 돌파하지 않을까요? ^^

591014


아영엄마 2005-04-08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여기 따라오시다니! 새벽별님은 못 말려~ 헤헤~ ^^*

Laika 2005-04-08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51020

^^


Laika 2005-04-0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11026

새벽별님, 저도 아침에 toofool님 서재 보고 아쉬웠답니다. (엇, 우린 남의 서재에서..) ㅎㅎ

 


★ 목포는 항구다 와 그녀를 믿지 마세요

 




 

★ 말죽거리 잔혹사



 






★ 범죄의 재구성

 




★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 어린신부






★ 꽃피는 봄이 오면





★ 스캔들







★ 내사랑 싸가지.





 ★ 색즉시공

 




★ 우리형






★ 울랄라 시스터즈







 

★ 효자동 이발사







ㅋㅋ 그동안 재밌던것들을 모아뒀다가 다시 정리 하면서 보니깐 재밌다.

저런 극장간판은 언제 사라져버렸을까...느끼지 못하는 동안에 서서히 없어져가는것중의 하나였나보다.

어제던가 라디오에서 문자를 받는데 없어졌으면 하는것들에 대해서였다.

압도적인게 핸드폰 디카 인터넷 게임.....우리가 편하다고 생각해왔던것들이

없어졌으면 싶은것중의 으뜸을 차지한다니...정말 아이러니다...

아날로그적인 생각과 행동...요즘들어 점점 그리워지는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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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08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랄라시스터즈의 남자 주인공은 강호동같이 그렸네요.
극장 간판......까마득한 옛 이야기네요.
요즘도 변두리 극장엔 가끔 보이더만요.

인터라겐 2005-04-08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형은 도대체 주인공이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지 않나요? ㅎㅎㅎ

어룸 2005-04-0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박신양도 만만찮아요^^:;;;;
 


 최근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눈물’이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성세대의 땀과 노력,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의 일화를 담은 이 글에 20, 30대 네티즌들은 
‘우리 세대의 가벼움을 반성하게 됐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며 공감을 표명하고 있다. 

이 글은 육군사관학교의 김충배 교장이 지난해 11월 생도 교육에 사용해 그동안 
‘육사교장의 편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실제 작성자는 예비역 장성인 김유복(金遺腹·79)씨. 
그가 지난해 6월 로터리코리아(한국로터리의 기관지)에 기고한 글은  “60대를 수구 골통이라
몰아붙이는 젊은이들이여!  이 글을 읽어 보렴”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였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 해?'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됐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 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는
우리들 신,구 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 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난 이념이니 뭐니 정치가 어떠니 ...이런것엔 관심이 없다.
좌파니 우파니 이런것들이 다 자기들 밥그릇싸움이라고 보기때문이다.
바꿔보자구 난리치다 정권을 잡으면 예전과 똑같은 모습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봐와서 그런것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내가 기억하는 박통시절이라고는 초등학교 1학년때 국화꽃을 참배했다는것만..
우리학교가 국립현충원과 인접했기에 무슨 행사면 꼭 동원되곤했었다.
1학년때 뭘알까...그저 선생님도 울고 부모님도 울고...TV속 모든 사람들이 우니 정말 슬픈날인가보다 했었다.
 
지금도 관을 국화꽃으로 장식하고 위에 대형태극기로 덮은 그 마지막 운구행렬만 또렷이 기억한다.
바로 관앞에 서서 꽃을 헌화하며 펑펑울던 초등학생들이 바로 어린시절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었으니....
 
그런데 저위에 글은 참 가슴뭉클하다.
내가 겪어본 세상이 아닌것처럼 아득하게 들리지만 조금만 기억을 더듬어 봐도 나도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온 사람중의
한명이다.
 
초등학교 시절 누런봉투에 12칸이 나눠진 봉투가 있었다.
바로 육성회비 봉투.
한달 한달 돈을 납부해야 수업을 들을수 있는데...형편이 좋으면 1년치를 한번에 내지만 그렇지 못한경우
선생님의 노골적인 구박을 받아야 했다.  
난 그래도 행복한아이였다.  우리부모님...밥을 굶더라도 학비는 제일먼저 내주어야 다리 펴고 주무시는 분들이셨다.
 
조례시간에 이름을 호명하고 그 많은 아이들 앞에서 너왜 육성회비 안내고 거기 앉아있니.
지금이라도 집에가서 육성회비 받아와 안그러면 수업 못들어온다..
그런날이면 정말 친구들은 학교에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선생님께 혼나고 교무실로 불려가고...
어린맘에 모질게 친구들을 대하는 선생님을 미워했었는데...
 
아빠가 해외근로자로 중동에 나가계시는 집도 상당수였고...
 
아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
 
난 저 위에 얘기에서 박통의 독재니 뭐니 하는것을 떠나 그저 우리나라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셨던 부모님세대에게 
박수를 보내자고 말하려 했다.
자신의 대에서 가난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직 자식들을 위해 살았오셨는데 그 공은 다 어디로 가고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산것이 자식들을 버려놓은 이기심으로 비춰지니...씁쓸하고 마음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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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08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저 울었시요.
이 글 보고.
이것저것 떠나서 절절합니다. 특히 독일 광부, 간호사 부분.

인터라겐 2005-04-08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정말 가슴찡하고 절절하지요....저도 이글을 처음 봤을때부터 시작해서 볼때마다 눈물이 나요..

아영엄마 2005-04-0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울고 가요. ㅜㅜ
 

 

 

여자들은 꽃을 좋아한단다.

 

티브이를 통해 보는 여자들도 꽃을 선물받으면 화났던 마음이 언제그랬냐는듯 눈녹듯 사라지는걸 본다.

 

솔직히 난 꽃을 들고 다니는것이 어색하고 손을 어떻게 처리해아 할지 난감하여

 

꽃을 사는걸 꺼린다.

 

마치 꽃을 들고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나를 향하는듯하여 부담스럽다는게 정답같다.

 

시든꽃을 보는 마음도 편하지 않고해서....

 

그래도 가끔은 여자라고 길을 가다 코끝을 자극하는 프리지아향을 맡을때면

 

한다발 사서 들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든다.

 

가을날엔 소국한다발로 집안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은 생각도 들고...

 

하지만 난 끝끝내 꽃에 손이 안간다.

 

물만주면 자라는 생명력긴 화초엔 눈길이 오래 머물러도...

 

 

오늘은 문득 여고때 학교앞 트럭에 안개꽃만 잔뜩 싣고 와서

 

이렇다할 포장도 않은채 신문지에 둘둘말아 팔던 아저씨가 생각난다.

 

왜 그렇게 안개꽃을 좋아했는지...

 

안개꽃을 내가 안을수 없을만큼 받아서

 

그속에 얼굴을 묻고 사진을 찍어봤으면 하는 생각을 얘기했다가

 

떡볶이 사먹을 돈을 모아서 친구들과 안개꽃을 사서 정말로 그렇게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허무하게도 그 필름은 가진 친구가 현상을 맡기기전에 필름을 잃어버려서

 

지금은 한장의 사진도 남아있지 않지만 말이다.

 

봄인데도 꽃이 피지 않아서 걱정이라는데..

 

길가에 개나리가 핀걸 오늘 처음봤다.

 

이제 서서히 꽃이 피려나 보다.

 

오늘은 정말 꽃한아름 안고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난다.

 

꽃향기 가득한 봄을 느끼고 싶어서...  꽃향기 가득한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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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4-0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옛날에는 꽃 들고다니는게 참 어색했었어요.. 뭐, 받을일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받고나면 거 참 들고다니기 난감하더라구요..^^
요즘은 좀 많이 바뀌어서 꽃이 넘 좋네요.. 내 스스로 한아름 사는건 돈아까와서 못하지만, 선물로는 받고싶어요.. 옛날과 달리 넘 즐겁게 들고 다닐 수 있을것 같아요..^^

물만두 2005-04-0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이요^^


로드무비 2005-04-0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님께 꽃 한다발 선물하면 좋겠는데......^^

조선인 2005-04-07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어머 제가 그 사진을 가지고 있어요. 이렇게.




Laika 2005-04-08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네요...^^

인터라겐 2005-04-08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제가 소문내드릴께요...ㅎㅎㅎ
물만두님...너무 이쁜 꽃선물입니다..저희집 화병은 그냥 잡다한것 들어있는데...감사해요~
로드무비님...덕분에 제 잃어버린 사진을 받았어요..^^
조선인님...잃어버린 제 사진을 찾아 주셔서 감사해요...눈물날라 그럽니다...감솨^^
친구들에게 자랑해야 할까봐요...ㅎㅎ
라이카님...좋으시다니...행복합니다....

어젠 터미널 지하상가를 걸어가면서 꽃냄새 실컷맡았어요... 꽃구경도 많이하고 말이죠...진짜로 좋던걸요...
 

요즘 만화처럼 정신없는건 못봐서 그러나 내가 본 만화들은 주로 예전의 순정만화뿐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본 만화는 원수연님의 풀하우스가 유일하지 싶다.

 

중학교때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책에 끼워두면서 보던 만화들...

 

 

1. 한승원님..

데뷔작 다섯번째 계절...


 

 

주인공이름이 진진이 였던것 같은데...

 

2. 김동화님...

내이름은 신디..천년의 사랑 아카시아...에반제린...

기형적으로 눈이 컸던..그래서 싫어하는 애들도 많았다.

 


 

3.황미나....

굿받이 미스터 블랙...우리는 길잃은 작은새를 보았다...

미스터블랙은 안보면 간첩이었다.

 


예전판을 찾아서 올리고 싶었는데...


 

4.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내딸들...

이건 뒷얘기가 궁금해서 미칠지경이었어도 나오지 않아서 못보던..

그래서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던 그런 만화로 기억된다..

그래서 친구들은 뒷얘기를 지어서 애들한테 돌리기도 했었다.

 

 

만화들과 더불어 빼놓을수 없는 책이 있다면 바로..

하이틴로맨스

이거 많이 보면 눈높이가 높아져서(?) 시집못간다고 하던 교생선생님이 생각난다.

그 교생선생님 결혼하셨을까?

 

중3때 연합고사 끝나고 수업도 없을땐 친구들 가방가득히 넣고 다니던..

다보면 돌려보고..늦게 보는 애들은 빼버리는등...

그 나름대로의 법칙을 지키면서 봤다.

 

떡볶이집에 앉아 떡볶이 먹으면서 무료로 보던 만화가 제일이었던건 말할것도 없다.

3권보고 1권만 봤다고 우기던 시절도 있었고.

 

pc방이 없던 시절엔 친구들 기다릴때 만화방에서 만나면 지루하지도 않고 좋았는데 행복한 하루를 L.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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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04-04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정핑크도 좋아했어요~ 아, 미스터 블랙은... 정말 좋아했던 만화! ^^*(음냐~ 저도 로맨스소설에 푹 빠졌던 적 있어요. 그래도 결혼은 현실이죠~ㅎㅎ)

날개 2005-04-0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뒤에 아르미안 완결난거는 보셨어요?^^

인터라겐 2005-04-0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요정핑크...너무 이뻤지요...하이틴로맨스 많이 본 친구 눈이 높아져서 아직도 결혼못하고 있답니다...현실에선 찾기 무지 힘든데 말예요...ㅎㅎ
날개님...저 아직도 완결 못봤어요...봐야지하고 마음은 먹는데 쉽지가 않던걸요..
새벽별님...레오파트...본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