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2 밀리언셀러 클럽 20
로버트 블록 외 지음, 제프리 디버 엮음, 홍현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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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라임'시리즈로 유명한 제프리 디버가 편저한 서스펜스 명작 모음집의 제2권입니다. 2권에도 유명한 거장들부터, 국내에 한번도 소개되지 못한 좋은 작가들의 작품까지 많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네요.

 

 

첫 번째 작품 <담배 파는 여자>는 초창기 미국 하드보일드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제임스 케인의 작품입니다.  제임스 케인은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와 <이중 배상>이라는 불후의 명작들로 유명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더쉴 해미트나 챈들러보다 높이 평가하는 정말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애욕과 정념에 사로잡힌 남녀가 범죄를 계획하고 마침내 좌절하는 내용을 그보다 더 탁월하게 그리는 작가는 앞으로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실린 <담배 파는 여자>는 대단히 실망스럽더군요. 음반 제작자인 주인공이 자신이 맡고 있는 밴드의 곡을 표절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나이트클럽의 록밴드를 찾아가 사실을 확인하려 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매력적인 담배 파는 여자를 만나죠. 그리고...내용 설명을 못 드리겠네요.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거든요. 작가의 필력이 엄청 떨어졌거나, 내용을 심하게 축약한 듯한 느낌, 더구나 다소 좋지 않은 번역까지 겹쳐 2번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습니다.

 

 

<7월 4일의 야유회>는 렉스 스타우트입니다. 그는 엄청나게 비대한 몸집의 명탐정 네로 울프와 그의 사랑스런 조수 아치 굿윈의 이야기를 50편 넘게 쓰면서 엄청난 사랑을 받습니다. 작품의 화자인 아치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면서 그는 추리소설에서 필수적인 '와트슨' 역할의 새로운 유형을 창출해냅니다. 단순히 사건의 보고자나 관찰자가 아닌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적인 와트슨을 만들어낸거죠. <7월4일의 야유회>는 네로 울프와 아치 굿윈의 성격이 흥미롭게 드러나는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추리소설적으로는 조금 약합니다. 사실 렉스 스타우트가 탁월한 트릭메이커는 아니예요. 다만 읽는 재미가 뛰어날 뿐이죠.

 

 

<우리 시대의 삶>은 <사이코>로 유명한 로버트 블록의 작품입니다. <사이코>와 몇몇 단편 밖에 읽어본 적은 없지만 조금 과대평가됐다고나 할까요. <사이코>는 히치콕의 영화가 훨씬 뛰어나죠. <우리 시대의 삶>은 전에 읽어본 단편인데, 재미없는 남편과 사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남편은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시대의 삶을 후세에 남길 타임캡슐에 들어갈 물건들의 선정으로 고심합니다. 마무리가 흥미롭지만 예측 가능합니다. 다소 평범하네요.

 

 

<치의 마녀>는 현재 미국의 소수 민족인 인디언 경찰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주로 쓴 토니 힐러먼의작품입니다. 저도 좀 아쉬운 게 토니 힐러먼의 작품들을 한 편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명성이 대단한 작가인데 말예요. 앞으로 좀 찾아봐야겠습니다. 짐 치라는 인디언 형사는 부족에 들어온 이방인이 마녀라는 소식을 듣고 수사를 합니다. 이것도 무슨 내용인지 도저히 짐작이 안 갑니다. 도대체 번역이 문제인지, 쓰다 만 건지...간신히 내용 파악만 겨우 될 뿐입니다. 토니 힐러먼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예비 심문>은 저도 처음 들어본 예례미아 힐리라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거나, 평범한 단편들로 지쳐갈 때쯤 튀어나온 물건입니다. 존 쿠디라는 사립탐정이 살인 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사람에게 고용됩니다. 그는 배심원 중 한 명이 군대에 있지 않았느냐, 전략적으로 민감한 산업에서 일하지 않았느냐, 수감된 적은 없는가를 조사해야 합니다. 쿠디는 이상합니다. 배심원에게 왜 저런 의문들을 가질까 하고 말입니다. 결말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좋은 단편 추리소설의 요건-초반부에 흥미로운 의문을 던져주고 기발하게 마무리하는- 을 모두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인터폴: 현대판 메두사 사건>은 평생 단편 추리소설만 쓴 에드워드 호치(호치가 맞을까요..-_-;)의 작품입니다. 메두사 탈을 쓰고 공연을 하는 여자가 실제로 목이 잘린 채 발견됩니다. 사건을 수사하는 인터폴의 세바스찬 블루(이름이...-_-;;) 형사와 로라 샤메는 곧 기묘한 밀실 살인사건과 맞닥뜨립니다. 전체적으로 2% 부족한 느낌이지만 삼지창을 이용한 밀실 살인사건의 트릭은 재미있습니다. 심플하지만 흥미로운 트릭이었습니다. 

 

 

<불타는 종말>은 현대 추리소설계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사람인 루스 렌들 여사의 작품입니다. 인간의 이상 심리, 광기 등이 어떻게 피어나고, 어떤 과정으로 확대되며, 어떤 파국을 맞게 되는지를 예리하게 그리는 데는 따를 작가가 없습니다. 밧줄로 조이듯 다가오는 공포감이 대단한 작품을 쓰는 작가이죠. <불타는 종말>은 단편이지만 역시 좋습니다. 여기서는 인간의 살의, 악의가 어떻게 스물스물 피어나는지를 특유의 건조한 문체로 조명합니다.

 

 

<시적인 정의>는 스티브 마티니의 풍자적인 작품입니다. 매끄러운 얼굴과 처세술로 공부 한 자도 안하고 일류 변호사가 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작품 중간 중간에 코러스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스 비극처럼 말예요. 코러스는 전지적 시점에서 주인공의 인생을 비웃곤 하죠. 이런 코러스를 쓴 것은 탁월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주인공의 결말은 정말 그리스 비극처럼 인간 운명의 아이러니를 보여 주거든요.

 

 

<붉은 흙>은 에드거 단편상을 수상한 마이클 말론의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을 회상합니다. 유명 여배우가 부자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짝사랑했던 유명 여배우의 결백을 확신하죠. 아련한 추억의 향기를 손에 잡힐 듯 묘사하는 문장력이 좋습니다. 그러나 추리소설적이지는 않습니다. 순문학(?)에 가깝죠...

 

 

<베니의 구역>은 마샤 멀러라는 여류 작가의 작품입니다. 역시 여탐정인 샤론 맥콘이 주인공입니다. 암흑가의 패권을 둘러싼 혈전 중에 살인 장면을 목격한 증인이 있습니다. 증인은 재판장에 서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두려움에 떱니다. 샤론 맥콘은 누가 증인을 협박하는지 조사에 나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한 작품입니다. 진상을 알아가는 과정도 매끄럽고 결말도 좋습니다. 마샤 멀러의 샤론 맥콘 시리즈를 더 알고 싶게끔 만드는 흥미로운 단편입니다.

 

 

2권에서 3작품만 꼽으라면 <예비 심문> <불타는 종말> <베니의 구역>을 뽑겠습니다. 이제 3권만 남겨 놓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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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19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권 읽는 중입니다^^
 
경찰 혐오자 밀리언셀러 클럽 6
에드 맥베인 지음, 김재윤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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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이었죠. 무더웠던 6월 6일 우리는 슬픈 소식을 전해 들어야 했습니다. 바로 현존하는(했던) 경찰 소설의 거장 에드 맥베인이 타계했다는 소식이 그것이었죠. 에드 맥베인은 1926년에 태어나 2005년에 사망했으니 향년 79세였네요. 천수를 누린 셈이지만 애독자로서 여전히 아쉬움이 남네요.

 

에드 맥베인은 평생 5개의 이름으로 거의 100편 가까운 소설을 썼습니다. 당대의 많은 작가들처럼 그도 싸구려 범죄소설 잡지에 단편들을 팔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하드 보일드, 범죄 소설에서 <블랙 마스크>같은 펄프매거진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1956년 맥베인은 독특한 형식의 경찰소설을 발표합니다. 향후 50년 넘는 세월동안 그의 이름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어 준 '87관서 시리즈'의 첫 작품을요. 그 작품이 바로 <경찰 혐오자>입니다. '87관서 시리즈'는 가공의 도시 이솔라의 87번가에서 벌어지는 강력 범죄들을 해결하는 경찰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후 맥베인은 50편 넘는 '87관서 시리즈'와 30편 가까운 변호사 '매튜 호프 시리즈', 주정뱅이 탐정 '커트 캐넌'시리즈 등의 작품을 발표합니다. 영화 시나리오도 가끔 썼는데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의 각본도 그가 썼습니다. (히치콕과의 사이는 매우 안 좋았다고 하네요). 또한 그의 작품은 타계한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경찰 혐오자>는 타는 듯이 무더운 한여름, 87관서의 형사가 연속 살해되는 사건을 해결해내는 형사들의 이야기입니다. 동료 형사가 3명이나 피살되자 경찰의 명예를 위해, 또 동료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분투하는 87관서 형사들의 활약상이 멋지게 펼쳐집니다.

 

에드 맥베인은 종래의 추리소설, 고립된 공간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명탐정이 등장해 명쾌하게 해결한다는 내용에 반감이 있었습니다. 현실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명탐정은 폴리스 라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니까요. 실제 살인사건을 수사할 수 있는 사람은 형사들이고, 그 형사들은 팀을 이뤄 조직적으로 수사해 나가며 진실에 접근해 나갑니다.

 

바로 이런 현실감 넘치는 경찰 수사를 추리소설에 처음으로 도입한 게 에드 맥베인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87관서의 16명 형사가 모두 주인공입니다. 물론 중심 인물이자 가장 뛰어난 형사는 스티브 카렐라 형사이지만 다른 형사들도 카렐라 못지 않습니다. 16명의 형사가 공통된 사건을 맡아 발로 뛰며, 증인을 만나고, 증거를 조사하며, 때로는 엉뚱한 가설을 내놓고, 어쩌다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기도 하는 등의 현실적인 경찰 수사가 정교하게 묘사되는 것입니다.

 

16명의 형사는 50년의 세월동안 죽기도 하고, 은퇴하기도 합니다. 낯선 형사가 전출을 오기도 하고요. 데뷔작 <경찰 혐오자>에서 열혈 총각인 스티브 카렐라 형사는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2명의 아이 아버지가 됩니다. '87관서 시리즈'는 이렇게 각각의 캐릭터가 생명을 가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이었습니다. 다시 볼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죠...

 

<경찰 혐오자>과 국내 출간된 몇몇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에드 맥베인은 범죄 소설의 거장이었습니다. 동시대의 누구보다 박진감 넘치는 대화(dialogue)장면을 쓸 줄 알았고, 작품에 등장하는 분위기 묘사는 최강이었습니다.

 

특히 날씨 묘사가 훌륭하죠. <경찰 혐오자>에서도 이솔라를 휘감고 있는 끈적끈적하고 무더운 날씨의 묘사는 책을 읽고 있는 사람마저 지치게 만듭니다. 칼로 찌르듯 파고드는 무더운 날씨 속에 경찰 연속 살해는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압도적인 더위의 묘사로 인해, 독자들은 미궁에 빠진 사건의 답답하고 찜찜한 기분에 한층 더 빠져듭니다. 독자는 심리적으로 더 답답해지는 거죠. 마지막 장면, 사건이 시원하게 해결되고, 날씨 마저 시원하게 풀립니다. 이 때의 카타르시스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간의 질식할 듯한 더위와 수수께끼 두 가지가 확 풀리면서 여름날 소나기 같은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배경과 분위기의 묘사들로 독자들을 쥐락펴락하는 테크닉을 에드 맥베인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50년 가까이 지속된 '87관서 시리즈'의 역사 속에는 참으로 많은 것이 있었습니다. 현대 경찰소설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었으며, 형사라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변화를 통해 인간에 대해 고찰해 보는 인간 드라마였으며, 작품에서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가진 범죄자가 등장하기도 하는 등 미국 사회의 병리 현상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스티브 카렐라 형사를 비롯해 마이어 마이어 형사, 버트 클링 형사 등의 이름을 볼 수 없겠군요. 하기야 반 세기 가까이  온갖 사건들을 해결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87관서의형사님들...모두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진 왼쪽이 에드 맥베인, 세 번째 아내와 함께...

영국추리작가협회가 수상하는 평생공로상(다이아몬드 단검상)을 수상한 1998년 사진.

그는 영국과 미국의 추리작가협회의 평생공로상을 모두 수상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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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1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었음 좋겠어요 .ㅠㅠ

거친아이 2005-11-13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분도 계셨군요..또 첨으로 알았네요..유명한 분인 듯 싶은데..제겐 유명한 분이 아니시네요..이것도 읽어보고 싶네요..^^ 리뷰 잘 읽었어요..

jedai2000 2005-11-1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그러게요. 작품이 55편인데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손꼽으니 아쉬운 노릇입니다. 더군다나 '87관서 시리즈'는 시리즈 물의 재미를 최대한 살린 작품인데 말예요...

거친아이님...에드 맥베인은 경찰, 범죄 소설에선 거장급의 레테르가 붙은 작가입니다. 읽는 맛이 대단한 작가죠. <경찰 혐오자>부터 한 번 시작해 보세요..^^;;
 
이데아의 동굴
호세 카를로스 소모사 지음, 김상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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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리뷰를 씁니다. 그동안 읽은 책은 많았는데, 리뷰를 쓸 정도로 딱히 땡기는 책이 없었거든요. <이데아의 동굴>은 표지도 맘에 들고, 제목도 멋들어져서 출간되자마자 바로 구매를 했습니다. 이렇게 충동 구매 잘 안 하는데 묘하게 끌리더라구요.

<다빈치 코드>이후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 역사 미스터리의 대공세 속에 <이데아의 동굴>은 상당히 독특한 위치로 남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고대 아테네와 플라톤을 다루는 역사미스터리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책을 읽고 보니, 독특한 형식과 구성으로 한동안 인구에 회자될만 한 일종의 메타 텍스트 추리소설이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즈음, 플라톤의 사설 학원(?) 아케데메이아 학생 한 사람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 시체로 발견됩니다. 사인은 늑대 떼에게 물려 죽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죽은 학생의 선생(웬지 표현이,,,-_-;;;)  디아고라스는 학생이 죽기 며칠 전까지 심하게 공포에 질려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고 사인에 의문을 표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에서 가장 유명한 수수께끼의 해독자, 헤라클레스 폰토르에게 사건을 의뢰합니다. 이름은 헤라클레스지만 사실 힘은 별로 안 세고, 머리가 좋죠..-_-;;  아카데메이아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디아고라스 선생과 <도전! 골든벨> <퀴즈가 좋다>를 제패한 당대 최고의 수수께끼 해독자 헤라클레스의 공조 수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도전! 골든벨>과 <퀴즈가 좋다>는 농담인 거 아시죠? 저 오늘 왜 이러죠..-_-;;;)

두 사람이 사건을 수사하는 가운데, 당연한 것처럼(뭐가?) 아카데메이아의 학생들이 연속 살해되기 시작합니다.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된 학생들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던 공통점이 있구요. 여하튼 용의자로 추정되는 수상한 인물도 나타나고, 영리한 헤라클레스가 발견하는 뜻밖의 단서도 떠오르면서 사건은 점입가경으로 흘러갑니다.

여기까지가 이 작품의 1차 플롯입니다. 이 작품이 재미있는 건 여기서부터입니다. 위에 언급한 작품은 고대 그리스에서 쓰여졌던 <동굴>이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이 책을 번역하는 번역자의 역주가 책 하단에 쓰여져 있습니다.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헤라클레스가 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이 메인 플롯, 번역자가 이 작품을 번역하면서 느끼는 생각이나 만나는 사건들이 부차적 플롯으로 병행되는 겁니다. 물론 헤라클레스의 이야기와 번역자의 이야기 모두 작가 호세 카를로스 소모사의 순수한 창작입니다.

헤라클레스의 흥미로운 이야기 중간 중간 번역자는 역주로 작품에 개입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헤라클레스가 용의자의 저택을 쳐들어갈 때, 그는 용의자인 조각가가 만든, 파피루스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번역가 동상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그 번역가 동상의 얼굴 생김새가 이 작품을 번역하고 있는 번역가의 얼굴과 똑같이 생긴 겁니다. 당연히 진짜 번역가는 소스라치게 놀라죠. 수천년전에 쓰여진 이 작품에 현재의 내 이야기가 나온다.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이 작품에는 이러한 짜릿한 재미를 주는 내용이 많습니다.

소설 속의 소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마무리에는 영리하게 모든 내용들이 하나로 통합됩니다. 고대 그리스에 쓰여졌던 <동굴>에서 헤라클레스가 수사했던 사건도 해결이 되고, 현재 번역가가 느끼는 모순과 공포가 절묘하게 하나로 합쳐집니다. 작가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이러한 독창적인 형식의 책을 쓴 호세 카를로스 살모사(소모사입니다...죽을 죄를 졌습니다.-_-;;;)는 쿠바에서 태어나 스페인으로 망명해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 정신과 의사였다고 하네요. 스페인에서 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데아의 동굴>로 2002년 영국 추리작가협회 최우수상을 받았네요.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을 바탕으로 지적이고 세련된 추리소설을 써낸 그에게 존경의 키스를 보냅니다.(받기 싫으면 말라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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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5-11-11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리뷰가 너무 유쾌하네요
저도 구입은 해놓고 아직 못 읽고 있네요
잘 읽고 갑니다 ^^

물만두 2005-11-11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모사~ㅋㅋㅋ 호르헤스는 양호하군요^^ㅋㅋㅋ

비로그인 2005-11-1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부터 매력적입니다..;;

jedai2000 2005-11-1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 만한 책입니다. 읽어 보시길..^^;;
 
알렉산더
폴 C. 도허티 지음, 한기찬 옮김 / 북메이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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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알렉산더>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혹평도 많았지만 저는 나름대로 상당히 좋게 봤습니다. 젊은 나이에 눈부신 성공으로만 내달린 영웅의 일대기만이 아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동성애, 아버지에 대한 동경과 증오라는 이중적 감정에 시달리는 복잡한 알렉산더의 내면을 그린 점을 좋게 봤거든요.권력욕의 화신인 어머니와 마초의 대명사인 아버지가 자신을 옥죄는 질식할 듯한 좁은 나라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만 눈을 돌리는 그의 여정은 감동적입니다...

그렇게 영화에 대해 상당히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이 책을 접했습니다. 제목의 알렉산드로가 알렉산더였더군요. 관심이 가서 읽어 봤는데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무엇보다 영화에 나오는 유명 인물들이 소설에도 전부 등장합니다. 알렉산더의 친구이자 죽음으로 함께한 연인 헤파이스테이션, 훗날 파라오가 되는 부하 장수 프톨레마이오스, 왕중앙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제...등 영화로 친숙한 인물들이 전부 등장해 무지 반가웠습니다.

게다가 영화에서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성격 묘사가 소설이랑 거의 흡사하더군요. 저는 역사가들의 견해들이란 대체로 비슷한 가 보구나...했는데 알고 보니 이유가 있더군요. 이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 1986년에 나온 알렉산더 연구가 로빈 레인 폭스의 저서를 많이 참고했다고 적었더군요. 그런데 그 사람이 올리버 스톤을 6개월간 따라다니며 영화 <알렉산더>의 자문을 했다더군요. 그러니 내용이 비슷할 수 밖에 없었던거죠..^^;;

그래도 알렉산더의 생애를 그린 영화는 단지 영화일 뿐이요, 이 작품은 엄연히 역사 미스터리물입니다.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작품 내내 스며 들어 있기에 영화랑은 분명히 차별됩니다. 전 그리스를 통일한 알렉산드로스는 눈을 소아시아로 돌립니다. 하지만 그 곳은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가진 왕중왕 다리우스가 지배하고 있었죠. 전쟁의 기운은 점차 고조됩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의 친구인 의사 텔레몬은 왕의 호출을 받고 전장으로 향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전쟁은 정보로 결판이 납니다. 낯선 아시아로 쳐들어가다 보니 알렉산드로스는 그 쪽 지방의 주민들을 고용해 길잡이꾼으로 씁니다. 하지만 그들은 밀실에서 한 명씩 교묘하게 살해됩니다. 단서는 단 하나 다리우스 대제가 알렉산더에게 '나이팟'이라는 첩자를 심어 놓았다는 것...그는 다리우스에게 방해가 되는 길잡이꾼들을 하나씩 살해하는 거죠. 지혜로운 텔레몬은 왕을 위해, 자신을 위해 밀실 살인 사건의 비밀을 풀고 첩자를 잡아야 합니다...

이상이 줄거리인데 대단히 흥미롭지 않습니까? 작가 폴 도허티는 본질적으로 역사가의 눈과 소설가의 가슴을 겸비한 것 같습니다. 그 시대의 복식이나 행동 양식, 건물, 전쟁 묘사 등에 관해서는 치밀하게 세부적으로 묘사하는데 매우 그럴 듯 합니다. 또한 작가의 상상에 의거한 허구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뛰어난 상상력으로 역사 속에 감춰진 비밀을 재구성합니다. 대단한 실력입니다.

추리 소설적 측면을 차지하고서라도 대단히 재미있는 책입니다. 특히 클라이막스의 전쟁 장면의 장쾌함은 놀랍습니다. 머리 속에 장엄한 전쟁의 한 장면이 그려지는 듯 하죠...추리적 측면에서도 과히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적어도 역사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추리적 측면은 부차적으로 허투로 넘기진 않았습니다. 진상은 충분히 납득이 가고 사용된 트릭도 단순하지만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요즘 재고 서적으로 많이 돌고 있던데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뒷 표지에 <앨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 이후 최고의 역사 미스터리>라는 말이 있던데, 제 생각에는 그 이상입니다. 역사 묘사는 더 치밀하고 미스터리는 더 흥미롭습니다. 지적이고 세련된 소설입니다. 꼭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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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ai2000 2005-10-28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까지 재활용 끝입니다. 그간 여기저기 써 놓았던 걸 다 모았습니다. 모아 놓으니 좋네요..^^;; 앞으로는 여기다 주로 리뷰를...

panda78 2005-10-28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책소개도 없고 자료가 거의 없어서 읽을까 말까 망설였는데, 제다이님 리뷰 읽고 나니 얼른 사고 싶어지는군요. ^^

jedai2000 2005-10-2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급했듯이 영화를 재미있게 봐서, 영화랑 비슷한 인물과 배경, 사건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이 맘에 들었어요. 그렇지만 책만 보셔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폴 도허티라는 작가는 역사 추리소설을 잘 쓰는 작가랍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특정한 역사라기보다, 이집트, 알렉산드로스, 로마, 중세 유럽 등 다채로운 역사를 다루는 미스터리를 쓰고 있어요.

panda78 2005-11-02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말고 구할 수 있는 폴 도허티의 책이 또 있나요?

jedai2000 2005-11-03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파라오를 죽였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를 다루고 있는데 지금 초반부를 읽고 있지요. 프로필을 보면 영국 어디 학교 교장이래요. 평소 역사를 좋아했나 봅니다. 아마존을 보면 책이 상당히 많습니다. 평점은 다 좋구요.

panda78 2005-11-0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품절이더라구요. ^^; 우선 알렉산드로스부터 읽고..

panda78 2005-11-0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본콜렉터 1,2]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ㅂ^
감사드려요- 아무래도 영화를 봐서, 원작이 궁금하면서도 손이 안 갔는데,, ^^ 제다이님 덕분에 링컨 라임 첫편을 읽게 되었네요.
즐겁게 읽고 코핀 댄서 살게요. ㅎㅎㅎ <(_ _)> (^ㅁ^)/ 꾸벅!

비로그인 2005-11-04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링컨 라임에 빠지면 행복해요..;;; 하루라도 빨리..;;

jedai2000 2005-11-0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책 무사히 갔다니 다행입니다. 되게 이상하게 포장되어 있죠? ㅋㅋ 남자라 손이 서툴러요...^^;; 모쪼록 재미있게 읽으시고, 다음 편 <코핀 댄서>도 꼭 보시길...

비숍님...응원의 메시지까지 남겨 주시고 감사드립니다..^^;;

panda78 2005-11-04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핀 댄서 주문했어요! ^^ 기대기대-

panda78 2006-02-15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렉산드로스의 음모가 오늘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자간이나 행간도 적당하고 책 자체도 이쁘게 나왔군요. ^^ 아껴뒀다 읽으려고 잘 뒀답니다. ㅎㅎㅎ
 
불연속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3
사카구치 안고 지음, 유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처음으로 품평회란에 글을 남겨 보네요... 사실 추리 소설은 평을 쓰기가
애매해서 -단서나 범인 정체 등을 노출시킬만한 스포일러를 빼고 쓰기가 넘 힘들죠... 그래서 짤막짤막하게 느낌만을 담은 짧은 평을 주로 썼는데, 이 작품 <불연속 살인 사건>은 워낙에 악전고투하면서 읽은 작품이라 그렇게 쓰기가 웬지 아쉽더라구요...지금도 이 책 읽을 때 생각만 하면 T.T

작가인 사카구치 안고는 첨 들어보는 사람이었고, 이 작품 이후엔 별루 추리 소설을 안 쓴 모양이더군요...요즘은 옛날같이 추리 소설계의 풍토가 별루 척박하진 않아서 동서 추리 문고 등에서 서양의 좋은 추리 소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만 유독 제일 가까운 나라 일본의 좋은 작품들을 접하기가 힘드네여... 130권이 넘는 동서에도 <음울한 짐승>,<점과 선>,<혼징살인사건>과 이 작품 밖에는 없구요. 아쉽습니당. 어쨌든 동서에서 출간된 네 작품 다 수작인 것은 만족스럽네요... 더욱 더 많은 일본 추리 소설의 걸작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특히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이라면...

<불연속 살인 사건>은 다들 아시다시피 한 여름의 별장에서 연속적으로(불연속적으로인가?)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워낙 많은 등장 인물이 얽히고 섥히고, 등장 인물들이 거의 불륜 관계로 맺어져 있어 마치 한국의 아침 드라마를 보는 듯 합니다. 등장 인물들은 전부 작가나 극작가 등의 문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좀 배운 사람들이 더하다고 어쩜 그리 도덕성들이 없는지, 전부 다 음탕하고 뻔뻔스런 족속들이더라구요.


제가 개인적으로 작가들을 동경하고, 작가 지망생이기도 한지라 여기서 묘사되는 작가들의 성품은 자못 충격적이었습니다. 작품에서 나오는 온갖 불륜들과 추잡한 성행위들을 보노라니 정말.... 저도 빨리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_-; 농담이구 또 다른 일본 작가 시바타 렌자부로의 <유령신사>라는 책에서의 작가의 말에서도 바람피는 걸 굉장히 긍정하는 것 같던데 이것이 일본 작가들의 성향인지...참 부럽습니다..-_-;
머 작가가 작가이니만큼(무슨 말이지-_-;)작가들의 성향도 잘 알고 보고 들은 것도 많을테니 정확하게 썼겠지여...

어쨌든 별장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을 해결해 가는 탐정이 나오고, 멋진 추리가 나옵니다.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역시 엄청난 등장인물들의 수... 앞의 <등장인물>란과 데카님의 등장 인물 관계도를 수시로 참조하며, 정말 수시로 한 페이지 안에서도 세,네번은 찾아야 했습니다. 읽다가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책을 좀 빨리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하루를 전부 투자했습니다. 조금 읽다 보면 이름에 익숙해지지 않을까 묻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 작품은 어떨 때는 주인공들의 성을 쓰고  어떨 때는 이름을 쓰기 때문에, 이 놈이 그놈인지, 아까 그놈이 맞는지,등등의 헷갈림이 끝이 없습니다. 다만 중 후반부에 가면 등장인물들이 거의 다 죽어 나가기 때문에 자연스레 인물이 적어져 헷갈림이 줄어듭니다...-_-;


그러나 워낙 많은 등장 인물들이 등장해 헷갈리게 하기 때문인지,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읽었기 때문인지 독서의 몰입도는 상당히 있는 편이었습니다. 앞으로 읽으실 분들도 넘 겁내지 마시고 최대한 집중하고 몰입해서 읽어 보세요...

많은 분들이 넘 많은 사람이 불필요한 이유로 죽는 게 아닌가? 하시던데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보면 그 이유가 어느 정도 제시된 듯 하더군요...많은 살인 사건 가운데 특히 꼽추 시인을 죽일 때 썼던 트릭은 매우 맘에 들었습니다. 사소하지만 현실감이 넘치는 설정으로 실제로도 충분히 사용할 만한 트릭이 아닐까요? 순수한 추리 소설의 쾌감, 복잡한 수수께끼의 제시와 시원한 해결에 집중한 상쾌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머 당시 문인들의 퇴폐적인 생활상의 묘사같은 거는 그냥 양념으로 쓰인 거 같고, 그야말로 트릭과 해결에만 몰두한 거 같습니다. 누군가 <김전일>의 선배격인 작품이라고 하신 걸 본 거 같은데, 딱 그 말이 맞는 거 같네요...문학성이다, 당대 생활상의 묘사다, 이거 저거 다 각설하고, 수수께끼 제시와 기발한 추리, 명쾌한 해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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