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1
하비에르 시에라 지음, 박지영 옮김 / 노마드북스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강군: 오랜만이야, 공군. 잘 지냈어?

공군: 응. 나야 잘 지냈지. 넌 어때, 요즘도 즐거운 독서 생활 하고 있니?

강군: 밀려드는 책의 홍수 속에 신음하고 있지. 제일 최근에 읽은 게 <최후의 만찬>이라는 책이야.

공군: 누가 쓴 건데?

강군: 말해줘도 모를 걸. 하비에르 시에라라는 스페인 출신 작가래.

공군: <최후의 만찬>이라니 다빈치가 소재인 것 같다.

강군: 오, 눈치 빠른 걸! <다빈치 코드>이후 유행하는 팩션이야. 팩션 알지?

공군: 사실(Fact)하고 허구(Fiction)하고 결합하는 거 말이지? 근데 요즘 그런 책 너무 나오는 거 아니니?

강군: 아주 쏟아져 나오고 있지. 다 <다빈치 코드>의 공이지 뭐. 공인지 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야. 그런데 그런 책들 보면 항상 들어가는 말이 있어.

공군: 나도 알아. 움베르토 에코의 후계자. 하하.

강군: 하하, 너도 아는구나. 그런 천편일률적인 홍보 문구 이제 지양해야 되는 거 아닌가 몰라.

 

 

공군: 그런데 왜 이렇게 팩션이 유행하는 걸까? 지구인들이 모두 다 음모이론에 빠진 것도 아닐텐데 말야.

강군: 세상이 흉흉하니까 그렇겠지 뭐. 어딜 봐도 밝은 미래는 없고, 누굴 믿어야할지도 모르겠고. 이럴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는 사실 이런 비밀이 숨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모두 가짜였다. 뭐 이런 불안과 의혹이 세기초의 주된 분위기인 것 같아. 팩션이 그런 우리의 정서를 잘 긁어주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

공군: 하긴 사람들은 누구나 사실을 그 자체로 믿는 것보다는 그 안에 뭔가 비밀이나 음모가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는 법이니까. 원체 인간들이 호기심이 많잖냐.

강군: 그럴수도 있겠네.

 

 

공군: 무슨 내용이냐?

강군: <다빈치 코드>는 현대 교수가 옛날의 그림이나 건축물 같은 걸 조사하면서 비밀을 밝혀내는 거잖아. 그런데 <최후의 만찬>은 좀 달라. 아예 배경이 르네상스 시대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실제로 등장하고 있어. 주인공은 레이레 신부라는 교황청 정보부 소속 신부고.

공군: 정보부하니까 좀 무섭다, 야.

강군: 우리도 알다시피 르네상스 시대는 천년간의 교황 독재가 끝나고 신이 아닌 인간의 시대가 도래하는 계기가 되잖아. 동양 사상도 들어오고, 그리스나 로마의 고전도 부활하고 말야.

공군: 아주 역사 선생질을 하는구나. 계속 읊어봐라.

강군: 당연히 로마 교황청에서는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사상을 탄압하겠지. 그런데 밀라노에서 이름난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리고 있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작품에 이교도의 상징이 가득 들어있다는 소문이 난 거야. 그게 노출되면 로마 교회가 크게 휘청일만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거지. 그래서 정보부의 레이레 신부가 조사를 나가면서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비밀을 찾는다는 내용이야.

 

 

공군: 재미있을 것 같은데.

강군: 대체로 팩션이 기본은 하지. 특히 이건 우리도 잘 아는 시대 이야기잖아. 르네상스 시대도 그렇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최후의 만찬>도 우리한테 친숙한 거니까. 이런 친숙한 것들에 사실 이런 비밀이 숨어 있었다, 그러면 당연히 호기심이 땡기지.

공군: 그래서 책에 나오는 비밀은 그럴 듯 하냐?

강군: 사실 <다빈치 코드>랑 비슷해. 작가가 오래 조사해서 사실 80%에 허구20%의 비중으로 썼다는데 대체로 작가들이 조사하는 소스가 다 비슷할 거 아냐. 그러니까 댄 브라운이나 하비에르 시에라나 별 차이가 없는 거지. 그래서 나는 <다빈치 코드> 표절설도 별로 안 믿어. 이번에 '유다복음'인가 뭔가 하는 게 나왔다며. 이 책에도 유다복음에 실린 것처럼 유다의 배신은 사실 예수의 완전한 영적 존재로의 전환을 위해 필연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일이었다고 쓰고 있어. 어느 거나 다 비슷한 거야, 그러니까. 어차피 같은 된장을 갖고 끓이는 건데 냉이를 넣든 배추를 넣든 모양은 달라도 같은 된장국 아니겠냐.

 

 

공군: 너 아주 비유가 죽이는구나. 그래서 결론적으로 볼만하다는 거네?

강군: 내 생각에 작가로서 일류는 아냐. 일단 문장의 맛이 별루야. 기본적으로 14세기에 가장 교육을 잘 받은 교황청 소속 신부가 1인칭으로 자신이 본 것들을 쓰고 있는데, 문장 어디에도 지적인 맛이 없어. 오히려 너무 현대적이고 단순해서 멋이 없지. 예를 들어서 앨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가 중세 영어로 쓰여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중세 수도원과 수도사의 느낌이 팍팍 나게 아주 운치있게 쓰여졌잖아. 그런데 이 책에는 그런 맛이 없어. 심지어 연쇄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데 경찰이 출동하더라니까. 그 당시에 경찰이란 말을 썼겠냐. 이건 뭐 번역상의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현대적이니까 분위기를 확 깨지. 그 외에도 문제가 있는데.

공군: 또 뭔데?

강군: 1인칭으로 쓰여지다가 갑자기 3인칭이 나올 때가 있어. 여기서 주인공 레이레 신부는 암호해독 전문가라면서 거의 하는 일이 없거든. 대부분의 비밀은 레오나르도와 그의 제자들이 대화하면서 풀리는데 이 부분이 3인칭으로 쓰여져 있어. 추리소설로서는 여기가 좀 걸리는 부분이지. 작가가 주인공으로 하여금 그럴 듯하게 단서를 조합해 비밀을 풀어나가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니까 그냥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줄줄 늘어놓는건데, 좀 더 고민을 해봤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어. 게다가 주인공 레이레 신부가 연쇄살인범과 다빈치의 관계에 대해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도 좀 그렇지. 레이레 신부가 말하는데 이유는 댈 수 없지만 그냥 직관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대. 하하하

공군: 뭐냐, 크하하.

강군: 웃기는 거지. 여기도 작가가 제대로 쓰지 못한 건데 당연히 어떤 단서로 인해 레이레가 그 사실을 알아차려야 하지, 그냥 알면 뭐하러 추리를 하고 있냐. 점을 치지.

공군: 맞아, 맞아.

 

 

강군: 지금까지 너무 결점만 말한 것 같은데, 그런대로 재미있어. <다빈치 코드>가 모험담에 비중을 둔다면, 이 작품에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의 비밀에만 집중하니까 깊이는 더 있는 것 같아. 재미야 느끼는 사람 나름일테고. 각종 암호와 상징들이 풀려나가는 맛도 있고. 작가가 좀 그럴듯한 문장을 쓸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훨씬 나은 작품이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있다는 거지.

공군: 책 상태는 어떤데?

강군: 오타가 조금 있는데 편집은 아주 좋아. 특히 작품에 등장하는 그림이나 건축물 등의 사진이 전부 실려 있어 대조해서 보면 아주 재미있지. 그런 건 아주 꼼꼼하게 잘했더라구.

공군: 그래, 잘 알았다.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 읽은 거 같다, 야.

강군: 목이 탄다, 아주 타.

공군: 타는 목에 시원하게 맥주 한 잔 어때?

강군: 네가 뭘 좀 아는구나. 그럼 가자구!

 

 

별점: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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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4-21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식이 색다른 리뷰네요. 재미있어요. 책의 장점, 단점도 멋지게 짚어주셨는데, 어쩐지 읽고 싶어지는걸요.

물만두 2006-04-2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점이 짜요 ㅠ.ㅠ 다빈치 코드보다 낫잖아요^^:;;

jedai2000 2006-04-2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님...감사합니다. 맨날 같은 유형의 독후감만 쓰다가 형식을 바꿔보니 저도 신이 나서 쓰게 되네요. 앞으로 종종 강군과 공군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물만두님...저에게는 두 작품이 비슷비슷한 재미를 줬던 것 같아요. 아주 솔직히는 <다빈치 코드>가 더 좋았구요. 아무튼 둘 다 읽어볼 만한 작품들이라 생각합니다. ^^;

상복의랑데뷰 2006-04-2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에 < >게 붙어 있으니 제목 리스트에는 만큼 '재미있는 팩션'으로 뜨는군요. html코드로 인식하는 모양입니다. 간만에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저도 언제쯤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써볼지 ^^

jedai2000 2006-04-2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제목이 제대로 안 나오나 봅니다. 하지만 뭐 일부러 수정까지 하기는 귀찮고...재미있다니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
 
강력1반 1
토코로 주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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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제 건전한 성인 남성의 휴식 공간인 만화방에서 건진 좋은 작품이 있어 소개해 올린다. <사라진 이틀(한오치)>과 <클라이머즈 하이>가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요코야마 히데오 원작 만화가 나와 있었던 것이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기자 출신의 작가로 미스터리 소설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을 모두 읽어 봤는데 미스터리 요소는 2%부족하지만, 재미와 감동은 탁월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실 <클라이머즈 하이>에는 범죄나 추리, 반전 등 추리소설의 필수요소는 별로 나오지도 않는다(하지만 재미와 감동은 빼어나다). 미스터리 요소가 별로 없는 미스터리 소설로 성가를 높이고 있는 이색적인 작가인 것 같다.

 

어제 본 작품은 <강력1반>이라는 제목인데, 현재 4권까지 출간되어 있었다. 이 작품이 요코야마 히데오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오리지널 스토리를 써주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정보가 있으면 가르쳐주기를 요청하는 바이다. <강력1반>은 요코야마 히데오의 장기인 조직을 그리고 있다. 조직이라고 해서 어깨에 힘들어간 그런 분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경찰 조직, 기자 조직할 때의 그 조직이다. 이 작가는 그런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을 꿰고 있다. 특히 조직안에서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암투와 힘겨루기를 그리는 역량은 일본 제일인 것 같다. <강력1반>에도 작가의 장기는 발휘된다. F현경 수사과의 경찰들을 그리면서, 경찰 수사의 재미와 경찰 조직내 파워게임을 지켜보는 재미를 동시에 안겨준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각 권의 주인공들이 전부 다르다. 1권에서는 F현경 수사과 1반 반장인 구치키가 주인공이다. 이 사람은 별명이 파란 귀신인데 절대로 웃지 않는 남자이다. 그가 웃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는데, 자세하게 나오진 않는다. 앞으로 작품이 진행되면서 나올 것 같다. 2권은 수사과 2반 반장 마사미가, 3권은 수사과 3반 반장이 주인공이다. 4권은 1,2,3반을 모두 통솔하는 수사과장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 반의 수사 스타일은 지휘관의 취향에 따라 다른데 1반 반장 구치키는 정공법, 공안 출신인 2반 반장 마시미는 공안다운 편법과 아슬아슬하게 위법성을 넘나드는 도박성 강한 수사, 수사의 천재 3반 반장은 직감을 중시한다. 각기 다른 반장들의 매력이 이 작품의 최고 포인트이다. 옆 표지에서 위의 가장 크게 그려진 얼굴이 1반 반장 구치키, 아래 작은 얼굴 중 왼쪽이 3반, 오른쪽이 2반 반장 마사미이다. 이 세 사람이 검거율을 놓고 라이벌전을 벌이기도 하며, 협력하기도 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가장 재미있는 건 2권 <제3의 시효>라는 작품이었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2반 반장 마사미가 주인공이다. 15년 전의 강간 살인의 용의자가 시효 만료를 맞아 나타난다. 그러나 그가 한 가지 몰랐던 것은 국외에 체류한 기간은 시효에 계산되지 않는다는 것. 일주일간 대만에 있었던 그의 시효는 일주일이 연장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의 시효 연장도 무위로 돌아가고 그를 체포하지 못한 2반 직원들이 낙담할 때, 마사미는 제3의 시효가 있다고 주장하며 수사를 지휘한다.감정이 없는 냉혈한 같은 마사미의 날카로운 카리스마가 빛나는 작품으로, 그가 제시하는 놀라운 편법과 잔재주를 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1반~3반까지 중 가장 좋아하는 반장이다. 이 사람이 주인공인 작품이 또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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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17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 전 인상이 안좋아요~

jedai2000 2006-04-1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상이 안 좋은 건 사실인데 저랑 좀 닮은 것 같아서 괜히 좋아합니다..ㅋㅋ 제가 턱이 좀 뾰족하거든요..-_-;;

oldhand 2006-04-17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핫 그러고 보니 좀 닮은것도 같습니다. ^^

상복의랑데뷰 2006-04-17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개성적이지만 전 1반의 반장이 마음에 들더군요. 저는 역시 곽정파..충후순박한 애들을 선호한다는 ^^

하늘바람 2006-04-17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날 것같아요

jedai2000 2006-04-18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특히 뺨이 움푹 들어간 게 좀 비슷한 것 같네요..T.T

상복의 랑데뷰님...저도 보통 충후순박한 사람들을 좋아하긴 하는데...사실 제가 진짜 좋아하는 주인공은 영호충, 양과같이 세상의 속박을 벗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애들이 좋더라구요.

하늘바람님...꽤 재미있습니다. 꼭 보세요. ^^;;
 
아이거 빙벽 밀리언셀러 클럽 35
트레바니언 지음,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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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미나 인생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건 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취미가 바로 암벽 등반이다. 무엇보다 고생스럽고, 위험하고, 춥고, 배고프니까. 그러나 동상으로 발가락이 모두 잘린 산악인이 또 등반에 나서는 걸 보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매력이 있구나 싶다. 사실 내가 암벽 등반에 인생을 건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일종의 질투에 가깝다. 고소공포증이 심해 높은 곳을 워낙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그 성취감을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동경하기만 할 뿐이다.

 

<아이거 빙벽>은 바로 그 암벽 등반을 소재로 한 모험 스릴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정복해야 할 주된 대상으로 그려지는 아이거란 스위스 알프스에 실제로 있는 산으로 독어로는 오우거라 부른다. 오우거는 괴물이란 뜻이다. 엄청나게 많은 산악인들이 이 괴물의 먹이가 되었다고 한다. 거의 직각에 가까운 암벽으로 최고도의 난이도를 자랑한단다.

 

아이거와 맞서 싸우는 주인공은 조나단 햄록이라는 사나이. 예술 비평가이자 교수, 산악인이라는 세 가지 일로도 눈코뜰새 없이 바쁠 것 같은데 과외로 정부의 암살자 노릇까지 하고 있다. 한 마디로 007 제임스 본드를 능가하는 만능 사나이인 것이다. 이번에 조나단 햄록에게 내려온 지령은 아이거 등반대 중 한 명을 암살하는 것. 하지만 이미 과거에 그는 아이거에서 두 번이나 패퇴한 전력이 있었다. 이제 그에게는 두 가지의 인생 최악의 위기가 닥쳐온다.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 아이거 산을 무사히 오르는 것과 그를 제외한 세 명의 등반 대원 중 한 명의 스파이를 찾아내 제거하는 것이다. 어느 것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는 조나단의 엄청난 고생담을 집에서 이불만 뒤집어 쓰고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자의 행복 아니겠는가.

 

이 책은 1972년에 발간되었다. 당시는 007을 비롯한 스파이소설이나 딕 프랜시스, 알리스태어 맥클린 등의 남성 모험 소설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모든 게 베일에 가려진 작가 트레베니안에게는 이런 테스토스테론으로 가득찬 소설들이 참으로 같잖게 느껴졌나 보다. 작가는 상당한 반골 기질의 소유자인 듯 <아이거 빙벽>에서 당시의 모든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분야를 냉소하며 공격하고 있다. 

 

제임스 본드처럼 조나단 햄록에게도 여자들이 많이 따른다. 손짓 한 번에도 여자들이 줄줄이 쓰러질 정도다. 그러나 오호통재라. 조나단 햄록은 허랑방탕한 성생활을 즐기지만 사실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부터가 일단 007의 패러디이다. 그래도 007은 애국심이라도 있었지, 조나단은 애국심 따위는 전혀 없는 사람이다. 자기만 호의호식하면 된다는 주의다.이 조나단 햄록이라는 주인공 자체가 사실 말이 안되는 인물이다. 언급했듯이 뭐든지 만능에 여자들까지 줄줄이 꼬인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60~70년대 모험 소설의 남성 주인공들을 몸소 패러디하는 인물인 셈이다. 이 외에도 작가의 발언은 끝이 없다. CII 라는 정보부는 당연히 CIA를 패러디한 이름인데 여기 사람들은 무능하기 그지없으며, 미국 정부는 세계 평화를 지킨답시고 오히려 세계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폭로하기도 한다. 조나단이 가르치는 대학생들은 새 만큼의 지능도 없다. 학점을 올려 달라고 몸으로 유혹하는 여제자가 나오는가 하면, 부자집 마나님들은 바람 피우는 데만 눈이 벌겋다. 나중에는 아이거를 오르는 등반대가 등반에 실패하고 처참하게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잔인하고 우매한 군중들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그들은 지루한 일상의 고통을 등반대의 죽음이라는 짜릿한 흥분제로 치료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처럼 작가의 관심은 전방위에 뻗쳐 있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을 사정없이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트레베니안의 최대 매력은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거 빙벽>에는 거의 문장 하나 하나마다 유머가 튀어 나오는데 작가의 유머 감각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의 유머는 잔인할 정도로 날카롭고 신경을 건드리면서도 핵심을 잃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난리가 날 인종에 관한 농담,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냉소, 언급된 나라 사람들이 보면 화가 날 정도의 나라와 민족성에 대한 꼬집음 등이 정신없이 섞여 돌아간다. 예를 들어 스위스인은 돈을 밝히고, 프랑스인은 멍청하고, 터키인은 배신을 밥먹듯 한다는 등의 읽는 사람이 다 불편할 정도의 유머를 구사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특히 시원하게 느껴진다. 요즘 말도 안 되는 정치적 공정성이다 뭐다 해서 작가라는 사람들이 눈치만 살살 보기 일쑤인데, 트레베니안은 그런 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해 버리니 참으로 감탄스럽다. 그렇다고 무작정 말도 안되는 비난으로 일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은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을 작가는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때로는 쓴웃음을 짓고, 폭소를 터트리거나, 불쾌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작가의 유머와 풍자를 보며 그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자 후기에서 보니 작가는 이 작품을 세상을 조롱하기 위해 쓴 일종의 가벼운 장난이라고 여겼는데 뜻밖에 독자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놀랐다고 한다. 여기는 작가의 오판인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디 하나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아이거 등반의 세부적인 사항 하나까지 작가의 전문가적인 솜씨가 듬뿍 배어 있다. 오히려 깊이 몰입하지 않고는 읽을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전문적이고 정교한 작품을 써놓고 장난으로 받아들여 달라니 어느 독자가 납득하겠는가. 그만큼 작품 전체에 장인의 손맛이 감돌고 있다는 것이다. 트레베니안은 진정한 즐거움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고, 작품의 재미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조금 속도가 느린 감도 있겠지만 그건 세월을 감안해야 할 것이고, 주인공의 마초성은 작가의 의도가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거 빙벽>은 4명의 등반대가 아이거를 정복하는 산악 모험 소설로, 혹은 등반대 안에 잠입한 스파이를 찾아내는 과정에서의 반전이 돋보이는 스파이 소설로, 어쩌면 당대 사회 문화를 조롱하는 풍자 소설로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한 권의 소설에서 이처럼 다양한 재미를 맛 볼 수 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자의 행복 아니겠는가.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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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콜드 블러드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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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탄 사람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었다. 그는 <카포티>라는 작품에서 소설가이자 기자였던 트루먼 카포티 역할을 잘 소화해내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 트루먼 카포티는 1959년 실제 있었던 일가족 살해 사건의 범인들을 인터뷰하면서 그 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논픽션 소설의 명작 <인 콜드 블러드>. 영화는 이 당시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집필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고 한다. <인 콜드 블러드>는 70년대에 국내에도 <냉혈>과 <냉혹>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고 하지만 실체를 볼 수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행히 이번에 새로 번역된 책으로 잘 묶어져 나와 많은 독서가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동시에 영화 <카포티>도 개봉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트루먼 카포티와 <인 콜드 블러드>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영화 개봉은 흥행성이 불투명하다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힘들 것 같다고 한다.

 

1959년 11월 15일 캔자스 주 홀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린다. 총성은 네 발이지만 결국 죽는 사람은 모두 여섯 명이 되는 '클러터 일가족 살해 사건'의 서막이 울린 것이다. 존경받는 농장 주인 허버트 클러터와 그의 부인 보니, 딸 낸시, 막내아들 캐년은 홀컴 마을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허버트 클러터씨의 아내인 보니가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유일한 옥의 티일뿐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으며, 이웃들에게는 사랑을 받았고, 가족들 끼리도 화목했다. 한 마디로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라는 것. 그러나 11월 15일의 가을 밤, 그들은 두 명의 낯선 방문객을 받고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떠나고 말았다.

 

홀컴 마을의 두 불청객, 페리 스미스와 딕 히콕은 도둑, 강도, 사기 행각을 아무 죄책감없이 저지리는 불량한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부유한 클러터 가를 털기 위해 자동차에 탔고, 1,287 킬로미터를 여행해, 그렇게 했다. 유감스럽게도 페리와 딕이 가져간 건 돈이 전부가 아니라, 클러터 가족의 목숨까지 함께였다는 게 비극의 씨앗이 된 셈이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여기까지 읽고, 필자에게 항의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범인을 밝혀 놓으면 무슨 재미로 읽냐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가 이 책에서 가장 뛰어나고, 비범하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인 콜드 블러드>는 전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가 트루먼 카포티가 6년간 직접 범인들을 포함해 수천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써 내려간 진실의 기록이 바로 <인 콜드 블러드>인 것이다.

 

따라서 범인의 정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범인의 이름은 아예 처음부터 나온다. 작가는 책 앞머리에 이 책에 묘사된 것들은 전부 사실이라고 적어 놓았다. 저널리즘의 형식에 소설의 기법을 적용한 논픽션 소설의 출발점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거칠게 나누어 클러터 일가가 살아있었던 마지막 하루를 묘사하는 것이 첫 번째 장, 살해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의 이야기, 페리와 딕의 도피행각과 체포, 그들의 재판과 교수형 장면이 마지막 장이다. 이 모든 실제 이야기들을 작가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 속에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작가 트루먼 카포티는 대화의 94% 이상을 기억에 저장할 수 있는 비범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이렇듯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가 사건 관련자 모두를 취재해 기록한 이 작품에는 그날밤의 진실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취재와 인터뷰 등을 지루하게 나열하고 있지만은 않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의 소설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답게 사건 직전의 불길한 분위기, 홀컴 마을의 전원 풍경, 섬세한 인물의 내면 묘사 등에서 우수한 소설의 향기 또한 풍겨난다. 이런 점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를 보자. 일가족 살인 사건의 충격이 어느 정도 지나간 홀컴 마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 풍조가 나타난다. 문을 잠그고 자는 집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친하고 서로를 아는 시골 마을이 공포에 지배당하고 만 것이다. 그때만 해도 범인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라, 마을 사람들은 범인이 이웃 중 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이제 누구도 서로 믿지 못하는 미국의 현대적 삶이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싹 튼 불신 풍조는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사실성을 강조하는 신문 기사라면 결코 이런 사실이 아닌 부분을 적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트루먼 카포티는 이 비극적 사건에 내재하는 어떤 본질적인 것을 직시하고 있었고 이 작품에 그것을 녹여내고 있다. 그는 기자의 눈과 소설가의 가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 트루먼 카포티는 고향 친구였던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와 함께 이 사건을 6년간 취재하고 집필한 끝에 결국 걸작 <인 콜드 블러드>를 완성한다. 이 작품으로 명예와 부를 누렸지만 사생활에 있어서 절제를 모르는 사람이라 약물 중독으로 죽었다. <인 콜드 블러드> 이후에 그럴듯한 작품을 남기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 작품 하나 만으로도 그는 불후의 업적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 콜드 블러드>는 그를 둘러싼 모순으로 가득찬 작품이다. 논픽션이면서 소설이라는 작법 상의 모순이 첫째라면, 범인 중 한 사람인 페리 스미스에 대한 애정의 모순이 두 번째이다. 작품을 읽다보면 그냥 불량끼 있는 건달풍의 딕 히콕보다는, 감성적이고 예술적 재능이 많은 신비로운 사나이 페리 스미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더욱 느낄 수 있는데, 항간에는 작가가 페리를 사랑해서 그랬다는 말도 떠돌았다. 실제로 페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증명하는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작가는 페리가 빨리 사형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소설의 끝을 하루속히 냈으면 하는 욕망이 있었을테고, 주인공이 사형되는 극적인 결말이 작품의 성공을 더욱 높일 거라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애정을 느끼는 대상이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 속의 격렬한 모순이 그 두 번째인 것이다. 이처럼 <인 콜드 블러드>는 모순으로 가득차 폭발할 듯한 작가의 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토록 진실한 이야기 속에서 이토록 개인적인 모순이라니...도무지 모를 작품이다. 하지만 단언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걸작이다.

 

"정말로 진지한 대작을 쓸 생각을 하고 있어. 그 작품은 소설과 아주 똑같을 거야. 한 가지 다른 점만 빼면. 그 안에 적힌 모든 단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진실이라는거지."

- 트루먼 카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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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로 2006-04-1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작품인 건 알겠는데, 막연한 윤리적 망설임 같은 것이 생겨요. 이런 글쓰기에 대한.

물만두 2006-04-1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답답해도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어요.

jedai2000 2006-04-11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이런 방식의 글쓰기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성공의 열망으로 인해 그것이 보이지 않았겠죠.

물만두님...그렇습니다. 꼭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고 확신합니다..
 
계간 미스터리 2006.봄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 산다슬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 줄 모른다고 한 3년전쯤 추리소설을 다시 접하고 나서 줄기차게 그쪽만 파고 들었다. 나름대로 꽤 많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특히 반성스러운 부분이 국내 작품들을 별로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좀 챙겨볼 예정이다. 읽지도 않으면서 우리나라에는 읽을만한 작품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말이 안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계간 미스터리>같은 미스터리 전문 잡지는 일단 반갑다. 우리나라 추리작가들의 단편도 볼 수 있고, 다양한 기사들로 미스터리에 대한 견문을 넓힐 기회를 제공하니 말이다. 물론 솔직히 아직은 결제를 하기까지 약간은 망설이게 만드는 완성도에 머물고 있지만, 판매 부수가 늘어나고 내용을 더 알차게 꾸미려 노력한다면 미국의 <앨러리 퀸스 미스터리 매거진>이나 일본의 <파우스트>같은 수준높은 미스터리 전문지로 탈바꿈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잖은가.

 

봄호의 특집1은 경찰 소설의 아버지 에드 맥베인을 다루고 있다. 싸이월드에서 <화요추리클럽>을 운영하고 계시는 장경현 님과 그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박세진 님, 전두찬 님이 기고하셨다. 작년에 타계한 에드 맥베인은 50편 남짓한 많은 작품 속에서 가상의 도시 이솔라의 경찰, 87분서를 그렸다. 그는 87분서의 형사들의 활약을 현실감 넘치게 그려 경찰 소설의 아버지라는 영광스런 별명을 얻었다. 국내에도 10권 정도 출간이 되었는데, 시중에서 쉽게 구해볼 수 있는 건 2권에 불과하다. 장경현 님은 이솔라를 휩싸고 있는 분노와 증오의 실체를 규명하고 있다. 상당히 전문적이고 비평적인 느낌의 글로 87분서 시리즈를 좋아하는 분들은 꼭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박세진 님의 글은 87분서와 에드 맥베인에 대한 이런저런 소사와 흥미거리를 소개하며, 전두찬 님은 87분서는 어떻게 경찰 소설의 아이콘이 되었는가란 주제로 글을 진행하고 있다. 박세진 님과 전두찬 님의 글은 재미있었지만, 이솔라의 인종 문제를 언급하는 부분 등 겹치는 내용이 간혹 보여 편집이 필요했다고 생각된다. 이 잡지는 기고문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 것 같다. 그로 인해 기고자의 의도가 명확히 전달되는 장점은 있지만, 같은 내용이 중언부언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대부격인 김성종 선생님의 인터뷰도 있다. 그동안 스티븐 킹, 딘 쿤츠 등의 외국 작가와 가상 인터뷰를 실었었는데, 재미있지만 솔직히 이 대가들을 직접 만나서 당당하게 인터뷰를 해내는 현실이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되므로 씁쓸한 느낌도 있었다. 차라리 국내 추리작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훨씬 나은 것 같다. 가상의 인터뷰가 아닌 작가의 육성을 듣는 재미도 있고, 또 선배 추리작가들의 창작의 비결을 듣고 한수 배워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다 못해 반면교사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김성종 선생님의 신작 이야기와 새로 창간할 미스터리 잡지 이야기, 외국 추리작가협회와의 연계 등 흥미로운 포부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꼭 바라는 대로 이루시기 바란다.

 

특집2는 아마추어 추리소설의 투고 모음이다. 이 특집은 상당히 재미있는데, 완성된 작가가 아닌 아마추어 작가들의 약간은 설익은 느낌이 나는 작품들에서 나름대로의 신선함과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경로 님의 <치명적인 쳇바퀴>는 에드 맥베인 특집이 있는 호답게 경찰 소설이다. 목포 여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쭉 읽히는 맛은 있는 작품이고, 무엇보다 걸진 사투리가 일품이다. 내내 미소를 띄우며 읽었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이나 사건 해결의 과정에서는 아이디어가 부족했고,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문장도 좀 더 갈고 다듬어야 할 것 같다. 김주동 님의 <별장>은 문장력이 좋았지만, 중요한 단서인 손수건을 둘러싼 공방이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솔직히 그 손수건이 뭐 어쨌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김현아 님의 <4층 B열람실, 좌석번호 253번>은 소재가 아주 실감나고 재미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흔히 일어나는 물품 절도와 몰래 카메라라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대학생이라면 크게 공감할 소재를 잘 선택한 것은 돋보인다. 그러나 소재가 나쁘지 않은데 비해 인간을 잘 그렸나 하면 그건 아니다. 절도범 여자가 목표 대상의 자리에 앉아 도둑질을 하고 있을 때, 변태남에게 몰래 카메라를 당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결국 둘 다 잡히는데, 이건 납득할 수 없다. 과연 그 상황에서 소리를 지를 수 있는 도둑이 있을까? 작가도 여기가 좀 걸렸는지 뒷부분에서 그 도둑녀가 참으로 당찬 여자였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건 변명에 불과하다. 추리소설은 그렇잖아도 고도의 인공성으로 인해 현실감이 부족하게 되기 싶다. 사건의 인공성은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 속에서 숨쉬는 인간의 행동만은 공감가게 그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추리'는 될 수 있어도, 좋은 '소설'은 될 수 없다. 이민재 님의 <미녀와 야수>는 초반 플롯이 흥미로운데 비해 결국 신파적인 사랑 이야기로 맺음을 하고 있다. 협박자에게 한 두번의 반전을 더 주었으면 어땠을가 싶다.

 

그외에 사노 요의 단편 추리소설을 각색한 만화 <심리살인>은 그전에 읽어본 작품인데 소름끼치는 반전이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다. 그동안 실었던 만화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다. 기성 작가로 김차애 님의 <다정다감>이 실려 있는데, 마지막 문장이 조금 짤린 것 같다. 편집상의 실수로 보인다. 운노 쥬자라는 옛날 일본 미스터리 작가의 <파충관 사건>은 옛날 작품답게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예전 손맛을 느낄 수 있다. 권일영 님의 <주마간산 일본 미스터리 문학사>는 분량이 조금 더 많았어도 좋을 뻔 했다. 1950년대 이전의 일본 미스터리사를 인물 중심으로 알기 쉽게 보여준다. 이런 기획은 아예 10년 단위로 매호 연재하고, 나중에 따로 책으로 묶어서 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서해 페리 호 침몰사건>은 그냥 신문 기사 발췌에 그친 것 같고, <연쇄살인자 유영철의 성장배경과 정신상태>는 꽤 재미있다. 사회의 격차가 커지니 못 가진 자의 대상을 가리지 않는 증오 범죄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증오 범죄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여성에 의한 스토킹 범죄의 유형>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여성 스토킹이라는 범죄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흥미로웠고, 이런 내용으로 추리소설을 써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다른 호보다 읽을거리가 많았다. 특히 아마추어 추리소설 특집이 상당히 좋은 기획이었던 것 같다. 기성 작가들보다 확실히 떨어지지만 그래도 추리문학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은 살아 숨쉬는 아마추어 작가분들의 작품들을 읽으며 이런저런 재미를 많이 느꼈다.  그분들께서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더 열심히 작품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덧붙여 <계간 미스터리>를 만드시는 분들도 항상 두근거리는 초심을 가지고 더욱 훌륭한 미스터리 전문지를 만들어내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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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7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dai2000 2006-04-07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걱/.-_-;;; 빨리 수정해야겠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만두 2006-04-07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같은 걸 느끼셨군요^^

jedai2000 2006-04-0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쉬움도 만족도 대체로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번 겨울호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그런대로 좋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