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의 기적
아사쿠라 다쿠야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성공한 피아니스트가 독일 유학 중에 강도 사건에 휘말린 가족을 도와주다 손가락을 잃는다. 피아니스트에겐 치명적인 사고지만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강도 사건 와중에 피살된 가족의 외동딸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딸은 선천적인 지능 장애가 있어 3살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이 딸이 또 선천적인 재능이 있으니 한 번 들은 어떤 피아노 곡도 자유자재로 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신이 공평하기는 한 모양이다.

 

아무튼 피아니스트와 외동딸은 일본 각지를 돌며 피아노를 연주하며 살고 있다. 이번에 방문할 곳은 뇌를 연구하는 센터. 그곳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주회를 열 계획으로 센터에 방문한 두 사람은 직원인 수다스러운 여자가 피아니스트의 고교 후배임을 알게 된다. 작품은 센터에서 4일을 함께 보내는 세 사람에게 크나큰 기적이 찾아온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꾸며진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라는 잡지에서 신인 작가 공모전을 열어 그중 대상을 탄 작품이 바로 <4일간의 기적>이다. 솔직히 미스터리라고는 할 수 없고, 눈물 빼는 감동 스토리에 가까운데 어떻게 수상을 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가 아사쿠라 다쿠야는 프로필을 보니 레코드 회사 등에서 음악 관계일을 했다고 하는데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이고, 작품 중에도 피아노곡이 중요한 모티브로 쓰인다. 피아노라는 소재를 잘 요리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작가는 무려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한 사람답게 작품을 시종일관 안정적이고 차분하게 조율하고 있다. 착 가라앉은 듯 잔잔한 분위기가 좋다. 이런 가슴 따뜻한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생기는 가을이나 겨울에 출간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나 아무리 날고 겨도 신인 작가의 작품에는 한계가 있는 법. <4일간의 기적>에는 불만스러운 부분도 많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말이 너무 많다. 중요한 설명이나 깨달음, 사건의 본질 등에 대한 부분이 전부 등장인물의 대사로 처리되는데, 별다른 장치없이 대화로만 모든 걸 풀어나가니 지치게 된다. 특히 여주인공의 대사량은 압권이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어마어마한 대사를 쏟아내더니, 작품 후반부 자신의 지난 인생을 소개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거의 신세한탄 판소리 완창에 가까울 정도다. 시골에 시집을 가서 갖은 고생을 하다 애를 못나 쫓겨나고, 얼쑤~! 뭐 이렇다는 거다.

 

소설에서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손쉬운 건 아무래도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 발언하는 것일게다. 그러나 거의 모든 정보 전달을 손쉽게 대사로만 처리하는 것은 그만큼 안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꼭 모든 걸 설명할 필요는 없다. 빙의라는 비슷한 소재를 다룬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을 보면 <4일간의 기적>같이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이 생략과 압축으로 작품에 한층 더 운치를 주고 있다. 물론 베테랑 중의 베테랑 히가시노 게이고와 신인 작가를 동시에 비교하는 것은 좀 가혹한 처사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외에도 4일간의 이야기다 보니 생각보다 에피소드가 부족한 점과 시종일관 잔잔한 분위기를 유지하려 노력하다 보니 감동의 대홍수를 안겨줘야할 클라이막스에서도 폭발적인 맛을 주지 못하는 점도 걸린다.

 

역자후기에도 적었듯이 신인상이라는 것은 현재의 완결성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고 주는 것이라 믿는다. 아사쿠라 다쿠야는 <4일간의 기적>으로 가능성만은 제대로 입증했다고 본다. 앞으로 더 정진하여 한층 더 좋은 작품을 써내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그다지 큰 느낌을 받지는 못했지만, 뒷부분 몇 장면에서는 상당히 울컥했다는 점을 밝히며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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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5-06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좋았어요^^

jedai2000 2006-05-06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별루였습니다..ㅋㅋ 그래도 신인 작가의 작품치고는 크게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죠..^^;;
 
디지털 포트리스 1
댄 브라운 지음, 이창식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댄 브라운은 현재 세계 출판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2천만 부를 팔아치운 <다빈치 코드>는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들어져 곧 개봉될 예정이고, 신작으로 알려진 <솔로몬의 열쇠>도 많은 출판 관계자들이 군침을 삼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다빈치 코드>는 작가의 네 번째 작품으로 출간 순서대로만 보자면 <디지털 포트리스>가 데뷔작이다. 참고로 <디지털 포트리스>의 다음 작품이 랭던 시리즈 제1작인 <천사와 악마>, 그 다음이 <디셉션 포인트>이다. <다빈치 코드>가 워낙 많은 사랑을 받자 전작들이 국내에는 후속 출간된 양상인데, 이웃나라 일본을 비롯해 세계적으로도 댄 브라운의 초기작들이 나중에 자국에서 출간되는 재미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정보부라고 할 수 있는 NSA에서는 국가 안보와 테러 방지를 위해 모든 이메일 암호를 해킹할 수 있는 트랜슬터라는 슈퍼 컴퓨터를 만든다. 암호를 해독하는 데는 버고프스키 원칙이라는 것이 적용되는데 사실 이게 단순 무식한 방법이다. 버고프스키 원칙은 모든 암호는 원칙적으로 해독 가능하다는 것인데, 모든 가능한 조합을 적용하다 보면 암호는 언젠가는 풀릴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숫자 4개로 이루어진 암호 '7392'가 있다고 하자. 0000부터 9999까지 대입하다 보면 '7392'가 되는 순간에 암호는 풀릴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이 암호를 풀기 어려운 것은 일일이 대입할 시간이 없어서이지 암호가 어려워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슈퍼 컴퓨터 트랜슬터는 웬만한 암호는 6분 이내로 끝낼 수 있다. 트랜슬터가 있는한 NSA는 세계의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암호가 풀린다면 일반 시민들의 정보도 무제한 해킹당할 수 있다. 이 사실에 불만을 품은 천재 컴퓨터 전문가는 트랜슬터를 무너뜨리기 위해 절대 풀리지 않는 암호 '디지털 포트리스'를 만든다. 디지털 포트리스의 작동 원리도 간단하다. 위에서 예를 들은 '7392' 암호를 다시 한 번 보자. 트랜슬터가 '7392'를 맞추는 그 순간, 디지털 포트리스는 회전해 암호를 바꾼다. 이렇게 되면 트랜슬터는 절대로 암호를 풀 수 없게 된다. 결국 영원히 풀리지 않는 철옹성의 요새가 되는 셈이다. 만약 테러리스트나 나쁜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 디지털 포트리스를 이용해 이메일을 보내면 NSA는 막을 수 없게 된다. 어떤 암호도 해독할 수 있는 트랜슬터와 절대 풀리지 않는 암호인 디지털 포트리스의 창과 방패 대결이 흥미롭게 진행되는 것이다.

 

댄 브라운의 처녀작이지만 부족한 부분이 거의 없다. 일종의 정보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본인 같은 컴맹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알기 쉽게 쓰여져 있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무엇보다 한 편의 잘 만든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속도가 빠르고 박진감이 넘친다. 안전벨트를 매고 보시라는 충고를 드리고 싶을 정도다. 작가 댄 브라운의 강점은 하이 컨셉을 잘 잡는다는 것인데, 소재만 갖고도 책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드는 역량이 돋보인다. <디지털 포트리스>의 트랜슬터와 디지털 포트리스, <천사와 악마>의 일루미나티와 갈릴레오, <다빈치 코드>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예수 등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능력은 타고났다고 본다.

 

약간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독창성이 좀 부족하다는 것뿐. <디지털 포트리스>의 주인공들은 어디서 많이 본듯한 모험을 하며, 어디서 많이 본듯한 위기를 겪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탈출을 한다. 그것은 다른 스릴러 영화나 소설의 익숙한 컨벤션이나 클리쉐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별로 독창적이지는 못하다. 헐리웃 스타일의 자동차 추격전, 몇 번의 뒤집기와 초를 다투는 시간 싸움 등 한 마디로 뻔하다. 물론 뻔한데도 불구하고 시선을 제압하는 능력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댄 브라운은 심지어 본인의 작품들도 복제를 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포트리스>,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의 주인공들은 거의 국화빵 틀에서 만들어진듯 비슷하며, 그들을 뒤쫓는 킬러의 존재나 이국적인 곳에서의 모험담 등이 거의 유사하다. 몇 번은 통하겠지만 계속 이런 식이면 언젠가는 독자의 외면을 받지 않을까 싶다.

 

<디지털 포트리스>는 작가 댄 브라운의 데뷔작이지만 무척 빠르게 읽히고 정신없이 재미있다. 뭐라뭐라 욕을 들어도 결국 읽을 수 밖에 없는 작가다. 최근 국내 출간된 <디셉션 포인트>나 앞으로 나올 <솔로몬의 열쇠>도 아마 나오자마자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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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5-0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를 읽었는데, 이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빠르게 읽히고 정신없이 재미있다니 기대가 됩니다.

페일레스 2006-05-02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은 차라리 시나리오 작가가 됐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 빈치 코드도 읽다가 집어던져버린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ㅅ-;

jedai2000 2006-05-02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님...가볍게 시간 때우기 용으로는 더 없죠. 어느날 정말 무료하고 답답한 날, 함 읽어보세요. 시간이 금방 갈 거예요. 재미도 있구요. ^^;;

페일레스님...워낙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듯한 소설이죠. 너무 큰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가볍게 볼만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지 부족한 작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 전3권 세트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윤정 옮김 / 손안의책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며칠 전 컴퓨터가 고장난 관계로 암흑기가 찾아 왔습니다. 도무지 할 게 없더라구요. 기왕 이렇게 된 거 독서나 하자 싶어 집에 있는 책들을 뒤지다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를 잡았습니다. 전3권이라 컴퓨터가 수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이틀동안 충분히 읽을 수 있겠다 싶었지요. 어제 다 읽고 짧은 독후감을 남깁니다. 아마 컴퓨터가 있었으면 이렇게 빨리 읽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눈이 몹시 오던 어느 날, 츠지무라 미츠키를 포함한 고등학교 3학년생들이 등교를 합니다. 그런데 학교에 와보니 평소에 친한 8명만이 등교를 해 있고, 그 외에 학교는 텅 비어 있습니다. 다른 교실과 심지어 교무실에도 아무도 없습니다. 텅 빈 학교에서 기다리던 그들은 오늘 휴교인가 보다 하고 밖으로 나가려합니다. 하지만 문은 모두 잠겨 있고, 창문도 열리지 않습니다. 완전히 갇혀 버린 그들. 그순간 그들은 깨닫습니다. 평소에 친한 멤버들이 원래 7명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게다가 그 학교에서는 2달 전 자살을 한 학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명은 유령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소름이 돋아 견딜 수 없는데 무언가에 홀린 듯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자살한 아이의 이름이나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도입부가 아주 흥미로워서 빨려들어가듯이 읽었습니다. 어찌 보면 공포소설 같기도 하고, 환상 소설의 냄새도 짙게 풍기며 약간의 미스터리 느낌도 있습니다. 이 작품이 독특한 대중소설에 수여하는 메피스토상 수상작이라는 이유가 공감이 가더군요. 작가 츠지무라 미츠키는 등장인물 중의 한 명에 자신의 이름을 부여하는 등 독특한 분위기를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신인 작가 답지 않은 안정된 필력에 긴 작품 내내 긴장감을 잃지 않는 등 형편없는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스터리 작품을 기대했다간 분명히 실망할 것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이나 사건, 분위기 모두 초현실적인 바탕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이 기묘한 사건의 진상을 해명하지는 않고 있어요. 대충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있고, 웬만큼 흥미진진한 내용을 다루면 모두 미스터리라는 넓은 범주에 포함시키는 일본식 미스터리의 기준이 아니라면 절대로 미스터리 소설로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고립된 학생들이 한 명씩 죽어(?) 나갈 때의 음산한 분위기에서는 영락없는 공포소설의 분위기가 지배하고, 자살한 학생의 원한을 풀어주는 초현실적인 씻김굿의 이미지는 환상 소설에 가깝습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줄 때는, 청춘소설과 성장소설 같기도 해요. 한 마디로 잡탕 장르의 대중소설입니다. 혹시 보실 분들은 미스터리라는 레테르를 떼어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전3권, 1,000페이지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에 학생들 모두의 과거사가 제시되므로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학생들의 지난 이야기는 어떤 것은 공감이 가고, 어떤 거는 아니고 뭐 그렇습니다. 어쩌면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되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  작가는 일본인 특유의 자잘한 것에 대한 심리 묘사를 극한까지 추구하므로 질리기도 합니다.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문장력에 한계도 보이구요. 장점도 많지만 결점도 많이 보여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작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역시 취향에 따라 평가가 많이 갈릴 독특한 소설이라는 점에 그나마 의의가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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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28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샀는데 ㅠ.ㅠ 좀 참을걸... 미스터리가 아니라굽쇼 ㅠ.ㅠ

jedai2000 2006-04-2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일본에서도 미스터리가 잘 팔리니까 작가도 그런 걸 의도했더군요. 독자에의 도전도 있어요..ㅋㅋ 저는 뭐 취향에 안 맞았지만, 만두님께서는 재미있게 볼 수도 있으니까 미리 실망하지 마시구요. 아주 넓게 보면 미스터리이기도 해요. ^^;;

Koni 2006-04-2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참고 있었는데, 리뷰를 보니 사고싶은 마음도 들고, 무서운 게 싫으니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기도 합니다.

jedai2000 2006-04-28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님...무서운 걸 싫어하시나 보군요. 어쩌죠. 꽤 오싹한 장면들이 많아요... 그래도 그렇게 부족한 작품은 아니니 시간 나실 때 한 번 읽어보세요. ^^;;
 
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공군: 나 왔다. 뭐 하냐?
강군: 어, 왔냐. 저기 냉장고에 우유 있으니까 꺼내 마셔라.
공군: 내가 애냐. 우유는 됐고, 시원하게 맥주나 한 잔 하러 가자.
강군: 시원한 소리한다. 네가 살 거냐?
공군: 우유, 냉장고에 있다고? 그나저나 무슨 책을 읽고 있길래 쳐다도 안 보냐?
강군: 응, 조금만 기다려. 다 읽었어.
공군: 윽, 이 우유 상했어!
강군: 그러냐. 그럼 버려라. 방금 전까지 기시 유스케의 <유리 망치>를 읽고 있었다.


공군: 오! 기시 유스케는 나도 잘 알지. 네가 빌려준 <검은 집> 작가 아냐.
강군: 기억하네.
공군: 너무 인상 깊은 책이라 아마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거다. 내가 그거 읽고 혼자 엘리베이터도 못 탔잖냐. 어찌나 무섭던지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 야.
강군: 나도 그랬어. <검은 집>에 나오는 검은 집이야말로 진짜 지옥이지.
공군: 그럼 <유리 망치>도 호러 소설이냐? 내가 원래 호러를 좋아하잖냐.
강군: 이런 호러를 좋아하는 호러 자식 놈 같으니라고.
공군: 아흑, 썰렁해.
강군: 미안하다. <유리 망치>는 공포 소설은 아냐. 보다 정통적인 추리소설이지.


공군: 기시 유스케가 그런 것도 쓰냐?
강군: 원래 다채롭게 쓰잖아. <검은 집>이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 살인범을 등장시킨 사이코 스릴러라면, <푸른 불꽃>은 범인의 시점에서 범죄를 그리는 도서추리소설, <천사의 속삭임>은 약간 메디컬 호러 느낌이 나고. 우리 나라에 나온 건 이게 다인데, 일본에 출간된 다른 작품들도 장르가 전부 다르다고 하더라.
공군: 대단하네. 그렇게 다채로운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니.
강군: 그럼 대단하지. 허구헌날 술타령이라는 단 한가지 관심사 밖에 모르는 누구와는 다르지.
공군: 그래도 순수한 추리소설은 의외다.
강군: 그러게. 아까 말했듯이 저번 <푸른 불꽃>도 도서 추리소설이었는데, 4년 반만에 돌아온 <유리 망치>는 아예 트릭을 중시하는 본격 추리소설이더라구. 작가 관심사가 호러에서 미스터리로 슬슬 옮겨 간다는 느낌을 받았어.
공군: 아무튼 대단한 작가네.
강군: 그렇지.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가 나와야 돼. 다양한 소재와 그에 걸맞는 완성도로 독자들을 완전히 넉다운시키는 그런 작가 말야. 히가시노 게이고나 심포 유이치, 기시 유스케 같은 작가들 말야. 이런 작가들이 팍팍 나와서 독서 행위 자체가 재미있다는 걸 알려야 우리나라 소설 시장이 확 살아나지 않을까 싶어. 독자들이 읽고 재미있어서 또 찾아보게 만드는 글을 써야지, 자기들만 신나서 소설쓰는 그런 작가들은 좀 문제가 있지.
공군: 아주 국회로 나가라. 백수 주제에 너나 걱정하세요.
강군: 너 집에 안 가냐?


공군: <유리 망치>는 무슨 내용이야?
강군: 아주 흥미진진하지. 고층빌딩 최상층에 있는 회사 사장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 사장이 죽어 있는데, 유리창은 강화유리고. 복도에는 적외선 센서가 달려있는 감시 카메라가 있어. 그 감시 카메라에서 녹화되는 영상은 1층에 있는 경비원이 시종 눈을 떼지 않고. 완전 철벽 밀실이지. 외부에서의 침입은 불가능하다고 본 경찰은 사장실과 맞닿아 있는 전무실에서 혼자 있었던 전무를 체포하지. 전무실과 사장실 중간에는 문이 있어서 복도로 안 나가도 몰래 들어갈 수 있거든.
공군: 밀실 트릭이네.
강군: 그렇지. 철벽 밀실을 깨는 게 이 작품의 최대 재미야. 그래서 탐정 역을 맡은 사람이 방범 컨설턴트야. 방범 설비 전문가인 그가 외부에서의 침입 가능성을 조사하는 거지. 조수 역을 맡은 사람이 전무 변호사인 여자고. 두 사람이 각자 밀실 트릭을 깨기 위한 가설들을 세우는데, 이게 참 재미있어. 가설들 모두가 말이 되는, 그럴듯한 가설인데 꼭 한 끗발이 모자라서 밀실 파해에 실패하는 거라. 이런 가설들이 대여섯개 나오는데 아주 기가 막히지.
공군: 그런데 본격 추리소설치고는 좀 두껍다.
강군: 응. 작가의 시도가 또 있는데, 1부는 방범 컨설턴트와 변호사가 각종 단서들을 수집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본격 추리소설 구조고, 2부는 범인의 입장에서 완전범죄를 기도하는 모습들을 세세하게 그리는 도서 추리소설 구조거든. 나중에 하나로 합쳐지지만 말야. 두 가지 알싸한 맛을 다 느낄 수 있는 세련된 구성이야.


공군: 이런 건 원래 밝혀지는 트릭이 핵심이잖아?
강군: 그렇지. 그런 면에서 <유리 망치>의 핵심 트릭은 사실 좀 단순한 면이 있지. 차라리 그전에 실패로 끝난 가설들이 재미는 더 있어. 핵심 트릭이 너무 단순해서 읽고 나서는 좀 멍했어. 하기사 제일 단순하게 보이는 트릭이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은 트릭이니까. 작가 기시 유스케는 원래 취재를 좋아한대. 이 작품에서도 엄청나게 취재를 했구나 싶은 대목들이 있는데. 방범과 불법 침입의 방법에 대해 진짜 많은 이야기가 나와. 특히 거기 필요한 기계 및 공구 설비들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잡지. 꽤 복잡한 이야기지만, 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하게 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이게 힌트야. 하하.
공군: 그렇구나. 나도 읽어봐야겠는걸.
강군: 트릭이 조금 약한 감이 있지만 요즘 보기 드문 본격 추리소설을 멋지게 써낸 것에 점수를 더 주고 싶어. 물리적,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트릭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트릭을 만들기 위해 아주 발버둥을 치는 걸 보니 좀 불쌍하기도 하더라. 여기는 스포일러니까 말 못하는데, 확실히 요즘 본격 추리작가들이 어렵긴 할 거야. 선배 작가들이 트릭을 다 동내버렸으니까 말야.
공군: 캐릭터는 어떠냐?
강군: 기시 유스케가 플롯에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 등장 인물도 매력있게 그리지. 특히 탐정 역의 방범 컨설턴트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위험한 향기를 풍기는 인물인데 독특하지. 범인도 나름 매력적인 인물이고.
공군: 재미있겠군. 이 책 빌려간다.
강군: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목이 마르냐?
공군: 하하. 나의 트릭에 걸려들었구나. 계속 말을 시켜 갈증을 유도하는 고도의 심리 트릭! 이제 맥주 마시러 가자!
강군: 크헉..너, 이 자식!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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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24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는 안 읽습니다^^ 저도 봐야해서요^^

jedai2000 2006-04-25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재미있어요. 만두님이라면 당연히 재미있어하시리라 믿습니다. 나중에 리뷰 쓰시면 꼭 읽어볼게요. ^^;;

Apple 2006-05-0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형식이 너무 재밌다는...^^;; 꽁트를 보는것같아요~
저도 곧 볼생각...^^

jedai2000 2006-05-06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매번 비슷한 리뷰만 올리다보니 쓰는 저부터도 재미가 없어 좀 바꿔봤는데 반응이 좋더라구요. 가끔 등장시킬 예정입니다. ^^;;
 
고독의 노랫소리 - 제6회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 수상작
텐도 아라타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관계를 얻는다. 어쩌면 그 관계라는 것은 인생이 주는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행복과 편안함, 즐거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 소중한 사람들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어둡고 암울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면 내 곁에서 항상 웃음지어 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한층 커진다.

 

그러나 늘 만족을 못 하는 게 사람의 병. 어느 순간에는 필연적으로 맺어야 하는 많은 관계들이 피곤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집에 틀어 박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기분을 느껴봤을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을 혼자 마음껏 읽고 싶고,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듣고 싶을 때 만나자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몰래 이맛살을 찌푸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못지 않게 혼자만의 시간에서 느끼는 고독도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느끼는 고독에 대해 많은 발언을 하고 있다. 거칠게 봐서 연쇄살인마와 형사가 대결하는 사이코 스릴러로 분류될 수 있지만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작가가 말하는 고독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책장을 다 덮고 나서도 여운이 길게 남는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이다.

 

어렸을 적 자신의 실수로 인해 친한 친구가 실종되고 결국 시체로 발견된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여형사와 일체의 관계를 거부하고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침잠하는 음악가 지망생이 등장한다. 우연한 계기로 서로를 알게 된 두 사람이 차가운 고독을 넘어 서로를 느끼고 위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일종의 성장소설일뿐 추리 서스펜스는 아니다. 그래서 연쇄살인마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도 전형적인 악인은 아니다. 미혼모 슬하에서 자란 그는 가족을 간절히 원한다. 따뜻하고 행복이 넘치는 가정. 대다수의 인간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그것을 얻기 위해 그는 역시 혼자 사는 여자들을 납치해 가족으로 삼으려 한다. 자신의 가족이 되길 거부하는 여자들을 잔인하게 난자한 후 버리는 연쇄살인마. 모두 고독에 몸부림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이 책을 읽는 모두가.

 

도처에 훌륭한 문장들이 넘쳐난다. 고독에 대한 작가의 발언이 특히 그러한데 몇몇 좋은 문장들을 발췌해 소개하려고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깊이 교감할 수 있는 뛰어난 문장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이 짧은 글에 담을 수 없을 정도다. <양들의 침묵>같은 서양의 사이코 스릴러와 유사한 이야기에 이런 깊이를 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밀리언셀러 작가 텐도 아라타의 비교적 초기작이지만 미래 대형 작가의 실력과 기품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대표작 <영원의 아이>보다 더 좋았다. <영원의 아이>가 대작을 의도하고 어깨에 힘이 팍팍 들어갔다면, 비교적 짧은 분량에 한정된 공간을 다룬 이 작품이 더 압축적이고 임팩트가 있는 것 같다. 그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는 대작보다 소품에 걸맞는다는 생각을 하는데 <고독의 노랫소리>가 바로 그의 장점이 최대한 발휘된 그런 작품인 것 같다. 물론 사건 해결 과정에서의 우연의 남발을 지적하거나 지나친 잔혹성 등이 거슬리는 독자도 있을 것 같지만 큰 흠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무덤처럼 잠든 도시에서 오아시스처럼 불빛이 밝혀진 편의점의 이미지나 도시의 뒷골목을 달리는 젊은 영혼들의 움직임이 발군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서 역동적인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이런 것이야말로 초기작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풋풋함이 아닐까 싶다. 책 뒷표지에 실린 홍보문구처럼 쫓는 자도 쫓기는 모두 외롭다는 공통점을 지닌 현대사회의 쓸쓸한 풍경을 절묘하게 그린 작품이다. 텅빈 방을 부유하는 고독의 노랫소리가 역시 텅빈 방에서 고독한 행위인 독서에 몰두하는 우리들의 가슴에 절묘하게 공명한다. 모든 것을 갖춘 뛰어난 소설이다.

 

 

별점: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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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4-23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읽고 싶은 생각이 팍팍 들도록 리뷰 쓰시네요. ^^

물만두 2006-04-23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독의 공명... 정말 좋네요~

상복의랑데뷰 2006-04-2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파주에서 원기를 회복하셨군요 ㅋ

jedai2000 2006-04-24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꼭 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재미와 감동이 모두 있는 소설이니까요.

물만두님...이 소설과 꼭 어울리는 말 같습니다.

상복의 랑데뷰님...원기 회복하느라 좀 오래걸렸답니다..^^;;

Apple 2006-05-05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최고..乃

jedai2000 2006-05-06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최고죠. ^^;; 정말 돋보이는 작가의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

bongbong 2007-04-19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표작 '영원의 아이' 보다 좋던데요..
정말 최고 d^^b
이런 작품을 만날때마다 책읽기의 행복이 절실히 다가옵니다.

jedai2000 2007-04-20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을 <영원의 아이>보다 높게 보는데, 그런 분들이 많지는 않더라구요. 동지를 만나 흐뭇하네요 ^^ 저력있는 작가의 저력있는 초기작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