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4
제프 린제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신예 스릴러 작가 제프 린제이의 첫번째 작품. 경찰이면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악당들만), 덱스터 모건이 주인공인 시리즈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소개하는 덱스터 모건 시리즈 제1작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의 원제는 'Dakly Dreaming Dexter'이고, 작년에 나온 덱스터 2탄의 제목은 <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Dearly Devoted Dexter>. 내년에 나올 3탄의 제목은 <Dear Daddy Dexter>이다. 보시다시피 앞자가 모두 D로 시작된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DDD 시리즈. 작가가 제목 코디에도 꽤 공을 들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작명이다.



읽어보니 미국에서 꽤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슈퍼 히어로물의 익숙한 설정들을 차용하거나 패러디했기 때문이었다. 슈퍼 히어로의 익숙한 공식.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능력을 보이던 소년이 커 가면서 자신의 성장 배경을 깨닫는다. 한동안 자신의 힘에 도취하던 소년은 마음으로 다가오는 조력자(<슈퍼맨>에서는 아버지, <스파이더맨>에서는 삼촌)에게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데, 이 과정에서 조력자는 대부분 죽어가면서 그런 충고를 한다. 이제 진정한 슈퍼히어로로써의 사명감에 눈뜬 소년은 제2차 각성을 하고 정의를 위해 싸운다.



덱스터는 영락없는 슈퍼히어로이다. 남다른 성장배경을 가진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각종 동물을 죽이는 걸 좋아했다. 보름달이 뜨면 살해 본능에 허덕이는 덱스터의 비밀을 깨달은 양아버지이자 경찰인 해리는 그의 본성을 억제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기왕 죽이는 거 앞으로는 악인들만 죽이라고 충고한다. 충실한 아들인 그는 양아버지 해리에게 각종 경찰의 수사 비법, 미행을 피하거나, 수사의 요령 등을 배워 슈퍼히어로(?)로 거듭난다. <배트맨>이 배트카나 배트랑 등의 무기 사용법을 연마하는 것과 비슷한 설정이려나. 이제 무적이 된 덱스터는 아예 경찰계에 투신해 수사에 참여하면서 동료경찰을 쏙쏙 피해, 악인만 골라 죽이는 '호미사이드맨 덱스터'가 된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덱스터는 마이애미 일대에서 자행되는 창녀 연쇄살인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마이애미에서 자신 말고 또다른 연쇄살인 예술가가 있다는 걸 알고는 흥분하는 덱스터. 그런데 신기한 것은 번번이 자기가 꾸는 꿈에 등장하는 장소가 살인이 벌어진 곳이었다는 것.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죽인 거 아닐까 하고 번민하는 덱스터. 몽유병 같은 걸로 말이다. 계속되는 덱스터의 꿈, 계속되는 살인, 계속되는 번민...덱스터의 '음흉한 꿈'의 정체는 무엇일지 추측해보기 바란다.



전체적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왜 미국에서는 TV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떠보고,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대강 어떻게 진행되는 이야기라는 걸 보여주지 않나. 그런 것처럼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도 덱스터 시리즈의 파일럿 역할을 한다. 경찰 연쇄살인범 덱스터와 인간의 감정이 없는 그를 흔들리게 만드는 의붓동생 데보라, 동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맘에도 없는 데이트를 했지만 어느결에 약간 가까워진 리타, 덱스터에게 본능적인 적개심과 의심을 품고 있는 독스 경사 등을 소개해 다음 편부터 이들이 어우러져 한바탕 난리를 피울 것임을 암시한다. 이번 작품도 볼만 하지만 앞으로가 더욱 재미있어질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드라마화도 된단다. <덱스터>라는 이름으로 11월에 방송 예정이니, 요즘 미국 드라마 애호가들도 많은 터라 국내에서도 곧 화제가 될 것 같다.



로렌스 샌더스의 '맥널리 시리즈'에 등장하는 유쾌한 탐정 아치 맥널리를 보는 듯한 덱스터의 유머 감각이 경쾌해, 끔찍한 살인 현장도 그리 부담스레 다가오지 않는다. 한 방의 반전이나 치밀한 추리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덱스터라는 매력있는 주인공이 읽기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 안에서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적당히 상쾌한 독서가 된다. 만약 이 작품을 읽은 분들이라면 다음 편을 몹시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속편 <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도 출간 예정이라니 안심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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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1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편을 봐야 이 시리즈의 진가가 판단될 듯 싶어요^^

한솔로 2006-08-14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과 물만두님이 보는 눈이 어쩜 이렇게 비슷하실까. 역시 고수란!

jedai2000 2006-08-1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동감입니다. 1편 결말은 사실 좀 심심하죠. ^^

한솔로님...그러게요. 저도 놀랐습니다. 저는 원래 제 리뷰를 쓰기 전에는 다른 분 것을 보지 않는데, 다 쓰고 읽어보니 거의 비슷해 놀랐습니다. 이거 알라딘 절대강자 물만두님 글 베낀 거로 오해 받으면 서재 생활 끝장일 것 같네요 -_-;; 글구 고수는 물만두님이시죠. ^^
 
돌원숭이 - 전2권 세트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미로같이 복잡하게 꼬인 플롯과 결말의 놀라운 반전이 트레이드 마크인 미국 스릴러 작가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제4작. 혹시 링컨 라임과 제프리 디버의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라도 영화 <본 컬렉터>는 보았으리라. 바로 그 <본 컬렉터>가 링컨 라임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였다. 미국에서도 대단하지만 국내에서의 인기도 날로 높아져만 가고 있는 이 시리즈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시리즈 이름이 '링컨 라임 시리즈'일 정도로 독특하고 매력적인 주인공 링컨 라임을 들 수 있다. 장님 탐정부터 유령 탐정까지 별의별 탐정이 다 나온 이 마당에 무엇이 독특하냐고? 링컨 라임은 사고로 인한 전신마비라는 장애를 겪고 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왼손 약손가락뿐. 물론 머리는 누구보다도 팽팽 잘 돌아간다. 전미 최고의 법과학자였던 그는 뉴욕 시 전역의 먼지 하나하나를 현미경으로 쓱 한번만 보면 그 출처를 밝혀낸다. 이성과 지성의 화신인 링컨 라임이 침대에 누워 오로지 두뇌로만 사건을 해결하는 짜릿함이 돋보인다.

 

그리고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재미는 역시 특유의 ‘팀 수사’일 것이다. 아무래도 라임의 운신이 부자유스럽다보니 몇 명의 조력자가 매 권 등장해 그를 돕는다. 그런데 이 조력자들이 또 전부 개성 만점이다. 스피드광에 명사수인 모델 출신 미모의 경관 아멜리아 색스는 순찰 도중 우연히 연쇄살인 현장을 접하고 라임의 현장감식 조수로 일하게 된다(<본 컬렉터>). 다들 짐작하다시피 두 사람은 여러 제약을 뛰어넘어 결국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해 멋진 콤비를 이룬다. 라임과 더불어 또 한 명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 ‘카멜레온’이라 불리는 잠입과 언더커버의 명수 프레드 델레이, 라임의 친구이자 사람 좋은 론 셀리토 형사, 미량증거물 분석조수 멜 쿠퍼, 신경질적인 라임을 유일하게 어르고달래며 갖고 노는 귀여운 간호사 톰 등이 환상적인 ‘링컨 라임 팀’이다. 이들을 보는 것만으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프리 디버의 진짜 장기는 사실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바로 ‘반전’이다. 이 작가는 무슨 반전강박증에라도 걸린 사람마냥 작품 말미의 반전에 집중하고 집착한다. 마치 독자와 한판 승부라도 벌이자는 것처럼 난이도 높은 반전을 제시하고, 여기에 홀딱 속아넘어가는 독자를 바라보며 껄껄 웃는 모양이다. 얄밉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이번엔 또 어떤 수법으로 우리를 속여줄까, 하고 속아 넘어가는 짜릿한 순간만 기대하게 되니 제프리 디버의 열성팬들은 모두 메조키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품을 볼 때는 절대 방심하지 말길.

 

라임 시리즈의 인기 요인은 대충 이 정도일 것이다. 시리즈 제4작인 <돌원숭이>도 이런 라임 시리즈 고유의 맛을 충분히 갖고 있다. 뉴욕 시를 향해 접근하는 한 척의 배. 중국의 밀항선이다. 스네이크헤드(蛇頭)라 불리는 중국 인신매매업자는 불법 밀입국을 통해 떼돈을 번다. 이번 밀입국을 주도한 스네이크헤드의 별명은 ‘고스트(鬼)’로 악명높은 범죄자이다. 그러나 링컨 라임은 고스트의 침투 경로를 미리 파악한 후 해상 경찰을 배치한다. 궁지에 몰린 고스트는 배를 폭파시키고 탈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중국 밀입국자 일가족을 놓친다. 고스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밀입국자들을 찾아 제거하려 하고, 드러내놓고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밀입국자 일가족은 살기 위해 자구책을 세운다. 고스트의 광란과 폭주를 막기 위한 라임 팀의 수사가 시작될 것은 물론이다.

 

비평적으로나, 판매로나 가장 평이 좋았던 제2편 <코핀 댄서>의 성공을 재현하려고 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살인 청부업자, ‘코핀 댄서’와 ‘고스트’가 등장하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그러나 고스트는 코핀 댄서만큼 매력적인 킬러는 아니다. 계략의 귀재, 코핀 댄서의 치밀함에 비하면 무자비하기만 한 고스트는 한 수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장기인 반전도 디버의 스타일에 익숙한 사람이면 무리없이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전작들에는 미치지 못한다. 책을 읽으면서 웬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에 집중하라. 라임 못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나온 링컨 라임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못하다는 게 개인적인 평가지만 그래도 이 작품을 만족스럽게 읽은 건 새로 라임 팀에 가세한 중국 형사 소니 리 때문이다. 거칠고 투박한 전형적인 이 동양 남자는 고스트를 좇아 지구 반바퀴를 넘어올 정도로 집념이 강한 진짜 형사지만, 유머스럽고 귀여운 면모가 있다. 초반부 과학만을 신봉하는 라임과 동양적 미신에 집착하는 소니 리가 대립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재미있게도 소니 리의 말이 매번 옳은 것으로 판명난다.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 우정을 느끼는 두 사람의 따뜻함이야말로 <돌원숭이>의 백미가 아닐까. 다른 세계를 살았지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아주 특별한 우정 말이다. 전반적으로 미국 작가 특유의 동양 문화에 대한 폄하가 걸리지만 두 사람의 관계만은 멋지게 그려냈다고 본다.

 

뒤표지 홍보 문구에 이런 말이 있다. “<돌원숭이> 이전에 디버를 읽지 않은 독자라면 책장에 빈 자리를 마련해 둘 것. 다른 작품도 들여놓게 될 테니”.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감히 말해 제프리 디버의 작품은 책으로 접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절정이다. 요모조모 따져보면 부족한 점도 눈에 띄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재미는 보장한다. 요즘같이 재미없는 세상에 그거면 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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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0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jedai2000 2006-08-0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디버의 진가를 알아주시는 물만두님! ^^

야클 2006-08-0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링컨라임 시리즈 최고네요. 역시나 멀쩡한 한권짜리 두권으로 쪼개놔서 얄미웠지만 재미만은 부인할 수 없네요. 참, 님 리뷰도 굿입니다. ^^

jedai2000 2006-08-02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도 링컨 라임 시리즈 팬이셨군요. ^^ 분권이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만큼 재미있는 책도 또 별로 없으니까요. 리뷰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내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1
키리노 나츠오 지음, 권남희 옮김 / 산성미디어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때 가족 외식을 나간 적이 있었다. 우리가 간 곳은 수많은 가족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한국의 외식 장소인 갈비집이었다. 그 나이만 되도 가족 간의 외식이나, 여행은 사실 인내심 수련이다. 지루한 시간을 억지로 보내며 밥을 먹다가 맞은 편 좌석의 가족을 보았다. 그쪽은 두 자녀가 초등학생쯤으로 보였는데, 어머니가 고기를 구워 일일이 먹여주고 있었다. 무심코 그쪽 어머니를 쳐다보고 나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모르는 사람을 두고 이런 식으로 나불대는 것은 굉장한 실례겠으나, 어쨌든 나는 그 육아와 살림에 찌든 듯한 그 어머니의 얼굴 깊은 곳에서 기묘한 생기를 느꼈다. 감출 수 없는 생명력 말이다. 그토록 생기가 있는 여자가 저렇게 지쳐 있다니...나는 씁쓸해졌고, 그 어머니의 얼굴은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다.

 

<내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원제:부드러운 볼)>에 꼭 이런 여자가 등장해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녀의 이름은 카스미. 흡사 야생동물처럼 생기가 넘치는 그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녀, 어린 시절의 카스미가 사는 곳은 홋카이도의 외딴 바닷가였다. 아무 것도 없는 바다, 음울한 파도만이 마치 악의를 가진 듯 모든 걸 쓸어가버리는 그런 곳이다. 카스미는 디자이너의 꿈을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출을 감행해 도쿄로 온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걸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던 도쿄마저도 그녀에게는 그 손을 벌려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평범한 남편과 결혼해 딸 둘을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산다.

 

남편의 친구인 이시야마와 사랑하게 된건 정체되고 고여있는 현실에 절망한 시점, 첫 딸 유카가 다섯 살이 될 무렵이다. 절망한만큼 파멸을  향해 무섭게 달려가는 두 사람. 두 사람은 각자의 가족과 함께 이시야마의 별장으로 가족 여행을 떠난다. 좁은 별장에서 각각의 배우자들의 눈을 피해  몸을 섞는 두 사람. 카스미는 생각한다. 이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가족을 모두 잃어도 좋아, 아이를 잃어도 좋아. 다음 날, 아침 잠깐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린 사이에 맞딸 유카는 정말로 사라져버렸다.카스미는 죄책감에 몸부림친다. 딸에게 시선을 떼서 아이를 잃을 빌미를 만든 것보다도, 딸을 잃어도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너무도 죄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카스미는 남아있는 모든 정열을 불태워 유카를 찾아나서지만 행방을 알 수 없다. 한편, 우연히 사건을 알게 된 전직형사 우츠미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몸이다. 죽기 직전 자원봉사를 할 요량으로 카스미를 도와 함께 유카를 찾는다.  

 

대담하고 관능적인 소설이다. 불륜에 빠지게 되는 카스미와 이시야마의 심정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지는데, 기리노 나쓰오라는 장인의 손길이 닿은 작품답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넓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마력에는 그저 놀랄 수밖에. 읽으면 읽을수록 이 여성작가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내용 요약만 보면 평범한 유괴된 딸을 찾아나서는 추리소설로 볼 수도 있지만 작가의 관심사는 그런 게 아닌 듯 사건의 정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카스미와 우츠미가 꾸는 세 번의 꿈 속에서 사건이 재현되고 각각 다른 범인이 나타난다. 세 백일몽 중 어느 것이 정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여러 가능성이 제시될 뿐이다. 

 

기리노 나쓰오의 인간 관계에 대한 통찰력과 기발한 관찰력이 특히 만족스러운데, 죽기 직전 자원봉사를 자처하는 우츠미는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카스미를 돕지 않는다. 기리노 나쓰오는 그런 인물은 절대로 그리지 않는다. 죽어가는 우츠미는 자신보다 더 불행한, 딸을 잃고 절망에 빠진 카스미에게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카스미도 곧 죽어야할 우츠미를 보고 역시 우월감을 느끼는 심술궂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불행함을 이해하게 되고, 공감하게 된다. 흔치 않은 감동이다.

 

쓸쓸한 작품이다. 아이가 사라진 후, 죄책감에 카스미와 이시야마는 이별을 했다. 이시야마의 마지막 말은 그렇게 좋아하던 낚시와 담배를 끊겠다는 것이었다. 자신도 뭔가 고통을 받고 싶다며...몇 년 뒤 우연히 재회한 두 사람. 이시야마는 술집 여자의 기둥서방이 되어 있었고, 담배도 거침없이 피고 있다. 그걸 보는 카스미의 쓸쓸함이란. 아무리 뜨거운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식게 마련이다. 반석같은 사랑의 맹세도, 굳은 결심도...

 

누구나 어른이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 점점 늙어가며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가야 한다. 카스미가 부모의 품에서 가출했듯, 유카가 엄마에게서 사라졌듯 말이다. 혹시 유카의 실종은 이렇듯 모든 인간의 근원적인 인생길을 상징하는 대목은 아닐런지...카스미가 바라보던, 황량한 바닷가의 쓸쓸한 파도가 환영처럼 뇌리를 떠나지 않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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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7-29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보관함에 넣어요..;;

물만두 2006-07-29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까지 사로잡는 대단함이 느껴지는 작품이죠^^

jedai2000 2006-07-3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후회하지 않으실 작품입니다. ^^

물만두님...예. 최후까지 만족시켜주는 작품이예요. ^^

bongbong 2007-04-15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리오 나츠오 작품중 최고최고
이 작품만한 역량을 다시보여주면 좋으련만


jedai2000 2007-04-15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그로테스크>나 <아웃>에 비하면 이 작품을 최고로 꼽는 분들이 적은데, 저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기리노 나쓰오의 최고작이라 생각합니다. 반갑네요 ^^
 
아임 소리 마마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그 여자 참 독하기도 하네,이다. 주로 여성, 나아가서는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는 악마성과 잔혹함, 파괴성을 날카로운 칼로 베듯 예리하게 그리는 그녀의 작품들은 쉽게 손이 가는 그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녀의 작품들을 집어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은 역시 그녀의 완벽한 필력 때문이리라.

 

<아임 소리 마마>의 주인공은 아이코라는 예쁘게 들리는 이름을 가진 여자이다. 그러나 그녀는 47살의 살찐 중년 여성으로 예쁜 것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다. 여성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이런 소설에서 흔히 주인공 여성을 아름답게 그려 독자들로 하여금 동정의 여지를 깔아두는 것과는 완전히 무관하게, 작가는 이 작품의 주인공 아이코에게서 일체의 여성적 매력을 제거한다. 오히려 작가는 아이코에게 혐오감을 주는 외모를 선물할 뿐이다.

 

창녀촌에서 자란 아이코는 엄마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뭇남성들을 상대하며 피폐한 정신 세계를 가진 창녀들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창녀촌이 폐쇄되자, 보육원에 들어갔고, 성장해서 그곳을 나와서는 살아남기 위해 몸을 팔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사람을 제거하고 살아왔다. 필요한 게 있으면 훔치고,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은 불태워 죽이며, 단순히 기분이 나빠져도 죽인다. 가장 갖고 싶었던 엄마를 가지고 있는 세살 아이는 질투심에 유괴해 버린다.

 

괴물이다. 그동안의 기리노 나쓰오 작품을 통틀어봐도 이런 인물은 없었던 것 같다. 읽어나가는 동안 아이코에게 완전히 질려버렸다. 해설을 보면 작가는 '섹스하는 어린 아이'를 그리려다가 앞뒤 가리지 않는 인물로 발전해버렸다고 말한다. 생존을 위해, 아이코는 섹스하는 어린 아이가 되고 싶었다. 섹스를 하면 돈을 받을 수 있고, 돈이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끌리는 외모'를 가지지 못했고, 결국 다른 방법으로 살아남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는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작가는 그동안 보여줬던 일관된 작품 세계를 여전히 펼쳐보인다. 흔히 여성적이라고 불리우는 어떤 것들의 해체 작업 말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모성애가 아닐까 한다. 그토록 찾고 싶던, 상상했던 마마와의 마지막 대면에서 아이코는 그토록 갈구해왔던 모성애도 사실은 허구적인 것, 실체가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아이코의 어머니는 어머니지만 딸을 증오했고, 증오했고, 증오했다. 아이코의 고통스런 깨달음은, 모성 신화가 깨어지는 걸 목도하는 독자의 고통스런 시선과 일치하며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불안감과 강렬함을 안긴다.

 

대체 기리노 나쓰오는 누구이길래 이런 글을 쓰는가. 예전에 지인들과 술을 마시며, 농으로 비슷한 연배의 여성 미스터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와 비교한 적이 있다. 미혼의 미야베 미유키가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소설을 써도 따뜻한 분위기와 인간적인 결말을 준비해놓는다면, 24살에 결혼해 평범한 회사원인 남편과 딸 하나를 둔 기리노 나쓰오는 처절하게 극단적이며, 인간과 인간의 교감 따위는 불가능하다고 외친다. 이 차이는 아마 결혼의 여부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야베 미유키는 결혼을 하지 않아, 세상이 아직 밝아보이는데, 기리노 나쓰오는 평범한 결혼 생활을 통해 지옥을 본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냥 농담이었는데 웬지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을 읽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특별한 경험이며, 그녀의 필력은 이미 일본에서는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코라는 괴물마저 경찰에게 붙잡혀 파멸하지 않을까, 독자들로 하여금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능력은 어지간한 작가는 하기 힘들다. 인간 사회의 비루한 것, 비천한 면들을 뻔뻔스럽게 제시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수법도 여전하다. 결국 엄마와 대면하면서, 그동안의 죄에 대해 약간이나마 눈을 뜨게 된 아이코에게 끝까지 구원의 길을 인도하지 않는 작가의 지독함에는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비록 그녀의 대표작에 비해 조금 짧은 분량으로 그 힘이 조금 부족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다른 대다수의 평범한 작가들과의 격차를 확인할 수 있는 역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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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 2006-07-1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책을 읽고싶도록 리뷰를 쓰시네요 님의 서재의 책들을 마구주문하고, 이것도 주문함에 넣습니다.

jedai2000 2006-07-19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keeffe 님...감사합니다. 과찬이시지만, 정말 제가 쓰면 사람들이 읽게 되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 추리소설 좀 많이 읽히게요..ㅋㅋ 기리노 나쓰오의 최고 걸작은 아니지만 좋은 작품이예요.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단 한번의 시선 1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하다 못해 떡볶이집만 해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대박집이 있는가 하면, 하루종일 파리쫓기 놀이만 해야 하는 쪽박집이 있음을 우리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엄밀히 들여다보면 사실 들어가는 재료는 거의 비슷하다. 겨우 떡볶이를 만드는데 얼마나 다른 재료로 차별화를 이루겠는가. 그러니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건 작은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중 스릴러 작가 할란 코벤도 이와 비슷하다. 고만고만한 스릴러 작가들이 난립해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할란 코벤은 자신의 작품을 성공으로 이끄는 1%의 비결을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이미 국내에 <마지막 기회>와 <밀약>이라는 두 작품이 소개된 할란 코벤의 신작 <단 한번의 시선>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는 거의 비슷하다. CF에서나 나올 듯한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초반에 등장한다, 그러다 모종의 사건으로 가정의 행복은 파괴되고, 주인공은 무엇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조사를 결심하고, 곧 그들의 불행은 과거에서 찾아온 어떤 망령에 기인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조사 과정에선 초인적인 능력의 킬러가 주인공을 따라붙어 위기 상황을 만들고,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난 주인공은 수많은 단서와 증거들을 헤집다 마침내 과거의 모든 비밀을 풀고 행복을 되찾는다. 이제 다시는 가정이 깨어지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순간에 또 한 번의 반전으로 모골이 송연한 순간을 맞는다는 결말로 끝나버린다. 이것이 할란 코벤식 떡볶이 제조법의 모든 것이다.

 

세 작품의 내용이 모두 이렇게 요약 가능하다면 독창성이 없다고 실망할 독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대박집 떡볶이를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처럼, 할란 코벤의 작품도 볼 때마다 재미있다. 아니,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몰입시킨다. 이 글을 쓰고(치고) 있는 지금의 내 손을 카메라로 찍어 올려두고 싶을 정도다. 오른손 검지 손톱이 아예 반도막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도 물어뜯어서 말이다. 매번 비슷한 소재를 다룬다지만 할란 코벤은 그것을 약점이 아닌 장점으로 승화시켜 하나의 익숙한 할란 코벤 식 스릴러를 만들어낸다. 농구 경기에서 우수한 포인트가드가 공을 자유자재로 드리블하는 것처럼, 그는 여러번의 비틀기와 뒤집기로 독자의 신경을 드리블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드리블되다 결국 경기의 끝에 다다르면 충격적인 몇 번의 주의를 기울인 다중 반전과 만나게 된다. 경기가 완전히 끝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명승부를 보았구나 하고 감탄하는 것뿐이다.

 

서서히 이름이 알려져가고 있는 화가인 그레이스는 남편 잭, 두 자녀와 함께 뉴저지 교외에서 행복한 삶을 산다. 주말에 다녀온 가족 소풍 사진을 찾아온 그레이스는 사진 속에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분명 이번 주말에 찍은 사진은 아니다. 자세히 보니 다섯 명의 남녀가 찍혀 있는데, 그중 한 명은 남편의 앳된 모습이 분명하다. 남편에게 이 사진은 뭐냐고 추궁하자, 그는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고는 그 길로 집을 나서 돌아오지 않는다. 청천벽력같은 사태를 만난 그레이스. 아이들은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울고...사실 가장 잭을 보고 싶은 사람은 다름아닌 그레이스일텐데 말이다. 그레이스는 사진의 비밀을 풀고, 남편을 찾기 위해 약간의 단서를 가지고 조사에 나선다. 유감스러운 사실은 그레이스가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길 원치 않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 그레이스와 잭은 곧 위기에 직면한다.

 

남편 잭이 사실 비밀조직의 킬러였다던가 하는 뻔한 이야기는 아니니 안심하기 바란다. 물론 그레이스가 <롱 키스 굿나잇>의 지나 데이비스처럼 기억을 잃은 암살자도 아니다. 아, 그레이스는 5일 정도의 기억이 사라지긴 했다. 이 작품은 위에도 언급한 작가의 장기인 정신없이 몰아치는 플롯 비틀기와 뒤집기, 결말부의 다중 반전도 일품이지만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고 우리가 꼭 행복해지는가, 혹은 인간이 인간에게 복수할 권리가 있는가, 죄란 과연 무엇인가, 등의 곱씹어볼 만한 질문들을 담고 있어 더욱 만족스러웠다. 한 편의 재미있는 소설을 원하는 사람에게 자신있게 추천드린다.

 

작가 할란 코벤은 스포츠 에이전트 마이런 볼리타가 유명 스포츠 스타들이 관계된 사건들을 해결하는 시리즈를 8편 써서 유명해졌다. 시리즈 3편은 미국추리작가협회 최우수 페이퍼백상을 수상하기도. 마이런 볼리타 시리즈 외에도 독립적인 스릴러 작품들을 다섯 편 썼는데, 그중 오늘 소개한 <단 한번의 시선>과 <밀약>, <마지막 기회>가 국내에 발간됐고, <Gone for good>과 <The Innocent>가 국내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작품들이다. 나머지 두 작품을 비롯해, 마이런 볼리타 시리즈까지 모두 만나보고 싶은 바람을 담으며 이만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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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7-1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님 리뷰를 읽으니 기대가 커요. ^^

Apple 2006-07-18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제다이님은 책을 꼭 사보고싶게 글을 쓰세요~+_+
별로 관심없던책인데, 갑자기 이것도 읽어보고싶다는...
나도 이책도 담아놔야징~추천 살포시 눌러요..^^

jedai2000 2006-07-18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원래 기대를 좀 줄여야 더 재미있는 법인데 제가 재미를 뺏는건지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그래도 조심스레 추천드립니다. 끝까지 재미나게 보세요.

애플님...이런 제가 애플님의 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는군요. 아마 큰 후회없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추천 정말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