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사도의 편지 1 뫼비우스 서재
미셸 브누아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13번째 사도의 편지>는 종교와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음모를 추적하는 프랑스산 팩션 스릴러다. 이 장르에서 워낙 큰 성공을 거둔 <다빈치 코드>가 있기에 재작년부터 대유행을 타고 있는데, 세상이 하수상하다 보니 사람들이 역사를 액면 그대로 믿지를 못해 그 이면에 무언가 음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팩션 스릴러가 쏟아지는데 어떤 음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빈치 코드>의 성공에 기대려는 음모? 아니면 <다빈치 코드>만은 못한 작품들을 쏟아내 물타기를 하려는 음모? 으음...나까지 음모이론에 빠지고 만 것인가.

 

이 작품을 쓴 작가 미셀 브누아의 이력이 참으로 특이한데 원래 수도원에서 20년간 공부하던 사제란다. 어느날 크게 깨달았는지, 수도원을 뛰쳐나와 가톨릭의 역사와 유래를 파헤치는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일단 이 사람이 수도사 출신인데 현재는 그 길을 걷지 않은 데서 독자들은 야, 이 사람이 뭔가 단단히 믿음에 상처를 입었구나, 그간의 믿음이 흔들릴 대단한 어떤 비밀을 알고 있나보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성직자 출신 작가가 수도원을 나오면서까지 쓴 이야기는 어떤 것일지 들여다보자.

 

이 작품은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가 한 꼭지씩 병행된다. 먼저 현재는, 가톨릭에 기반해 발전을 영위해온 서양 역사를 송두리째 뒤바꿔놓을 만큼 중요한 편지의 비밀을 알자마자 살해된 안드레이 신부가 등장한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제자격인 닐 신부는 안드레이 신부가 남긴 메모를 바탕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결국 진실에 닿게 된다. 다음 과거는 '최후의 만찬' 당일의 이야기부터 중세 성당 기사단까지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스케치한다. 최후의 만찬 당시 예수의 제자는 12명으로 흔히 알고 있지만 이 책에 따르면 가장 사랑받는 제자가 따로 있었단다. 그 13번째 사도는 권력욕으로 점철된 나머지 사도들과는 달리 예수의 참모습을 간직하고 그 진짜 얼굴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한다. 당연히 닐 신부와 13번째 사도는 각각 탄압을 받게 된다.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간의 모든 질서가 송두리째 파괴되고 교회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되니까.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수호하는 과거와 현재의 두 사람이 멋들어지게 겹친다. 이 작품의 최대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스터리/스릴러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작품이라면 긴박한 위험에서 비롯되는 스릴과 여러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그럴 듯한 추리를 해야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작가 미셀 브누아가 전문적인 스릴러 소설가는 아니다보니 이런 점에서는 많이 아쉽다. 단서는 대부분 우연에 의해 발견되고, 진실의 추적자 닐 신부를 향한 죽은 안드레이 신부의 안배는 너무 완벽해 사실 별로 고생도 하지 않고 대부분의 정보가 닐 신부의 손에 들어온다. 두 명의 킬러를 비롯해 어마어마한 단체들이 닐 신부를 추적하지만, 그는 초반부에 잠깐 생명의 위험을 겪을 뿐 그다지 위급한 상황에 처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인물들의 행동도 지적 두뇌회전을 강조하는 이런 류의 소설에서 필수적인 '그럴싸함'이 빠져 있다. 왜 이 인물이 여기서 이렇게 행동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계속 피어올라, 논리성과 정합성 면에서도 점수를 줄 수 없다. 사소한 예를 들어보자.

 

"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방안을 서성거리던 그는 사제들이 옷장으로 사용되는 선반 위에 귀한 종이를 올려놓은 뒤 복도로 나갔다. 설마 몇 분 간 자리를 비운 사이 누가 그의 방을 방문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닐은 잰걸음으로 자신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성서학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는 평소 자주 사용하는 첫 번째 서가에서 콥트어-영어 어원학 사전을 찾아냈다. 사전을 들고 <유령>에 기입하자마자 얼른 방으로 돌아왔다. 심장이 심하게 고동쳤다. 그 중요한 종이는 그가 놓았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저녁 예배를 알리는 첫 번째 종소리가 울렸다. 그는 사전을 책상 위에 놓고 수도복의 안주머니에 복사본을 집어넣은 후 교회로 내려갔다..."

 

이 장면을 보면 그 '귀한 종이'를 처음부터 수도복 안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좋은 방법이 있는데 굳이 떨면서 선반 위에 종이를 올려놓을 필요가 있나.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집중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팩션 스릴러로서 치밀함과 긴장감이 상당히 부족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알려지지 않은 종교사를 많이 공부한 사람답게 과거의 이야기는 몰입감이 제법이다. 야심가 베드로와 가련한 유다, 성인에 가까운 13번째 사도 등 인물의 면면은 기존 역사와 상당히 다르면서도 웬지 그럴 법하다는 믿음을 주며, 그 말 많고 탈 많은 13번째 사도의 편지가 로마와 마호메트, 성당 기사단 시대를 거쳐 이스라엘 전쟁의 와중에서 바티칸으로 흘러가는 과정은 드라마틱하기 이를 데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 묘사된 현대 바티칸의 높은 사제들이 자행하는 온갖 악행에 대한 묘사도 좋았다. 2000년 넘게 교회의 수장으로 자리하면서 얻은 부와 권력, 그걸 놓치고 싶지 않은 건 인지상정이겠기에 계략과 폭력을 앞세워 진실을 묻어두는 그들의 모습은 제법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짜릿한 팩션 스릴러로서는 실격이지만, 흥미로운 역사 종교소설 혹은 종교 비판소설로는 어느 정도 성취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취향에 따라 잡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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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머리 사이클 - 청색 서번트와 헛소리꾼, Faust Novel 헛소리꾼 시리즈 1
니시오 이신 지음, 현정수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자신만의 스타일이 없는 화가.

지향점에 도달한 학자.

맛을 정복한 요리사.

경지를 초월한 점술가.

전세계 해커의 최고봉.

 

5명의 천재가 젖은 까마귀 깃 섬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을 가진 섬에 모인다. 섬의 주인인 이십대 여성은 어마어마한 재벌가의 영애로 섬에 저택을 짓고 천재들을 초빙해 일종의 살롱을 만든다. 화자이자 탐정 격인 이야기꾼 '나'는 당연히 천재는 아니지만 해커의 최고봉인 쿠나기사의 친구이자 보호자이므로 섬에 합류한다. 섬에서의 4일째, 한 명의 천재가 밀실에서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되고, 5일째에는 또 하나의 목 잘린 천재가 밀실에서 죽었다. 나는 인류 최고의 청부업자(명탐정)가 도착하기 전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천재 쿠나기사와 함께 단서를 모은다. 사건의 진상은 그야말로 충격의 밀실 트릭. 아마도 독자는 진상을 알고나면 무릎을 치며 감탄할 것이다.

 

라이트노벨계 미스터리 작가로서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니시오 이신의 작품이란다. 일명 '헛소리 시리즈'라나. 이 시리즈는 일본에서 누적 350만부가 팔렸다고(띠지 홍보 문구에 적혀 있다) 한다. <잘린머리 사이클>은 헛소리 시리즈의 제1작으로 작가의 대표작으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2003년작으로 한 세대를 풍미했던 신본격 미스터리 이후의 일본 미스터리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나를 파악하기에 좋은 자료가 될 만한 작품이다.

 

23회 메피스토 수상작이라는데, 제1회 수상작인 모리 히로시의 <모든 것이 F가 된다>와 메피스토 상 설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장기인 장광설과 현학적인 대사들이 <잘린머리 사이클>에도 여지없이 등장하며, 모리 히로시 특유의 비현실적인 캐릭터와 트릭 지향적인 자세 역시 고스란히 이식된 듯 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2000년대 이후의 신인 미스터리 작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역시 언급한 두 작가인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리 히로시와 교고쿠 나츠히코, 두 작가 모두 비현실적인 세계관과 트릭에 기대고 있으며, 뭐라 말할 수 없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으로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는 세대에게 두 작가가 추구하는 현실에 발을 전혀 딛지 않는 허구의 세계가 제법 구미에 맞기 때문일까. 니시오 이신은 1981년생으로 전형적인 게임/애니메이션 세대이다. <잘린머리 사이클>의 주인공인 쿠나기사는 아무 설명도 없이 파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등장인물들은 일본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금발에 벽안이다. 이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캐릭터 등으로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설정이다. 도통 현실과는 무관한 세계에서, 마치 구름 타고 노니는 듯 신비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이 연이어 등장해 무슨 신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

 

이런 비현실적인 인물과 설정이 유치하고 처음부터 구미에 맞지 않는 독자라면 <잘린머리 사이클>을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좀더 넓게 가지고 끝까지 읽어 내려가다보면 의외로 그럴싸한 밀실 트릭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두번째 밀실트릭이 백미인데, 실제로 이런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할 리 없겠지만 이 작품 안에서는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근사한 트릭이다. 작가 니시오 이신의 장편 2개, 연작 단편 2개를 읽어봤는데, 이 친구는 어떤 이야기를 써도 미스터리의 트릭을 구사하는 등 자신이 '미스터리 작가'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 반갑다(심지어 마법사가 등장하는 단편에서도 사건을 미스터리 소설의 논리로 해결한다). 더구나 미스터리 소설을 무척 애독하는 듯 그 장르의 고유한 규칙을 언급하며 이리저리 비틀고 노는 게 특히 더 귀엽다. 심지어 이 작품의 분위기와 범인의 정체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아주 유명한 작품을 떠올리게 할 정도니까.

 

나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다. 신본격 무브먼트 이후의 본격 미스터리(네오 본격쯤으로 불러야 하나)가 지향하는 트릭도 흥미로웠으며, 교고쿠 스타일의 장광설, 망상, 상념, 요설...한 마디로 헛소리가 줄기차게 지껄여지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직 여러모로 완성될 부분이 많은 작가기에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곤란하겠지만 두번째 밀실트릭의 기발함 만으로도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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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12-12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알록달록해서 만화책인 줄 알았어요 ^^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과 분위기가 비슷하다니 바로 '그' 작품인가요?
무척 좋아하는 작품인데 기대되네요 ^^

oldhand 2006-12-1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생각도 없었는데 제다이 님이 이리 평을 하시니 솔깃해 집니다.

jedai2000 2006-12-1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티님...제가 좋아하는 키티 캐릭터를 사용하시는 키티님..^^ 만화를 주로 냈던 학산에서 내서 더 그런 느낌을 받으시나 봅니다. 사실은 일본 내 원작 표지랑 같아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모 작품 (힌트는 섬이라는 거^^)과 약간 비슷해요.

올드핸드님...제 생각에 우리(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볼 만한 작품인 듯 해요. 자, 이제 넘어가주세요. ^^
 
사라진 마술사 1 링컨 라임 시리즈 9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공군: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구만.
강군: 아직 한 시간은 더 걸어야 돼.
공군: 제길. 술값 내느라 차비도 없어서 이게 왠 고생이냐. 뭣보다 담배값도 없는 게 가장 비참하다.
강군: 이봐. 와트슨. 자넨 모르는군. 그저 볼 뿐이지 자넨 관찰을 안 하는 거야.
공군: 미쳤군. 니코틴 금단 증상으로 마침내 돌아버렸구나.
강군: 후후. 과연 그럴까. 내 자네를 담배의 신천지로 안내하지.
공군: 담배만 준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



강군: 호오, 그 정도인가. 생각을 해보세. 어디가 가장 주워 피울 만한 장초가 많은지를...뻔하지. 나는 안다네. 그간 관찰을 많이 했었거든. 자, 생각해보게. 담배가 가장 땡기는 곳이 어디일까. 그곳은... 버스정류장이네. 우리나라 버스는 제 때 오는 법이 없지.
공군: 그렇지.
강군: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레 담배가 생각나고 한 대 빼어물면 신기하게 버스가 바로 와. 그러면 거의 불만 붙인 담배를 땅바닥에 버리게 되지. 담배들고 탈 순 없잖아. 아까워도 버려야지. 자, 여길 보게. 이 버스정류장 바닥을...장초의 보고 아닌가.
공군: 오옷! 홈즈. 역시 자네 뿐이야.




강군: 자, 장초를 7개나 주웠으니 이제 길을 가볼까.
공군: 갈 길은 멀고 날은 이미 저물었으니 최근에 읽었던 책 이야기나 해봐라.
강군: 갑자기 왜?
공군: 너의 추리소설 이야기를 들으면 시간은 잘 가더라. 아무 생각 안 해도 되고.
강군: 최근에는..음..제프리 디버의 <사라진 마술사>를 봤지.
공군: 처음 듣는 작가네.
강군: 너가 아는 작가는 누구냐?
공군: 이광수, 염상섭, 이상, 나도향
강군: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끊겼구만.
공군: 고등학교 때 책을 너무 열심히 봐서 졸업하니까 읽기 싫더라구.



강군: 제프리 디버는 반전으로 유명한 스릴러 작가지.
공군: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나 보군.
강군: 전쟁 반대하는 반전이 아니라 뒷통수 치는 반전 말이다.
공군: 오, <식스 센스> 같은 반전.

강군: 그렇지. 제프리 디버는 전신마비 법의학자 링컨 라임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통해 일약 유명해졌지. 라임 시리즈 첫번째 작품인 <본 컬렉터>는 영화화도 됐고.
공군: 그 영화는 나도 봤다. 주말의 명화에서.
강군: <사라진 마술사>는 라임 시리즈의 다섯번째 작품으로 마술의 트릭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신출귀몰한 마술사와 링컨 라임 팀의 대결을 그리고 있지. 라임 팀에는 라임의 공적,사적 파트너인 아멜리아 색스와 간호사 톰, 민완형사 론 셀리토와 롤랜드 벨, 변장의 명수 프레드 델레이 등이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델레이는 안 나와. 악당 마술사도 변장의 달인인데 장기가 겹치잖아.
공군: 오오~ 또 신들렸다. 계속 풀어봐라.




강군: <사라진 마술사>를 보고 든 생각은 마술사야말로 스릴러 소설에 가장 어울리는 악당이 아닐까 하는 거였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마술사 악당 말레릭은 몇 초만에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고, 수갑도 따고, 물리적 심리적 미스디렉션으로 상대를 현혹하는데 아주 기가 막힌다.
공군: 미스디렉션이 뭐냐? 디렉션 양이냐?
강군: 죽어라 임마. 미스디렉션은 missdirection으로 상대의 주의를 교묘하게 다른 곳으로 돌리고, 그 틈을 이용해 마술을 펼치는 걸 말하지. 못하는 마술이 없는 초일류 마술사를 맞아 링컨 라임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최대 관심사란다.
공군: 재미있겠다.
강군: 제프리 디버는 항상 기본 이상은 가. 자료 조사도 꼼꼼하고, 플롯도 알차게 잘 엮고, 무엇보다 최후의 반전 한 방으로 독자를 넉다운시키는 수법이 일품이야. 그런데 링컨 라임 시리즈가 다섯번째가 되다 보니까 긴장감이 어쩔 수 없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 이번 작품에서는 링컨 라임이 불에 타 죽기 직전까지 가지만, 시리즈 주인공이 설마 죽겠냐 하는 생각이 드니까 긴장이 안 되지.
공군: 하긴 그렇겠구나.
강군: 링컨 라임은 워낙 증거에만 몰두하는 사람이고, 파트너 아멜리아는 명사수에 스피드광으로 활동적인 경찰인데 라임이 증거를 조사한다면, 아멜리아는 증인을 관찰하지, 마음과 마음을 열고 말야. 이런 대비는 이번 작품에서부터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데 참 좋은 것 같아. 증거와 증인을 각각 수사하는 두 경찰이라는 설정은 작품이 더 풍부해지는데 일조를 하는거지.



공군: 라임 시리즈는 제법 관심이 가는구나.
강군: 내가 꼽는 순위는 시리즈 제2작 <코핀 댄서>가 1등이고, 제3작 <곤충소년>이 2등, 그 다음이 <사라진 마술사>다. <사라진 마술사>는 라임이 최종적으로 범인의 진짜 정체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를 맞추는 과정에서 약간 치밀함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라임이 갖고 있던 단서만 가지고 그 모든 것들을 유추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 다 알아채는 게 조금 그러네.
공군: 잘 알겠다.
강군: 아무튼 정말 재미있다. 시리즈 순서대로 봐도 좋고, 이것만 봐도 재미있을 거야. 워낙 마술사의 활약이 대단하니까. 연쇄살인부터 탈옥, 마술쇼와 미스디렉션까지 난리도 아니지. 물론 뛰는 마술사 위에 나는 링컨 라임이 있지만 말야.
공군: 꼭 보기로 결심했다.
강군: 봐라. 안 말린다.



공군: 그나저나 이야기 많이 했는데 목타지 않냐? 맥주 한 잔 할까?
강군: 돈 없어서 걷고 있는 거 기억 안 나냐.
공군: 에이, 왜 그래. 저번에도 보니까 양말에 만원 숨겨놨더만.
강군: 오늘은 진짜 없어.
공군: 뒤져서 나오면 내 꺼.
강군: 이게 왜 이래. 없다면 없는거지.
공군: 어, 이거 있는데. 분명 있어.
강군: 어딜 손을 대. 변태자식아.
공군: 나오기만 해봐.
강군: 야, 비켜! 버스 온다!



공군: 야, 왜 울어?
강군: 방금 전 버스 옆 광고판에 서지혜가 있었다. 음료수 광고.
공군: 난 못 봤는데.
강군: 서지혜 관련 동체시력 3.0이다. 분명 인연인게야. 이런 상황에서 서지혜를 보다니. 기분이다. 내가 맥주 한 잔 쏜다!
공군: 너 이 놈. 있었구나.
강군: 맥주 마시러 가자! 첫 잔은 서지혜를 위한 원샷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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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은 속삭인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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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작가의 초기작을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입니다. 아직 덜 영근 미숙함에 웃음 짓기도 하고, 초기부터 싹수가 남달랐음을 확인하고 흐뭇해지기도 하죠. <마술은 속삭인다>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서 거장급의 명성을 갖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입니다. 과연 미야베 미유키의 작가 생활 초창기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그녀의 팬이라면 흥미롭게 관찰해볼 만하겠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처음부터 이야기 만드는 재능 하나는 타고난 작가였습니다. 먼저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아이디어의 착상이 좋습니다. <마술은 속삭인다>는 3명의 젊은 여자가 옥상에서 떨어져죽거나,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되는 평범한(?) 사건, 사고로 출발합니다. 우리는 얼마 전 있었던 '영아냉동고 유기살해사건' 같은 엽기적이고 비상식적인 강력 범죄에는 온통 관심을 쏟고 흥분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며, 단신으로 사회면에 짤막하게 보도되는 범죄, 사건, 사고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비범한 착상은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흔해빠진 사건, 사고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면? 혹시 매일같이 일어나는 여러 건의 사건, 사고가 누군가의 계략에 의한 연쇄살인은 아닐까, 하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미야베 미유키는 발상의 전환이 좋습니다. 위에 언급한 사건, 사고는 미야베 미유키 문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에서도 충분히 다뤄지는 것들입니다. 예컨대 마츠모토 세이초 등의 대표적인 사회파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해변가에서 동반자살한 남녀의 죽음에 심각한 음모가 숨어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하지만 종래 유행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영웅이 될 수 없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익숙한 사회파 미스터리로 출발해 최면술이나 서브리미널 광고 등의 독특한 소재로 이야기의 대전환을 꾀합니다. 기존의 사회파 미스터리에 익숙할대로 익숙한 독자들도 여기서부터는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틀로 재단할 수 없는 새로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테크닉도 돋보입니다. 3명의 독신녀 살해사건에 발을 담그게 된 주인공 마모루는 우연히 서브리미널 광고에 대해 알게 됩니다. 서브리미널 광고는 다 아시다시피 영상물 등에 있어 몇 초에 한 프레임씩 광고를 삽입해 무의식적으로 판매를 유발하는 일종의 최면기법입니다. 마모루가 일하는 서점에서는 이 서브리미널 광고에 죄를 저지르고 잡히는 사람들의 영상을 삽입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절도범들에게 압박감을 주고 있었습니다. 작품 진행에 있어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서브리미널 광고는 그러나 미야베 미유키에게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뒤에 나올 더 황당무계한(독자 입장에서) 최면술에 대해 미리 정보를 줌으로써 웬지 그럴 듯해 보이는 설득력을 더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마모루에게 도움을 주는 조력자가 그 광고를 보고 기절함으로써, 혹시 이 조력자에게 범죄와 관련된 은폐된 사실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복선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소재를 가지고 다양하게 활용할 줄 아는 작가의 이야기 테크닉인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미야베 미유키는 결말 짓는 요령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든지 끝이 좋으면 다 좋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그녀는 사건, 사고, 최면술, 서브리미널 광고, 죄를 저지르고 잠적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일어났던 일을 알고 격노하는 마모루라는 수많은 곁가지들을 결말에 이르러 하나로 통합하고 수렴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안깁니다. 원래 미야베 미유키는 인간의 선의를 믿고 있는 작가입니다. 이 작품에서의 모든 인물들은, 심지어 죄를 저지른 인물들까지도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남을 돕고 싶어하는 성격으로 그려집니다. 지나치게 순진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건 작가의 성향이니 어쩔 수 없겠죠. 읽는 이의 취향에 따른 문제입니다. 이렇듯 선의를 가진 인물들이 번민하고 방황하다 결국 최선의 선택을 하며 다시 한 번 인간이 품고 있는 옳은 성향을 증명하는 대단원은 그야말로 감동의 회오리입니다.

 

여기까지 확인해보니 과연 미야베 미유키는 초기부터 남다른 작가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초기작에 따른 부족한 부분도 눈에 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종종 작품에 사용된 비유는 유치하고, 문장은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최근작보다는 떨어집니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다소 억지스런 설정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작가는 마모루에게 얼굴 없는 살인자와 대결을 벌일 때 사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무기로 열쇠따기 기술을 줍니다. 이 기술을 여러번 사용해 마모루는 위기에서 벗어나고 진실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등학생 마모루가 어떻게 열쇠따기 기술을 배웠냐구요? 어렸을 때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었답니다. 필연성이 전혀 없는 설정으로 주인공에게 그럴 듯한 무기를 제공하기 위한 작가의 억지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최근작에서 볼 수 있는 흡입력도 약간 떨어져 어느 정도 지루하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조이고 풀고, 줄달음쳐가다가 잠깐 멈춰서 숨을 고르는 최신작이 그런 만큼 흡입력이 강하다면 아직 완숙기에 이르지 못한 이 작품은 이야기의 호흡에 있어서 비교적 잔잔함 일변도라 독자를 빨아 들이는 힘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이상으로 <마술은 속삭이다>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장점과 단점을 비교적 공정하게 짚어본 것 같은데 최종 판단은 새로 읽어볼 분들이 하시기 바랍니다. 제 기준으로 별점을 주라면 세개 반, 작가의 최고작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미야베 미유키가 어떻게 자신의 문학세계를 일구었나를 확인해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커다란 해결책이 될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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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1-19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걸작은 아니지만 미미여사니까요^^

jedai2000 2006-11-19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뒤 페이지 백면에 미미여사파이팅이라고 조그맣게 써 있더군요. ^^

2006-11-21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dai2000 2006-11-2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방금 보냈습니다. 어제 책이 나와서 여기저기 보내다보면 시간도 걸리고, 그쪽에서 자료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더라구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시소게임 작가의 발견 1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아토다 다카시의 [시소게임]에는 '작가의 발견1'이라는 시리즈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나오키상을 수상하고, 현재는 나오키상 심사위원이기도 한 단편의 명수로 이름이 높은 아토다 다카시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니만큼 발견이라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네요. 이런 기획은 반길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초기 미스터리의 선구자격인 요코미조 세이시나, 마츠모토 세이초 등의 대표작들이 역사적 가치와 작품의 질을 인정받아 출간 기회를 잡는 것이나, 현재 잘 나가는 최신 미스터리 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져나오는 것에 비해, 유독 70-80년대 작품들은 국내에 소개될 기회를 얻지 못했으니까요.

 

요즘처럼 등단 기회가 많지 않았던 때이니만큼 당시 활동하던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문장력 훈련이 잘 되어 있고, 비교적 높은 수준에 오른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해서 이번에 소개된 아토다 다카시를 비롯한 70-80년대가 전성기였던 렌조 미키히코, 다카하시 가즈히코, 이자와 모토히코 등의 작품이 차후 더 소개되고 '발견'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위에서 언뜻 단편의 명수라고 아토다 다카시를 소개했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아토다 다카시는 짧은 이야기에서 장기를 주로 발휘했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시소게임]은 1980년에 출간된 소설집이라는데 총 15편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아무래도 장편을 보면 부분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이 있어도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거나, 재미있으면 사소한 결함은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단편은 그야말로 짧은 분량이니만큼 자그만 결점도 작품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죠. 그런 점에서 단편 잘 쓰는 작가는 비장의 아이디어를 잘 다듬어 최후의 반전 한 방으로 독자를 넉아웃시키는 요령을 알고 있는 셈입니다.

 

아토다 다카시의 [시소 게임]은 잘 쓴 단편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단편집입니다. 15편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전부 흥미진진하고 블랙유머의 냉소, 결말의 의외성까지 훌륭한 단편의 테크닉을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토다 다카시 단편 특유의 오싹한 분위기도 충분히 살아 있어 '살 떨리는' 재미를 줍니다. 작품 말미에 실린 해설에서 아토다 다카시를 오 헨리에 비교하는 문장이 있는데 독자가 생각치 못한 기발한 결말로 뒷통수를 치는 점에서는 과연 두 사람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오 헨리의 단편들이 따뜻하고 훈훈한 끝맺음이 많은데 비해 아토다 다카시는 일상 생활에 잠복해 있는 독버섯같은 인간의 악의와 그 악의가 뭉치고 뭉쳐 결국 파국에 이르는 데서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깁니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이야기는 살의와 범죄라는 악 그 자체를 담고 있습니다. 예컨대 <사망진단서>라는 단편에서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로 인해 가정에 웃음이 사라지자 시어머니가 사라졌으면 하는 가족들이 나오고, <부재 증명>등의 단편에서는 정이 없고 귀찮은 아내가 사라져주기를 바라는 남편들이 나옵니다. 저 사람만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인생이 더 행복해질텐데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간군상들이 출현해 범죄에 발을 담그는 이야기입니다. 어마어마한 부나 커다란 정치적 이유에서 등이 아닌 일상에서 자라나는 미움과 혐오 등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현실적인 악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시소게임]은 호러소설의 오싹한 공포와 미스터리의 사건을 푸는 재미, 인간의 악을 고찰하는 심리소설과 당대 일본의 소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풍속소설로서의 재미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얼음처럼 차가운 여자> <천국에 가장 가까운 풀> 등은 본격 미스터리로 볼 수 있고, <기호의 참살>에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살해 현장 그림도 나옵니다. 짤막한 만큼 하나하나 짬날 때 마다 보다보면 어느새 페이지의 끝에 다달아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단편은 <사망진단서>지만 15편의 이야기 모두 재미있습니다. 그야말로 올해의 '발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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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1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그렇다면 보관함에~(__!!)

물만두 2006-11-18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히 영광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oldhand 2006-11-19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랑 <마술은..>을 어제 배달 받았습니다. 으흐흐.

jedai2000 2006-11-19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롱범님...저는 아토다 다카시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만족스러웠는데 아마 누가 보셔도 만족스러울 겁니다. ^^

정군님...어서 넣으세요. ^^

물만두님...예. 간만에 본 단편집이라 더 좋았던 것 같아요. ^^

올드핸드님...저와 비슷한 독서 행보를 걸으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