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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일기 - 잠든 나를 깨우는 100일간의 마음 공부
김홍근 지음 / 교양인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알라딘에 적힌 리뷰의 찬사를 보고 선뜻 읽어보고 싶었다. 고맙게도 알라딘에서 알게 된 벗이 이 책을 선물해 주셨다. 감사드린다.
저자는 100일만 참선수행을 한 사람이 아니고, 그 전에도 계속 해오던 사람이다. 그러다 현웅 스님이라는 선지식을 만나고부터 자신의 공부에 어떤 변화를 느낀 것 같다. 그렇게 가까이, 매일 점검을 받을 수 있는 선지식이 있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복이다. 그 변화의 기쁨으로 이 글이 시작된 것 같다.
저자가 한 선체험이나 선체험 이후 저자가 가진 태도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도 이런 상태로 며칠만 가면 펑 하고 뭔가 터질 것 같은 적이 있었다. 죽비소리가 귀찮게 여겨졌다. 나를 앉은 채로 두라! 그리고 집에 돌아갔는데도 그런 상태가 계속 되었다.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도 속해 있지 않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자고 난 후, 사라졌다! 그래서 용맹정진이나 오매불여 같은 상태가 요구되는가 보다 생각했다. 자꾸 그 상태로 가고 싶었다. 그 상태가 좋았다. 당시는 무여 스님을 뵌 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라 스님의 법문 테잎을 늘 듣고 있었는데, 스님께서 어떤 체험을 하더라도 거기에 매이거나, 다시 그 상태를 기다리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체험을 도반 보살님께 했더니, 그런 체험은 누구나 다 하지만 그 체험에 묶이지 말고, 그 체험을 흘려 보내라고 하셨다. 그런 스님과 도반 보살님들 덕에 삼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체험은 너무 강렬해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저자 역시 자신의 선체험 상태로 "되돌아가거"나 그 상태를 자신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저자의 대단한 점은 참선수행을 하면서 글을 쓴 것이다. 화두가 순일할 때(그런 일은 잘 흔하지 않았지만)는 글이 잘 써지지가 않는다. 자신이 충만해서 다른 것을 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분은 글자로 적어서 다른 수행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역시 이 분도 충만할 때는 쓸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스승의 말이 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 책은 [선방일기]가 아니라 [참선일기]라 그런지 참선에 대한 그의 열정이나 생각에 집중되어 있다. 간간이 수행이 생활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또 참선이 생활이 되는 그런 수행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예는 별로 없다. 참선으로 인해 마음이 변하고, 생활이 변화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핵심이지만 그것은 이야기는 아니다. 이야기는 구체적인 어떤 것을 요한다. 그런 것들은 아주 간간이 드러난다. 전시회를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자연을 보거나, 무엇을 하거나 참선일기 안에는 그 모든 것이 선수행과 관련하여 적혀 있다. 모든 것이 비유인 듯. 아직 그 자체가 선은 아니고, 선수행의 방법으로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점이 아직 생활이 되지 못하고, 생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게다가 참선일기가 되어서 그런지 수행과 여행과 법문이 있지만 홀로 있는 것만 같다. 우리가 모두 상호의존 속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덜 든다. 그가 그것을 이야기로는 강조하고 있다 하더라도. 또 매일의 느낌과 수행이 적혀 있었지만 이 글이 아주 솔직하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솔직해지려고 애쓴 것은 같은데...그냥 내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행의 과정을 글로 써서 객관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독특한 경험을 했거나 변화가 왔을 때, 아니면 수행이 처절했을 때는 적기가 쉬울지 모르지만 일상에서의 수행은 반복이다. 잠이 왔고, 망상이 일었고, 다리가 저렸고, 관계 속에서의 반성을 했고...저자는 자신의 수행을 통해 몇 가지를 말해 주고 있다. 지금 참선수행을 하는 이들과 체험을 공유한다는 점, 선지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 수행이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 수행의 근간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이다. 그리고 그런 근거들을 가지고 우리를 참선수행으로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