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함께 수행을 닦을 때 나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 그의 가르침을 통해 들었던 모든 것이 내게 일어나고 있는 듯했다. 내 주위의 모든 물질들이 분해되었다. 나는 크게 흥분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린포체...., 린포체......, 그게 일어났습니다!"

그가 나를 향해 몸을 기울여 안심시켰을 때, 그의 얼굴에 가득한 자비 넘치는 표정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괜찮아...., 괜찮아. 너무 흥분하지 말게나. 결국, 그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걸세"

놀라움과 축복으로 나는 넋을 잃었다. 좋은 체험이 명상 수행과정의 유용한 이정표가 될 수 있기는 해도, 거기에 만일 집착이 끼여 든다면 덫이 될 수도 있음을 뒤좀 린포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체험 너머 훨씬 깊고 한층 안정된 땅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그의 현명한 가르침이 나를 곧바로 그곳으로 인도했다.

                                                                                                         [티베트의 지혜], pp.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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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9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9-09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9-11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향, 옛집에서

                                                                  -윤중호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은 아닐까?

 

더 추운 곳으로, 기러기 진즉 떠난 윗말 강어귀에

도리어, 강바람 싸늘하고 봄비 서러워

이미 닫힌 사립문 앞에서 서성대다, 비에 젖어

멍하니 저무는 하늘만 바라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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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5-09-07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은 아닐까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비로그인 2005-09-07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누아님도 이 시를 골라주셨군요. 으흠..시어가 싸르락거리면서 머릿속을 막 돌아댕겨요. 계절 탓인가..

이누아 2005-09-07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저도 제일 먼저 첫 구절이 눈에 띄었어요. 첫 구절이 이상하게 익숙하다 했는데 아마 기형도의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에서의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이라는 싯귀와 겹쳐 느껴졌던 모양이에요. 기형도의 저 시를 좋아하거든요.
복돌님, 고향, 옛 집에 홀로 서 있는 그런 느낌을 줘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할머니집처럼. 고향에 왔지만 이미 너무 늦은 걸까요? 하늘조차 저물고 있네요.

2005-09-08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목에서 

                                                                      -윤중호

어릴 때는 차라리, 집도 절로 피붙이도 없는 처량한 신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뜬구름처럼 아무 걸림 없이 떠돌다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칼날 같은 세상의 경계에 서고 싶은 적이 있었다. 자유라는 말, 정의라는 말, 노동이라는 말, 그리고 살 만한 세상이라는 말, 그 날 위에 서서 스스로 채찍질하며 고개 숙여 몸을 던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귀신이 펑펑 울 그런 해원의 시를 쓰고 싶었다. 천년의 세월에도 닳지 않을, 언듯 주는 눈길에도 수만 번의 인연을 떠올려 서로의 묵은 업장을 눈물로 녹이는 그런 시.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지게 작대기 장단이 그리운 이 나이가 되어서야, 고향은 너무 멀고 그리운 사람들 하나 둘 비탈에 묻힌 이 나이가 되어서야, 돌아갈 길이 보인다.

대천 뱃길 끊긴 영목에서 보면, 서해 바다 통째로 하늘을 보듬고 서서 토해내는 그리운 노을을 가르며 날아가는 갈매기.

아무것도 이룬 바 없으나, 흔적 없어 아름다운 사람의 길,

어두워질수록 더욱 또렷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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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9-07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것도 이룬 바 없으나 흔적 없어 아름다운 사람의 길.
이 시인의 시집 사봐야겠습니다.
너무 좋은데요?^^

비로그인 2005-09-07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두 노파님 통해 알게되었는데, 좋더라구요.

이누아 2005-09-07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연은 "아무것도~또렷해"입니다. 한 연인데 줄 바꿀 때 붙이질 못했어요. 저도 이 시가 마음에 들어요. 그중에서도 "어두워질수록 더욱 또렷해"가요.

저도 서재지인께 받은 선물입니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당신이 무상함에 함축된 진리를 정말 이해해서 알아차렸습니까?

그것을 당신의 모든 생각, 호흡, 움직임과 합치시켜 당신의 삶이 바뀌었습니까?

당신 자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져 보시오.

자신과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순간순간마다 기억하고 있으며 그래서 모든 존재를 언제든지 자비심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죽음과 무상함을 통렬하고도 절박하게 이해해서 매 순간마다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두 질문에 대해 당신이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덧없음을 제대로 이해한 거요.

                                              -소걀 린포체 저, 오진탁 역, [티베트의 지혜], 민음사,p.57

 ==========================================================================

이 책을 읽고 있다. 나는 한꺼번에 여러 책을 읽는다. 자기 전에 읽는 책, 일어나서 읽는 책, 다니면서 읽는 책, 집중해서 읽는 책이 모두 다르다. 잠들기 전에 [달라이라마, 죽음을 이야기하다]를 반복해서 읽다가 이 책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잠들기 전에 읽는 책으로 하기엔 너무 흡인력이 있다. 읽을 때마다 눈이 번쩍 열린다. 잠들기 힘들게 하는 책이다. 결국 오늘 낮에도 읽는다.

이 책에는 혼자 읽기 아까운 구절들이 가득 차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간혹 그 구절들을 공유하려 한다. 그 첫 번째 구절이다. 이 구절은 생이 무상하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게 한다. 그리고 그 말은 애초에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소걀 린포체의 이 두 가지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뒤에야 무상함을 말할 수 있겠구나...무상함이 체득되었다고 할 수 있겠구나...불교의 진리가 나와 함께 있다고 할 수 있겠구나...그제야 나는 불자라고 할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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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9-0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 이 책을 읽고 싶습니다. 읽는 내내 감동과 공감의 한숨을 내뱉게 하던 책입니다. 요즘은 자꾸 새책 보다는 읽었던 책에 더 손길이 갑니다. 죽음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행복한 일상 속에서도 무상함의 슬픔을 느끼던 제 자신에게 아주 맞는 책이었어요.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입니다.

이누아 2005-09-06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모르셨군요. 님의 리뷰를 읽고 이 책의 대강의 내용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관심도 갖게 되었고. [티벳사자의 서]와 이 책 중에 무슨 책을 먼저 읽을까 하다가 이 책이 더 편한 것 같아 이 책을 먼저 샀어요. 동네 서점에서 충동구매한 거지만요. 님 덕에 읽게 된 책인데 인사가 늦었네요. 고맙습니다. ()()()

비로그인 2005-09-0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자는 아니다, 후자도 아니다..입니다. 전자는 그런대로 인정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후자는 아무래도 내공을 쌓아야겠죠. 죽음에 관해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후련해지고 다시 버거워지곤 개운해집니다. 평온함은 제 일상과는 먼 이야기일까요..슬퍼요, 많이..

이누아 2005-09-06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일이 있나요? 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신가요? 아니면 그저 마음이 힘든가요? 슬프시다니 염려가 되네요. 요즘 아침 기도 때 복돌님을 위해 기도해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도밖에 없으니...그저 님의 평온을 기원하고, 함께 슬퍼합니다.

로드무비 2005-09-07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책이 또 한 권 느는군요.

이누아 2005-09-07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전 아직 다 읽지도 않았는데...님께 추천해드린 셈이 되었네요. 읽으시면 리뷰 남겨 주세요.
 
참선일기 - 잠든 나를 깨우는 100일간의 마음 공부
김홍근 지음 / 교양인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알라딘에 적힌 리뷰의 찬사를 보고 선뜻 읽어보고 싶었다. 고맙게도 알라딘에서 알게 된 벗이 이 책을 선물해 주셨다. 감사드린다.

저자는 100일만 참선수행을 한 사람이 아니고, 그 전에도 계속 해오던 사람이다. 그러다 현웅 스님이라는 선지식을 만나고부터 자신의 공부에 어떤 변화를 느낀 것 같다. 그렇게 가까이, 매일 점검을 받을 수 있는 선지식이 있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복이다. 그 변화의 기쁨으로 이 글이 시작된 것 같다.  

저자가 한 선체험이나 선체험 이후 저자가 가진 태도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도 이런 상태로 며칠만 가면 펑 하고 뭔가 터질 것 같은 적이 있었다. 죽비소리가 귀찮게 여겨졌다. 나를 앉은 채로 두라! 그리고 집에 돌아갔는데도 그런 상태가 계속 되었다.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도 속해 있지 않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자고 난 후, 사라졌다! 그래서 용맹정진이나 오매불여 같은 상태가 요구되는가 보다 생각했다. 자꾸 그 상태로 가고 싶었다. 그 상태가 좋았다. 당시는 무여 스님을 뵌 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라 스님의 법문 테잎을 늘 듣고 있었는데, 스님께서 어떤 체험을 하더라도 거기에 매이거나, 다시 그 상태를 기다리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체험을 도반 보살님께 했더니, 그런 체험은 누구나 다 하지만 그 체험에 묶이지 말고, 그 체험을 흘려 보내라고 하셨다. 그런 스님과 도반 보살님들 덕에 삼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체험은 너무 강렬해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저자 역시 자신의 선체험 상태로 "되돌아가거"나 그 상태를 자신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저자의 대단한 점은 참선수행을 하면서 글을 쓴 것이다. 화두가 순일할 때(그런 일은 잘 흔하지 않았지만)는 글이 잘 써지지가 않는다. 자신이 충만해서 다른 것을 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분은 글자로 적어서 다른 수행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역시 이 분도 충만할 때는 쓸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스승의 말이 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 책은 [선방일기]가 아니라 [참선일기]라 그런지 참선에 대한 그의 열정이나 생각에 집중되어 있다. 간간이 수행이 생활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또 참선이 생활이 되는 그런 수행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예는 별로 없다. 참선으로 인해 마음이 변하고, 생활이 변화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핵심이지만 그것은 이야기는 아니다. 이야기는 구체적인 어떤 것을 요한다. 그런 것들은 아주 간간이 드러난다. 전시회를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자연을 보거나, 무엇을 하거나 참선일기 안에는 그 모든 것이 선수행과 관련하여 적혀 있다. 모든 것이 비유인 듯. 아직 그 자체가 선은 아니고, 선수행의 방법으로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점이 아직 생활이 되지 못하고, 생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게다가 참선일기가 되어서 그런지 수행과 여행과 법문이 있지만 홀로 있는  것만 같다. 우리가 모두 상호의존 속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덜 든다. 그가 그것을 이야기로는 강조하고 있다 하더라도. 또 매일의 느낌과 수행이 적혀 있었지만 이 글이 아주 솔직하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솔직해지려고 애쓴 것은 같은데...그냥 내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행의 과정을 글로 써서 객관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독특한 경험을 했거나 변화가 왔을 때, 아니면 수행이 처절했을 때는 적기가 쉬울지 모르지만 일상에서의 수행은 반복이다. 잠이 왔고, 망상이 일었고, 다리가 저렸고, 관계 속에서의 반성을 했고...저자는 자신의 수행을 통해 몇 가지를 말해 주고 있다. 지금 참선수행을 하는 이들과 체험을 공유한다는 점, 선지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 수행이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 수행의 근간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이다. 그리고 그런 근거들을 가지고 우리를 참선수행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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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6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9-06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리가 저리다, 잠이 왔고, 망상이 일고..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변화할 수 있다는 점..참선의 리얼리티가 살아있네요.^^

이누아 2005-09-0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 리얼리티가 바로 이 책의 최대 장점이에요.

니르바나 2005-09-08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날개에 있는 저자의 약력을 보고 한 권 구입했습니다.
제가 스승으로 모시는 다석선생님으로, 도반이 지었다면 틀림없겠지 하고요.
아껴 읽는다고 앞부분만 보고 책더미속으로 쌓여 들어갔는데
이누아님의 리뷰를 보니 다시 꺼내 읽어야 겠군요.

이누아 2005-09-19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재가자의 수행인지라 그런지 자극이 많이 되는 책입니다.

반조 2005-10-23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서평 잘 읽었습니다. 책상물림의 저와 일상 속에서 수행하시는 이누아님의 차이가 서평의 차이를 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이누아 2005-10-25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 가신 줄 몰랐어요. 님이 소개하신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를 주문했어요. 그 책에서 저도 님처럼 보석을 발견하기를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반조 2006-08-27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 님, 이제 이누아 님의 서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아요. 언제나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