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크기([삶이 보이는 창]제46호)                                 

                                                                                      -이설야


 

내 동생 부부는 신용불량자이다. 2002년 미국에 가서 성공하여 돌아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떠났던 동생 부부는 1년 반 만에 비행기 값만 겨우 마련하여 한국으로 돌아왔다.
꿈을 안고 떠나 미국 땅을 밟았던 동생은 한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매번 전화선 너머로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제부는 미국에 오면 나중에 호텔 지배인으로 앉혀 주겠다는 선배의 말만 듣고 사전 지식이나 충분한 고민 없이 도망치듯 떠났다. 미국 가면 처음에는 무지 고생하지만 나중에 성공하면 큰 부자가 된다고 했었다. 나는 제발 미국이고 뭐고 동생 고생이나 그만 시켰으면 했다.

그런데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부는 호텔이 아니라 세탁소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 가량을 일했다. 동생의 표현을 빌자면, 작업복에서 소금이 한 됫박씩 나올 정도로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미국으로 자신들을 불러들였던 선배는 자신들이 외롭고 일할 사람도 구하기 힘들고 돈도 필요해서 동생 부부를 속여 머나먼 미국땅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지금도 그 선배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한다.

여행비자로 들어갔기 때문에 불법 체류자 신세에다가 돈도 거의 떨어지자 이러다간 미국에서 굶어 죽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시댁에 얹혀살더니 한두 달 있다가는 집을 얻어 달라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돈이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러던 어느 날은 술에 취해서 전화를 했다. 지금 지하철인데 뛰어내릴지도 모른다고,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솔직히 난 동생의 무능력과 무지를 늘 한심하게 생각했다. 왜 노력을 안 할까?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나 같으면 당장 나가서 일할 텐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할까, 별 일 아닌데, 나 같으면 그렇게 살지는 않을 텐데, 나 같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이렇게 ‘나 같으면 어떻게 할 텐데 왜 그럴까,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운 일일까’ 등등 내 중심적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너무나 나중에 깨달았다.

나는 늘 나에게 받으려고만 하는 동생이 짐스러울 때가 많았다. 내 몸 하나도 힘겨울 때는 더욱 그랬다.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고통의 크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10% 밖에 안 되는 고통이 동생에게는 90% 이상의 고통일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내 기준으로만 동생의 고통의 크기를 재단하고 지나쳐 버린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고 작은 생각인가?

우리는 종종 자기라는 아상(我相)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른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늘 그런 잘못을 범하고도 뒤늦게 깨우친다. 그러나 문제는 수많은 갈등 과정 속에서 잘못을 깨닫고 실천하기까지는 불필요한 감정소모와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에 있다. 최악의 경우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 평상심을 찾으려고 산사나 명상수련장, 여행지로 떠돌지만, 현실로 되돌아왔을 때는 한 달도 못 가서 본색(?)을 드러낸다. 그러니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내 나름의 결론은 나를 인정하고 타인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나의 거울이기도 한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볼 때, 이해하는 마음은 절로 생기는 것이다. 이해하는 마음이 서로 앞선다면, 고통 또한 작아지기 때문이다.

지금 내 동생은 두 칸짜리 사글셋방에서도 귀여운 조카들이랑 잘산다. 제부는 미국에서 돌아와서는 딴 사람이 되었다. 멋쟁이 양복도 다 버리고, 중요하게 생각하던 체면이나 겉치레도 다 버리고 고물상을 한다. 비록 지인의 도움으로 컨테이너 박스에서 일을 하지만, 힘들어도 요행이나 행운을 바라지 않고 남이야 어떻게 보든지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힘든 길을 간다. 난 요즘처럼 제부가 예뻐 보인 적이 없다.




글쓴이 『창』 편집위원

삶이 보이는 창: http://www.samcha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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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6-05-2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이 하게 되는 가장 큰 착각 중의 하나가 "나라면 저러지 않을텐데......"하는 터무니 없는 자신감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조차 아상인 줄 알면서도 쉽게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나를 보게 됩니다. 저를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요. _()_

2006-05-21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5-2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광반조, _()_

이누아 2006-05-23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들과 같은 마음으로 저 글을 읽고 이곳에 옮겨 놓았습니다. _()_

2006-05-24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05-2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참 감동적이네요. 이누아님
사람은 변화의 가능성 때문에 기대가 되는 존재입니다.
_()_

2006-05-27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30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 아무 것도         -프란치스꼬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달라이라마

아니오, 난 아무 것도 동경하지 않습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

슬프고, 답답하고, 불편한 시간이 얼마간 있었다. 그런 건 견디거나 터트리는 것이라 여겼다. 어쩌다 그런 시간은 당연하기도 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여전히 답답하고 불편한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에너지를 느낀다. 무기력하고 짜증이 날 것만 같았는데, 꽤 오래 징징거렸는데. 원하는 게 뭔지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가슴이 뛴다. 눈이 튀어나온다. 누구의 멱살이라도 잡고, 벽에라도 박치기해도 좋을 성 싶다. 여전히 가슴이 답답하다. 답답해서 참 다행이다. 답답하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발견한 것이 하찮은 것일지라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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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3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13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태춘, 박은옥 - 저 들에 불을 놓아

저 들에 불을 놓아 그 연기 들판 가득히
낮은 논둑길 따라 번져가누나

노을도 없이 해는 서편 먼산 너머로 기울고
흩어진 지푸라기 작은 불꽃들이
매운 연기 속에 가물가물

눈물 자꾸 흘러 내리는 저 늙은 농부의 얼굴에
떨며 흔들리는 불꽃들이 춤을 추누나

초겨울 가랑비에 젖은 볏짚 낫으로 그러모아
마른 짚단에 성냥 그어 여기 저기 불 붙인다

연기만큼이나 안개가 들판 가득히 피어오르고
그 중 낮은 논배미 불꽃 당긴 짚더미
낫으로 이리저리 헤집으며

뜨거운 짚단 불로 마지막 담배 붙여 물고
젖은 논바닥 깊이 그 뜨거운 낫을 꽂는다

어두워가는 안개 들판 너머
자욱한 연기 깔리는 그 너머

열나흘 둥근 달이 불끈 떠오르고
그 달빛이 고향 마을 비출 때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농부의 소작 논배미엔
짚 더미마다 훨 훨 불꽃 높이 솟아오른다
희뿌연 달빛 들판에 불기둥이 되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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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5-11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 들을때마다 울컥울컥해요.

hnine 2006-05-1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듣고 추천하고 갑니다.

잉크냄새 2006-05-1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가 가슴 깊이 울림이 있네요.

이누아 2006-05-1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서재에서 만난 노랜데, 이상하게 제 컴퓨터에서 그 노래를 들을 수가 없어서 찾아 듣습니다.

2006-05-13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6-05-13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그렇군요. 전 정반대였어요. 그분들이 학교에 오셨는데 노래보다 말이 훨씬 길었어요. 전 노래를 들으러 갔거든요. 그래서 그분을 싫어했어요. 노래는 안 하고, 말 많은 분이라고. 지금보니 정말 할 말이 많아서 어쩔수가 없었군요. 말해야 해서 말했군요.
 

아침 눈을 뜨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삶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야 겠다 라는.

오늘 오후에 시내에 나갔다. ㅅㄱ 언니를 만났다. 밥 먹으러 가려고 식당을 향해 가는데 붕붕~ 고개를 돌리니 앗! ㅊㅎ 선배다!  반갑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너거들 밥 묵었나?

아뇨, 인자 밥 묵으러 갈라카는데요.

그라마 밀레오레 옆에 저~ ㅅㅅ반점에 와서 묵어라.

붕붕~ 우리를 남겨놓고 오토바이는 달린다. 우리도 따라 걸어본다. 오토바이 사라진다. 그래도 우리는 그 반점에 도착했다. 짬뽕밥 두 개를 시켰는데 군만두가 서비스다. 빽이 좋긴 좋다. 선배가 없을 때 돈을 내려고 갔더니 이미 계산을 끝냈다. 배달하러 나갈 때마다 나는 손을 흔들며

오빠야, 갔다 오이소.

하면서 짬뽕밥을 먹는다. 선배 역시 왔다 갔다 하며 ㅅㄱ언니에게

니 서양사반이었나?

아뇨, 아무 반도 아니었는데요.

아, 아이가.

근데 이누아 선배가? 와 언니라카노?

우리 동기 언니에요.

아..

그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한마디씩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바쁜 점심시간이어서. [삶이 보이는 창] 잡지를 한 권 받았다. 거기에 선배가 쓴 글이 실려 있다. 글은 감상보다는 정말 철가방의 하루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사실, 선배가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건 처음 본다.

언니야, 아마 여기가 저 선배가 일한 직장 중에 가장 오래 일하는 곳이지 싶다.

라는 말을 하면서 생각했다. 이제 선배는 연락처가 든 수첩을 버리지도 않고, 일자리를 자꾸 바꾸지도 않는다. 선배도 알아차린 것일까, 삶을 아무리 바꾸어도 바꾸어지지 않는 그 답답함에 대해서. 그래서 이제 삶의 태도를 바꾼 걸까. 난 2년 동안 마시지 않은 술을 마셨다. 반점에서 파는 작은 고량주를 사서 짬뽕밥과 함께 마셨다. 체할 것 같던 속이 확 뚫리는 것 같았다. 딱 두 잔. 그만큼이 딱 좋았다. 나오는 데 선배가

토요일날 9시 좀 넘으면 끝나는데 그때 대구 참반 아 들 불러서 술이나 한 잔 하자.

밤 9시요? 그냥 일요일이 낫겠는데요. 근데 나오면서 보니까 오전반, 오후반, 종일반 있던데 오빠야는 종일반이에요?

야가 무슨 소리하노? 직장이다, 직장!

선배는 2주에 한번 정도 일요일에 쉰다. 선배의 손은 두텁고 단단했다. 여기서 일하는 선배가 좋다. 그러나 행여 다른 사람들이 철가방이라고 무시하지나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나와 ㅅㄱ 언니가 짬뽕밥을 먹던 그 2시는 선배가 그릇을 찾으러 간 때다. 배달하는 것보다 그릇 찾는 게 더 힘들다고 선배의 글에 적혀 있다. 선배가 힘든 시간, 맛나게 밥을 먹고는 배달음식 먹고나서 빈그릇도 잘 챙겨야지 생각했다. 무슨 일이나, 무엇이나 내 가까운 사람이 하는 일이라 여기면 이렇게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을.

어쨌든 오늘 갑자기 길에서 흥겹고 즐거운 벗을 만난 느낌이다. 왈로야, 보고싶재?  누구 결혼식 없어도 함 보자. 오빠야의 연락처는 이누아의 손에 있다.^^

 

*참, [삶이 보이는 창]은 너 만날 일 있으면 가져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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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로 2006-05-09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배가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건 처음 본다.
-ㅋㅋㅋ 좋아,좋아!
술이나 한 잔 하자.
- 끼워줘, 끼워줘!
선배의 손은 두텁고 단단했다.
- 만져보고 싶다...흐미~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을.
- 술기운에 몸은 후끈!
우리 이누아 간만에 빵씰빵씰한 얼굴 하고 있겠네. 잘했어, 잘했어.


왈로 2006-05-09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8번뻐스'는 지나갔는데 나 와이래 좋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2006-05-09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6-05-09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네 댓글에 내 얼굴이 정말로 빵씰빵씰해지고 있다.
88번뻐스는 지나갔어도 함께 만나자.
근데 쓰고나니 만난 언니 이야기는 너무 없고, 오빠야 이야기만 가득하네. 언니야는 이거 보면 섭섭해할려나..아냐, 언니야도 짬뽕밥 얻어 먹었는데, 뭐.^^ 상규는 다 울었나? 니랑 전화하면 무슨 벨소리 같다. 전화 끊으세요 하는. 여기다 적길 잘했다.

2006-05-10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10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레이 버도 지음, 홍윤숙 옮김, [프란치스꼬의 여행과 꿈], 성바오로출판사, 1981

 


"도대체 이 사람들의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미치광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지만, 얼마나 매력있는 미치광이인가! 할 수만 있다면 나 역시 그렇게 되고 싶다. 아씨시에서 왔다는 그 비렁뱅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는 용기만 있으면 나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식으로 자문자답을 시작만 한다면 일은 된 것이라고 프란치스꼬는 생각했다. 그리고 낮이나 밤이나

"남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게 사는 용기를 모든 사람에게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p.69

 

그는 기도 없이는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또 일상의 체험을 통해서

사랑이 없는 기도는 자기 중심의 불모지를 만들 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p.79

 

결국 상징적인 일이라는 것은 대단히 구체적인 형태로 시작되는 것이다.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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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6-05-08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게 사는 용기를 모든 사람에게 주십시오"

이누아 2006-05-0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

2006-05-09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6-05-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프란치스꼬를 보세요. 일상의 체험을 통해! 가장 구체적인 방법으로! 미치광이가 되고, 비렁뱅이가 되고,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게 사는군요. 일상의 체험..구체적인 방법..근데 맘이 편할까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 라고 말하기 전까지 우리 맘이 그렇게 편할 수 있을까요?

2006-05-10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6-05-10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다음 달엔 일 하시는 거 맞죠? 자, 자 일어나세요. 정신차리세요!! 안 일어나시면 물 붓습니다.^^ 근데 이러고 있으니 동수랑 놀고 있는 것 같아요(웃찾산가 하는 프로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친구가 동수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