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폴의 江

                  -具     常-

 

그리스도 폴!
나도 당신처럼 강을
회심의 일터로 삼습니다.
허지만 나는 당신처럼
사람들을 등에 업어서
물을 건네주기는커녕
나룻배를 만들어 저을
힘도 재주도 없고
당신처럼 그렇듯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위하여 시중을 들
지향도 정침도 못 가졌습니다.

또한 나는 강에 나거서도
당신처럼 제상 일체를 끊어 버리기는커녕
속정의 밧줄에 칭칭 휘감겨 있어
꼭두각시 모양 줄이 잡아당기는 대로
쪼르르, 쪼르르 되돌아서곤 합니다.

그리스도 폴!
이런 내가 당신을 따라
강에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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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매가

                            -월명사

 

생사의 길은

여기 있으매 두려워지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서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 미타찰에서 너를 만나볼 나는

도를 닦아 기다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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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경읽기-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고정희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위에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석양 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목을 툭, 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막막궁산 오솔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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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생각을 읊음
                                             -이하

날이 저물면 시 짓는 일 끝내다가
문득 서리 내린 흰머리에 깜짝 놀라네
거울 보며 멋쩍은 웃음 짓는데
어찌 남산처럼 장수하기 바라리오?
머리엔 두건조차 없고
고얼苦蘖로 물들인 옷을 벌써 입었네
그대는 맑은 시냇가의 물고기가
물만 먹고 자족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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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켄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갖고
욕심은 없이
결코 성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고
하루에 현미 4홉과
된장국과 조금 야채를 먹고
모든 일에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잘 보고 들어 이해하고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의 소나무 숲 그늘
작은 초가집에 살며
동쪽에 병든 아이 있으면
가서 간호해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그 볏짚을 져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 주고
북쪽에 싸움과 소송 있으면
부질없는 일이니 그만두라고 말하고
가뭄 때에는 눈물을 흘리고
추운 여름은 허둥지둥 걸어
사람들에게 데구노보(바보)라고 불리고
칭찬받지도 않고
걱정시키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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