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나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느낄 때, 당신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평화롭게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슬프고 눈물이 나겠지만 저항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그 슬픔 아래서 깊은 평화와 고요, 그리고 신성한 현존을 느낄 것입니다. 그것이 존재의 발산이고 내면의 평화이며 대립이 없는 선입니다. -톨레,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p.269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길가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가로수 옆에 기대어 있었다. 울고나서 보니 아주 작은 나무였다. 그렇게 가늘고 작은 나무에 기대어 울어야 했다. 알 수 없는 분노가 함께 했다. 슬픔과 분노..저항하는 마음을 버렸더라면 평화로울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언니의 죽음이 떠오르면 아직도 무언가에 저항하고 있다. 가슴이 눌린다.
"아난다여, 그것은 이것을 생각해도 명확하지 않느냐. 사람들은 나를 좋은 벗으로 삼음으로써 늙지 않으면 안 될 몸이면서 늙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병들지 않으면 안 될 몸이면서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또 죽지 않으면 안 될 몸이면서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아난다여, 이것을 생각해도 좋은 벗을 가지고, 좋은 동지 속에 있다는 것이 이 도의 전부임을 알 수 있지 않느냐"([잡아함경]27:15선지식)-마스타니 후미오, [불교개론], p.61
붓다는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 죽지 않으면 안 될 몸이면서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니...혜덕화님이 몸을 갖고 있는 한,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말씀을 한 이후로 붓다의 이 말씀이 내게 들어왔다. 붓다는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평화와 자유를 말한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이 작은 몸..마음..이런 것들의...그러나 여전히 모른다.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가...그래서 나는 그의 법을 배우고자 한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평화와 자유를 말할 수 없다. 깊은 슬픔과 죽음 앞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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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님, 그저 깊이 함께 슬퍼합니다. 님과 가족들이 슬픔 속에서도 평온하실 수 있기를, 스스로를 편안하게 돌볼 수 있기를...동생분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