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위한 시 
                         -마종하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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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으른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본 사람은

내가 보는 동안에

한번도 뛰어다닌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점심과 저녁 사이에 가끔 잠도 자고,

또 비 오는 날에는 집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랍니다.

나를 이상하다고 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는 정말 게으른 사람일까요, 아니면 단지

우리가 '게으르다'고 하는 행위를 했을 뿐인가요?

 

나는 바보 같은 아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본 아이는 가끔 내가 이해 못하는 일

아니면 예상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아이입니다.

또 내가 본 아이는

내가 가본 곳들에 가보지 못한 아이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바보가 아니에요.

그를 바보라고 하기 전에 생각해보세요.

그 아이가 바보일까요, 아니면 단지

당신이 아는 것과 다른 것들을 알고 있을 뿐인가요?

(중략)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말하는 것을,

어떤 사람은 지친 거라고, 혹은 태평스러운 거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은 단지 다른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만약 우리가 보는 것과

우리의 의견을 섞지 않는다면

많은 혼란을 면할 수 있을 거라고.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도 단지 내 의견일 뿐이라고.

                      

                                                                 

-마셜 B.로젠버그 저, [비폭력대화], 54-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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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病院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19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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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이 보인다. 작은 총이다. 작은 총이라도 목숨을 가져갈 수 있다. 크든 작든 총은 총이다. 총알만 있다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 혹은 죽을 수 있다. 공포만 없다면, 누구나 아주 짧은 시간에 선택을 할 수 있다. 달라이라마도 작은 총을 갖고 있다. 그냥 갖고 싶었다고 한다. 사용하지는 않는다. 총을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냥꾼이라 해도 정해진 장소에서 사용한다. 그들은 죽인다. 모든 써진 글은 누군가에게 읽혀지기 위해서다. 모든 총들은 쏘여지기 위해 존재한다. 그것이 위협일 뿐이라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 존재가, 그 존재 자체가 죽음을 부른다. 모든 사물이나 사물의 형태는 그 나름의 에너지를 갖는다. 총의 에너지...그게 아주 작은 총일지라도 총은 쏘여질 것이다. 너를 향해, 혹은 나를 향해. 시간문제다.

 

그러나 총은 저절로 발사되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이용한다. 총은 총 나름의 에너지로 총을 쏠 사람을 찾는다. 누구를 쏠 것인가, 누구에게 쏘라고 할 것인가? 총은 선택할 수 없다. 그냥 그 자신의 에너지 때문에, 그 자신의 만들어짐 때문에 사용된다. 누구도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에 떨어뜨리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만들어진 것은 이용된다. 만들지 마라. 만들면 만들수록 그 사물들이 나를 움직일 것이다. 참을 수 없을 때, 때로 참을 수 없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통제되지 못한 감정들...그 틈에서 그 사물들이 뛰어 들어온다. 그것이 혹여 총이라면 아주 빨리 상황이 끝난다.

 

다행히 나에게는 총이 없다. 내게 보이는 총은 그저 장난감일 뿐이다. 장난감...왜 이런 것들을 복사하고 싶은가? 달라이라마가 가진 작은 총은 그에게 장난감일까? 이제 달리 말해야 한다. 내게는 장난감 총이 보인다고. 작은 총이다. 장난감총은 아무리 커도 목숨을 가져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안심한다. 삶이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공포만 없다면 총이 없어도 누구든 죽을 수 있다. 공포가 있더라도 누구든 죽는다. 미리 죽으려고 발버둥치는 무리들...미리 죽이려고 발버둥치는 무리들...우리는 모두 죽는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역사 속의 유명한 사람들도, 우리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언니도 죽었다. 누군가는 그냥 죽고, 누군가는 죽음을 당했고, 누군가는 스스로 죽었다. 어쨌든 모두 죽었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오늘은 2012년 3월 30일이다. 비 온다. 기형도의 시처럼 가랑비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조금씩 젖어든다. 우리에게 조금씩 젖어드는 죽음. 어떤 이에게는 소나기처럼 퍼부어 내린다. 잎들.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는 잎사귀들. 뿌리가 뽑혀도 나무에 붙어있는 그 잎들. 그 푸른 잎들. 가을이 되면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조용히 떨어질 그 잎들. 그 잎들을 보며 슬펐다. 준비된 죽음은 고요하기만 하다. 갑작스런 태풍은 뿌리가 뽑혀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그곳으로 간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그런 이야기다. 총구가 보인다. 이제 놀라지 않는다. 이건 장난감 총이니까. 장난감 총에 죽은 사람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면 모두 웃을까. 비가 그쳤는지 모르겠다. 하늘은 흐리다.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지만 무슨 말이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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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는 병들기 마련이고 병듦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는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헤어지기 마련이다.

나의 업이 바로 나의 주인이고, 나는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나의 권속이고, 업이 나의 의지처이다. 내가 선업을 짓건 악업을 짓건 나는 그 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모든 중생들도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모든 중생들도 병들기 마련이고 병을 극복하지 못했다.

모든 중생들도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모든 중생들에게도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은 변하고 헤어짐이 있다.

모든 중생들도 그들의 업이 바로 그들의 주인이고, 그들은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그들의 권속이고, 업이 그들의 의지처며, 그들이 선업을 짓건 악업을 짓건 그 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병들기 마련이고 늙기 마련이고 죽기 마련인 범부는

자신이 그러한 본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자를 혐오스러워하는구나.

만약 내가 이러한 본성을 가진 중생들을 혐오스러워한다면

그런 태도로 사는 것은 나에게 적절치 않으리.

이와 같이 머물면서 나는

재생의 근거가 다 멸한 [열반의] 법 있음을 알았고

건강과 젊음과 장수에 대한 자부심을 모두 극복하였노라.

출리에서 안전한 상태를 보았나니

그런 나는 열반을 추구하면서 정진했노라.

내가 지금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것은 적당치 않으리.

되돌아감이란 없을 것이며

[도와] 청정범행을 목표로 하는 자가 되리라.


                                                                   -[앙굿따라니까야 경우 경 중(A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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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11-10-26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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