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_이면우

나무 아래 나무 둥치 두 팔 벌려 잡고 고개 쳐들어 우듬지께 보며 나무야, 나무야, 불러봤습니다 누굴 이토록 간절히 불러보기가 얼마만입니까 고개 젖혀 누구 환하게 올려다보기가 또 얼마만입니까 그때 바람결엔가, 수십백천만 잎사귀 일제히 흔들며 나무가 대답했습니다
큰 걱정 말라고
때 맞춰 비도 내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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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空想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 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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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_곽재구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알지 
누군가를 고즈넉이 그리워하며 
미루나무 아래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알지 
자신을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격정이란 것을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분노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알지 
자신을 속이고 사랑하는 이를 속이는 것이 
또한 얼마나 쓸쓸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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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쏟아지는 생각들. 잠 밖으로 비집고 나온 꿈 같다. 어느 드라마. 아들이 뇌종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죽어버리는 아버지. 아들을 살릴 생각은 않고. 그가 이해가 된다. 그는 여력이 없었구나 하고. 겨우겨우 하루를 견디던 그는 새로 전개될 삶에 자신이 없었구나 하고. 생각은 내 아버지에게로 이어진다. 아버지 등 뒤에 누워 몇 번이나 아버지, 아버지의 부푼 배 좀 보세요. 아버지는 이제 곧 죽을 거예요, 말하려고 했다. 불 같은 아버지가 그런 소릴 들으면 곧 꺼져버릴 거라고 가족들이 말렸다. 내가 아무 말 안 했는데도 아버지는 짧게 타오르다 꺼졌다. 입을 크게 벌리고 내뱉는 아버지의 마지막 호흡호흡마다 하고픈 말들. 결국 소리가 되지 못했다.

차마 하지 못하는 말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슴에 내려앉았다 육신을 태울 때 함께 재가 될까. 흙 속에서 작은 벌레들이 갉아 먹을까. 나도 아버지처럼 차마 못할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꺼져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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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봐, 바람이 불어.
날 스친 바람이 맑아졌으면 좋겠어.
사랑해 하는 말이 나를 지나면
작은 음표들이 되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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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8 16: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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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8 16: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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