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받는 것이, 진정으로 사랑을 받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가! 타인이 풀어놓은 감정 꾸러미의 대상이 되는 일은 얼마나 힘겨운가! 너는 늘 자유롭고 싶은 사람인데,
_페르난두 페소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작은 메모를 남기고 몇 차례 버스를 갈아 타고 먼길을 갔다. 가본 적 없는 곳에서 입어본 적 없는 옷과 불려본 적 없는 이름을 갖고 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다르고 새로운 삶 속에서도, 익숙한 생각과 그 삶에 익숙해지려는 애씀이 하루를 가득 채웠다. 존 카바진의 말처럼 어디를 가든 거기엔 내가 있었다.

멋진 풍경 속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에게 편안한 마음과 좋은 이웃이 있는 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어떤 풍경도 사람의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 아이가 "엄마"하고 부른다. 순간 나는 엄마가 된다. 다른 삶이 펼쳐진다. 아이는 매일 자라고 매일 새롭다. 아직도 나는 엄마라는 삶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른 삶이라는 것도 사람에게 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다른 삶.

그럼에도 간혹 목소리마저 내려놓고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꼭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욕망으로 하는 일
_묘원 법사


피곤한 것은
몸이 아니고 마음이다.

몸이 피곤하다고 해도
피곤한 것을 아는 것은 마음이다.

바른 일을 할 때는
마음이 피곤하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도
마음이 피곤하지 않다.

바른 일이나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상쾌한 것은 아니다.

바른 일도 욕망을 가지고 하면
마음이 피곤하다.

욕망으로 하는 일은
반드시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마음이 허전하다.

욕망을 가지고 하는 일은
아무리 채워도 가득차지 않아
만족할 수 없다.

욕망으로 하는 일은
욕망의 크기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허무에 빠진다.

바른 일을 하고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으면
감각적 욕망의 유혹에 빠진다.

선과 악은
항상 함께 붙어 있는 양면성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막 지나온 길이
_조은

이제 막 지나온 길이
뻣뻣이 굳는다
니는 이 길의 근성을 알고 있다

옛날에도 나는 몇 차례
빠른 걸음으로
이 길을 지나갔다
하늘과 맞닿은 이 길을 돌아 나오며
내가 흘린 눈물을

나는 알고 있다
협곡을 지날 때면 들려오는
슬픈 메아리
가지 못할 세계로 유골처럼 굴러가는
위태로운 생각들

멈추면 그 순간
서늘한 이끼가 몸을 덮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서시(序詩)
_김민부 

나는 때때로 죽음과 조우(遭遇)한다 
조락(凋落)한 가랑잎 
여자의 손톱에 빛나는 햇살 
찻집의 조롱(鳥籠) 속에 갇혀 있는 새의 눈망울 
그 눈망울 속에 얽혀 있는 가느디가는 핏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창문에 퍼덕이는 빨래......
죽음은 그렇게 내게로 온다 
어떤 날은 숨 쉴 때마다 괴로웠다 
죽음은 내 영혼(靈魂)에 때를 입히고 간다 
그래서 내 영혼(靈魂)은 늘 정결(淨潔)하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