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백이 없으니 누구에게 술을 판다? - 서울대 교수들과 함께 읽는 한시명편 2 (가을-겨울편)
이병한 엮음 / 민음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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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문대학에 있는 교수합동연구실 자하헌에 놓인 칠판에 한시 한 수씩을 적고, 그 시편과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계절별로 시를 나누어 놓았는데 나는 가을과 겨울편에 있는 시들이 더 와 닿는 것이 많았다. 해석한 것으로 읽어서 그런지 담담하고 이해도 쉬웠다. 한시가 마음에 닿는 것은 이 시들이 시대를 넘어 오랜 세월 사랑받았던 보편성 때문이기도 하고, 유화 같은 현대시보다 먹으로 그린 그림 같아 더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인지도.

이상향
-심주


굶주림에 울부짖는 아이들 온 마을에 잇닿았는데

조세 납부 독촉하는 관리는 문을 두드리네

늙은 농부 밤새 잠 이루지 못하다가

일어나 종이에다 도원경을 그리네


桃源圖 - 沈周

啼飢兒女正連村, 況有催租吏打門.
一夜老夫眠不得, 起來尋紙畵桃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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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과 사랑 
_이재무 


오래전 일 입니다. 주말이면 아이와 나는 집 앞 공터에서 배드민턴을 쳤습니다. 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시합에 져주곤 하였는데 눈치 못 채게 져주느라 여간 애쓰지 않았습니다. 5전 3선승제. 1세트는 내가 이깁니다. 2세트는 가까스로 집니다. 이때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부러 진 것을 알면 아이가 화낼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트에 가서 듀스를 거듭하다가 힘들게 집니다. 그리고는 연기력을 발휘하여 분하다는 듯 화를 냅니다. 마른 미역처럼 구겨진 얼굴을 하고 있는 내게 아이는 미안한 표정 지으면서도 한결 업된 기분 참을 수 없는지 탄력 좋은 공처럼 통통 튀면서 경쾌하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배드민턴을 치면서 나는 들키지 않게 져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의 셔틀콕이 네트를 넘어 널리 멀리 퍼져나가면 그것처럼 큰 사랑은 없겠지요?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습니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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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기록하다 - 침몰·구조·출항·선원, 150일간의 세월호 재판 기록
오준호 지음 / 미지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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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가족 이야기를 가족 간에 할 수 없다. 입을 열면 가슴에 가득찬 무언가가 커다란 돌덩이 같은 것을 밀고 올라와 목 어디를 막아 버린다. 그 얘기를 거리에 나와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겉만 멀쩡하지 속은 새까맣게 타버린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정치적 의도나 개인적 욕심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다 여기에 이르렀을까. 입 밖으로 이 기막힌 사건을 얘기하는 게 두려웠다. 더 자세히 아는 것마저 피하고 싶었다. 세월호 집회에 쏟아지는 물대포와 최루탄을 보며 책을 샀다.
 
세월호 재판과정을 재구성한 책이라 감정적인 호소가 없는데 그 점이 책을 담담히 읽고, 상황에 대해 차분히 그려볼 수 있게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누구도 악인이 아니다. 모두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무서웠거나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거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는 것인데 진정한 이유는 아무도 습관이 될 만큼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이 없었다는 것, 어쩌면 모두가 용기를 내는 습관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부고발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우리 나라에서 용기를 내서 비뚤어진 일을 바로 잡는다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 이상하지도 않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고로 가는 수많은 고리 중에 단 한 고리만 끊겼어도...그 수많은 고리에는 비겁하고 눈치보는 내가 있었다. 
 
이 커다란 희생 앞에서도 여전히 운이 좋으면 나는, 내 아이는 괜찮겠지 하며 돌아보지 않고, 깨어 있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이 나라와 나 자신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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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형님은

_라술 감자토비치 감자토프

 

 

저의 형님은

대장이 아닌 사병이었습니다

볼가 강 전선에서 목숨을 잃으셨죠

늙으신 어머닌 애닮고 서러워

지금도 상복을 입고 계신답니다

 

내 맘이 이리도 쓰리고 또 아파옴은

이제 형님보다

제가 나이를 더 먹게 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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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9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떠나가며

_라술 감자토비치 감자토프

 

 

열차 승강대 위에 서서

싱글대며 벗에게 나는 손 내밀었소!

농지거리와 웃음을 흘리며 우린 이별했다오

내 조그만 차창 너머로 나무줄기 내달리고

노래를 부르다, 난 문득 정적 속에 입다물고 말았소

느릿느릿 슬픔이 내게 찾아들고

벗을 그리는 울적함에 젖어들면

기차 연기도 보이질 않고 기적조차 들리지 않는

주위를 둘러봐도 산과 바다는 보이질 않고-

차창 너머엔 벗의 얼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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