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이 여덟 단어 중 한 단어를 선택하라면 "현재"를 꼽겠다. 지금 여기에 사는 사람에게는 나머지 일곱 가지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 

좋은 책이다. 옳은 말이 있고, 그 말에 따라 살아가는 진지한 사람이 있다. 배울 만한 점이 있고, 생각할 만한 점이 있는 책이다. 그런데 내 마음이 비틀린 걸까? 책 전체에서 반질반질한 뭔가를 느낀다. 진지하고 인생의 핵심을 얘기하는데 난 왜 교양과 예술을 얘기하는 똑똑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일까? 지인 중에 이런 얘기를 하고, 얘기를 나눌 때는 함께 취하지만 돌아서면 허전했던 사람이 있다. 언젠가 시를 읽고 그 느낌에 취해 절규하듯 말했던 사람이나 본질적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 모두 진지하고 감성 충만이었는데 돌아서면 나는 왜 그렇게 공허했을까. 비슷한 느낌이 든다. 이 책에서 꼬투리를 잡을 만한 몇몇을 찾아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억지가 좀 있지 않나 싶어 관둔다. 작년인가 읽었던 책 중에 [바른 마음]이 생각난다. 상대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내가 느끼기에 싫은 감정이 있으면 그 말에서 바르지 못한 어떤 것을 찾게 된다는. 

 

제가 뉴욕에서 공부할 때 느낀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집어 넣으려 하지 않고 뽑아내려고 애썼습니다. 서른여섯에 사회생활을 하던 아저씨가 책상에 앉아 처음으로 디자인을 배우는데 주뼛댈 틈도 없이 교수의 칭찬이 쏟아졌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해온 숙제를 벽에 쭉 붙여놓고 좋은 점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교수는 마치 칭찬을 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 뒤에는 왜 좋았는지 제출한 작품에 대해 해석해주고 자세히 설명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학생이 부연 설명을 하면 그 말을 북돋아주더군요. 그러니 학생들은 과제를 하면서도 늘 신이 났고, 서로 앞자리에 앉으려고 할 수밖에요. -p.26~27

호학심사(好學深思), 즐거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라. 이 말에서 더욱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심사입니다. 너무 많이 보려 하지 말고, 본 것들을 소화하려고 노력했으면 합니다. 피천득 선생이 딸에게 이른 말처럼 천천히 먹고, 천천히 걷고, 천천히 말하는 삶.-p.126

하지만 우리는 약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맨 위에 있는 사람도 저 아래 있는 사람도 똑같아요. 그러니 균형을 맞추기 위해 윗사람들에게 강하고 아랫사람들에게 약한,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p.176

이 훈련을 한번 해보세요.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미국에서 대학원에 다닐 때 논문을 쓰기 전에 우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딱 한 줄로 정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걸 세 개의 패러그래프로 써보고, 그걸 다시 챕터 별로 나눠서 논문을 만들죠. 예외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됩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게 일곱 단어로 정리되지 않는 건 아직 내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p.207

우린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 우린 언제든지 질 수 있다.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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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다. 보이는 것들이 어둠에 묻히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스물스물 일어난다. 햇살에 선명한 먼지처럼 어둠에 또렷해지는 감정과 생각의 찌꺼기들.

어쩌다 사랑을 생각한다. 성숙한 사랑이라는 건 어떤 걸까. 사랑은 이성을 삼킨 게 아니란 말인가. 내 사랑은 모두 유치했다. 심지어 가족과 친구에 대한 애정마저 성숙하다고 할 만한 건 없었다. 어려서 어리석었을까. 사랑해서 어리석었던 걸까.

헤어진 사람들을 생각한다. 한때는 사랑이라 불렀던. 그 감정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후회와 부끄러움이 설렘과 기쁨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이젠 그 시절이 색 바랜 추억이 되었기 때문일까.

사랑한다. 엄마를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고...여전히 돌아서면 후회할 시간들. 성숙한 사랑이란 게 뭘까. 지금도 내 사랑은 유치하다. 왜 내 사랑은 자라서 어른이 되지 못했나. 모르겠다. 요즘은 더욱 모르는 것 투성이다.

둔하고 무지한 내가 사랑을 생각할 정도로 어둡고 고요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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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다. 너무 익숙한 길이라 주의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니 움직이지 않았다.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겨 앞바퀴가 돌아가지 않은 탓이다. 앞바퀴를 들고 뒷바퀴로만 끌고 수리점까지 가야 하나 난감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퀴를 꽉 붙잡고 있는 브레이크 한쪽을 손으로 잡아 당겼더니 바퀴도 굴러가고 브레이크도 잘 되었다.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고서야 까진 손과 무릎이 보였다. 무릎을 구부릴 때마다 불편해서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끌고서 집으로 왔다.

자전거 바퀴가 잘 굴러가는 것이, 다리가 아프지 않은 것이 얼마나 편안한 일인지...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어떤 행복과 불행보다 오늘 겪은 사소한 불편이 무사한 하루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특별한 일 없는 하루가 내가 찾는 평온과 평화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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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갔다. 종일 비가 내렸다. 벚꽃은 어제보다 더 탐스럽고 환해졌다. 대구에 들어오니 벚꽃이 비에 떨어져 눈처럼 쌓였다. 같은 비를 맞으면서도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은 더욱 피고, 만개한 꽃은 지고 있다. 비 때문이 아니었다. 필 때는 피고, 질 때는 지는 것이다. 봄비가 온 땅을 적셔도 꽃은 알맞은 때를 알아 제 삶과 죽음을 꾸려 나간다. 봄비가 내린다. 생과 사를 재촉하며 무수한 시간의 비가 지금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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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사람들이 슬픔의 봇짐을 지고 내게로 온다. 울음을 터뜨리고나면 찾아오는 고요.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위로하지 않아도 스스로 눈물을 닦는 사람들. 나는 돌처럼 무감하여 오히려 담대하고 담담하다.

그러나 밤이 오면 하릴없는 두 귀를 타고 들어온 슬픔의 목소리가 나갈 길을 찾지 못한 채 내 안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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