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름만 죽 늘어놓고 나가려다 쓴다. 피곤할 때는 피곤하다고만 말해야지. 피로는 햇살 속에 조용히 떨어지는 벚꽃잎 같을 때도 있고, 막힌 변기 같을 때도 있다. 도수 낮은 안경을 쓴 것 같기도 하고, 아예 안개가 감싸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피로는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온다. 나른하게도 오고, 묵직하게도 오고. 요며칠 저녁마다 몸살기가 돈다. 미리 준비한 한약을 한 봉 먹고 살아나서 남은 오늘을 겨우 마무리한다. 춘곤증 같은 피로다. 꽃과 미세먼지가 뒤섞인 봄날. 
 
-----------------
 
신의 잠꼬대-장하빈
2021 현대문학상 수상시집-황인찬 외 
자라-문성해
내가 모르는 한 사람-문성해
나의 9월은 너의 3월-구현우
십일월을 만지다-이면우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박판식
우리의 죄는 야옹-길상호
마음챙김의 시-류시화 엮음
이상 시집-이상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이상/박상순 해설
이상 전집1-이상/권영민 해설
이상-이승훈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핍 윌리엄스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장-릭 낭시
일인칭 단수-무라카미 하루키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우치다 타츠루
 
-다시-
현대시작법-오규원
얼음의 자서전-최승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증오

_황인찬

 

 

표기에 오류가 있었어요

여기 표기가 표고라고 되어 있어요

 

사무실에서 선생님이 내게 말한다

 

이런, 정말 그렇군요

나는 표고를 표기로 고친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요?

선생님이 묻지만 나는 그냥 머리만 긁는다

 

역시 영혼일까요?

 

정오가 지나면 점심시간도 끝이 난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시 일해야 한다

 

나는 회사를 나와 오류동 집으로 돌아간다

 

-2021현대문학상 수상시집(현대문학, 2020), p.39.

 

    

    

사무실에 팀장님이나 과장님이 아니고 왜 선생님이 있을까? 아마도 선생님은 나를 가르치려 드는 자일 것이다. 잘못 썼다니까 고치지만 나는 정말 잘못 쓴 것일까. 선생은 나의 오류가 내 영혼의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나는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나의 집은 온갖 선생들이 오류라고 부르는 마을에 있다. 그 마을에서 살겠다. 한 인간을 오류라고 하는 자를 증오한다.

 

증오하면서 이렇게 담담히 글을 쓸 수 있다니. 원인이 성별이든, 피부색이든, 정체성이든, 신념이든... 인간 존재를 오류라고 여기는 자가 있다면 기꺼이 그를 증오하리라. 그러나 선생 앞에서는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을 이해한다. 나의 모습이. 그런데 누구를 증오하기에 내 마음이 이 시를 맴도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절필

_장하빈

 

 

새가 날개 접으면 새의 주검 되듯

밥그릇 엎으면 하얀 사리 무덤 되듯

붓을 꺾으면 생의 불꽃 사그라지네

붓끝에서 불꽃이 피어나는 까닭이네

 

-장하빈, 신의 잠꼬대(시와 반시, 2021)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 정도의 마음이어야 글을 쓸 만한 걸까. 글을 쓴다는 게 뭘까. 신의 잠꼬대가 끝나면 저절로 절필이 될까. 시인에게 절필은 하얀 사리 무덤 같은 걸까. 몇 달 전 만났던 노시인이 당신은 늘 옆길로 샜다고, 아니 옆길에서 살았다고 하셨다. 그 옆길이 직장이었다고. 그러니까 생계가, 생활이 옆길이고 시와 문학이 본길이었다는 말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살아서 시인이 되었을까. 시인이 되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붓끝에서 불꽃이 피어나야 살아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 정말로 있다. 장하빈 시인도 그런가 보다. 절대로 절필할 수 없다는 절필의 시를 쓰는 걸 보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산에 벚꽃이 피었다는 뉴스를 봤다. 조금 있으면 대구도 피겠네, 했는데 바로 오늘 집 앞에 벚꽃! 깜짝 놀랐다. 매년 피는데 매번 놀란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청아 2021-03-22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ㅋㅋ벚꽃 대구에도 피었군요! 서울에도 아주 드물게 피었는데 본격적으로는 아직이예요. 덕분에 기대중입니다.매일 산책길 벚꽃나무들 감시중!🤓

이누아 2021-03-22 19:55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봄이면 꽃 피는 게 당연한데도 벚꽃은 늘 갑작스럽게 피는 것처럼 느껴져요. 서프라이즈 선물처럼요.

바람돌이 2021-03-23 0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산과 대구는 같이 가는군요. ㅎㅎ 아침 출근할 때마다 벚꽃잎 휘날리는 거 보며 가고 있습니다.

이누아 2021-03-23 19:06   좋아요 0 | URL
대구는 아직 휘날리진 않아요. 정말 신기한 게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질 때가 되어야 져요. 꽃이고, 잎이고. 태풍이 불어서 나무가 뿌리까지 뽑혀도 잎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우리 동네 벚꽃은 꽃샘바람 불어도 한 잎도 안 떨어지고 있어요.^^
 

모래시계

_신용목

 

 

잤던 잠을 또 잤다.

 

모래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잠이었다.

 

누구의 이름이든

부르면,

그가 나타날 것 같은 모래밭이었다. 잠은 어떻게 그 많은 모래를 다 옮겨왔을까?

 

멀리서부터 모래를 털며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모래로 부서지는 이름을 보았다.

가까워지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의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잤던 잠을 또 잤다.

 

꿨던 꿈을 또 꾸며 파도 소리를 듣고 있었다. 파도는 언제부터 내 몸의 모래를 다 가져갔을까?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돌아보았다.

 

-신용목,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창비, 2017)

 

 

아침에 인간극장을 봤다. 치매 걸린 아버지를 모시는 효자 이야기다. 그 아버지가 그런다. 나는 열 몇 살이었는데 지금은 아흔이 넘었다고. 가짜로 나이를 먹은 건지, 가짜가 아닌지... 정확히는 아니지만 이런 말이었다. 그 아버지는 열 몇 살이던 자신이 어떻게 아흔이 된 것인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파도는 언제부터 그 노인의 몸에서 시간의 모래를 다 가져갔을까. 내 몸에는 얼마만큼의 모래가 남아 있을까. 내게서 흘러나간 모래는 다 어디로 가 있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