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지의 [노귀재] 노래가사를 어디 적어 둔 듯해서 찾다가 예전에 쓴 글이 보였다. 노래가사는 찾지 못하고 그 글을 읽었다. 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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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한 선생님은 공부 대신 전생·가위눌림 같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그날 집에 가서 그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꽤 긴 편지로, 내용은 나름대로 심각하고 복잡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사람이 윤회를 한다면 전생의 전생의 또 전생을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내가 존재하는가? 무엇으로 전생의 나를 현생의 나와 동일시할 수 있는가? 최초의 나는 우주 탄생 때 생겨난 것인가...등등.

그 편지 덕에 점심시간에 선생님과 면담을 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게 아무 것이나 질문을 하라고 하셨다. 그 복잡하던 문제들은 다 어디로 달아나고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사람들은 왜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나요?"
였다.

이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대답이다.

"왜 '왜 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나요?'라고 질문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을 다 사랑한 뒤에 그제야 사람들을 사랑할 겁니까? 사람들을 핑계대지 마세요. 스스로 하지 못할 뿐입니다. 언제나 질문은 '사람들'로 시작되어서는 안됩니다. '나'로 시작하세요. 스스로 모를 뿐 모든 사람을 사랑한 사람이 이 지구에도 있습니다. 만약 한 사람도 없다 할지라도 스스로 그러한 사람이 최초로 되어도 좋을 듯합니다."

그때 충격은 말로 다할 수 없다. 말을 할 때마다 내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핑계로 사용되고 있는지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다 그러는데""사는 게 다 그렇지"하는 말을 쉽게 한다. 무서운 말이다. 원효 스님 말씀처럼 '오라고 유혹하지도 않는 악한 길에 많은 사람이 있는데' 거기에 덩달아 서 있다면 손 꼭 잡고 감옥으로, 지옥으로, 혹은 사는 게 다 그런 소굴로 향해 갈 것이다. 보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지, 선지식들과 경전들이 소리쳐 나를 불러도 나 자신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가상의 사람들에게 나를 맡겨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의 저 끝에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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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때의 충격! 기억할 만한 일이었다. 이 글을 쓴 날짜를 보니 재작년이다. 고등학교 때 이야기인데 되새기고 되새긴다. 안 되새겨도 될 만큼 몸에 익으면 좋을텐데 아직 그러지 못한 탓인지...새삼스레 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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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06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는 말씀이세요.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타인에게두 역시 그만큼의 상처를 주더라구요. 물론 제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랫만에 뵈니 반갑습니다. 이제 종종 좀 뵙고 그럽시다!

혜덕화 2005-02-0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정말 그래요. 절하고부터 제가 바뀐 점이 있다면
그 많은 <사람들은 왜 >로 시작하던 말들이, <나는 왜> 로 바뀌고 있다는 거죠.
고교때부터 철학적이었네요. 전 공부도 못하면서 공부하느라 그런 얘기들어도 저런얘기도 있나보다 흘려들었을텐데요.
즐거운 설 보내세요.

이누아 2005-09-09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설 잘 보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이야기에서의 질문은 당시 세 가지였습니다. 위의 질문이 첫번째 질문이었고, 두 번째 질문은 "왜 어떤 사람은 배불러 죽고, 어떤 사람은 배고파 죽습니까"였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나는 죽음이 두렵습니다"였습니다. 지금은 그때처럼 두렵지는 않은데 그때는 늘 죽을 것만 같았거든요. 선생님은 각각의 질문에 각각의 답을 주셨습니다. 해답을 다 얻은 듯 했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체득되지 못한 말들은 허공에 가득합니다. 이 질문을 한 기억이 또렷합니다. 이번 생이 끝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질문하는 고등학생인 제 자신 앞에 앉아 웃으며 사랑과 평등 그리고 삶과 죽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평온도.
 
혜능
후루타 쇼킨 / 현음사 / 1993년 8월
평점 :
품절


제목만 봤을 땐 혜능의 일대기를 읽기 편하게 다룬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읽다보니 그런 게 아니다. 책의 말미에 혜능의 연표를 길게 붙여둔 것이나 몇 페이지나 되는 참고문헌이 말해주듯 자료를 분석하고 비교하는 형식으로 혜능의 삶을 추적한 글이다.

다 읽고나니 기억에 남는 것은 혜능에 대해 기록한 인물이 금강경 계통의 사람인지, 열반경 계통의 사람이었는지에 따라 기록이 달라진다는 것 뿐이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나 기록이 기록자에 의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혜능의 참모습이 무엇이었을까? 참모습이란 무엇일까? 내가 그와 같지 않으면 내가 보는 모습일 뿐 참모습은 아닌게다. 어쩌면 모든 것은 참이지만 내 그림자 때문에 그 참들은 그저 어두워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이런 책을 읽으면 여러 기록을 통해 재구성되고 있는 혜능을 사랑하고, 그 혜능을 더 잘 알고 싶어 [단경]이나 [신회어록]이나 [조당집] 등등의 여러 책들을 읽고 싶은 열망이 일 만도 한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저 그 사람이 보고 싶었다. 이 기록들에서 자유로운 그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고개를 돌리면 그가 있을 것만 같은데, 왜 돌려지지 않는걸까?

저자들의 말에 따르면 혜능이 말하는 무념이란 모든 대상에 있어서 마음이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혜능이라는 대상과 이름에 물들지 않은 채 무념 상태에 있다면 그를 만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가 그이게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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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무념을 세워서 종(宗)으로 삼는가. 단지 입으로 견성을 말해도,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을 가지며, 생각 위에서 문득 삿된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일체의 망상은 이것으로부터 생긴다. 자성은 본래 한 법도 얻어야 할 것이 없다. 만약 얻는 바가 있어서 망녕되게 화와 복을 말한다면 곧 쓸데없는 삿된 생각이다. 고로 이 법문은 무념을 세워서 종으로 삼는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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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  순류스즈끼 저 / 불일출판사 / 1995-10-21

 

초심자를 위한 선수행에 관한 책이다. 서양인 수행자를 염두에 둔 책이기도 하다.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정진할 것을 권한다. 모든 내용에 다 공감하지는 않지만 이런 책들은 언제나 나태한 나를 꾸짖는다. 어쨌든 책은 이렇게 읽혀졌다.

(바른 자세와 같은) "이들 형식들을 올바른 마음 상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라. 이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 그 자체가 마음의 올바른 상태를 이미 가진 것이다. 어떤 특별한 마음의 상태를 얻으려고 할 필요가 없음을 알아두라".

처음 마음을 발하는 그 마음이 바로 바른 깨달음이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의 시작은 바르게 앉는 것, 선수행을 하려고 앉아 있는 그 자체가 이미 다다른 자리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내게 힘이 된다. 우선 앉으라고?!

"마음 속에 잡초가 있더라도 차라리 고맙게 여기라. 마침내 그것들은 수행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므로" 

앉았더니 마음 속에 파문이 인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그만두고 싶은 생각...잡초들이 일어난다. 그랬더니 잡초가 있어도 괜찮단다. 마음 속의 잡초가 변하여 정신적인 거름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그때 수행은 놀라운 진전을 갖게 된다. 그러니 염려말고 앉자.

"이 단순한 수행을 매일같이 해나가면 어떤 굉장한 힘을 얻게 된다. 그것을 얻기 전엔 굉장한 무엇 같지만 일단 얻고 보면 별것이 아니다."

앉기는 앉되 매일같이 일편단심으로, 반복해서 앉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굉장한 무엇은 쉽사리 얻어지지가 않는다. 실망스럽다.

"공부에 진전이 없어 실망하는 것은 수행에 욕심을 부린 탓이다. 그러므로 수행에 약점을 보여주는 징조나 경고신호가 올 때에는 고맙게 느껴야 한다."

그러면 일단 앉자. 망상이 일어도, 진전이 없어 보여도 실망하지 말고 반복해서 앉자. 그렇게 앉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대가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한다면 업을 짓고 업에 끌려가는 결과만 만드는 셈이다. 그리고 좌복(방석) 위에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아,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앉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말이다.  제일 처음 말한 그 내용이다. 좌선은 수단이 아니라 좌선이라는 수행 속에 이미 깨달음이 내재하고 있다. 그래서 스쯔기는 깨달음보다 우리의 원래 성품에 대한 강한 확신과 수행에 대해 가지는 성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부처와 같이 수행하기!

"불교가 정말 무엇인지를 모른 채, 철학으로써 혹은 교훈으로써 얼마나 완벽한가 만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끝끝내 이 책은 수행하라고, 매일 하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어서 이해만 하지 말고, 교훈만 얻지 말고 경험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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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5-01-29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오랜만입니다.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이야기로군요.^^

2005-01-29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02-02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발님, 요즘 일이 있어 컴퓨터 앞에 잘 앉지 못합니다. 저도 실행하기 어려워서(주로 시간을 핑계로) 눈 뜨고, 감을 때만이라도 실천하려고 애씁니다. 너무 짧고 사소한 수행이지만.
로드무비님, 님 덕에 오타를 발견했습니다. 왜 제 눈에는 안 띄었을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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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서약 운동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8일 접수된 장기기증등록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등록되었으며,  님의 등록번호는 055###입니다.

님의 바램대로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을 약속드리며,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장기기증등록증은 우편으로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보내드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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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서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을 보다 신랑이 "우리도 장기기증해야 되는 거 아냐" 하기에 "그러지" 했다. 미리 알아보려고 인터넷으로 들어가 보니 장기기증, 사후조직기증, 각막기증, 사체기부, 신장이나 골수처럼 살아서 기증하는 것 등 종류가 많았다. 죽었는데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기증은 불가능했다. 신랑에게 말했더니 죽어서 하는 것만 하랜다. 헌혈 한 번 하고 한 달이나 빌빌거리면서 다른 건 하지 말라고. 장기기증이야 뇌사라야 되지만 각막이나 조직기증은 사후 몇 시간 안에 병원으로 이송되면 가능하고, 사체기부는 죽기만 하면 가능한 것이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리라.

사실 그냥 고이 죽은 채로 죽는 게 마음 편할 것 같기도 하지만 목숨을 거는 것도 아니고 죽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도울 수 있다는데...난 죽어서 내 몸은 내 몸이 아닌건데 장기기증, 사후조직기증, 각막기증까지 표시하고는 10분 이상 고민했다. 사체기부는 병원에서 태워져서 병원 납골당에 가는데 그게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는 거다. 집착은 죽음을 초월하나 보다. 불자로서 부끄럽다. 의대생들이 외국까지 가서 해부하고 온다는데, 내 것도 아닌데, 일단 표시하자.

신청한 뒤 위의 메일이 왔다.

이렇게 메일을 받고보니 죽음이 언제나 닥칠 수 있는 그런 것으로 더 가까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나 그렇듯이 남을 위하기만 하는 그런 일은 없다. 내가 죽어서 어떻게 될지, 어떤 모습으로 죽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내 삶에서 죽음이 배제되지 않고 삶의 한 부분을 이룰 수 있게 된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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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1-0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누아님. 전 정말이지 넘 부끄러운 게 말이죠. 장기기증은 괜챦은데 사체기증같은 경우, 해부할 때, 아프면 어떡하나..그리고 부끄라바서 어떡하나..그런 얼토당토않는 생각에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절 보는 순간, 생과 죽음이 같은 삶 안에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죽은 몸이 뭐가 그리 부끄럽고 뭐가 그리 아플 것이라고...사체기증과 장기기증..이누아님의 결심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전 장기기증은 하고 싶은데..사체기증은 인생자체가 형편없이 부끄라운 몸뚱이인지라 어떻게 될 지..

이누아 2005-01-29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름 지운다고 지웠는데 위에 하나 더 있었군요. 평소에도 페아퍼에 선희야, 선희야 달고 지내잖아요.

장기기증과 사체기부는 같이 안 하셔도 됩니다. 장기기증만 따로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거죠. 살아서 골수나 신장을 기증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도 제 몸을 먼저 염려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런 일이야 누가 강제하는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부담스럽게 해서는 곤란하죠. 기쁘게 해야죠. 저는 이걸 계기로 유언도 장만했는걸요. ^^ 즐겁습니다.
 

몇 달 전 대학 동기 언니가 입보리행론에 관한 책을 찾기에 저번 달 말에 보내 주었다. 미리 보낸다는 말 없이 보내서 그런지 감동받았다며 메일이 와 있다.

하하하, 기분이 좋다. 작은 행위가 서로에게 이렇게 기쁨이 되는구나 싶다. 새해가 이렇게 즐겁게 시작된다.

좋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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