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 전, 원본비지
김혁제 / 명문당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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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을 보았다. 읽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해서 그냥 보았다고 한다. 마음이 닿아 있지 않으면 무슨 소리가 들리겠는가?

사서 가운데 왜 이 책을 가장 마지막에 읽도록 배치해 두었는지 알 만하다. 매일 조금씩 조금씩 읽을 때는 모르겠더니 오늘 책을 덮고 보니 어렴풋하게나마 대의의 어디쯤은 닿을 듯도... 하지만 선명하지가 않다. 그래서 이제 소리내어 읽어보려니 자꾸 막힌다. 그래도 생각보다 재미있다.

공자가 "배우고 쉬임없이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나는 時를 때때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時가 언제나 라는 의미로 느껴진다)라고 했는데 이제 겨우 거기에 조금 닿으려나 말려나...멀리서 온 친구를 반가와하며 익힌 것을 나눌 정도는 못 되나 보다.

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행하는 생이지지나 안이행지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배워서 알고, 힘써 행하기라도 해야지. 닿기만 한다면야 처음 시작이야 무슨 대수이겠는가? 중용에서는 "至誠은 無息"이라 하였다. 지극한 정성은 쉬임이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은미하여 보이지 않을 것이나 "莫見乎隱"(은미한 것보다 더 드러나는 것은 없으리라)의 그 은미함의 시작이 아니겠는가.

이 책은 "명문당"에서 나온 중용이다. 토가 다 달려 있어 읽기에 편하다. 또 양장이 아니라서 가볍고 들고 다니기 좋다. 책값도 싸다. 나같은 초학자가 보기에 적합하다. 아쉬운 것은 나같은 초학자도 발견할 수 있는 오자가 있었다. 내게 학민문화사의 중용이 있는데 글자가 크고 언해도 옆에 실려 있으며, 비교적 오자도 적다고 알려져 있다. 또 옆의 언해를 참고할 수 있어 좋다.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 어렵다는 점과 가격이 명문당 책의 두 배라는 점이 단점이긴 하지만 다른 책들과 비교할 때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니다. 가볍게 읽으려는 이에게는 "명문당"의 것을, 주까지 독파해 보겠다는 이에게는 학민문화사의 중용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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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의 중용 풀이
감산 지음, 오진탁 옮김 / 서광사 / 199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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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달만에 이 책을 읽었다. 물론 중용 원문과 주자의 해설이 담긴 책과 비교하며 읽느라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빨리 읽어 "버릴 수"는 없는 책이다.

중용이 중요하게 다루어진 것은 주자 이후이다. 대사가 명나라 사람이니 주자의 글을 읽지 않았을 리가 없다. 아마 집주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사의 글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얽매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책이나 첫장이 중요할 터다. 감산 대사는 중용에서의 중요한 개념인 "신독"을 홀로 있을 때를 삼가해야 한다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상대를 초월한 절대의 경지를 말한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대사의 시각은 유학자들의 입장과는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문장을 끊는 위치가 다르기도 하다. 그 독특함이 이 책의 힘이다.

물론 대사의 해설이 독특하다는 것이 유학자의 해석이 구태의연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함께 읽으면서 이들 모두의 중용을 보는 시각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무엇보다 좋은 점은 왜 이 문장이 갑자기 나왔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점이다. 이를테면 갑자기 시가 나오는데 그 시가 앞 문장과 관련된 것일 뿐 아니라 첫장의 대전제들과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는지 설명해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첫장의 "막현호은(莫見乎隱)하고 막현호미(莫顯乎微)"라는 구절에 대해 중용 전체에 걸쳐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해 주는 점 등이다. 내게 있어서는 이 점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데 가장 유용했다.

중용이라는 책은 하나이지만 읽는 이의 마음의 깊이에 따라 다른 중용이 될 수 있다. 적혀진 대로 보라고 책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감산 대사는 감산 대사의 풀이를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중용의 이루라고 종용하고 계신다.

아쉬운 점은 감산 대사의 번역된 다른 책, [원각경]이나 [장자]처럼 뒷부분에 원문이 없는 점이다. 읽으면서 궁금한 점을 원문과 대조해서 볼 수 있었다면 훨씬 유익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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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소리
서암스님 시자 지음 / 시월(十月)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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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 스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서암스님에게는 오도송도 없다. 열반송도 없다. 굳이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를 열반송이라고 한다면야 열반송이다. 내가 깨달았다는 아상이 없으니 '내 깨달음의 노래'(悟道頌)도 없으며, 삶이 열반이었으니 살다가 간 그것이 열반의 노래였으리라.

이 책은 서암스님 시자가 엮었다고 되어 있다. 책 안에 시자스님에 대한 어떤 소개도 보이지 않는다. 그 스승에 그 제자인가. 이름자 남겨 무엇하리요, 내가 썼네 하는 마음만 일겠거니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검소하고 소박하며, 가르침에 자상한 삶 자체가 귀감이 되는 분이다. 작년에 열반하셨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계셨던 분이다. 선지식을 찾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고 싶은 심정이다. 어찌 이 시대에는 스승이 없다는 둥 그런 막말을 할 수 있으랴. 어딘가에서 지금도 소리 없는 가르침으로 생활하실 분들이 꼭 있을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일이다.

읽기 편하고, 내용도 쉽다. 이렇게 손쉽게 마음의 북을 울리는 가르침이 여기저기에 꽂혀 있다. 서암스님 말씀처럼 '좋은 말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모양인가? 하나라도 실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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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알기쉬운 한의학 - 신재용생활한방 4
신재용 / 동화문화사 / 198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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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교과서처럼 음양오행론, 장상론, 병후론 등이 각각 나누어져 장을 이루고 있어 언뜻 보면 어려운 책인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비전공자인 내가 보기에 아주 쉽다고 할 수 없지만 제목에서 말하듯 그 대강은 '알기쉽다'.

이 책을 읽어서 한의학에 대한 지식이 늘어났는지 어떤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한의학이 사람을 사랑하는 학문이라는 느낌이 든다. 손가락을 보고, 얼굴빛을 보고, 웃음소리를 듣고, 밥 먹는 습관이나 성격을 보고, 또 환자의 호소를 들으면서 병을 파악한다. 환자에 관한 한 병을 파악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온 몸을 살피고, 마음을 살핀다. 그래서 증상이 같아도 다른 병임을 찾아내고, 그 반대도 알아 낸다. 그리고선 어떤 때는 침을 주고, 어떤 때는 약을 주고, 어떤 때는 청취자가 되고, 어떤 때는 생활습관을 바꾸도록 시킨다. '그 병에 그 약'이라는 공식이 왜 없겠냐만은 '그 사람에 그 약'이 더 올바른 처방이 되는 것이다. 아픈 데만 보고, 병만 보면 알기 어려워도 사람을 보고 전체를 보면 쉬워지는 것이 한의학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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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 여시아문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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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을 들면 스님들이 쓰신 이야기책이 많다. 스님들이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떤 책은 왜 쓰셨을까 싶은 책도 있지만 [산중일기]나 [선방일기] 같은 책은 읽다보면 그들에게는 일기에 불과한 것이 왜 책으로 엮어져 나왔는지 금방 알 수가 있다.

어떻게 생활이 수행이 되는지, 어떻게 생각을 끊고 하나에 전념하는지, 어떻게 고통을 이겨내며, 어떻게 병을 이해하며, 얼마나 고독한지, 위선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나는 선방 스님들의 일상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하루종일 가만히 앉아 계시는 스님 한 분이 푹 쓰러진다. 쉬지 않고 육체적으로 일하는 후원의 일을 맡아하는 사미니 스님들은 쓰러지지 않는데 가만히 앉아 계시던 분이 더 많이 아팠다. 잘못 공부해서 아픈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기가 움직이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익숙해질 때까지는.

글 중에 본능을 억제하는 것과 견성의 관계에 관한 대화가 나온다. 사실 선방생활이란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이 아니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것이 아니며, 서고 싶다고 서는 것도 아니고, 말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생각조차 끊으려고 애를 쓰고 있지 않는가. 그것이 견성에 유익한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집에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돈을 해두면 찾아 쓰기 쉽고, 이사하기 좋고, 버리기도 쉽고, 챙기기도 쉽듯이 생활 전체가 정돈이요, 또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으니 모든 존재에 대한 경계와 자비가 함께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그럼으로써 몸과 생각이 어떻게 호흡하며 살아가는지 더욱 선명히 볼 수 있으리라.

요즘은 재가자들을 위한 선방이 꽤 있다. 한 달이나 석 달쯤 선방에 앉아 있을 수 있다. 생에서 한 달이나 석 달이 그렇게 긴 시간일까? 그런데도 내게는 시간이 없다. 돌아보면 죄다 핑계들이다. 새벽에 앉아 진언을 하면서 생활 가운데 맑음 있으라 하며 나를 또 위로한다. 위로받을 내가 아직도 우두커니 앉아 있다. 문득 내가 일기를 써도 읽는 이에게 이런 유익함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활이 수행이 되고서야 가능한 일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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