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도 없고 달도 없다
오쇼 라즈니쉬 지음 / 선영사 / 199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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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친구와 서점에 갔다. 친구가 오쇼의 강의록들을 펼쳐 보며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물었다. 나는 아무 거나 읽으라고 했다. 모든 책이 거의 비슷하다고. 그런데 오늘, 그의 이야기가 항상 같은 말이었던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똑같은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의 책은 나를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있다. 호흡을 멈출 듯이 가슴에 멎는 구절들이 있다. 그런데 사실, 금방 잊어버린다. 이 책도 그렇게 잊어버릴지 모르지만 어슴프레 느끼던 어떤 것을 분명하고, 환하게 가리킨다. 그것들 중의 하나만...요약하면...그의 말을 요약한다면 그는 비웃을 것이다. 어떤 진리도 요약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것만 같다만...

깨달음은 그냥 갑작스레 오는 우연적인 손님이지, 구한다고 얻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깨달음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노력해라. 그러나 그 노력이 깨달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수행을 하면 깨달음에 다가갔다고 착각한다. 깨달음엔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장소가 아니니까. 10년 동안 매일 천배씩 했으니 깨달음은 이제 내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열심히 일해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길이 있고, 내 집은 그 길가에 있다. 나는 한번도 마차를 본 일이 없다. 마차가 지나간다. 친구가 마차가 지나간다고 말한다. 나는 보지 않는다. 그러면 마차 지나간다. 깨달음이 내게 그렇게 오더라도 내가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마차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다시 마차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와도 또 놓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라고는 마차에 대해 듣거나 읽고, 마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평편하게 해 두는 것이리라. 그랬다고 마차가 꼭 우리 집 앞을 지나가란 법은 없다. 왜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표현하는지 이해가 될 듯하다. 선물이나 손님처럼 갑작스레 마차가 집 앞을 지나가고 나는 그것을 보고, 더이상 마차에 대해 궁금해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런데도 올지 오지 않을지 모르는 마차를 위해 길을 닦는 건 정말 어리석어 보인다. 그런데도 저 말이 아주 좋다. 

그렇다고 마차를 기다리듯이 깨달음을 기다린다면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옛 선사들은 빨리 깨닫고 싶어하는 것과 깨달음을 기다리는 것은 영영 깨닫지 못하게 하는 길이라고 하셨다. 깨달음이 욕구나 집착과 만나면 이미 깨달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예전에 충청도 절에 있었던 적이 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인 스님이 "이누아, 여기에 학교를 졸업'하려는' 마음과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이 있어요. 그 뭔가 '하려는' 것의 차이를 말해 보세요". 무언가 하려는 것은 욕구나 집착을 요한다. 그것이 욕구나 집착이라는 점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물으신 것이다. 다른 스님이 이 말씀을 들으시고 "그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하셨다. 이 대화가 간혹 흔들거렸다. 깨달음이 구하는 것이라면 무슨 차이가 있는가...이제 이 흔들림에 미소가 어린다. 어린왕자가 목마르지 않는데도, 갈증과 갈망이 없는데도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 까닭을 이제야 이해하겠다.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또같은 그 이야기로 끝난다. 사실, 이 이야기를 유심히 보기만 해도 이 책 전부를 읽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애쓴다. 어리석어 보이는 노력. 그런데 이 말을 하면 자꾸 웃게 된다. 

 ==============

비구니 지용은

수년 동안 마음 공부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깨달음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오지 않았다.

 

어느날 밤,

그녀는 물이 가득 담긴

낡은 대나무 물통을 지고 가고 있었다.

 

그녀는 지고 가던 물통에서

둥근 보름달이 비치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며 걸었다.

 

순간,

엮어 놓은 대나무 물통의 틈새가 갑자기 벌어지더니

물통 밑바닥이 저절로 빠져 버렸다.

 

물은 모두 쏟아져 버렸고

거기에는 더 이상 달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그때 지용은 문득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깨달음에 대해 노래를 지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하면서

나는 물통이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지고 갔지만

갑자기 밑바닥이 빠져 버렸네.

 

이제 물도 없고

물 속에 비친 달도 없다네.

내 손 안에는 허공만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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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수의 기도
작자미상, 오강남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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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교회를 나가는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지금은 교회를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인 내 벗들을 위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매일 수행하지 않으면 자비심을 잃게 된다는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벗들에게 적절한 수행법을 소개하고 싶어서. 그런데 읽는 내내 저절로 화두가 끊이지 않는 것이, 바로 내가 쉬임 없이 기도하는 것에 대해 분명하고, 열렬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예수"의 이름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구절을 쉬지 않고 반복한다. 반복하는 동안 이는 좋은 생각, 혹은 나쁜 생각들을 밀어낸다. 구름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사라진다. 생각들이 사라지고 점점 분명해지는 기도...예수와의 교감을 느끼게 된다. 옮긴 이의 말대로 염불수행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모든 기도는 부질없는 생각과 걱정을 사라지게 하나 보다. 그것들을 우리에게서 떼어놓기만 해도 저절로 근원과 닿게 하나 보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데살로니가 전서 5:16-18/표준새번역)

순례자가 수행한 것은 바로 이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 역시 앓아 누워 있을 때 이 구절을 만났다.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은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그것이 저절로 되게 만드는 것이 쉬임없는 기도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쉬임없이 기도할 수 있을까...그러다 송담 스님께 화두를 타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수행을 했던 순례자를 생각하고, 그의 실천력과 사랑을 생각했다. 그에게 가르침을 폈던 큰스승은 우연히 그와 마주친 것이 아니다. 그가 헤매며 이해하고자 했던 그 한 구절이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 간절함은 그가 팔 한 쪽을 못 쓰게 된 것조차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게 한다. 마음이 뭉클해진다. 어떤 서적보다 더 간절히 수행해야 겠다는 열망을 일으킨다. 이 순례자의 곁에서 쉬임 없이 기도하며 걸으면 고요해지고, 간절해지고, 기뻐지고, 감사해진다.

쉼없는 기도는 모든 수행자가 행해야 할 기본적인 일임에 틀림이 없다. 화두참선 역시 오매불여(寤寐不如;자나깨나 한결같이 (화두를 챙김))를 강조하고, 주역에서는 자강불식(自强不息;스스로 힘써 쉬지 않음), 중용에서는 지성무식(至誠無息;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을 강조하지 않았는가. 누구든 스스로 쉼없고 한결같이 근원을 향한 마음을 쉬지 않을 때 부질없는 희망과 탄식을 가져오는 생각의 벌레들이 우리가 근원을 보는 거울을 더럽히지 못할 것이며, 결국 우리는 우리 삶이 근원과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깨달으리라.

=========

이 책을 읽은 친구 큰나무는 이 수행을 하고 있다. 또 이 수행법의 방법을 취해 오빠도 진언수행을 하고 있다. 예수의 기도 혹은 그 기도방법은 열망과 실천을 동시에 던져준다. 이 이름 없는 순례자와 그를 이끈 예수님과 큰스승에게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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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6-02-13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종교든 수행의 방법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겼습니다. 일심으로 하는 것, 그게 중요하겠죠. 성당에 다니는 시숙에게 선물 했었는데, 그 분은 반응이 별로, 시큰둥이더군요. 아마 마음 깊이 수행의 필요성을 못느껴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_()_

달팽이 2006-02-13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
지난번에 주기도문에 관한 책을 가슴떨리게 읽은 기억이 있어요.
믿음에 대한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면
깨달음의 길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두 분을 모두 뵙고 가네요..

이누아 2006-02-14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언뜻 본 것 같기도 한데, 책은 못 읽어 봤습니다. 그 주기도문에 관한 책제목이 뭔가요?
혜덕화님, 전 이 책 읽고 흥분해서 다섯 명에게 선물을 했어요. 한 명은 아쉽게 우편물을 받지 못했고, 두 명은 다 읽었는지 모르겠고, 나머지 두 명이 위에 얘기한 큰나무와 오빠입니다. 무엇보다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로그인 2006-02-16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게으름뱅이들에게 수행이란 건 너무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어이쿠, 생각의 벌레들이 파리 쫓는 것만큼 쉽게 머릿속을 떠나가 줄 것 같지도 않구 말이죠..해충박멸회사에 전화라도 해 볼깝쇼. 아, 오강남 씨의 책이군요..

이누아 2006-02-16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수는 없다"는 책 때문인지 가톨릭 서점에 갔더니 "여긴 오강남 씨 책은 없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왜 그러는지 아직 모릅니다. 오강남 씨를 아시나요?
 
세상에 태어난 아이
사노 요코 글 그림, 임은정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언젠가 태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였을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이 태어나지 않은 아이처럼 별과 태양에 부딪혀도 아프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아무 것도 무섭지도 않았고, 배고프지도 않았다. 바쁘게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어떤 욕망도, 아픔도 없었지만 그것이 좋거나 나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반창고. 대구역에서(대구역에서 공사가 있었다) 일꾼 아저씨가 옮기던 철막대에 아기가 맞아서 상처가 났다. 놀랄 만한 일이었고 그에 상응하는 울음소리, 아이가 운다. 대구역이 다 울렸다. 마침 나는 그림이 그려진 반창고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에게 하나를 붙여주고, 하나를 손에 쥐어 주었다. 아이는 단번에 울음을 그쳤다. 알록달록한 그 반창고에 넋이 나갔다. 반창고는 아이에게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아마 나는 반창고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인상적이었을 순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니 그냥 반창고 때문이었다고 해두자. 알록달록한 반창고를 붙이고 싶었을 뿐인데 반창고, 반창고 라고 말했을 뿐인데 태어났다. 바람도 강아지도 엄마도 모두 살아 움직이고, 나는 그 속에서 이 이야기 속 아이처럼 아프고, 배고팠다. 나와 이 아이는 거의 비슷한 과정을 통해 태어났다.

그런데 나는 점점 변해갔다. 아프지 않아도 반창고를 떼려고 하지 않고, 물고기를 보면 그냥 쫓아가지 않고 잡으려고 하고, 모기에 물리면 가려워하기만 하지 않고 모기약으로 걔네들을 죽이려고 했다. 이야기 속의 태어난 아이는 "태어난다는 건, 참 피곤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는 잠든다. 아마도 그 아이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을 때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변해버린 나는 무척 피곤해졌는데도 곤히 잠자지 못하고 쉴새없이 생각을 해대고, 돌아다닌다. 이러다 태어나고 싶지 않을 때도 태어나게 되는 건 아닐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거나, 태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거나 하는 것들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태어난 것들은 태어난 대로 살고, 태어나지 않은 것들은 태어나지 않은 것대로 있으면 된다. 그러나 태어나고 싶은데 못 태어나고, 태어나고 싶지 않은데 태어나는 것들은 몹시 피로하다.

이야기 속의 태어난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반창고! 그러니 반창고로만 기뻐해. 바람이 부는데 깔깔 웃네. 빵 냄새가 나니 빵을 먹네. 처음 내가 태어났을 때도 이 아이처럼 엄마 하고 외치고, 반창고로 으시대곤 했겠지. 그래, 바람이 부는 대로 깔깔대고, 배고프면 먹고...잠들 땐 꿈도 없이 푹 잠드는구나. 이제 깨어나면 그 아이, 다시 태어나고 싶으면 태어나고, 태어나고 싶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겠지. 

이봐, 태어난 아이. 나도 이렇게 태어나 있어. 모기가 물면 그냥 좀 가렵고 말걸 그랬어. 모기 죽이려고 모기향을 샀거든. 모기향을 사려고 일을 하고. 자꾸 자꾸 이런 저런 근심과 일 속에 파묻혀 버렸지 뭐야. 나도 너처럼 엄마의 입맞춤을 받으며 꿈도 꾸지 않고 푹 잠들래. 태어난다는 건, 재미있기도 하지만 네 말대로 참 피곤한 것 같아. 재미있기만 해도 피곤한 것에 더 피곤한 일들을 이제는 쌓지 않을련다.

기왕 태어났으니 우리 인사나 할까? 안녕, 세상에 태어난 아이.

 

아, 참! 니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 너와 함께 지구로 온 그 강아지는 어디로 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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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6-02-10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이누아님!
우리도 인사나눌까요.
먼저 니르바나가 두손 모아 인사드립니다.


로드무비 2006-02-11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반갑습니다.
반창고가 이 책에서 아주 상징적인 무엇인가 봅니다.
입춘 지나고 뵙게 되네요.^^

혜덕화 2006-02-11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정말 반가워요. 안그래도 동안거 해제가 언제인가 꼽으면서 님을 기다렸답니다. _()()()_

돌바람 2006-02-1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이누아님!
피곤한 세상에 그래도 태어나신 것, 와락 껴안고 반겨주고 싶네요.
오래된 벗을 그리듯 자꾸 생각나곤 했습니다.
내가 그 강아지가 됐나?
나도 다시 태어난 아이였는줄 알았는디...
보고 싶었어요!

파란여우 2006-02-1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셨군요^^
전 여전히 철없이 폴짝폴짝 뛰어 다니고 있답니다.
여하튼, 다시 더 새롭게 태어나신 이누아님 안녕^^

이누아 2006-02-11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도 뵌 적 없는 님들이 오랜 벗처럼 그립네요.

파란여우님, 어제 밤, 긴 리뷰를 한참 읽고도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인사하는 게 뭐 어렵다고... 안녕, 파란여우님.

돌바람님, 제가 태어난 걸 반겨주시다니...뭉클해집니다.

혜덕화님, 새로 시작하신 능엄경 공부는 여의하신지요? 저도 반갑습니다.

니르바나님, 저는 건방시리 손 안 모으고 인사할래요. (손을 들며) 니르바나님, 안녕.

이누아 2006-02-11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저도 반가워요.
반창고는 아이한테나 중요한 것이지요. 태어나서 사는 데 뭐 그리 중요한 거겠습니까. 태어나는 일이, 혹은 죽어가는 일이 하찮고 작은 것들을 계기로 해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입춘이 지났습니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글자가 보여요. 입춘은 "봄으로 들어가는 것"(入春)이 아니라 "봄이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일어서는 것'(立春)이더군요. 없는 것이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더군요. 겨울 속에도 봄이 가만히 앉아 있었나 봅니다.

달팽이 2006-02-11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이누아 2006-02-1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비로그인 2006-02-16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름답고 잔잔한 감동을 주네요. 번잡한 일들이 끼여 좀 보대끼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리뷰를 읽어요. 전 좀 외로웠나 봐요. 내가 만든 피곤하고 자질구레한 일 혹은 감정들..머릿속으로 타인들에게 내 존재를 확인시키려 어떤 꿍꿍이 지도를 만들려 계획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왜 그럴까요. 싫어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반창고를 보고 좋아하던 아이처럼 본능적으로 단순하게 움직일 때가 젤 좋아요. 흐흐. 점심 먹고 올게요.

이누아 2006-02-16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게 드셨나요? 타인들에게 내 존재를 확인시키려고 장식하다 보면 점점 무거워져요. 우리 가벼워져요. 한번 날아볼까요?
 
선가귀감
서산휴정 지음, 박현 옮김 / 바나리비네트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용화선원에서 나온 선가귀감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은 마치 딴 책 같다. 이 책에는 뒤편의 원문을 제외하곤 한자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딱 한 번 한자가 쓰여져 있다. "萬事可涉, 自由自在"이다. 선가귀감 원문에 있는 게 아니라 옮긴 이가 약간의 해설을 단 노둣돌이라는 해제에 적힌 말이다. 한글만 있는데 굵은 글씨로 적혀 있어 인상적이다. 되뇌어본다.

그냥 한편 한편 시 같다. 팔만대장경의 말씀의 요체를 뽑아 둔 어려운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다. 옮긴 이가 문장을 나눠 둔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자연스런 도움말 때문일까? 한글 때문일까? 마음에 걸리지 않고 술술 읽혀진다. 이런 책이 술술 읽혀져서야 되겠냐마는 책은 책이라 술술 읽혀지니 시원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니/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사르노라/ 또 말씀하시니/ 중생들이 피운 고뇌의 불이 사방에서 동시에 타고  있노라/ 그리고 말씀하시니/ 모든 번뇌 도적 되어 사람을 죽이려 엿보고 있노라/ 수도하는 사람아/ 머리에 불이 붙은 양/ 마땅히 스스로 경계하고 깨쳐야 하니라(p.169)". 수행자에게는 물론이고 우리의 삶에서도 유용한 말씀. 나를 봐도, 세상을 봐도 불타는 집 같다. 일어났다 사라지는 번뇌도, 헐떡이는 지구의 숨결도, 울부짖는 이웃들도 모두 내 머리에 붙은 불 마냥 바짝 깨어 바라볼 수 있다면....

"가난한 자가 구걸하러 오거든/ 제 능력에 맞게 베풀라/ 한 몸인 양 불쌍하게 여기는 일/ 그게 바로 진정한 보시이니라(p.136)"하는 서산대사 말씀에 옮겨 푼 이가 하는 말,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거든 먼저 나를 아끼고 사랑하라. 스스로를 사랑하려면, 남을 사랑하라. 남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나니, 이것은 곧 우주와의 약속이요 삶의 바탕이다(p.138)" 한 몸인 양 여긴다면 옮긴 이의 말처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속이 아픈데 손과 입이 약을 가져다 먹여주지 않으면 그 손과 입도 속이 죽을 때 함께 죽을 것이다.

이 인용이 책의 핵심이라는 건 아니다. 그저 눈에 띄는 대로 중얼거린 거다. 그럼 이 책은? 전체적으로 수행자의 마음과 생활자세를 바로 잡아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너무 쉽게도, 너무 어렵게도 여기지 말고 곁에 두고 가만가만 볼 요량이다. 그래, 萬事可涉, 自由自在!! 만 가지 일 하나하나에 매달릴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자유자재한 마음 한 가닥이면 만 가지 일이 저절로 건너질 것인데...만 가지 일에 뺏긴 마음에게 자유자재로 오라고 손짓하는 맑은 바람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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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1-1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빚을 내어서라도 베풀라고 하지 않고 제 능력에 맞게 베풀라, 는 말씀이
참 듣기 편하고 좋습니다.^^

이누아 2005-11-1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억지로 말고, 너무 애써서 말고, 지나치지 않게 뭐든 좀 편하게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나이가 들어가는 건가요?(야단 맞을려나?) 제 능력에 맞게 베푸는 것도 만만하지 않은지 팔만대장경 핵심을 추려 놓으신 거라는 글에 저 글이 있네요.^^

비로그인 2005-11-16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전 요즘 혼자 밥 먹고 싶어 죽겠습니다. 정말 편한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가야한다는 것이 좀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고, 뭔가 혼자만의 상념에 젖고 싶은데 그 분위기가 파싹 깨질 때..으음..' 묻지마 밥터디'를 맹글어 볼까요?

혜덕화 2005-11-17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는 법화경 사경합니다. 며칠전에 삼계화택의 비유 부분을 읽고 썼습니다. 법화경도 볼수록 한편의 서사시 같아서 마음이 고요해집니다._()_

달팽이 2005-11-17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동냥하고 갑니다.
저도 기회내서 한번 보고 싶군요...

이누아 2005-11-19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편한 동료가 아닌가 봐요. 폼잡고 혼자 밥먹고 싶은데 배려 좀 해달라고 얘기하면 웃으면서 그렇게 해주지 않을까요?

혜덕화님, 저는 아파서 내내 집에만 있을 때 사경을 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사경이 집중력과 체력이 필요해서 끝까지 못했어요. 그래요, 제 리뷰에 있는 인용이 딱 삼계화택의 비유가 들어맞는군요.

달팽이님, 좀 춥긴 하지만 맑은 바람은 정신이 들게 만들죠.^^
 
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2학년 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입문]을 읽고서 심한 충격에 휩싸여 그날부터 얼마간 친구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방어기제의 하나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딱딱 들어맞는가...그러다 말았다.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사람은 안 보이고 방어기제만 보였던 것이다. 

읽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택한 정신분석이나 여행은 저자에게 유익했을 것이고, 권할 만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사람에 대한 태도는 내가 처음 프로이드를 만났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 기대려고 하는 의존적인 인간에게 내가 좀 차갑게 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고 그가 성인인데도 의존성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니까. 저 사람은 친절하구나, 심리적으로 무엇을 보상받으려고 저러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는 태도.

저자가 인용한 말처럼 "우리가 남에게 보이는 관심이란 대체로 방어의식이거나 시기심이거나 의존성이거나 투사의 감정 중 하나이기 십상"(p.141)이지만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감정의 동요 없이 수용"할 수 있는 것이란 과연 어떤 상태인가? 이런 상태를 용기라고 표현하지만 그렇게 단순할까? 저자가 인용한 "혼자 있기"를 보자.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격리된 극단적인 방어의식 또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분리와 개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상태 둘 중의 하나만일 수 있을까? 태어나서 3년 안에 완벽한 보살핌과 완벽한 조건에서 자란 사람이 없을진대 어떻게...? 아마 저자처럼 정신분석을 받고 나면 좀 덜할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걸 안 받아봤으니...

저자는 이 심리여행을 통해서 남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타인의 어떤 말이나 행동은 전적으로 그들 내면에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인간은 타인의 언행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존엄성을 타고난 존재라 믿게 되었다(p.294)"고 한다. 남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게 된 것이 타인만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태도는 이 책의 일관된 태도로 내내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이지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존엄성이란 자기 존재에 대한 사랑 때문에 훼손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모를 때, 타인이 자신의 삶에 너무 간섭한다고 느낄 때, 부질없는 일에 분노하고 있을 때 , 혼자서는 도저히 아무 것도 못할 때 자신을 한번 분석해 보는 데는 유익하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남을 분석하지는 말기를. 행여 아파하는 사람이 안 보이고 아파하는 이유만 보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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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26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언젠가 이 책을 읽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페이퍼를 올린 적이 있거든요.
리뷰를 쓰는 것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답니다.
추천 누릅니다.

이누아 2005-10-2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전 서재지인의 리뷰를 보고 읽게 된 책이라 읽기 전부터 읽고 리뷰를 써야지 하고 생각했던 책이라 리뷰를 올렸습니다. 즐겁게 읽지 못한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안 쓰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러니까 감동적으로 읽은 이들의 리뷰가 훨씬 더 많아서 선택이 좀 헷갈리게 되기도 하는 듯합니다.

바로 그 서재지인, 달팽이님/님이 별 다섯 개를 하지 않은 까닭을 생각하고 좀 신중했어야 했는데...제게는 좀 안 맞았어요.^^;;

비로그인 2005-10-2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뒷통수를 치는 마지막 문장..공감합니다.
사실 전 이 글을 쓴 작가의 <푸른 나무의 기억>이던가요, 그 소설을 읽었는데 역시 심리적인 흐름을 쫓아 쓴 글이었어요. 근데 물살의 흐름처럼 생각의 변화와 힘을 원하던 제게 그 책은 너무 개인적인 우울한 내면에 고여 있어서 읽고 났더니 일주일만에 그 어떤 줄거리도 생각이 나지 않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그닥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 <외출>이란 소설도 그냥 외면하고 말았어요..

이누아 2005-10-25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서른 편도 넘는 리뷰 중에 유익하게 읽으신 분들이 더 많던데 저랑 안 맞았나 봐요. 님에게도 이 분 글이 흡수가 덜 되는 그런 류였나 보네요.

혜덕화 2005-10-26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형경씨의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고, 무척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자신을 그렇게 분석해서 정확하게 볼수 있는 눈에 대해 놀랐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 자신을 돌아보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된 책입니다.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남을 분석하던 그 시선을 자신에게로 거두어 들이면 더 많은 세상사의 답을 알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불기자심이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이누아 2005-10-2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브랜든 베이스의 [치유, 아름다운 모험]에서의 치유를 할 때 왜 서른이 넘은 나에게 서너 살의 내가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마침 그때 서재지인의 리뷰를 언뜻 보고 3살 이전의 경험이 주는 영향력에 대해 적혀 있는 책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타인의 힘이 거의 절대적이라 할 만한 나이가 "왜" 인생에서 그토록 중요한가 하는 문제는 전생이나 업의 개념 없이 설명하기는 어려운가 봅니다. 이 책은 그 시기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가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지요. 저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분석을 이용한 저자에게는 동감했습니다만 타인에 대해 분석을 가하는 모습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타인에 대한 태도에 대해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책에도 많은 분들이 감동을 받고,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리뷰를 쓰셨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기호에 따라 책이란 유익함도 되고, 불편함도 됩니다. 제 경우엔 후자가 되었지만요.

예! 불기자심_()()()_

2005-10-26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26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4:31속삭이신 분>저도 꾸벅!

달팽이 2005-10-27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불편함 공감합니다. 마지막 문장에 저도 감동...

이누아 2005-10-27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님도 좀 불편하셨군요.^^
로드무비님/페이퍼를 찾아서 읽어 봤어요. 님의 자기애가 좋아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