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무덤 - 祭亡妹歌
       

                                          -기형도



누이야

네 파리한 얼굴에

철철 술을 부어주랴



시리도록 허연

이 零下의 가을에

망초꽃 이불 곱게 덮고

웬 잠이 그리도 길더냐.



풀씨마저 피해 날으는

푸석이는 이 자리에

빛 바랜 단발머리로 누워 있느냐.



헝클어진 가슴 몇 조각을 꺼내어

껄끄러운 네 뼈다귀와 악수를 하면

딱딱 부딪는 이빨 새로

어머님이 물려주신 푸른 피가 배어나온다.



물구덩이 요란한 빗줄기 속

구정물 개울을 뛰어 건널 때

왜라서 그리도 숟가락 움켜쥐고

눈물보다 찝찔한 설움을 빨았더냐.



아침은 항상 우리 뒷켠에서 솟아났고

맨발로도 아프지 않던 산길에는

버려진 개암, 도토리, 반쯤 씹힌 칡.

질척이는 뜨물 속의 밥덩이처럼

부딪히며 河口로 떠내려갔음에랴.



우리는

神經을 앓는 中風病者로 태어나

全身에 땀방울을 비늘로 달고

쉰 목소리로 어둠과 싸웠음에랴.



편안히 누운

내 누이야.

네 파리한 얼굴에 술을 부으면

눈물처럼 튀어오르는 술방울이

이 못난 영혼을 휘감고

온몸을 뒤흔드는 것이 어인 까닭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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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낯선바람 >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1989, 세계사

 

                

늘 지나가고 놓치고서야 이 시를 되뇌인다.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ㅠㅠ

있을 때 잘하자,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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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교황 집무실에 걸려 있는 한 편의 詩

출처 : 이지스

 

 

Desiderata

by Max Ehrmann


Go placidly amid the noise and haste,

and remember what peace there may be in silence.

As far as possible, without surrender, be on good terms with all persons.

Speak your truth quietly and clearly; and listen to others,

even the dull and the ignorant; they too have their story.

Avoid loud and aggressive persons; they are vexations to the spirit.

If you compare yourself with others, you may become vain and bitter;

for always there will be greater and lesser persons than yourself.

Enjoy your achievements as well as your plans.

Keep interested in your own career, however humble;

it is a real possession in the changing fortunes of time.

Exercise caution in your business affairs;

for the world is full of trickery.

But let this not blind you to what virtue there is;

many persons strive for high ideals;

and everywhere life is full of heroism.

Be yourself. Especially, do not feign affection.

Neither be cynical about love; for in the face of all aridity

and disenchantment it is perennial as the grass

Take kindly the counsel of the years,

gracefully surrendering the things of youth.

Nurture strength of spirit to shield you in

sudden misfortune. But do not distress yourself

with imaginings. Many fears are born of fatigue

and loneliness. Beyond a wholesome discipline,

be gentle with yourself.

You are a child of the universe,

no less than the trees and the stars

you have a right to be here.

And whether or not it is clear to you,

no doubt the universe is unfolding as it should.

Therefore be at peace with God,

whatever you conceive Him to be,

and whatever your labors and aspirations,

in the noisy confusion of life, keep peace with your soul.

With all its shams, drudgery,

and broken dreams, it is still a beautiful world.


Be cheerful.

Strive to be happy.

Max Ehrmann, 1927

 

 

진정 바라는 것


소란스럽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침묵 안에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도록 하십시오.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진실을 말하고,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들 역시 할 이야기가 있을 테니까요. 목소리가 크고

공격적인 사람들을 피하십시오. 그들은 영혼을 괴롭힙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자신이 하찮아

보이고 비참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더 위대하거나 더 못한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당신이

계획한 것뿐만 아니라 당신이 이루어 낸 것들을 보며 즐거워하십시오.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당신이 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것이야말로 변할 수밖에 없는

시간의 운명 안에서 진실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업상의 일에도 주의를 쏟으십시오. 세상은

속임수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미덕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지는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이상을 위해

애쓰고 있고, 삶은 영웅적인 행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본연의 모습을 찾으십시오. 가식적인 모습이 되지 마십시오. 사랑에 대해서 냉소적이 되지

마십시오. 아무리 무미건조하고 꿈이 없는 상태에서도 사랑은 잔디처럼 돋아나기 때문입니다.


나이 든 사람들의 충고는 겸손히 받아들이고, 젊은이들의 생각에는 품위 있게 양보하십시오.

갑작스러운 불행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면 영혼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쓸데없는 상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많은 두려움은 피로와 외로움에서 생겨납니다. 자신에게 관대해 지도록 노력하십시오.


당신은 나무나 별들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이곳에 머무를 권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우주는 그 나름의 질서대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당신이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노동과 소망이

무엇이든 시끄럽고 혼란한 삶 속에서도 영혼의 평화를 간직하십시오. 서로 속이고, 힘들고, 꿈이

깨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늘 평안하고 행복하려고 애쓰십시오.



著者: 맥스 어만(1872~1945). 美國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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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 정 진 규 -

 
바람, 머리칼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날리고 있었을 때 왜
나는 자꾸 왼쪽으로 왼쪽으로만 가고 있었을까. 기우는 달빛
때문이었을까. 나무는 나무들은 바람 따라 따라서 가 주고 있
었는데, 세상의 물이란 물들이 흐르는 소릴 들어 보아도 그렇
게 그렇게 가 주고 있었는데 나는 왜 그게 아니 되었을까. 진
실이란 어떤 것일까. 있는대로 있는대로만 따라가 주는 것
일까.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바람 바람이여 그 동
안 나는 꽃을 돌멩이라 하였으며, 한 잔의 뜨거운 차를 바다의
깊이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 믿지 못할 일들이었다는 생각이.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지금와서 어둡게 어둡게 나를 흔
든다. 가슴을 친다. 알 수 없어라. 길 가의 풀잎에게 물어 보
았을 때 그는 바삭거리는 소리만, 바삭거리는 소리만 세상 가
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 그가 왔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 그
런 모습으로 그는 거기에 있었다. 그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그는 그의 가슴 깊이로부터 한 두레박의 물, 물을 길어 내게
건넸다. 나를 씻었다. 한 두레박의 차고 시원한 물, 이것이 바
로 영원이라 하였다. 빛이라 하였다. 늘 차고 넘쳐서 그는 하
루를 하루로 끝낼 수 없다 하였다. 늘 차고 넘쳐서 그는 하
루를 하루로 끝낼 수 없다 하였다. 하루가 모자란다 하였다.
잠들 수 없다 하였다.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그곳
에 이르고자 하는 자의 아픔, 열리지 않은 문, 그가 나의 문
을 열고 당도한 것이라 나는 믿었다. 그는 나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하느님의 체온이 거기 머물고 있었다. 알
수 없어라. 내 가는 곳까지 아무도 바래다 줄 수 없다고 모두
들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알 수 없어
라. 그가 내게 당도하였다는 것은,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
의 꿈, 그런 꿈의 깊이에 우리는 함께 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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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 김진경

오늘 숲길을 걸었다. 간벌을 위해 닦아놓은 길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여기저기 흙이 무너진 곳 새로이 흐르는 작은 개울물 간혹 베어진 통나무를 만나곤 한다. 숲 깊이 들어가노라면 어느새 나무들의 향기에 싸이고. 이 향기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다시 베어진 통나무 더미를 만나 숨이 멎듯 발걸음을 멈춘다. 진한 향기는 베어진 나무의 생채기에서 퍼져 숲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의 상처에서도 저렇게 향기가 피어날 수 있을까?

 

========

6,7년 전에 친구에게 이 시를 복사해 주었다. 친구의 지갑 속에 아직도 이 시가 있다. 깜짝 놀라 나도 다시 찾아본다. 숲, 그 향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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