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음도(中陰道)의 위험한 곤경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기원문,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영웅
                                              

                                                                                                                           -제1대 판첸 라마

 

스승 문수 보살께 귀의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붓다와 법, 그리고 승가 모두에
나를 비롯해 허공에 걸쳐 있는 중생 모두 남김없이
최고의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귀의합니다.
현재의 삶과 중음도, 내생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얻기는 힘들고 잃기는 쉬운 이 좋은 기반은
이익과 손실, 안락과 고통 가운데 선택할 기회를 주기에
우리가 이 삶의 의미 있는 정수를
이 삶 속의 어리석은 일들에 의해 산란되지 않고 삶을 지탱할 수 있기를.

 

죽음은 반드시 오지만 죽음의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모인 것은 흩어지기 마련이고 모아둔 것은 남김없이 소모되며,
일어난 것이 가라앉으리니, 태어남의 마지막은 죽음이 되리라.
우리가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주체와 객체라는 잘못된 사고의 이 도시에서
네 가지 더러운 요소로 이루어진 환각의 몸과
의식이 분리되는 죽음의 때에
우리가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된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애지중지하는 이 몸으로부터 배신당할 때,
무서운 적, 죽음의 신이 나타날 때,
탐욕, 증오, 어리석음, 이 삼독이란 무기로 내 목숨을 스스로 끊을 때,
우리가 덕스럽지 못한 것의 잘못된 외양에서 벗어나기를.

 

의사가 포기하고, 종교 의식들이 효과가 없을 때,
친구들이 우리의 생명에 대한 희망을 버릴 때,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쓸모가 없을 때,
라마의 가르침을 기억할 수 있기를.

 

불행과 함께 쌓인 음식과 재산이 죽음 뒤로 남겨질 때,
친구들에 대한 애정과 욕망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될 때,
두려운 곳으로 홀로 가야 할 때,
우리에게 환희와 기쁨에 대한 확신이 함께 하기를.

                                                                                        [달라이라마, 죽음을 말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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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5-08-21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어서 죽음을 묵상하며 산다면
우리의 인생길이 이전보다 훨씬 평화로울듯 싶습니다.
생사가 따로 없다고 생각으론 거듭하지만 이게 잘 체득이 잘 안되는군요.
이누아님께 환희로 그득한 진리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이누아 2005-08-21 0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라이라마께서는 매일 죽음에 대한 명상을 하신다고 합니다. 저도 이 책을 잠들기 전에 계속 읽었는데 아직 명상은 자연스럽게 되지 않아서 우선은 저녁기도 때 시 전체를 읽어 볼 생각으로 시만 추려서 적어 봤습니다. 저야말로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었는데도 막상 죽음과 관련된 일이 닥치면 죽음을 고통으로 여기게 됩니다. 죽음이 제게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되고, 님의 말씀대로 진리가 제게 체득되는 그런 바램을 항상 가집니다. 축원, 감사드립니다. 니르바나 님도 이름처럼 늘 열반적정을 누리시길 빕니다.
 
 전출처 : 로드무비 > 내 노동으로 -- 신동문의 詩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 하듯이

바뀐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꾀던 내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그 눈물을 달래던

내 어릿광대 표정은

다 무엇인가

이 야위고 흰

손가락은

다 무엇인가

제 맛도 모르면서

밤새워 마시는

이 술버릇은

다 무엇인가

그리고 친구여

모두가 모두

창백한 얼굴로 명동에

모이는 친구여

당신들을 만나는

쓸쓸한 이 습성은

다 무엇인가

절반을 더 살고도

절반을 다 못 깨친

이 답답한 목숨의 미련

미련을 되씹는 

이 어리석음은

다 무엇인가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했던 것이 언제인데

--신동문 詩  '내 노동으로'  全文

 

'무엇보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진리를 찾는다고 하여 애매한 제스추어를 부려서는 안된다.
차라리 그 진리를
버려야 한다.' (장용학의 <요한시집> 중)
그 무렵(80년대 중후반) 내가 찾아 읽었던 책들은 다행히 나에게 어느 정도의 
균형감각과 객관성을 가지게 해주었다. 
객관성과 균형감각은 내가 지금도 유지하고 싶어하는 덕목이다.
신동문의 '내 노동으로'......이렇게 쉽게 유장하게 써내려간 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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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와 더불어
구상
 
 

나는 홀로다.
너와는 넘지 못할 담벽이 있고
너와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고
너와는 헤아릴 바 없는 거리가 있다.

나는 더불어다.
나의 옷에 너희의 일손이 담겨 있고
나의 먹이에 너희의 땀이 배어 있고
나의 거처에 너희의 정성이 스며 있다.

이렇듯 나는 홀로서
또한 더불어서 산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
그 평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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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5-07-17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도 폴의 江

                  -具     常-

 

그리스도 폴!
나도 당신처럼 강을
회심의 일터로 삼습니다.
허지만 나는 당신처럼
사람들을 등에 업어서
물을 건네주기는커녕
나룻배를 만들어 저을
힘도 재주도 없고
당신처럼 그렇듯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위하여 시중을 들
지향도 정침도 못 가졌습니다.

또한 나는 강에 나거서도
당신처럼 제상 일체를 끊어 버리기는커녕
속정의 밧줄에 칭칭 휘감겨 있어
꼭두각시 모양 줄이 잡아당기는 대로
쪼르르, 쪼르르 되돌아서곤 합니다.

그리스도 폴!
이런 내가 당신을 따라
강에 나갑니다.


니르바나 2005-07-17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상 시인의 시 한 수를 이누아님에게 드립니다.
편안한 휴일되세요.

로드무비 2005-07-17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상 시인과 천경자 화백이 식사하는 옆 테이블에서
저 두 분은 천상 예술가구나, 느끼고 감탄한 적이 있답니다.^^

이누아 2005-07-1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고맙습니다.
로드무비님, 부럽네요. 가까이서 그분들을 뵐 수 있었다는 것과 예술가를 알아볼 눈을 지니셨다는 것 모두.

비로그인 2005-07-19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시 이후로 알라딘이 진정국면에 들어섰네요. (요즘 알라딘, 넘 맘에 안 들어요!)
시 좋아요. 홀로 그러나 더불어..전 갠적으로 어렸을 적엔 후자쪽이 싫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후자도 맘에 들어요. 앞으론 후자 없으면 못 살거에요. 당장 퇴근길에 맥주 한 잔을 마시더라도 벗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난다구요! 헤..이누아님, 시 잘 읽고 갑니다..

이누아 2005-07-21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지나가는 말로라도 자꾸 술 얘기 하시면 미워요.^^ 전 얼마 전 홀로 있고 싶었습니다. 어디로 달아나고 싶은 그런 기분이 자꾸 들었어요. 그래서 이 시가 눈에 띄었는가 봅니다. 달아나는 대신 소리내어 시를 읽었지요. 기분은 그냥 기분인 채로 흘러가 버려라! 그렇게 그 기분은 흘러갔습니다.
 

 

      꽃나무

                               -이상

 

벌판한복판에꽃나무가하나있오.

근처近處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오.

꽃나무는 제가생각하는 꽃나무를열심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오.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 수 없오.  

나는막달아났오.

한꽃나무를위하여그러는 것처럼

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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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귀재

                                        -홍순지



노귀재 넘으며 노귀재 넘으며 넘으며
노귀재 그 숨찬 가파름은
아직도 내게 묻어 따라 오는
속세의 먼지 속세의 먼지 털어 버리라고
저 아래 계곡으로 떨꿔 버리라고
모조리 다 던져 버리라고

노귀재 이곳은 노귀재 이곳은
사람과의 만남에 묻혀 잊혀온
바람과 만나고 구름과 만나고
푸르름이 푸르름과 만나고 먼산 가까운 산
모두 모두 만나고 잊고 산 것이
무엇인지 다 가르쳐 주고

노귀재 지나면 노귀재 지나면 지나면
도시의 답답함이 싫어
빌딩숲 사이에 숨어사는
비루한 개 같은 시궁창 쥐 같은 삶이 싫어
언덕에서 신선처럼 사는 친구 있어
술잔 놓고 기다려 종일토록 날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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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7-1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우리가 노루귀처럼 쫑긋하다고 해서 노귀재일까요? 아..편안한 노래..

이누아 2005-07-1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봤습니다.

"노귀(奴歸)재: 영천에서 청송으로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큰 고개를 만나게 된다,
이곳이 노귀재요, 청송군의 관문이다. 임진왜란때 왜군이 승승장구 하여 한반도를 약탈 하면서 노귀재 밑까지 쳐들어 왔으나 그곳에서 후퇴를 하였다 한다.이유는 중국의 명장인 이여송(松)과 청송(靑松)의 송자가 일치 하는지라 왜장이 용감한 백성에게 묻길 "저 고개를 넘으면 어딥니까 ?" 주민이 대답 하길 "청송이라는 곳이다" 하여튼 이여송의 松자만 들어도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 길로 후퇴를 하였으니 오랑캐奴子와 돌아갈歸子를 써서 노귀재라 불렀다 한다."

노奴에 오랑캐라는 뜻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놈 저놈 할 때 쓰이는 글자이니 왜놈이라는 뜻으로 쓰였을지도...

비로그인 2005-07-1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 글쿤요! 이거야 원. '왜놈'이란 어휘보단 제가 푼 썰이 더 로맨틱하지 않습니꽈? 예? 으하하하..으쓱으쓱~

이누아 2005-07-11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루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