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일 Vol.1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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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곽재구 

 

 

숲속에는 
내가 잘 아는 
나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나무들 만나러
날마다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제일 키 큰 나무와
제일 키 작은 나무에게
나는 차례로 인사를 합니다.

     
먼 훗날 당신도
이 숲길로 오겠지요
내가 동무 삼은 나무들을 보며
그때 당신은 말할 겁니다

        
이렇게 등이 굽지 않은
言語(언어)들은 처음 보겠구나

           
이렇게 사납지 않은
마음의 길들은 처음 보겠구나

 

 

================

큰언니가 부엌 벽에 붙여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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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6-11-27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참 좋군요. 그렇잖아도 궁금했습니다. 동안거 들어가셨나 해서......
오늘 안경을 맞추러 서면 나갔다가 "소동파"라는 책을 사왔습니다. 읽어보고 좋으면 추천할게요.

파란여우 2006-11-2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씨, 눈물 나올려구해요.
별로 좋아하지 곽재구의 시인데 왜 이럴까요?
다 그 넘의 '나무'때문이야욤.

이누아 2006-11-2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결제일은 다음 주 화요일이에요. 이번 동안거는 선방에서 정식으로 하지 못합니다. 벌여놓은 일들이 있어서요. 부족하겠지만 집에서라도 동안거에 걸맞게 지내려고 마음 먹고 있습니다. 안경 맞추러 서면 가셨다니까 님의 집이 시골 같아요.^^

파란여우님, 전에도 이 시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왜 그러셨는지 기억이 안 나요. 전 어떤 강연에서 뵌 적이 있는데 별다른 마음이 생기진 않던데요.
고3 때 매일 학교 뒤 낮은 구릉에 갔었어요. 지금도 그곳의 나무들을 기억할 수 있어요. 저랑 꽤 친해져서 제 자리를 마련해줄 정도였어요. 이쁜 것들. 보고 싶어요.

혜덕화 2006-11-28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안그래도 작년 2월 삼천배 갔을 때 해제여서 지금쯤 결재 들어갔을 거라 짐작만 하고 있었어요. 사찰 달력에도 안나와 있네요. 저도 집에서라도 동안거 결재 하는 날 함께 기도 하려고 날짜를 알아보고 있던 중이었어요.
어제 안경 맞추느라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서점에 서서 틱낫한 스님의 "기도"를 다 읽었어요. 참 좋더군요. 다음 주 화요일, 고마워요. 날짜 알려주셔서.....

이누아 2006-11-29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제는 음력 10월 보름, 해제는 정월 보름이에요. 새 안경은 맘에 드세요? 뭐든 잘 보이시죠?^^

2006-11-29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년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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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7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18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6-10-18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예. 저는 글케 바쁩니다. 전화 드렸더니 전화도 안 받으시고, 글케 바쁘십니까?^^ 궁시렁거릴 만하지만 님에게 맞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부추기는 일이 맞다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보는 님의 댓글이에요. 반가워요.^^
 

운문사에서

              -윤중호

 

청도계곡의 득음(得音)도, 선지식의 한 소식도 나는 알 바 없다네.

그저, 먹물 장삼 스치는 소리에 얼굴 붉히는

배롱나무꽃만 바라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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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9-2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속의 '할'은 잠을 자고,
배롱나무 붉은 꽃잎에 미소짓는 얼굴에 '할'이 있구나

이누아 2006-09-28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

혜덕화 2006-09-2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광사의 배롱나무가 생각납니다.
여름 송광사 사찰 연수를 다녀와서도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던 정말 아름다운 그 나무......

반조 2006-09-28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문사 배롱나무, 참 드물게도 하얀꽃 배롱나무이던데,... 시인의 마음은 그 배롱나무마저도 붉게 물들이는군요. 스쳐 지나가는 비구니 스님에게 무얼 그리 크게 들켰을까요.

이누아 2006-09-29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나무 한 그루 지나치지 않고 마음에 담아 두셨다가 이렇게 나눠 주시는군요.^^

우아...반조님, 반가워요. 학문적이라 여겼던 님에게서 하얀 배롱나무의 향을 맡으니 더욱 반가워요. 님이 추천하신 책은 주문해 두었어요. 아마도 추석 연휴 때문에 더디 만날 듯. 고맙습니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 수용소의 제십사 야전 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뭇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씩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씩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씩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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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로 2006-08-10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적은지 아는 그는 큰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