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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 반짝이는 설렘을 간직한다는 것 ㅣ 월간 정여울
정여울 지음 / 천년의상상 / 2018년 12월
평점 :
마음이 늙지 않는 비결은 더 오래, 더 자주 설렘을 느낄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나만의 경험’, ‘나만의 이익’을 쌓아 올리는 데 골몰하기보다는 ‘나와 다른 타인의 삶’에 대한 마음의 안테나를 활짝 열어둠으로써 둔감해지는 우리의 감각을 예민하게 벼리는 것. 그것은 지나치게 비대해진 ‘에고’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기도 하며, 타인의 시선에 길들기보다는 ‘내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싱그러움을 회복하는 마음 챙김 방법이기도 하다..
-월간 정여울 『두근두근』
미셀 투르니에는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친구할 수 없다고 했다. 삶에서 감동하며 예찬할 줄 아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더군다나 요즘은 길가를 지나거나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 환한 미소를 구경하기가 힘들다. 모두가 다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열중한 나머지 웃을 시간조차 잊고 사는 모습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떤 것에 대한 감동과 예찬이 줄어들어 간다. 그것은 사람이라든지 사물이던지 모두 같다. 아마도 익숙함이라는 나른함과 권태와 같은 나태에 서서히 잠식당해 감각을 상실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가끔 두근거리는 순간은 찾아온다. 붉은 빛으로 느리게 물들어가는 저녁 시간을 걸을 때나 첫 봄에 피어난 꽃망울 터지는 소리라든지 하늘을 향해 한껏 목을 늘려 간절함을 품은 코스모스를 볼 때나, 꽃이 지기 바쁘게 초록 선율로 바뀌어 버린 산천을 볼 때 환희와 감동으로 뛰는 심장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두근거림을 매일 느낄 수 있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매번 실패하면서도 삶을 계속하는 이유
영화 『디태치먼트』 에는 매순간 실패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삶에서도, 지역사회의 골칫거리들을 가르치는 일에서도 그는 실패하였다. 무분별한 약물중독과 섹스와 어른들의 무관심과 부모의 학대에 익숙한 십대들은 자신을 가르치려는 선생 헨리에게 거부감을 갖는다. 헨리는 자신의 실패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자신이 매번 실패하면서도 삶을 계속하는 이유를 말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렇듯 우리를 집단적인 바보로 전락시키는 시스템에 저항하기 위해, 책을 읽어야만 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의 인식을 고양하고, 우리의 신념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배워야만 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영혼을 지켜내고 보존해야만 하는 거야. 배움을 통해서.”
그러나, 아이들은 헨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흔히 보여주는 개과천선이나 계도로 인한 변화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다. 헨리는 여전히 혼자였고 불량한 아이들을 품어주려 했던 헨리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한다. 그를 좋아해 쫓아다니던 여학생이 자신을 여자로 봐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헨리 눈앞에서 자살하기까지 한다. 이 영화의 불친절함. 헨리를 끝가지 절망으로 밀어붙이는 삶의 진실은 무엇일까. 헨리는 늘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과 세상을 희망하지만, 그것이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에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적당히 애착하고 적당히 분리되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무심함의 디패처먼트의 헨리는 어쩌면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상실감과 고독감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매일 실패하여 눈물짓지만 그럼에서 헨리는 살아갈 것이다. 그에게는 아주 작은 밀알의 희망,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1퍼센트의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두근두근하는 순간들은 그런 1퍼센트의 희망과 맞닿아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헨리의 무표정함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로 그려진다. 삶의 민낯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숨 막히는 중노동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은 실패자라 고백한 헨리는 삶의 민낯을 알기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월간정여울의 마지막 편인 『두근두근』과 함께하는 화가는 에곤 실레이다. 캔버스에 한 획을 긋는 듯한 붓터치가 싱그러운 설렘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독감으로 28세 이른 나이에 사망한 에곤 실레는 주로 자화상이나 기묘한 표현들을 그리곤 하였는데 보수적인 미술 시대풍토의 반감을 사곤 하였다. 두근거리는 설렘의 이미지보다는 뭔가 극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는 느낌이다.
월간정여울의 책들은 내게 소중한 글들로 자리매김하였다. 시와 영화감상, 인문, 철학, 심리학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세헤라자드의 끝이 없는 이야기를 듣는 듯 했다. 그간의 저서들을 통해서도 남성작가들은 따라올 수 없는 감성 인문학을 선보여 왔지만. 월간으로 기획한 아날로그 인문서는 무척이나 획기적인 도전이라 보여진다. 그 대장정의 걸음이 여기서 끝난다하니 아쉬움이 드는 책이다. 월간정여울의 시리즈를 읽으며 울고 웃었던 기억이 좋은 여운으로 오래오래 가슴 속에 머물고 있을 것 같다.
내 삶의 목표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이 크나큰 사랑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사랑을 타인에게 남겨준 채 떠나는 것이다. -p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