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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입맛 경제밥상
김상민 지음 / 패러다임북 / 2022년 1월
평점 :
그야말로 대선이 코앞이다. 많이 살진 않았지만,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다. 세월호의 침몰로 인하여 정치권은 큰 파장을 겪었고 대통령은 탄핵되었으며 여성대통령은 감옥에 갔다. 좌파 진보 야당이 제 1여당이 되면서 국민들은 많은 기대를 가졌었다. 적어도 그들이 외치던 공정과 평등한 세상정도는 되리라 하였지만, 결국 문재인 정부에서 우리는 비민주적이며 파괴적이고 패망으로 귀결되어지는 악마성의 덫에 빠져있는 상태다. 그들은 자신들의 거짓과 위선이 드러날 때마다 마치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처럼 저지와 보복을 하였고 이에 피해를 본 이들이 적지 않다. 한동훈 검사장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유시민을 보며 법정에서 이런 말을 했다.
"조국수사 시작 때 돌연 내가 자기계좌 추적했다며 1년 넘게 거짓말했고 권력이 확대재생산 했는데 마치 자기들은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수사하면 안 되는 초헌법적인 특권계급인 양 수사저지와 보복이 목적이었다" "권력이 물라면 물고 덮으라면 덮는 사냥개 같은 검찰을 만드는 걸 검찰개혁이라고 사기 치고 거짓말했다" "지어낸 자기 계좌추적에는 장기간 그렇게나 분노하던 柳가 정작 全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공수처의 민간인 사찰엔 아무 비판도 안 한 채 "삼겹살 먹는 채식주의자" 같은 궤변이나 떠들고 있다"
『정치입맛 경제밥상』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은 현재의 어려운 숙제는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짧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인지 그 어떤 나라보다도 민주주의 성장통이 극심해 보인다. 그러나, 민주주의 만큼 비합리적인 제도도 없다. 가장 현명해보이지만 가장 위험한 제도이기도 하다. 다수결이 가져다 주는 폐해는 영국의 브릭시트 탈퇴 선언이후의 민심을 보면 이해가 쉽다. 히틀러의 세치 혀에 놀아났던 대중은 또 어떤가? 히틀러는 뛰어난 대중선동의 귀재다. 그는 적과 아군을 구분 짓고, 흑백논리로 이성을 마비시켰다. 또한 묘하게 적개심을 대중들에게 분노를 심어주었다. 히틀러의 일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마을에 가서 “이 마을에서 보트를 즐길 수 있도록 선착장을 만들어주겠다.” 라는 약속을 한다. 마을 주민들이 “우리 마을에는 강과 호수가 없어 보트를 탈 수 없다.”라고 지적하자, 히틀러가 “그렇다면 강과 호수도 파서 선물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 그정도로 히틀러는 임기응변에 능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를 것 같은가? 인간의 본성이란 수천년 전과 다를바가 없기에 그와 비슷한 캐릭터에 똑같이 속아넘어가는 대중은 반드시 존재하게 되어있다. 키케로 말처럼 민중만큼 불확실하고, 여론만큼 우매하며, 정치가만큼 거짓된 자는 없다.
한 달을 앞둔 대통령선거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한때 싫어했던 말이지만 요즘은 자꾸 되뇌이게 된다. 거짓으로 진실을 덮을 수 없다. 역사에서도 그런 경우는 없었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밀물이 모든 배를 띄울 수 있듯이 말이다. 밀물은 경제에서 성장을 의미하지만, 정치에서 밀물은 우매한 대중을 넘어서 변별력 있는 지혜로운 시민이라 할 수 있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위정자들은 밀물위에 뜨는 기름과도 같다. 정치가 혐오를 불러올지라도 정치로 인해 더 좋은 삶을 만들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희망을 가져본다.
민주주의사회에서 투표할 때 좌파 진보는 분노 때문에 표를 찍고, 우파 보수는 불안 때문에 표를 찍는다고 표현한다. 좌파는 사람들의 분노에 호소하기 위해 선전과 선동을 애용하고 감정과 감성에 호소한다. 다만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발을 딛고 사는 공간은 자유시장경제의 공간이기에 그들이 대중에게 하는 말과 실제 삶의 모습은 전혀 상반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걸 우리는 ‘위선 혹은 거짓말’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세상을 볼 때는 거짓과 위선, 허황이 아니라 ‘사실(fact)'에 기반을 둬야 한다. -p274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하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기본소득은 사이비 대안의 성격이강하다. 사이비 대안이란 문제 해결을 위한 해결책이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을 때를 지칭하는 것이다. ‘풍요 속의 빈곤 해결, 불평등 완화’를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도입됐을 때, 자칫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p372
공평(equity)은 ‘공정한 평등’을 의미하며, 복지에서는 선별 복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세금을 부과할 때 고소득자에게는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저소득자에게는 낮은 세율이나 면세를 적용하는 누진세율이 정착된 것도 바로 공평의 원칙이 적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선별 복지나 누진세는 이미 현대 사회에서 정착된 제도인데, 기본소득은 여기에 정면으로 반한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특징이 있다.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얼버무린다는 것이다. 기본소득 주장으로 일단 표를 얻고, 재원 마련은 나중으로 미루는 전형적인 무책임의 발로임이 분명하다.
기본소득은 부자나 빈자에게 모두 같은 돈을 주므로 불평등 완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좌파 진보는 그렇게나 ‘격차 불평등’이나 ‘차별 불평등’을 구분하지 않고 불평등을 미워하면서 오히려 기본소득 도입으로 불평등을 부추기려고 한다. 정상적인 사고라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이니 현명한 국민이 막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p374
사람들은 좌파 진보가 늘 얘기하는 ‘평등과 분배, 공동체 정신’등의 단어에 본능적으로 호감을 느끼는 것 간다. 그 속에 담긴 ‘비민주적이며 파괴적인 성격, 그리고 패망으로 귀결되는 '악마성’을 거의 알아채지 못하면서 말이다. -p374
그리스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플루타코스는 삶에 대해 “잘 나가도 너무 기뻐하지 않고, 역경에도 너무 절망하지 않으며, 쾌락에 빠져 무절제하지 않고, 분노로 인해 사납고 잔인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p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