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이 없으면 눈뜬 장님인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안경과 함께 살아왔다. 시력이 좋지 않아 혜택본건 군대에서 퇴짜 맞은 것이고, 나머지는 일상에서 안경과의 고투를 해야만 했다. 워낙 안경을 쓰고 다닌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사실 신체의 일부분처럼 너무 자연스러워 평상시에는 안경을 의식하지 않는다. 다만, 안경에 이상이 생겨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 나는 난감한 지경에 처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 제일 먼저 안경을 찾아 더듬거리는 것이 내 일상의 시작이다. 대부분 머릿맡에 위치해서 특별하게 찾을 필요는 없지만, 가끔 안경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날들이 있다. 저번 주 일요일 날이 그런 날이었고, 난 안경을 찾기 위해 잠자리를 뒤지다 그만 안경을 밟아 버리고 말았다. 티타늄 재질의 날렵한 안경테이고 가벼울 뿐 아니라 탄성과 유연성이 좋다해서 비싸게 주고 산 안경테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진 않고 간신히 생존을 연명하고 있었고, 안경테를 다시 살리기 위해 행한 나의 노력은 티타늄 재질의 우수성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땜질하는데 2주가 걸린다고 하니 그럼 나는 2주 동안 맹인처럼 살라는 말인데...ㅠㅠ) 

그래도 우수한 놈인지라 간당간당한 생명을 끈질지게 유지하더니, 오늘 안경알을 닦는 내 손에서고이 사망했다. (명복을 빈다) 문제는 당장 내 눈이 피곤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 더구나 고굴절로 압축에 압축을 가한 안경알이라 안경을 조그맣게 쓰는 나는 딱 맞는 안경테를 대안으로 찿기도 어려운 실정이고....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고 이 동네 안경집을 다 뒤지고 멀리 인하대 앞가지 진출하여 간신히 안경알에 맞는 안경테를 구할 수 있었다. (뿔테로 ...ㅠㅠ) 

뿔테인데도 4만원이라 달라는 말에 난 군소리 못하고 (물론 좀 비싸다고 웅얼거리긴 했지만) 지불하고 나와야 했다. 안경은 나에게 천형이고, 렌즈를 끼던가 (게을러서 포기했다) 라식을 받던가 (무섭고 찜찜해서 포기했다) 해야 하지만 그냥 안경을 선호한다.  

워낙 오래 안경을 착용해서 그런지 내 얼굴은 안경에 맞게 진화한 것 같고, 안경을 벗은 내 얼굴은 내가 봐도 영~ 아니라서....  

안경테의 사망으로 오늘 오전을 그냥저냥 보내버렸다. 다시 한번 다짐 ...안경을 소중하게 모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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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6-15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머큐리 2009-06-15 21:21   좋아요 0 | URL
ㅎㅎㅎ

도화 2009-06-1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아 안경 부러졌구나..뿔테라.. 궁금한뎅..^^
도화라니..모를것 같아...
용인 어딘가에서 가위를 가지고 논다는..

머큐리 2009-06-16 08:07   좋아요 0 | URL
뿙테인데...ㅎㅎ 안경 바뀐지 아무도 못 알아본다는거...같은 까만색이라 그런가? 몸은 좀 괜찮은가??
 

1회 때 50여명에서 10회 1500여명 참가, 사상최대
청소년 동성애자 적극 참여 눈길…“가슴이 벅차” 

 

50여 명에서 시작했던 퍼레이드
올해 1500여 명 참가, 사상 최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받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의 ‘성 소수자’들이다. 지난 13일은 그들이 한 해 딱 한번 세상 바깥으로 당당하게 고개를 내미는 날이었다. ‘퀴어 퍼레이드’가 벌어진 이날 서울 청계천 일대는 성 소수자들의 행진으로 도심 하늘이 무지개 빛으로 물들었다.

 국내 성 소수자들의 문화 축제인 ‘퀴어 퍼레이드’가 열 돌을 맞았다. 해마다 축제가 열리는지 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느새 성 소수자들 사이에선 가장 큰 축제로 자리 잡았다. 10년 전 50여 명의 참가자들로 시작했던 초라하고 수줍었던 퍼레이드가 이제 1천 여명이 넘게 참가하는 성 소수자들의 가장 큰 축제가 되었다. 그래도 1만 여명 이상이 참가해 세계 최대 규모로 치러지는 호주의 ‘마디그라 성 소수자 축제’의 십분의 일에 불과한 규모이지만, 국내 ‘퀴어 퍼레이드’는 나날이 참여자가 늘고 있다. 올해엔 1500 여명이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김현구 퀴어문화축제 기획단장은 “우리나라처럼 성 소수자들에게 인색한 사회에서 10년 동안 행사를 열었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고 말했다.

  

촛불집회처럼 청소년 동성애자들 적극 참여
조승수 의원 “차이가 차별되지 않도록 노력”
 
올해 퍼레이드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청소년 성 소수자 참여가 활발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불편한 시선을 견디지 못해 성인 성 소수자들도 퍼레이드 참여를 꺼리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풍경이다. 촛불집회에만 청소년들의 참여가 두드러진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들은 퍼레이드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엔 이십 여명의 청소년 성 소수자들이 따로 행사장 한쪽에 부스까지 마련했다. 청소년 성 소수자 모임 ‘Rateen‘에서 활동하는 이민기(19·서울 외국인고등학교)군은 “우리가 이렇게 (거리에) 나와줘야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준다”고 말했다. 이들은 행사 시작 전부터 이성애자 중심으로 그려진 교과서의 삽화 등을 전시하며,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교과서 내 성 소수자 차별 금지’를 주장했다.  

 정당 참여도 눈에 띄었다. ‘성 소수자 정책’을 내놓고 있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따로 부스를 차렸다. 진보신당 성소수자위원회는 ‘퀴어한 노동권’이라는 손팻말을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지난해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커밍아웃 정치인’ 최현숙씨는 “많은 성 소수자들이 직장 내에서 당당하게 커밍아웃하지 못하고 있다”며 “성전환자 같은 성 소수자들을 노동 현장에서 이성애자들과 똑같이 대우하는 ‘쿼어한 노동권’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과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도 행사장을 찾았다. 조 의원은 “내 몸이 소중하듯 남의 몸이 소중하다는 연대의 정신에서 소수자 이해가 출발할 수 있다”며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쾌한 소통·질서가 뒤집힌 퍼레이드에 시민들 미소   

 퀴어 퍼레이드는 3m 높이의 베를린 장벽이 세워져 있는 을지로 2가 베를린 광장에서 시작해 청계광장을 돌아 다시 베를린 광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독일인들이 정치적 차이를 허물려고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것처럼,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성 정체성의 차이를 허물려고 서울 하늘 아래 베를린 장벽을 넘었다.  

 퍼레이드의 가장 큰 특징은 즐거움이었다. 8박자 구호와 민중가요 대신 빠른 리듬의 댄스음악이 행진대열에 추임새를 넣었다. 발랄하고 유쾌한 발걸음은 낯익은 거리행진과 분명 달랐다. 

 그러나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만큼은 정치적이다. 소통의 외침이었다. 갑갑한 생활을 강요당했던 이들은 이 날만큼은 세상과 호흡하길 원했다. 한 참가자는 ‘대한민국은 퀴어 공화국이다’는 손팻말을 준비했다. ‘민주’ 대신 ‘퀴어’를 집어넣은 ‘헌법 1조’의 패러디다. 대한민국에 성 소수자들도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기묘하다는 뜻의 ‘퀴어(queer)’를 넣어 ‘성적 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는 이상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주장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윗옷을 벗었다. 맨살을 햇살 아래 드러낸 채 즐겁게 춤을 추며 행진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한 참가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누드는 프리덤(자유).”
 

 

퍼레이드 마친 참가자들 “가슴이 벅차오른다”  

 행진을 마치고 이들은 다시 베를린 광장으로 돌아와 폐막행사를 했다. 퍼레이드를 마친 참가자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자원봉사자 제이디(23)씨는 “‘없는 사람’ 취급당하는 동성애자들이 이번 퍼레이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아무개(21)씨는 “행진을 하면서 내 정체성을 다시 확신하게 되어 좋았다”며 “가슴이 벅차오르고 후련하다”고 말했다. 존재를 드러낸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해 하던 이들은 한참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날 행진에 참여한 배우 홍석천씨는 아직 성 소수자들에 낯설어하는 이성애자들에게 부탁했다. “낯선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번 퍼레이드가 (성적 소수자들이) 별반 다를 게 없는 우리 이웃이라는 것을 (일반 사람들이)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퀴어 발걸음’ 십 년… ‘퀴어 인권’은 얼마나 걸어왔나  


 성 소수자들이 당당히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유일한 공간인 ‘퀴어 퍼레이드’. 이 행사가 올해로 열 돌을 맞았다.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들’이 세상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지 십 년이 된 셈이다.

십 년 동안 진행된 ‘퀴어 발걸음’. 이들이 남겨온 발자국만큼 성 소수자의 인권 수준도 앞으로 나아갔을까. 한국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들이 처한 현재와 당면한 과제는 무엇일까.

 

 “10년 동안 (성 소수자를 둘러싼 환경이) 좋아진 것은 분명하죠. 하지만 체감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는 지난 10년을 ‘반쪽짜리 개선’으로 평가했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 성 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각인시킨 것은 큰 성과이지만 “본래 우리 사회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간접적이었던 것이기 때문에, 간접적 수준에서 보자면 문제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직접적이지는 않았다. 이란 등 이슬람권 국가들처럼 동성애 행위를 두고 처벌하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사회가 동성애에 관대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동성애 존재 자체를 무시해왔던 관습 때문이라는 것이 성 소수자 사회의 일반적 견해다. 때문에 한 대표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 차별보다 간접적인 차별 수준을 놓고 우리 사회를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성애 친목 모임의 수가 증가하고, 동성애가 사회 이슈의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된 것은 성과이지만 가정, 직장, 동료 사이에서의 간접적 차별과 편견은 여전하기에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한 대표의 견해다. 

 이와 연계해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과제들도 산적한 상태다. 한 대표는 “남·녀 배우자가 결합한 형태의 가족을 구성하지 않는 성적 소수자들에게 걸맞은 ‘가족 제도’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 사회의 256개 법에서 ‘배우자’와 관련한 조항을 두고 있지만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는 법은 거의 없다”며 “혼인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의 박탈당하는 권리들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인 하리수씨를 계기로 높아진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2002년부터 수년간 국회에서 논의되어 왔던 ‘성전환자 성별변경 특별법’은 한 번도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현재는 성별을 바꾸려는 사람이 법원에 호적 정정을 신청하고,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여야만 호적상 성별변경이 가능하다. 개인의 성 결정권이 판사의 재량권에 맞겨져 있는 셈이다. 

 군대 내 동성애자 처벌 문제도 시급한 개선 대상으로 지적된다. 현재 군에서 동성애 문제가 발생하면 ‘군형법 92조’는 당사자들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이 강제적 동성애만 처벌하도록 한 것인지, 자발적 동성애까지 처벌하도록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벌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육군에서만 비강제적 동성애 행위 6건이 군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때문에 ‘군 관련 성소수자 네트워크’는 지난 8일 헌법재판소에 ‘군형법 92조’의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최근 보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성 소수자 인권 개선 움직임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행동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성 소수자들이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민 지 10년째에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풍경이다. 성 소수자들은 이런 움직임에 압력을 받아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적 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친구사이(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의 박기호 활동가는 “보수 기독교 단체의 ‘반동성애 시위’가 국가기관에 압력을 넣은 것이 차별금지법 조항에 성적 소수자 부분이 삭제된 계기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무관심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성적 소수자 문제가 논쟁의 영역으로 재등장하고 있는 것도 성적 소수자 사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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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불황기 노사협력은 기업 위기극복의 핵심조건”
청산보다 존속가치 4천억 많아…노조 “인건비 절감 협조”
사용자·정부, 정리해고 대신 노조와 타협 ‘회생 길’ 찾아야
 

 

쌍용자동차 노사가 대규모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대립하면서 위기 극복의 회생안 마련이 늦어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쌍용차가 경쟁력을 상실해 독자생존은 물론 매각 추진도 어렵다는 회의론을 편다. 하지만 자동차와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사용자와 정부가 지난 8일 강행한 976명의 정리해고를 계속 고집하는 대신 노조가 제시한 자구안의 취지를 잘 살려 대타협을 이루면 회생의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쌍용차의 회생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문제는 회생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노사정간 대화가 없는 것이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쌍용차의 경우 파산 때 협력업체, 지역경제에 미칠 파장까지 고려해 정부와 채권단이 적극 지원에 나서고, 노조가 공식·비공식으로 제시한 자구안을 잘 활용하면 회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삼일회계법인도 보고서에서 쌍용차의 청산보다는 존속가치가 4천억원 정도 더 많다고 평가했다. 이문호 노동혁신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일자리 만들기를 제2의 금 모으기에 비유하지 않았느냐”며 “쌍용차의 정상화가 불투명하지만, 지금 포기하기보다는 노사정이 힘을 합쳐 최대한 살려보려고 노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노조가 해고를 하지 않으면 회사가 계획한 2300억원의 인건비 절감액을 다른 방안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고 나선 것은 고무적이다. 노조는 일자리 나누기, 교대조 확대, 임금 삭감 등은 물론 일시해고나 무급휴직까지 검토 대상에 올렸다. 또 후생복지 양보와 종업원 출자안도 나온다. 이문호 소장은 “회사가 회생의 관건인 연구개발 투자 등을 위한 신규 자금 조달계획과 비전 제시 없이 인원만 줄이려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말한다. 노조는 회사의 경쟁력 제고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교대조 확대로 고용 유지를 하면서도 줄어든 교육시간을 늘려 지식근로자를 육성하고 회사의 경쟁력도 높이는 뉴패러다임에 관심이 높다. 국책연구소의 한 자동차산업 전문가는 “노조가 고용 유지 조건으로 생산성·유연성 제고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것은 필요하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라고 말했다. 뉴패러다임의 설계자이자 국회 ‘일자리 및 중소기업 특별위원회’ 간사인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쌍용차가 고용 유지와 함께 교육과 혁신, 제안운동의 활성화를 통해 종업원과 회사의 경쟁력을 함께 높일 수 있는 시행 방안을 국회 특위에서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해 보겠다”고 말했다.

불황기에 노사 협력은 기업 위기극복의 핵심 조건으로 꼽힌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태정 수석연구원은 “노사가 자유롭고 열린 대화의 장을 마련해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쌍용차는 이런 면에서 거의 낙제점수다. 쌍용차가 올해 초 회생절차 개시 신청을 한 뒤 노사간에 의미 있는 대화가 거의 없었다. 노조의 자구안도 제대로 검토된 적이 없다. 최기민 노조 정책실장은 “회사 쪽에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를 수차례 요청했으나 법정관리인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사 모두 대화 부재의 책임이 있지만, 위기일수록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법정관리인의 책임은 한층 더 무겁다. 이유일 법정관리인은 그동안 “회생을 위해서는 재무·인력 구조조정이 시급한데 노조는 정리해고 철폐 주장만 편다”며 대립각만 세워왔다. 정부가 직접 나서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금속노조의 조건준 정책실장은 “지식경제부와 노동부에도 대화 제의를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로 소통 부재가 꼽히는데, 쌍용차가 가장 심각한 사례인 셈이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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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 정권은 무지한가 무능력한가 고민한 적이 있었다. 결론은 무지하고 무능력하다는 것이다. 단, 집요하고 끈질기며 자기 욕망에 솔직하다. 문제는 국가는 일부 소수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니라는 점이고 일부 소수의 독선은 더구나 힘 있는 자들의 독선은 많은 사람들을 불행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이럴때 대안하나 내 놓지 못하는 진보를 우리는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진보 역시 무능력하다는 혐의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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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전녀오크의 지지자 모임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흠 우리나라는 대단한 나라라는걸 이럴때 느끼곤 한다. 아니 오크에게도 사람 지지자가 있었단 말이다. ) 

알게된 것은 한계레 신문에 기사때문인데....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의 팬 클럽인 '전여옥을 지지하는 모임'(전지모)의 최정수 회장은 12일 '전지모'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민주당과 진보세력들은 분명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최대한 이용해 이익을 챙기려 하고 있고 어느 정도 수확을 얻은게 사실"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특히 "김대중씨도 차라리 노 전 대통령처럼 자살을 하라. 그러면 또 한번 한무리들의 굿판이 경복궁 앞에서 벌어져 또 한명의 자살열사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 국민의 화합을 주장해도 부족할 상황에서 국민을 분열하고 더 나아가 현 정권에 저항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김대중씨는 국가 내란죄로 전직대통령 예우를 박탈해야 할 것"이라며 "모 정당 대변인의 말처럼 주소지를 북한으로 옮기던지 자살을 통해 본인의 뜻을 지지자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라며 격한 어조로 비판했다. " 

모임 이름은 전지모 (전국 지진아 모임?) 이고 회장이라는 사람 말하는 꼴이 전녀오크의 막말과 수준차이가 크지 않아, 전지모가 정말 오크지지 모임임을 확신할 수 있엇다.  

그래서 옛날 부터 끼리끼리 논다고 하나보다. 어쩜 그리 짝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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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6-14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건 이데올로기론으로 설명이 안됩니다-_-;;

바이런 2009-06-15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지모 ㅋㅋㅋ 이름부터가 참.. 여오크도 지지하고, 전문어도 존경하는걸 보면.. 대한민국은 진정 다문화 사회가 아닌가 싶습니다..=_=;ㅋㅋ
 

제10대 이란 대통령선거에서 강경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이 압도적 표차로 당선, 재선 고지를 밟았다.

13일 이란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85%의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대선에서 아마디네자드가 62.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고 AFP통신 등 주요 외신이 전했다.

아마디네자드의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던 개혁파 미르 호세인 무사비 후보는 33.8%의 득표율로 2위를 기록했고 모흐센 레자이 전 혁명수비대 사령관, 메흐디 카루비 전 의회의장이 뒤를 이었다.

아마디네자드는 고실업률, 인플레이션 등 집권기의 경제난으로 당선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보수 성향의 표가 결집되고 강세지역인 시골, 소도시에서 투표율이 높아 재선의 기쁨을 안게 됐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는 아마디네자의 승리가 진정한 축제와 다름없다며 그의 당선을 축하했다.

반면 무사비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불복 의사를 밝혀 향후 상당한 선거 후유증이 예상된다.

개표 전까지만 해도 아마디네자드와 박빙의 승부를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무사비는 "(상대후보의) 명백한 선거법 위반 행위에 강하게 항의한다"며 "난 뻔히 보이는 이런 수법에 굴복치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선거운동에 상징색인 녹색을 사용, 테헤란에 '그린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던 무사비는 투표 종료 직후 "자체조사 결과 65%의 지지로 내가 당선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강세지역인 타브리즈, 시라즈 등 주요 도시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없어 많은 이들이 투표를 못하고 일부 개표소에는 참관인의 입장이 허용되지 않아 공정 개표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무사비 지지자 수천여명은 무사비의 낙선 소식에 분개해 테헤란 곳곳에 모여 "독재자를 타도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강경파인 아마디네자드의 당선으로 이란의 대미, 대서방 관계 개선은 다시 상당기간 답보상태를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아마디네자드는 선거운동 기간 서방과 핵 협상 거부 방침을 밝히고 이스라엘을 사거리에 두는 중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한 바 있다.

아울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 이슬람 화해 정책도 시련을 겪게 될 전망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 이슬람 화해를 기조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구축, 아프가니스탄 안정화 방안을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이었지만 역내 패권국으로 꼽히는 이란에서 강경보수파가 다시 득세함에 따라 대 중동정책에 험난한 여정이 예고되고 있다.

이번 대선은 투표소에 밀려든 유권자들로 투표 마감시간이 4시간이나 연장되는 등 이란 국민의 뜨거운 열기를 반영했다.

강종구 특파원 inyon@yna.co.kr (두바이)  

이란 선거와 관련하여 딸기님 페이퍼를 첨부한다. (페이퍼 제목은 제2혁명을 꿈꾸는 이란 여성들이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는 9일 밤늦도록 ‘축제’가 이어졌습니다. 
오는 12일 대선을 앞두고, 개혁파 후보 미르 호세인 무사비(아래 쪽에 사진 있어요. 잘 생겼어요 ^^)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제2의 이란 혁명’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나와 다음날 새벽까지 축제를 방불케 하는 캠페인을 벌인 겁니다.


이슬람식 스카프에 하이힐 차림으로 무사비를 연호하는 여대생들, 손 붙잡고 거리로 나와 무사비의 상징색인 녹색 깃발을 휘두르는 엄마와 딸들, 페르시안 힙합을 틀어놓고 행진하는 자동차들…. 
테헤란 아자디 광장과 헤이다르니아 스타디움 등은 음악과 행진과 정치 구호들로 뒤덮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여성들의 옷차림을 단속한다며 횡포를 부렸을 경찰도 질서유지에만 신경쓸 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이란 프레스TV와 뉴욕타임스 등이 전했습니다.











무사비 지지자들이 9일 집회에서 무사비의 그림, 피켓 등을 들고 나와 지지 구호를 외치고 있네요. /로이터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거리의 주역인 젊은 여성들입니다. 
외신 사진들도 녹색 스카프나 깃발을 든 여성 시위대 일색입니다. 
이번 선거의 최대 ‘스타’로 떠오른 것은 무사비의 부인 자흐라 라흐나바드이고, 최대 화두인 경제문제에 대해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여성 유권자들이랍니다. 정치적 자유가 없고 여성들을 억누르는 중동, 특히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근본주의 종주국 이란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는 장면들입니다. 

그렇다보니, 억압 속에서도 꾸준히 ‘민주주의 연습’을 해온 이란 여성들의 힘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습니다. AP통신 등은 이란 젊은이들과 여성들이 “이슬람 혁명에 이은 제2의 혁명을 꿈꾸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실 이란 여성들의 활발한 정치활동에는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전 이란에서는 파흘라비(팔레비) 왕조의 서구식 개혁조치에 따라 여성들의 투표권이 인정됐고(63년)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대거 관직에 진출했습니다. 68년에는 첫 여성 각료인 파로크루 파르사가 교육장관이 돼 여학생들의 머리쓰개를 벗기고 여성들을 해외로 유학보내는 데에 앞장섰습니다. 







현대 이란의 첫 여성 각료였던 파로크루 파르사의 모습입니다.
제국 시대의 관료처럼 생겼지요? (사진은 역시 위키에서~)



이슬람혁명 뒤 왕조 시절의 엘리트 여성들이 대부분 망명하거나 관직에서 쫓겨났지만, 여성들의 투표권은 그대로 보장됐습니다. 여성들의 투표권은커녕 외출과 운전조차 금지시킨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과는 전혀 달랐던 거죠다.
여기에는 아야툴라 호메이니의 독특한 ‘근본주의 여성관’도 한몫 했다고 합니다. 근본주의자인 호메이니는 모든 여성들에 코란을 따를 것을 강요한 대신, 코란이 금하지 않은 것들은 허용했다는 겁니다. 이슬람 성법(샤리아)을 해석하는 법관 직에서 여성들을 몰아내고 법적 권리도 대폭 줄였지만, 여성들의 경제활동과 교육은 인정했습니다.






18세기 페르샤 여성들을 그린 궁정화







1968년 테헤란대학교의 원자로 앞에 선 핵공학자들입니다.
과학자들 중 절반은 여성이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사진은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왔습니다.)



호메이니는 또 이슬람혁명 정신을 부추기려 여성들도 거리로 나와 정치 구호를 외치도록 선동했습니다. 호메이니의 딸 자흐라는 여성단체를 이끌면서 이슬람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자흐라는 여성들을 외교관으로 내보내도록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혁명 이후 미국의 제재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더 많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밖으로 나갔고, 여성들의 대학진학률은 남성보다 오히려 높아졌습니다.







이 사람이, 이란 여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 무사비입니다. /AP
이란 정치인들 중에는 유독(!) 잘 생긴 사람들이 많습니다.
(유권자들 중에는 유독 미녀가 많은 모양입니다만... )

요새 국가지도자들은 잘 생긴게 대세래요(오바마 참고...) 한국은 빼고...




이 사람이, 이번 선거에서 무사비 돌풍을 일으키는 데에 한몫을 한 부인 자흐라 자흐라 라흐나바드입니다. /AP




89년 호메이니가 사망한 뒤 20년 동안 이란 여성들은 보수 세력의 견제 속에서도 정치적 발언을 늘려갔습니다. 
97년 정부가 여성들의 축구경기 관람을 금지시키자 5000명의 여성들이 국가대표팀 월드컵 예선전이 열리는 경기장으로 쳐들어간 ‘풋볼 레볼루션(축구혁명)’은 유명한 사건입니다. 
89~97년 대통령을 지낸 중도파 하셰미 라프산자니의 딸 후아에자 하셰미는 96년 스스로 정치에 뛰어들어 마즐리스(의회)에 진출했고, 이란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어 금기를 깨는데 앞장섰습니다.


이란 여성들이 ‘표의 힘’으로 정치를 바꾼 결정적인 사건은 97년 대선에서 개혁파 모하마드 하타미를 대통령에 당선킨 것이었지요. 하타미 대통령은 마수메 에브테카르라는 여성 과학자를 부통령에 임명, 지지에 보답했습니다.  
 



2003년 여성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차별에 맞서 싸운 이란 여성들의 투쟁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습니다.

이번 선거는 12년전 하타미를 당선시켰던 때보다 더 열기가 뜨겁습니다. 9일 녹색 머리띠를 두르고 테헤란 시내로 나온 21세 여성 파티마 타헤리안은 AP통신 인터뷰에서 “젊은층은 이번 선거가 이란의 대외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본다”며 “선거 캠페인은 재미와 정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축제”라고 말했습니다.

멀리서나마 이란 여성들의 건투를 빌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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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6-14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란여성들 참 이쁘다...기자들이 이쁜 여자들만 찍은건지..정말 평균(?)적으로 이쁜건지??

노이에자이트 2009-06-15 16:27   좋아요 0 | URL
여기 광주 광역시에 이란 사람들 살아요.3년전엔가 시내버스에서 이란의 새댁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되게 미인! 이란사람은 아랍족이 아니라는 걸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지요.그 여성은 고학력자였어요.그런데 옆에 시어머니가 있어서 그다지 친근하게는 못굴었어요.옆에 계신 분은 누구...하고 물었더니 시어머니라고 하길래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더니 그 분도 고개숙여 답례.그런데 그 이후 그 이란 미인을 본 적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