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진압 150일, 영정 부서지고 유족 실신 

용산철거민 살인진압이 발생한 지 150일이 된 6월 20일. 범국민추모제를 마친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장마가 시작해 내리는 비를 맞고 도로 위에서 경찰과 싸워야 했다 

 

▲  용산 살인진압 150일, 경찰에 영정사진이 부서지자 영정 복구를 요구하며 도로에 연좌한 유족이 사지가 들려 끌려나가고 있다.  

 

▲  부서진 영정사진  

이날 유족들과 추모제 참가자들은 저녁 6시께 추모제를 마치고 행진을 시작했다. 참사현장에서 용산역을 거쳐 다시 참사현장으로 돌아오는 700여 미터 정도의 행진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마지막 100여 미터를 두고 인도를 통해 행진하라고 도로를 막아서면서 사태가 커졌다. 경찰에 맞서 유족들과 참가자들은 “고인들이 죽은 지 150일인데 떳떳하게 행진도 못하느냐”며 행진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고인들의 영정이 부서졌다. 

 

▲  경찰에 끌려나오다 실신한 유족  

 

유족들은 “경찰이 영정을 복구해 오지 않는다면 행진을 마칠 수 없다”고 도로에 주저 앉았다. 경찰은 이들을 둘러싸고 연행을 하겠다고 경고 방송을 했지만 추모제에 참가한 김상희 민주당 의원과 단식 6일째를 맞은 전종훈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가 경찰과 유족 사이 중재에 나서 영정 복구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저녁 7시 30분께 복구를 위해 경찰이 가져간 영정은 돌아오지 않았고 경찰은 다시 유족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경찰은 유족을 둘러싸고 주변에 있던 참가자 3명을 연행했다. 이어 여경들이 유족에게 달려들어 한 명씩 인도로 끌어냈다. 고 윤용헌 씨의 부인 유영숙 씨는 경찰에 끌려나오는 과정에서 경찰과 참가자들이 뒤엉키면서 경찰에 밟혀 실신했다.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 고 한대성씨 부인 신숙자씨도 인도로 끌려나오는 과정에서 실신과 탈진으로 119로 병원에 후송됐다. 경찰의 연행시도를 막던 전종훈 신부도 탈진해 병원에 후송됐다. 연행자 3명은 중랑경찰서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경찰이 행진을 막아서지 않았다면 행진은 30분 만에 끝날 예정이었다. 경찰의 무리한 해산시도는 오히려 도로소통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경찰에 둘러싸인 유족들, 119 구급대가 실신한 유족 1명을 후송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4시에는 200여 명의 시민이 우비를 입고 150일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추모 문화제에서 권영국 용산철거민변호인단 변호사는 “검찰은 PD수첩 수사에는 개인의 이메일까지 공개했지만 용산에 대해서는 수사기록 3000쪽을 내놓지 않고 법원은 아무 제재도 안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도 "수사기록 3000쪽을 반드시 얻어 돌아가신 분들이 하늘나라로 갈 수 있도록 싸우겠다"고 말했다.
 

 


 

김용욱 기자 batblue@jinbo.net / 2009년06월20일 22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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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안보 문제들이 최근 주목받게 되면서 노르웨이 언론에서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보통 기자들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매달리는 ‘이유’를 묻는다. 기자들에게 본인의 생각이 어떠냐고 물으면 대개미국 새 행정부의 관심 끌기와 삼대 권력 세습 과정에서 내부 통합용”이라는 대답이 나오곤 한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북한 대외 정책의 장기적 목표는 대미관계 정상화와 세계 자본 시스템으로 편입인데, 여기에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은 미국의 북침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보장”의 역할과 함께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핵심 카드” 구실을 해왔다. 그리고 세종대왕함의 진수 등이 한국에서 국가주의 (“대한민국주의”) 정서를 부추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군사주의 열풍은 관제 내부 통합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전국을 병영화시키는 데에 있어서는 북한은 한국을 훨씬 능가하지만 군사주의적 근대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양쪽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북한의 최근 대외 노선 강경화를 단순히 위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요인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명박 정권의 햇볕정책 포기와 일련의 강경책이 북한을 자극해 강경 일변도의 노선으로 밀어내는 데에 큰 몫을 한 것이다.

서방세계에서 북한을 언급할 때마다 “위협”과 같은 용어들이 당장 등장하지만, 사실 북한은 동북아의 최약체국일 뿐이다. 남한과 비교해도 북한의 국민총소득은 32배 더 적고 무역총액은 167배 더 적지만,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거인과는 비교라도 가능하겠는가?

북한의 마지막 카드는 “군사”지만, 그 군비지출도 세계 11위 군비 지출국인 남한의 약 20%에 불과할 뿐이다. 이 상황에서 1991년 소련 붕괴로 옛 후원자를 잃은 북한으로서는 새로운 후원자를 얻는 것은 절실한 과제다. 미국,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도 본의 아니게 “왕따”를 당하는 북한이 1999년 이후부터 남한의 햇볕정책을 크게 환영해 남북 협력 증진에 열성을 보인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남한이 1970년에 일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마산 등지에 설치한 수출자유지역과 격이 비슷한 개성공단을 만들어주는 것은 여태까지 남한을 “가난한 미제 식민지”로 이야기해온 북한으로서 자존심을 접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장기적으로 남한이야말로 북한이 세계 자본주의로 편입하는 데 “매개체”가 될 줄로 믿고 남한 자본의 진출을 유도했다. 북한 저임금 노동력의 착취 등 문제도 없지 않았지만 햇볕정책에 응해온 지난 10년 동안의 북한 관료집단의 태도로 봐서는 이 정책이 장기적으로 남북한을 하나의 경제 공간으로 묶어 평화적 공존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에 크게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북한 지배층도 계속 커져가는 중국 영향력을 상쇄할 또 하나의 힘으로서 남한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의 이와 같은 커다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이 국내 보수층 결집과 대미 유착관계 강화를 위해 북한과 여태까지 맺어온 협정서 등을 거의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북한 소비시장의 70%를 이미 중국 제품들이 점유하고 있지만, 이제는 북한이 중국 경제권으로 편입하는 과정이 더욱더 빨라질 것이고, 북한 지배집단 내에서 군부의 목소리는 더욱더 세질 것이고, 통일은커녕 평화 공존 기반의 조성은 예측이 가능한 미래에 불가능해질 것이다. 한 번 속아본 북한이 두 번 속으려 하겠는가? 옛말대로 소탐대실, 자그마한 정치, 경제적 이득을 탐낸 이 정권은 한반도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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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내가 알기로 이 사건은 자연인 정운천, 민동석 씨가 <PD수첩>을 명예 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다. 그런데 정작 이 두 사람은 말이 없고, 엉뚱하게 청와대에서 대신 난리를 친다. 한 나라의 대변인이 구사하는 언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기 그지없다. 뭐, <PD수첩>이 '흉기'라나 뭐라나? 듣기에도 음산하고 스산하다. <PD수첩>이 흉기라면, 청와대는 흉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한나라당에서 다시 연극 <환생 경제>를 공연하면, 이동관 대변인이 과거 주성영 의원이 맡았던 역을 맡는 게 좋겠다.

재미있는 일이다. 명예 훼손을 당했다는 이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제3자에 불과한 청와대 비서관이 대신 나서서 입에 거품을 문다. 이로써 그는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폭로했다. 애초에 이 사건은 정운천, 민동석이라는 자연인의 명예에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분에 불과했고, 이 수사가 MB의 정책을 비판하는 <PD수첩>에 대한 정치 보복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임을 청와대가 요란하게 나서서 스스로 입증해 준 것이다. 광기에 가까운 청와대의 오버액션은 이 수사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정운천, 민동석 씨가 <PD수첩>을 고소한 것이 자그마치 지난 3월 3일. 수사가 시작된 지 반 년도 넘은 후의 일이다. 어떻게든 기소는 하고 싶은데 명분은 없고, 그래서 부랴부랴 사후적으로 법적 명분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방송을 아무리 봐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만 있을 뿐, 정운천, 민동석 개인에 대한 관심이나 비방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공공기관이 수행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을 공직자 개인의 명예 훼손으로 거는 것 자체가 엽기,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나 나올 만한 일이다.

법원으로 갈 것도 없이, 애초에 검찰도 자체적으로 기소는 무리라 판단했던 사안이었다. 작년 12월말 <PD수첩>을 수사하던 임수빈 부장검사가 사표를 던졌다. 그는 이 수사에 관해 "명예 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맞다. 이번 수사는 검찰 권력이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얼마나 침해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PD수첩> 수사 임수빈 부장검사 사의', <한겨레> 2009년 12월 29일) 직접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가 도대체 '거리'가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을, 수사를 담당하지 않은 윗분들이 억지로 '거리'로 만들어 내라고 주문한 셈이다.

사실 정권의 입장에서 정운천, 민동석 씨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관심사가 아니다. 정권의 목적은 <PD수첩>의 보도가 온통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인상을 만들어내는 데에 있다. 한 마디로 혼네(비판 언론 탄압하기)와 다테마에(두 자연인의 명예 회복)가 따로 놀고 있는 셈이다. 후자를 내걸어 전자의 목표를 달성하는 게 MB 정권의 속셈이다. 이렇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없었던 법적 목표를 억지로 만들어내다 보니, 당연히 논리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검찰에서도 '거리'가 안 된다고 봤던 사안을 들고 법정에 가봐야, 얼마나 승산이 있겠는가? 검찰이 승소하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을 보자.

제작진을 명예 훼손죄로 처벌하려면 <PD수첩>의 보도와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명예 실추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검찰이 확증해야 한다. (…) 또 검찰은 <PD수첩>의 보도 내용이 허위이며, 이를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해야 한다. 제작진이 정 전 장관과 협상팀의 명예를 실추시킬 뚜렷한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방송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는 뜻이다. (…) 법원은 공공의 이익과 관련한 보도에서 다소 과장이나 실수가 있더라도 취재진이 보도할 당시 사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하고 있다. 때문에 번역 상 오류나 일부 과잉 편집을 곧바로 허위 사실로 연결하긴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PD수첩> 일파만파. 형사상 명예훼손 입증될까', <서울신문> 2009년 6월 20일)

이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법정에서 무죄 판결이 나버리면 검찰의 처지가 아주 곤란해진다. 곧바로 정치 보복을 무리한 기획 수사였다는 역풍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동원한 꼼수가 뒤지고 뒤져서 찾아낸 프리랜서 작가의 사적 메일을 깐 것이다. 검찰은 메일을 공개한 동기를 솔직히 털어놓는다.

검찰 관계자는 이메일 공개와 관련, "제작진을 기소하면서 범죄 성립의 주요 요소인 악의가 있느냐 또는 현저히 공평성을 잃은 게 맞느냐는 판단을 할 때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고 판단했고 국민에게 이를 충분히 설득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현 정부에 강한 반감이 있는 작가의 정치 성향이 프로그램에 영향을 끼쳐 왜곡 보도로 이어졌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檢, PD수첩 작가 이메일 공개', <연합뉴스> 2009년 6월 18일)

이 모두가 결국 보도의 공익성을 부정하고 보도에 악의성을 뒤집어씌우기 위한 꼼수다. "국민에게 이를 충분히 설득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메일의 공개가 '법정 안의 재판'이 아니라 '법정 밖의 재판'을 위한 것이라고 순진하게 자백한다. 이렇게 기소를 위해 무리하게 불법까지 자행하는 데서, 역설적으로 검찰이 지금 법리적으로 얼마나 궁색한 처지에 놓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프리랜서 작가 한 사람의 사사로운 감정이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만드는 프로그램 전체의 논조를 규정할 수 있겠는가? 이 가공할 논리적 비약에서는 어떤 처절함마저 느껴진다.

검찰은 30가지 왜곡을 발견했다 하나, 읽어보면 거의 문창과 습작 수준. 만약 내게 그 수사결과를 갖다 주면, 누구 말대로 '곱하기 2'해서 60가지 오류로 되돌려줄 자신이 있다. ('법대교수·의학전문가들, 검찰 <PD수첩> 수사 논리 반박', <노컷뉴스> 2009년 6월 19일) 검찰 발표는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므로, 왜곡 여부에 대한 판단은 반대편, 즉 <PD수첩>과 변호인 측의 목소리까지 들은 후에 내려도 늦지 않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에도 언론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줄줄이 흘린다. 검찰, 나이가 몇 살인데 왜 칠칠맞게 피의 사실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걸까?

그것은 물론 보수 언론의 입들 위로 내려주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검찰이 피의 사실을 흘리면 보수 언론은 그것을 졸지에 기정 사실로 바꾸어 놓는다. 도대체 이 검ㆍ언 유착에는 당연히 목적이 있다. 사실 법원이 미치지 않은 이상, 이 사안에 유죄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일단 기소를 해놓고 피의 사실을 언론에 흘리면, 시간이 많이 흘러 나중에 무죄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정치적으로 필요한 기간만큼은 <PD수첩>에 사실상 유죄 판결을 내려둘 수 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뭔가 뜨겁게 달아오른 것을 잠재우는 효과는 낼 수 있다.

법정에서 내려질 판결에 관계없이, 오직 기소만으로도 그들은 많은 일을 도모할 수 있다. 가령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그 특유의 오버액션으로 MB 정권의 은밀한 욕망을, 청와대의 정치적 리비도를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영국이나 일본 같으면 경영진이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총사퇴해야 하는 일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현업에 있는 이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 보자.

이근행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철저히 계산된 발언이며, 미디어법 국면이라든가 방문진 이사선임 시기까지 임박했으니 이런 것들을 고려해 내놓은 발언일 것"이라며 "<PD수첩>의 기소와 수사 결과 발표가 나오자마자 청와대가 받아서 취재진을 비난한데다 오늘은 이런 식으로 공영방송의 경영진 진퇴를 협박하듯이 거론한 것은 MBC 장악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문진 이사, 총사퇴할 사람은 이동관·청와대', <미디어오늘> 2009년 6월 19일)

듣자 하니 이 대변인은 그는 <PD수첩>의 보도가 "심하게 비유하면 음주 운전하는 사람에게 차를 맡긴 것이나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의 공식 입장을 말하는 대변인이 이 사용하기에는 별로 적절해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국민의 공감을 살 것 같지도 않은 썰렁한 독설이다. 그 말을 듣고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어, 검색창에 '음주'와 '이동관'을 넣고 엔터키를 눌렀더니 기사가 하나 뜬다. 이번 브리핑은 멀쩡한 정신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그(=자유선진당 박현하 부대변인)는 또 "이 대변인은 정부가 쇠고기 고시를 관보에 게재하던 지난 26일 출입기자들에게 '음주 브리핑'을 했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며 "이 대변인의 거듭된 일탈은 청와대 2기 인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권력의 측근으로서 누리는 호가호위인가 객기인가"라고 반문했다. ('촛불집회 쓰지 말라? 이동관, 월권 넘어 언론 통제', <노컷뉴스> 2008년 6월 30일)

한나라당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PD수첩>'의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치부를 감출 의사가 전혀 없다는 의미에서, 이 정도면 거의 '바바리맨'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확정되지 않은 피의 사실에서 초강력 발언으로 날아가는 비약에는 매우 수상한 구석이 있다. 사생활 침해의 비난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사적 이메일을 공개하는 기동 역시 해괴하기 이를 데 없다.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이들은 정작 정운천과 민동석의 명예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한나라당-보수 언론이 연출하는 저 오버액션은, 시국 선언이 이어지는 이 찬란한 6월에 국민의 대다수의 반대에 부딪힌 6월 '미디어법'의 운명을 요란하게 걱정하는 방식이 아닐까?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20215859&section=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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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6-22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와대는 그냥 "흉"한거임.

2009-06-22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왜 인권침해와 인간고통은 계속될까? 영국 사회학자 스탠리 코언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조효제 옮김, 창비, 2009)이라는 책을 썼다. ‘왜 국가와 사회는 인권침해를 부인하는가’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주로 ‘부인의 심리학’을 다루고 있다. 나는 언론학도로서 언론의 문제를 다룬 제7장에 눈길이 갔다. 코언은 이렇게 말한다.

“문화적 부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미디어라는 야수가 무엇을 선별하고 가공하고 보도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은 대단히 포착하기 힘든 과정이다. 미디어의 여과장치가 문화적 부인 그 자체와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개인 차원의 ‘부인의 심리학’은 대중매체의 매개 과정을 거치면서 집단 차원의 ‘부인의 경제학’으로 바뀌기 때문에 더욱 문제다. 한국을 사례로 삼아 살펴보자. 나는 한동안 <한겨레>를 구독할 만한 사람이 구독을 하지 않을 때엔 꼭 그 이유를 캐물었는데, 답은 거의 한결같았다. 비판 일변도로 너무 어두워 불편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비판의 내용엔 동의한다는 점이다. 어떤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의 논리다. 세상이 정의롭지 못한 건 잘 알고 있지만, 불의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만 빠져 지내다간 자기 한몸 지키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대중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느라 이미 충분히 피곤한데다 지쳐 있다. 쉬고 싶어 한다. 위로받고 싶어 한다. 아니면 좀더 나은 경제적 지위를 누리기 위해 애쓴다. 모두 다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중요한 건 이들이 언론을 포함한 모든 대중매체를 이용할 때에 갖는 첫째 동기가 바로 그런 오락·위로·자기발전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적 삶의 영역을 떠나 세상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의 선택 이유가 그런 만큼 세상의 불의에 대한 부인이 집단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외 모든 대중매체 상품이나 관련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보라. 오락·위로·자기발전 이외에 ‘양심에의 호소’로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는가? 물론 늘 예외는 있기 마련이지만, 판 자체를 뒤엎진 못한다. 오늘날 한겨레가 보수신문들에 양적으로 밀리는 이유는 자본력이 약해서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인권’이 ‘경제’에 포섭되고 ‘개인 심리’가 ‘시장 논리’에 압도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매년 200명이 넘는 어린 학생들이 자살을 하지만, 이미 이런 자살은 뉴스 가치를 잃은 지 오래고, 그래서 우리 모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잘 살아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자녀의 입시전쟁 매니저로 맹활약하고 있다. 우리는 ‘재개발’의 잔인성을 평소에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개발로 지어진 아파트를 거부하진 않는다. 우리가 사회적 사건으로 충격을 받거나 분노하거나 비탄에 잠기는 건 모든 대중매체가 집중적으로 매달리는 예외적 사건에 국한된다. 즉, 인권과 고통도 대중매체 이벤트가 될 때에 비로소 감지될 뿐이다.

모든 게 대중매체 하기에 달렸다는 ‘대중매체 결정론’이나 아예 경쟁을 없애자는 근본주의 처방을 역설하려는 게 아니다. 우선 실천 가능한 차원에서 대중매체 개혁의 의제를 다시 점검해보자는 뜻이다. 좀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오락·위로·자기발전이 잘 팔리는 상품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것과, 그것들을 어떻게 해서든 인권과 고통의 문제와 연결해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 사이의 차이는 매우 크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저널리즘의 문법은 여전히 반세기 전의 것이다. 그때와는 세상이 크게 달라진 만큼 새로운 문법의 창출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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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소녀 백서
김현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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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현진이란 에세이스트... 예전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쓴 책이 있어 그냥 발칙한 십대가 하나 있구나 했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아마도 20대 중반에 쓴 책이 아닌가 한다. 그녀를 본격적으로 다시 인식한 건 2008년 촛불이 타오르던 때 시사인의 칼럼을 통해서 였다. 그때 쓴 글이 아마도 '우리안의 이명박'이란 글이었는데... 우리 안에 물욕성이 이명박을 당선시킨 동력이었고 (이명박은 전과 14범에 거짓말쟁이 라는 것은 모든 국민은 알고 있었다) 그 물신성을 극복하지 않고는 언젠가 또다시 고통을 받아야 할 것 이라는 내용은 짤막한 글이었다. 난 그 글에 깊은(?)공감을 했고 그녀를 다시 인식했다.  

얼마 전 촛볼과 기륭전자 비정규직 근로자 농성, 용산사태를 겪으며 쓴 글들을 묶어 새롭게 책을 출간했다. '그래도 언니는 간다' 라는 제목이었는데... 김현진이 '언니는 간다'라는 영화를 제작하고 큰 재미를 못 본 것에서 제목을 결정한 것 같다. (영화는 확실히 에세이보다 어려운가 보다) 

이래저래 관심이 가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어쩌면 평범하고 진부한 이야기들...여성이여 스스로 자존감을 느끼고 당당하게 살자는 말은 이제 너무 흔해서 진부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하게 수사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라기 보다 김현진이라는 어린 소녀가 여성이 되기까지의 분투기였고 여기서 단순한 수사적 얘기는 매우 처절한 분투기로 전환된다. 그러나 처철한 분투기 자체는 어둡고 회피적이 아닌 즐겁고 희망찬 것이다.  

'불량소녀'는 체제가 여성에게 불리하게 씌우는 차별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주인으로 사는 여성이다. 즐겁게 살기에 '소녀'로 사는 여성들.. 그러나 '나쁜년'과는 엄연하게 차이가 있는 여성이다. 왜냐하면 불량소녀들은 여성들과 연대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의 편견과 당당하게 맞서기 때문이다. 여성임에도 남성과 연대하여 남성이 원하는 '여성성'을 가장하여 같은 여성을 착취하는 '나쁜년'과는 질적으로 틀린 여성이 '불량소녀'다.  

난 김현진의 불량소녀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발랄한 페미니즘을 본다. 나 스스로가 불량소녀들의 도발을 감당해낼 수 있을지 모를 발랄한 그녀들은 이제 이 세상의 주인으로 당당히 나서야 하는 새로운 젊음이고 저자가 여성들과 함께 나누고픈 자신의 경험이다. 학문으로 글로서 패미니즘이 아니라 생활로 경험으로 깨지고 무너지면서 쓴 그녀의 불량소녀가 아직도 남성세계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러 여성들과 남성이라는 한계로 자신도 모르게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진 남성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것 같다.  

그냥 딸이 있다면 나는 '불량소녀'로 키울 것이다. 그녀의 경험과 아픔과 변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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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6-20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으셨나보네요^^ 저번에 반가웠어용!~

머큐리 2009-06-21 06:15   좋아요 0 | URL
너무 일찍가서 아쉬웠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