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영화제 지원이 중단되었단다.... 환경이야 말로 전세계가 공유하는 최첨단 정치,경제, 사회적 이슈이고 녹색 삽질을 해야하는 현 정부도 생색내기용이라도 지원해야 마땅하거늘 이제 딱 까놓고 지원을 중단한 것이다.  

  

» 환경부와 서울시는 올해 서울환경영화제 지원예산을 책정해 놓고도 이를 집행하지 않았다. 국정원 압력 때문이란 의혹이 불거진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오른쪽 둘째) 등이 지난 4월25일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환경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성열 <씨네21> 기자 youl@cine21.com

지원중단을 했으면 중단사유라도 똑 뿌러지게 설명해서, 억울함이라도 풀게 만들던지, 한 대 치고나서 왜 치냐고 물으니... 자기도 왜 쳤는지 모르겠다는 식이니,  맞은 놈 두 번 복장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2004년 처음 시작했을때 지원했던 서울시장이 현 대통령이다.  환경재단이 주최하는 기후변화리더십 연사로 까지 출강하시는 현 서울시장님은 지원금이 어디로 가냐고만 되풀이하고 계시단다. 흠 어디로 안가도 주지 않으면 영화제는 어떻게 치루라는 야그냐?   

관계부처 장관인 환경부 장관은 문화관광부로 절묘하게 패스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공 받은 문화관광부장관은 양촌리 출신답게 상황이 좋지 않으니 기다려 달라고만 한다. 결국 한국 축구의 고질병이 행정라인도 장악해 버렸으니, 패스는 절묘하나 골이 안 터지고 계속 골문 앞에서 공만 빙빙 돌리는 꼴이라 하겠다. 근데 기다리면 골이 터지긴 터지는 거냐?  이게 의문이라는거다.  

뭐 배후로는 국정원이 거론되는 모양이다. 이념 영화제도 아닌 환경영화제에 국정원이 왜 개입하는지는 몰라도...아니 국정원이 장관들보다 힘이 더 쎈거냐...장관들 왜 이리 소신없이 빌빌거리는지...하긴 소신 있음 장관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보니 소신없음이 이해는되나 복장 터지는건 결국 국민들이라는 것이 문제다.  

주절거리는 나.... 지금까지 환경영화제 한 번 보러간 적 없다. 머 핑계야 먹고 사는 샐러리맨이 어디 그런데 기웃거릴 시간이 되느냐인데... 지원금 확 줄었다고 하니 관심이 확~ 땡긴다.  

그렇지 않아도 4대강을 살리기 한다면서 대운하 추진하고, 지리산에 케이블카 설치한다 하고 이러면서 환경 영화제를 지원하기가 좀 뻘쭘해서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이해하겠다.  그럼 당당하게 그렇다고 얘기해라.... 환경하고 상관없고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는 행정을 하기땜시 양심상 환경 영화제를 지원못한다고...그럼 분노는 하겠지만 그 일관성 있는 자세를 높이 평가하면서 전투의지라도 다질 것 아닌가. 당당히 밝히지도 못하고 그저 기다리라는 그 말...참으로 좀스럽고 치사해 보인다. 에이 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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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6-24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는 짓마다 정말 좀스럽고 치사해서 --;;

머큐리 2009-06-24 14:25   좋아요 0 | URL
글게요..휘모리님 처럼 좀 화통하게 하면 안되나...ㅎㅎ

Alicia 2009-06-24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환경영화제 돈줄까지 막아버리는군요...환경영화제 저는 작년에 한번 갔었는데 애니, 다큐, 볼만한 영화가 정말 많았어요. 다국적 제약회사의 특허권분쟁과 3세계국민들의 보건권, 쇠고기문제, 태안기름유출사건, 정치적인 영화들이 많았죠.. 오히려 기사로 접하는 것보다 호소력있고 충격효과가 컸다고 생각해요.
이 정부는 돈줄쥐고 있으면서 못하는게 없어요. 예산 이유로 정부기관 정규직도 내쫓고, 비정규직은 늘리고, 퇴직금 안줄려고 1년미만단위로 계약하고.. 대운하추진하려 그러는지 한국수력원자력만 신입채용을 늘린다고 하데요.


머큐리 2009-06-24 14:26   좋아요 0 | URL
돈 있는 놈이 주인인 세상이란 걸 각인시키려고 더 난리치는 것 같아요...ㅠㅠ

딸기 2009-06-24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복장터져...
암튼 저놈들 하는 짓거리하고는... 더 열받을 힘도 없네요.

머큐리 2009-06-25 11:05   좋아요 0 | URL
그래도 힘내서 어떻게라도 해야지 열 받아 쓰러지겠어요...
 

혹 서울 사시면서, 19세 이상이신 분들은 지방(?)에서 시청 잔디 한 번 즈려밟고 싶은 시민들을 위해서 '서울광장 조례개정' 서명에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 꼭꼭꼭 바란다. 가끔 시청가서 잔디 밟아보기가 작년 촛불 정국 이후 하늘의 별따기 보다 더 힘드니...그리고 몇십만 이상 모여야 하고 농성하고 난리 굿을 해야 겨우 열리는 광장이 우슨 시민을 위한 광장이냐... 싸우면서 광장을 열때는 열더라도 힘안들이고 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듯하니 서울 시민들...특히 19세 이상 남성과 여성들의 열성적 참여와 분투를 부탁드린다... 서명은 아래 기사를 참조하시길.... (글구 이왕이면 중고생들도 많이 이용하는데 왜 갸들은 제외하는거냐..흠)

                                  서울근처 사는 19세 넘은 불쌍한 경기도민 올림

 

수임인 1100여명 모여…8만명 모으면 발의 가능 

참여연대와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 등 야4당, 서울시민네트워크 등 서울지역 시민단체들이 모여 만든 ‘광장 조례 개정 서울시민 캠페인단’(캠페인단)은 24일 서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광장을 시민 품으로 돌려받기 위한 서명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캠페인단 누리집(openseoul.org)도 이날 문을 연다.

캠페인단은 지난 10일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대표로 해 “시민들의 자유로운 광장 사용을 막는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바꿔 달라”는 ‘개정 청구서’를 서울시에 냈으며, 시민들의 서명을 직접 받는 일을 하는 ‘수임인’의 등록 작업을 그동안 벌여왔다. 23일 현재까지 모인 수임인은 1100여명으로, 이들이 6개월 안에 서울시 유권자의 1%인 8만968명의 서명을 모으면 조례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다.

캠페인단이 만든 조례 개정안은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으로 한정된 광장 사용 목적에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진행’을 추가했고, 현행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도록 했다. 또 광장 운영에 시민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시민위원회’ 설치를 위한 근거 규정 등도 담았다. (정말 맘에 쏙들지...서명하고 싶지...ㅎㅎ)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팀장은 “8만명의 서명을 모으는 작업이 쉽지는 않겠지만, 정치권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열기가 합쳐지면, 예상보다 빨리 서명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19살 이상 서울 시민은 누구든지 서명에 참여할 수 있다.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02)723-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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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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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먹먹해 지는 일이 있다. 알라딘 서재를 검색하다가 누군가의 글에서 '읽기가 고통스러운 작가'로 '솔직하고 글 잘쓰는 작가'로 공선옥이란 이름을 접했을때, 난 그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조금씩 그녀를 알고 싶어졌다. 첫사랑의 설레임(?)은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을 뿐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5.18광주에서 87년 6.10 항쟁 직전까지인 것 같다. 소설에서 시대적 배경은 뚜렸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겪는 사건을 종합해볼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 시대는 우리사회가 밑바닥에서 부터 부글부글 끓어 오르던 시기이고 거기서 청춘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이며, 작가가 가장 예뻤을 때로 기억하는 시기이다.  

소설은 지금 젊은이처럼 제한적이나마 자유를 누리지도 못했고, 순수하게 '혁명'을 꿈꿀 수 있었던 그 때. 그리고 그 시대를 살면서 서로 보듬고 깨져가며 성숙해져가는 아픈 성장이 눈부신 그 때를 담담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그 담담함 속에서 느껴지는 슬픈도록 아름다운 찬란함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누군들 아름다운 청춘이 없을까만은... 그 시대의 청춘은 왜 그리 고달프고 아펐는지...아니 모든 청춘들이 고달프고 아팠으리라... 

그래도 그때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예전만큼 확고하게 진보에 대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사회가 변해버린건지 내가 나이가 들어버린건지, 나이들면 현명해 진다던데..나이들수록 현실에 움츠려들고 타협해버리는 자신을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다. 시대가 아니라 무엇이든 변화하려는 그 젊은 날이, 그 패기가, 그 순수함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볼때 지금의 내 모습은 불편하다.  

   
 

 ...상대보다 힘이 세다고, 더 많이 배웠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더 우월하다고 믿는 자들이 부리는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그 오만과 횡포와 모욕고 폭력과 무례함을 견뎌야 한다고. 모든 오만한 자들이, 모든 무뢰배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때까지, 견디고 견뎌서, 그 견디는 힘으로 우리가 아름다워지자고. 왜냐하면 모든 추함은 모든 아름다움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게되어 있기 때문에. 동물에서 출발한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에, 동물적 본능의 시간에서 조금이라도 인간의 시간을 살기위해 몸부림치기 때문이라고, 동물의 시간에서 인간의 시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의과정이야 말로 진보의 역사라고....

 
   

 자신의 청춘도 젊음도 누리는 것을 죄스러워했던 사람들.... 난 그런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그러나 예전처럼 아프게 만나지 않고 행복하게 만나고 싶다.  지금은 마치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듯 느껴지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시절이다. 그렇게 싸우면 얻은 것들이 손바닥에서 모래 흐르듯 허무하게 무너져 가는 세월들....그러나 " 그 어떤 것도 지속될 수 없으므로, 슬픔은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슬픔에 잠기도록 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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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9-06-24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선옥의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을 읽으면서, 그 작가가 참 무서웠습니다.
'읽기가 고통스러운 작가'... 딱 맞는 표현인 듯 하네요.
정작 그 뒤에는 그의 소설을 별로 접하지 못했지만...

머큐리 2009-06-25 11:06   좋아요 0 | URL
저는 산문집 한권...소설은 이 책이 처음입니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을 읽어봐야겠어요...
 

[시국선언] 현 정국을 바라보는 본지의 시국선언

2009.6.17

연약한 삽질 하나가 포크레인질이 되고 초라한 촛불 하나가 들불이 되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로부터 시작된 사회 각계의 시국선언이 역대 최대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혼탁한 정국,  본지에서도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바이다.

본격적인 시국선언 발표에 앞서 앞선 시국선언문들의 한계를 지적하겠다. 수많은 시국선언문들이 한결 같이 담고있는 바, 현 정부의 국정기조 전환 요구다. 이에 대한 청와대의 답변은 국정기조 전환 없음.

이를 두고 청와대의 소통 부재를 탓하는 소리가 높지만 진정 소통을 가로막는 주체가 누구인지는 곰곰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본지의 판단이다. 현 정국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차치하고 연일 시국선언을 감행하는 측이 청와대와 비교하여 과연 소통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시국선언의 목적이 독백이 아닌 한 결국 청자가 알아들을만 한 소리로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어렵게 설명할 필요 없이 미국사람에게 영어로 얘기하고 일본사람에게 일본어로 얘기하듯 청와대 사람들에게는 청와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얘기해야 한단 소리다.

긴말할 필요없이 본지의 시국선언 나간다.

찍찌리리리릭(시국선언문)

찌~~~익 찌리리리찍 찌리리 찍찍 찍찌리리리리리~~~~~~~찍찍 찍찌찌리릭

찍찌~~~~~~~~~~~~~~~~~~익 찍찍찍찍찍 찌리리리~~~~~~~찍 찌찌찍

찌~~~익 찌리리리찍 찌리리 찍찍 찍찌리리리리리~~~~~~~찍찍 찍찌찌리릭

찍찌~~~~~~~~~~~~~~~~~~익 찍찍찍찍찍 찌리리리~~~~~~~찍 찌찌찍

찌~~~익 찌리리리찍 찌리리 찍찍 찍찌리리리리리~~~~~~~찍찍 찍찌찌리릭

찍찌~~~~~~~~~~~~~~~~~~익 찍찍찍찍찍 찌리리리~~~~~~~찍 찌찌찍


 

찍찌찌리리~~릭(2009년 6월 17일 딴지 편집부 일동  

본 시국선언문의 한국어 번역본도 전재하려 했으나, 번역은 또하나의 창조라 했던가. 작업이 여의치 않은 관계로 한참을 고생하고 있던 중, 본 시국선언문의 주제의식을 온전히 담고 있는 글을 발견했다.

퀴퀴하고 음침한 딴지일보 DB 저 깊숙한 심연 속에서 거친 숨을 고르며 바로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글. 딴지가 배출한 최고의 작가라는 본지의 희망 섞인 자랑 외에, 그 어떤 수식어 조차 그분의 필명 앞에서는 초라해질 수 밖에 없는 그 이름, 바로 씨벌교황 님의 글이다. 딱 첫 두 줄로 임무완료
 

이 시간 이후로 글 쓰는 개XXX놈의 X새끼는 뒈질 줄 알아라.
X질 때 되면 X기미 X같은 숟가락 X나 짜증나게 탁 놓고 뒈진다 XX만한 XX들아.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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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6-24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을해도 추천을 하는구나...ㅎㅎ
 

22조원 넘게 퍼부을 4대강 사업은 기존 토건적 결탁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는 파시즘적 지배체계를 만드는 장치가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독재자인가? 정권이 막 시작할 무렵, 나는 졸저 <괴물의 탄생> 원고를 쓰고 있었고, 이제 막 새로 시작하려는 정권의 성격을 예상하면서 상당히 골머리를 앓았다. 내 예상은, 그는 독재자가 되려 하겠지만 일반적 의미의 ‘독재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독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지배층의 조건, 중산층의 조건 그리고 사회경제적인 여건 외에, 독재자의 개인 캐릭터가 가진 미학적 조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히틀러는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이어서 그가 전쟁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유럽의 어느 누구도 그런 교양인이 독재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무솔리니의 연설은 가히 신의 경지였다고 한다. 박정희 역시 인간적으로 꽤 매력 있었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토목에 집중된 건설사업의 지나친 불균형이라는 문제가 있고, 이 현상이 신자유주의에 따른 중산층 해체와 만나면 어느 정도는 파시즘의 경제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예비 파시즘 혹은 유사 파시즘이 등장할 조건은 갖추었다고 나는 분석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 매력은 독재자의 조건에 못 미치는 것 같다. 파시즘은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시청률 바닥을 기는, 그리고 아무도 듣지 않는 라디오 연설을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번 정권이 사실상 파시즘 형태의 정책을 시도하기는 할 터인데,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 매력의 문제로 실제 파시즘까지 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결국 나는 ‘건설 파시즘’의 형태를 띨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반도 대운하는 정권이 ‘건설 파시즘’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국민의 합의가 없다면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대운하가 ‘4대강 살리기’라는 일견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되었다.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긴 하다. 대선 때, 대운하는 분명히 수익성 있는 사업이어서 민간 자본을 유치해서 시행한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4대강으로 바뀌면서 정부 사업이 되었고, 건설사들은 토목사업에서 수익성이라는 부담을 덜게 되었다.
 

4대강 사업은 지독할 정도로 반생태적 사업이다. 위는 시민단체들의 4대강 사업 반대 퍼포먼스
 

‘예타’ 건너뛰고 환경영향평가 무력화
원래대로 하면 민간 건설사들은 자신의 책임과 판단 하에 이른바 캐시 플로도 생각해야 하고, 수익성이라 불리는 BC ratio(비용편익 비율) 아니면 IRR(내부수익률) 혹은 턴오버 기간 같은 것들을 챙겨야 하는데, 이제는 그 부담이 정부에게로 넘어갔다. 이 정부는 3년 반 지나면 끝인데, 그 뒤에는 이 사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 부담은 아니다. 남는 건 정부 몫 그리고 궁극에는 국민 몫이다. 건설사 처지에서는 더 좋아졌다.

자, 그렇다면 졸지에 22조원+알파, 아마도 30조원 이상의 돈을 부담하게 될 국민 처지에서는 비용편익 비율이나 턴오버 기간 같은 것을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가? 원래는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예비타당성 검토, 보통 ‘예타’라고 불리는 경제성 검토를 하도록 되어 있다. 수년 전에 경인운하가 이 예타를 통과하지 못해서 몇 년 동안 지연되었고, 지금 제주도의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사회적 논란이 이는 출발점도 바로 이 예타이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은 예타를 받지 않을 수 있게 이미 지난해에 관련 규정을 바꾸었다. ‘재해성 사업’으로 분류되는 것들은 타당성 검토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환경영향평가인데, 이것도 이미 제도적으로 무력한 상태이다. 구간을 조각조각 나누어서 많은 사업이 이를 피해 가도록 되어 있고,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것도 3개월 정도의 약식 평가를 해서, 10월부터는 삽질이 시작되도록 하겠다는 게 현재 계획이다.

만약 4대강 사업이 민간 회사가 투자하는 사업이라면, 수익성까지는 검토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다못해 현금 흐름, 곧 캐시 플로에 따른 회사채 발행과 시장 상황까지는 검토하고 시행한다. 그런데 대운하가 4대강으로 바뀌면서 규모는 더 커졌지만, 현실적인 검토는 그 어디에서도 하지 않게 되었다. 구멍가게도 이렇게 경영하지는 않는다. 법치를 최고의 정책 기조로 내세우는 현 정부가 이런 편법을 총동원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의 극치이다.

그러나 그게 22조원이든, 30조원이든, 어쨌든 건설 사업 하나가 대통령의 독단으로 결정된다고 해서 건설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금 이 방식으로는 홍수 문제를 비롯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제방을 쌓아서는 더 이상 대규모 홍수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난 정부에서 사실상 결론이 났다. 문제가 생겨나는 지류가 아니라 본류에서 제방을 쌓고 강바닥을 판다고 해서 수질이 좋아질 리도 없고, 홍수가 예방될 리도 없다. 지금 4대강 사업에 대해 국회나 학계 혹은 시민사회의 견제가 실패한다면, 이제 건설자본과 대통령이 손잡은 정책에 대해서는 누구도 견제할 수 없다는 불패 신화가 생겨날 것이다.

건설자본-대통령 결탁 ‘불패 신화’ 낳을 수도

미국에서 월가를 둘러싼 정실 자본주의가 문제라면, 한국식 정실 자본주의는 건설자본을 둘러싼 ‘모럴 해저드’와 사회적 관리의 실패가 될 것이다. 미국식 금융자본이 파생상품 문제를 일으켰다면, 한국에서는 건설자본이 지역 공동체 해체와 지방경제 붕괴 그리고 버블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건설자본은 강 인근의 지역 공동체 하나하나를 해체하게 되고, 철거민을 양산하며, 전국의 사업 지역이 찬반 양쪽으로 나뉠 것이다. 그리고 완장 찬 용역 깡패와 주민 사업추진위 쪽이 둘로 갈라져, 서울 용산에서 이미 보았던 지역 개발의 어두운 뒷모습이 수백 배 규모로 양산될 것이다. 그게 어디 경제 살리기인가?

한국식 정실 자본주의는 결국 건설사를 정점으로 국토부 등 부처 안에서 건설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부 공무원과 이들에게 용역비를 받고 맞춤형 보고서를 찍어내주는 일부 교수를 중심으로 한 어용 학자들이 한편으로 묶여 있다. 그리고 전국에 세포 조직처럼 퍼져 있는 토호 네트워크와 이들과 연결된 용역 깡패들, 이렇게 파시즘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국적 통치 장치들이 만들어질 터이다. 중앙형 사업 시스템의 폐해가 전국 규모로 동시에 진행되면, 이명박 정부는 타락한 시민사회 혹은 양지로 나온 깡패집단을 권력의 실질적인 물리력으로 갖추게 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건설족’을 양산하며 비슷하게 전개되었지만, 그들은 4대강처럼 전국 단일 체계의 사업을 추진하지는 않았다.

한국의 4대강 사업은 대다수 나라가 실패하고 해체한 대규모 반생태적 토건사업을 전국 네트워크를 통한 파시즘 형태로 다시 추진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존재하던 토건적 결탁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 거대한 파시즘적 지배체계를 만드는 장치가 된다. 대운하이든 4대강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합리적이지 않고 견제받지 않는, 그러면서도 22조원 이상의 돈을 쥐고 있는 거대 집단의 등장, 그게 문제이다. 게다가 이 4대강 사업은 지독할 정도로 반생태적 사업이다.

상징은 명확하다. 1980년 광주의 시민은 탱크 앞에 밀렸지만, 2009년 대한민국 시민은 불도저 앞에 드러누울 수밖에 없는 국면으로 가는 것 아닌가?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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