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당신이 비틀즈의 팬이었다고 하면, 존레논의 부인인 오노요코는 마녀였을 것이다.  
존레논을 사로잡고, 비틀즈를 해산 시킨 주범... 그 위대한 그룹의 음악을 더 이상 듣지 못하게
한 그 여자...
더구나 극단적 반일감정이 팽배한 이 땅에서 그 이야기는 존레논의 실망감을 전이시켜줄
대상이 필요했던 나에게 더욱 합당한 이야기이다.

오쿠다 히데요의 소설 답게 심리적 테마가 풍부한 소설이다. 그 테마의 주인공은 비틀즈의
전설설 리드싱어이자 평화운동가, 반전주의자 존 레논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장소는
존이 1967년부터 여름 휴가를 보낸 일본의 가루이자와이다.  오노요코 때문에 일본에 체류
했던 존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형상화 시켜 낸 것이다.  

소설의 주요 흐름은 존이 철없던 시절 자행했던 무수한 일탈과 그로 인한 괴로움이 변비라는
신체장애로 등장하고, 심리적 문제가 해결되면서 신체적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인데...
오쿠다 히데요 아니랄까봐 '변비'를 통해 존의 심리 분석을 이끌어가는 대목에서는 절로
미소짓게 만든다. (그의 엉뚱하면서 진지한 점은 너무 사랑스럽다)
다만 초기 작품이라 그런지 밀도 있는 긴장감은 많이 떨어진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변인물로 등장하는 여자에 대해 급 관심이 일어났다.
오노요코... 소설에서 그리 비중있게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존이 마음의 평화를 느끼고
평생의 동반자로 선택한 그녀의 모습은 간간이 무언가를 초월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어
같은 일본인이라 그렇게 형상화한 것인지 궁금했을 뿐이다.
존이 평범한 음악가가 아니었고, 그가 선택하고 그의 음악과 사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여성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자각이 들었다고 할까? 

이 소설을 읽고 연관된 책 읽기나 해야겠다. 그리고 그 대상은 당연 오노요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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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9-10-04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해 전에 로댕갤러리에서 했던 오노 요코 전시회를 보러갔었습니다.
마녀가 아니라 천재 예술가더군요. 엄청 놀라고 감동했었어요.

머큐리 2009-10-04 22:49   좋아요 0 | URL
오~ 천재 예술가 수준이던가요??
존의 부인이라는 것 말고는 그녀에 대해 너무 몰아요... ㅡㅡ;

무해한모리군 2009-10-05 00:09   좋아요 0 | URL
네 그녀는 아주 훌륭한 행위 예술가이지요.

2009-10-04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09-10-04 22:49   좋아요 0 | URL
아마 취향과 맞지 않을지도 몰라요..ㅋㅋ
 
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몇몇 일본 작가들의 소설은 내용을 떠나 무조건 집어들게 만든다.  
일단 미미여사와 게이고 그리고 오쿠다 히데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는 제일 맘에
드는 소설 중 하나이다. 미미여사나 게이고는 작품이 너무 많아 뭐라고 평하기도 힘들다
더불어서 이 책의 저자인 가네시로 가즈키... 유쾌한 듯 하면서 그 속에 애잔한 슬픔을
품고 있는 그의 소설은 따뜻하면서도 희망차다.  

일본에서 얼마나 대중문화가 사람들을 사로 잡는지는 몰라도 우리 사회보다 좀더 대중문화
의 위력을 실감한 사회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서구 좌파가 정치, 경제 분석에서 문화로
자신의 이론적 분석틀을 확장한 이후 그리고 포스크모더니즘이 이 땅에서 극성을 부린 이 후
문화에 대한 많은 관심들이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영화가 있다.
<시네마 천국>을 보고 나서 느낀 따뜻하면서 왠지 쓸쓸한 느낌의 소설들이 연작으로 이어져
있는 소설들이다. 그리고 소설의 중심에는 <로마의 휴일>과 <정무문>이 있었다.  

일본에서 재일한국인이란 위치는 어떠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서경식 선생의 글을 접하며
그들이 가진 존재의 정체성의 위기에 대해서는 순전히 감으로만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위치에서 오는 불안정성은 현재에 매몰되어 있는 나의 안이한 사고를
흔들어 놓는다. 생활 뿐 아니라 남북으로 분단된 정치 상황에서 오는 긴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전에 난 <금단의 땅>이란 소설을 읽고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분단과 한반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그렇게 현실감 있게 형상화한 소설을 처음 접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재일한국인이란 항상 무언가 어둡고, 불안정한 사람이고 그것이 작품으로 반영
된다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편견을 깨준 사람이 가네시로 가스키다. 그의 소설은 유쾌했고, 주변에 머물러 있어도
중앙에 대한 우월감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삶을 위해 유쾌하고 치열하게 횡단해
버린다. 그것이 소설이고 허구일지라도 같이 횡단하는 독자들은 유괘하고 즐겁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횡단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마음 속 깊이 깨닫게 된다.
원래부터 출발선이 틀린 그들이 그 출발선에 연연하지 하고 세상 속으로 뚜벅 뚜벅 걸어가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 책은 퍼즐같은 책이다. <로마의 휴일>이 상여되는 시민회관의 공간속에 들어오는
군상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펼쳐 놓고 있다. 그러나 주제는 동일하다. 근 군상들은
자신의 과거의 아픔을 정화하고 그리고 그 아픈 기억 속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영화를
보러온다. 거기서 대중문화와 추억과 기억과 치유의 순간이 전개된다.
추억과 기억으로서의 영화.....
그 영화속에서의 과거와 미래....
소설은 대중영화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미래 묵시론적인 만화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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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노랫소리 - 제6회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 수상작
텐도 아라타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지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정서적 공감 능력이 매우 부족해서 피도 눈물도 없어 타인에 고통에 둔감하나
자신의 이기적 이익에는 매우 밝은 사람들.
외관은 인간의 형상을 했지만, 내면은 짐승보다 더 잔혹한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면... 그것은 공포일 것이다.  

3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어린시절 정신적 외상으로 인하여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채 사회적 삶을 완성하기 위해
가족을 갈구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그는 가족을 갈구하지만,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는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어린 시절 친구의 유괴와 죽음으로 경찰이 된 여자 주인공... 사라진 여인들을 찾기위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모험도 주저하지 않는다.
공부보다는 음악에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배척받고 도시로 나와 자신의 세계를
음악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19세 소년.
이들 모두 사회의 테두리 안에 정착하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는 이방인이자 자신만의
세계를 줄기차게 구축하려는 아웃사이더이다.
그러나 그들이 구축하려는 세계는 모두 틀리다.  

여인들이 실종된다. 모두 혼자서 외롭게 사는 여인들.... 그들이 실종되도 주변에서 그들의
실종 자체를 알기도 힘들다. 아니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정주되지 않고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삶이 이제 너무 당연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시체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온 몸이 난도질 당한  채로... 

이 책에서 나타나는 음조는 음울함이다. 누구도 이해 하지 않아도 자신을 삶을 꾸려가는
주인공들...그러나 그들은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주길 원한다. 자신을 곧추 세우면서
자존감을 갖지만, 그러기엔 무언가 부족함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고독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절망한다. 무엇이 그들을 그리로 몰아세웠을까?
따뜻한 가정 같은 건 이 소설에서 제일 경멸하는 것이다. 오히려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알게 모르게 조작되는 현실이 실제로 어떤 것보다 사람을 더 고독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외면에 휩쓸리는 경우, 더욱 무서운 결과가 기다리고 있음을 잔혹하게
보여준다. 겉으로 보이는 것 보다 사실적인 것이 더 중요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넘어서는 순간 일상은 공포로 변한다.
결국 고독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고독을 이겨내는 힘이라는 것을 이 소설은 나타낸다.
그렇지만 익숙한 것이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소설의 공포의 근간을 이룬다.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익숙한 만큼 잔혹함도 익숙해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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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9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최세진 지음 / 메이데이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건 혁명이 아니다."
미국의 아나키스트 혁명가 엠마 골드만이 연설 중 한 말이란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몰랐지만, 이 말은 언젠가부터 참 많은 고민을 던져주는 말이 되었다.
정말 내 스스로가 신나지 않는 길을 누구에게 강요할 수 있다는 말인가? 

철없던 날날이 시절을 벗어나 쪼금 사회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서 부터, 사실 희망이란
단어는 무조건적 낙관의 강요가 아니면, 인내하고 견디다 보면 어쩌면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것'에 불과했었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인건 조금 더 견뎌야 했고, 조금 덜 비겁해야 했고 조금 더 사회에 대한
현실감을 결여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은 조금 했던것 같다.
때문에 항상 한결 같이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고 견디어 내며, 어려운 일에도 힘든 티 내지
않고 묵묵하게 실천하는 친구들을 볼 때 항상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누리는 이
조그만 기득권이 가끔은 너절하게 보이곤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난 희망에 대해 별로 변치 않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만, 좀더 많은 상상력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상상력, 지금보다 조금 나은 사회가 이루어지기
위한 상상력.... 그리고 그러한 상상력을 위해 여전히 분투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눈물과 절망속에서도 자신의 상상력을 잃지 않고 자신이 처한 처지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
가려 햇던 사람들.... 이 책에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게임과 SF소설속에서의 상상력을 발견했고, 피카소가 죽을 때까지 프랑스 
공산당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음을 알게 되었다. 조지 오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 좀 더 많은 확신을 가졌으며, 첨바왐바라는
그룹에 대해 급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터넷 공간에 대한 논의도 참고 할 만 하다. 광우병사태 이전에 이미 촛불집회에 대한 논의
들이 있어왔음에도 현실에서 똑 같은 한계를 노정했다는 점은 아직도 진보세력의 역량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무엇을 할 것인가?

여전히 단편적이기만 한 나의 관점과 파편적인 사고를 제대로 갖추어야 함을 느낀다.
길게 꾸준하게 가다보면, 무언가 하나 걸리지 않을까? 꾸준하다면 로또 보다는 높은
확률로 내 자신에 대한 무언가을 얻을 수 있으리라.. 꾸준히 간다면...
예전부터 좋아했던 말..."힘드냐? 버텨라! 버티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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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09-25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큐리님! 다시 생각한거랑 상상한거요, (마지막에서 두번째 문단에 있는거요) 좀 더 자세히 알려주면 안 돼요? 궁금해요.

첨바왐바라는 그룹은 정말 멋지죠! (아는척은)

지식채널에서 찾아봤는데, 참고 서적으로 이 책이 나오던데요. 오호!

머큐리 2009-09-25 11:38   좋아요 0 | URL
자세히...라..면
나중에 페이퍼 하나 더 쓸까요...??
아치님이 쓰라고 하면 쓰고요,,ㅎㅎ

2009-09-25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5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국민, 국가, 고향, 죽음, 희망, 예술에 대한 서경식의 이야기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4
서경식 지음, 송현숙 그림 / 철수와영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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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교수가 한국에 잠시 머무는 동안 사람들과 만나 세미나 및 강연을 한 내용이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에 서술된 강연 내용은 서경식이라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의 위치가 가져온 변방적 사유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디아스포라 지식인이 생각하는 '국가', '국민', '고향', '죽음' '희망', '예술'은 일상적으로
획일화된 사고에 충격을 가한다. 더구나 한국 사회가 무기력해 보이는 일본 사회를 점점 닳아
간다고 느껴진다는 서교수의 지적은 미래에 대한 전망에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물론 자민당 독재를 끊어낸 일본인들의 쾌거가 얼마전에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 좀 더 두고 관찰
할 내용이기에 뭐라 말하기 어렵기는 하다. 다만,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모습에 많은 걱정을 하는
서경식 교수는 이번 사태진전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놓을지 궁금하긴 하다.  

디아스포라의 시선은 주류에게 곤혹스러움을 준다. 나 스스로가 변방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변방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나 역시도 주류임을 인정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주류라고 하는 건 결국 소수자나 변방자에게 익숙하지 않는 일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결국 주류라는 이야기다.
집단에 매몰되지 말고 철저한 개인 존재를 기반으로 변화를 일궈야 한다는 서경식의 논리는 차
가와 보이면서도 합리적이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개념도 자연스럽게 생긴 것 처럼 보이지만, 그 국가와 국민에 속하지 못한
주변을 생각하면, 결코 합리적 개념은 아닐 것이다. 전체주의적 함정에 빠져 국가의 이익이
자신의 이익인 것 처럼 포장되는 사회에서 국가를 냉정하게 짚어 보고 사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주류들이 국가의 존재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당연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개념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한정지을 때 그 주체는 국가가 될 수 밖에 없고, 국가가 인정
하지 않는 사람은 국민이 될 수 없다. 태어나면서 한 국가의 성원으로 자란 사람은 그 사실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지는 몰라도 재일조선인아니 이주자는 국민의 허구성에 대한 국가의
폭력을 가감없이 기억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러한 소수자와 변방의 문제는 언제나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극적으로 방어해야 할 문제가 아닌 적극적으로 소수자나
변방자의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알리지 않고 그저 예쁜 것만 표현한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다. 아니
형식은 갖추었는지 몰라도 진정한 미적 의식이 표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편함에도 그것을
직시하도록 만드는 힘에 미적인 힘이 있다고 서교수는 주장한다. 이 미적 의식에 관한 논의는
'고뇌의 원근법'에서 논의를 심화하고 있다.

희망도 마찬가지다. 막연한 기대에 대한 거부감이 이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근대를 규명하기 위한 '루쉰'의 분석에서 나오는 희망은 절망을 긍정하면서도 결국 가야 할
길을 가는 자를 드러내고 있다. 희망은 바라는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희망이 거의
없음에도 묵묵히 가야할 길을 감으로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사고도 당당하다. 살아있는 자는 태어남을 선택하지 못한다. 자신의 의지로 태어
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자살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삶을
결단해서 놓아 버리는 자세는 죽음으로 삶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개인의 주체적
결단에 대한 사고를 나타낸다고 본다. 죽음을 미화하진 않지만, 죽음의 결단도 없는 주체의
고뇌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말에는 많은 공감이 간다.  

그는 이 사회의 지식인이 없어지고 스페셜리스트 이른바 전문가가 등장하는 것에 많은 걱정을
한다.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사명감 보다, 전문가로서 행정관료들이 넘쳐나고 그것이 당당해
지는 사회는 결국 병든 사회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학의 보수화는 결국 진정한 지식인이 줄어들고, 관료적 전문가들이 넘쳐나면서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민주주의와 개혁에 대한 열망도 총체적 전망이 아닌 공정한
경쟁을 위한 준비단계로 이루어진 것이 결국 신자유주의적 질서을 쉽게 용인하게 된 것은 아
닌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다.

결국 타인의 타인됨을 먼저 인정해야만, 그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주입식 이데올로기가 스스로를 에워씨지 않은지 항상 점검하고
또 반성해야 한다. 결국 개인의 발전없는 공동체의 발전은 허상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개인의 혁신과 반성을 요구하는 서교수의 강조는 인정하나, 사실 힘들어 보이고 이상
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주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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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9-2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요즘 다방면의 책을 많이 읽고 계시군요.
이 책 궁금하기는 한데, 너무 이상적이라는 의견도 많아서 쉽게 장바구니로 들어가진 않네요 ㅎㅎ

머큐리 2009-09-21 18:1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서경식 교수님 책은 무조건 읽으셔야 할 듯 합니다..ㅎㅎ
뽀님~ 언능 읽으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09-22 08:08   좋아요 0 | URL
우리가 여성주의 시점으로 쓰여진 책들을 보면 불편하고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선생님 글도 그런 식의 불편함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다른 색깔 안경을 썼을 때의 불편함이지요.. 우리가 주류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더 많이 읽어야할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만 저는 만년 비주류지만 서선생님 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