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D] 검은집 (2disc)
신태라 감독, 황정민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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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영화 충분히 무섭다.
소설로 읽은 '검은 집'보다 더 무시무시 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에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유행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검은 집'을 접함으로서 사이코패스에 대한 개략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사이코패스란 성격이상을 가지고 한 편의 공포영화를 만들었다면 그저 그랬을 영화가 마지막
순간에 질문하나를 던져 놓는다.  

'사이코패스를 사람으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인면수심이란 말이 있다. 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마음... 하지만 동물의 세계가 조금씩 알려
지면서 인면수심이란 말에는 지독한 인간 중심주의가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짐승이라도 인간처럼 잔인해지기 쉽지 않다. 아니 잔인한 것은 유전적으로 코드화되어 있기
때문이지 인간 같이 목적의식적으로 잔인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선택권이란게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존재한다.  

사이코패스가 만일 유전적 병이라면, 인간의 윤리를 가지고 이들을 엄단할 수 있을까?
참 잔인한 질문이다. 유영철이 같은 연쇄 살인마가 개인의 판단력이 아닌 유전적 코드로
인하여 살인을 저지르고 다녔다면 그의 엽기적 범행과 상관없이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사회에 사이코패스적인 사람은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윤리적 처벌이 모호하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법률적 처벌은 가능하다. 살인죄는 분명 그에 상응하는 벌칙이 있으니 말이다. 다만,
살인이 범죄이고 나쁜 짓이라는 것을 윤리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병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그게 고민인게다.  

가끔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 편견이 희생자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어쩌면
사이코패스도 그런 유형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해도 정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들의 생명
까지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은 두렵기만 하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살인마임에도 인간임을 끝까지 주장한다. 여기에 나의 혼란은 시작
된다. 살인마를 같은 인간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영화에서 정말 진지하게 대면해야 할 질문인지...아님 스토리텔링의 모호함으로 뭔가 있어
보이려하는 수작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무언가 불편한 이유가 불명확한 구분으로 범주를 설정하고 그 범주에 악한 것은
모두 쓸어담아 버려 우리의 편안함을 구하기 위해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인간의 모든 악함은 바로 유전적 사이코패스 때문이라면 얼마나 편한 해석인가 말이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몇몇 책들을 읽어 보았지만, 이러저러한 현상을 보이는 사람이 사이코패스
다라고만 하지 실질적으로 아직도 사이코패스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보이지 않는다.
남들과 다르게 감정적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정도?

연쇄살인과 추리물을 통하여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단어의 사용만큼 그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개선책도 방어책도 미비하다. 그러면서 살인마의
살인행각을 영화로 보고 그런 유형의 사람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인한다.

감독은 조금 찔렸던 것일까? 사이코패스도 마직막에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었으니, 결국 사람
에게 사람이야 말로 가장 미스테리하고 무서운 존재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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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여자 친구
고이케 마리코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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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악의....살의....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성격적으로 요즘 유행하는 사이코패스나
연쇄살인마 등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인마(?) 들의 엽기적 만행에 대한 공포도 무섭고 끔찍하지만,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는
악의나 살의는 더 두려움을 주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사실 이 소설은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를 잘 표현했다는 광고글에 충동이 일어나 구입한거고
광고만큼 딱 그만큼 소설은 재미 있다.  

다른건 잘 몰라도 이 소설의 작가는 주로 허리띠로 목을 졸라 죽이는 걸 선호한다는 건 확실
하게 알게 해주었다. 교살이라...왜 그럴까 일반인이 시행하기에 깔끔하니까?
아무런 티 없이 잘 지내는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악의를 축적하고, 그러면서도 평온한
얼굴로 서로를 대하고 있는 일상. 그 일상이 파괴되고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들이 품은
악의와 살의가 드러난다.
충격적인 것은 1인칭으로 서술되는 소설의 화자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어떤 식으로 악의
를 쌓아가고 그것이 살의로 변형되는지 알 수 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사건이 벌어진 후에
그것이 드러나는 형식을 취함으로서 반전의 느낌을 준다는 것. "아... 아무런 불만없어
보이는 이 사람이 이랬구나.....무섭다..." 정도 될 것 같다.  

단편들의 연속이라 읽는 속도감도 괜찮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 무언가 대단한 사건이나 치밀한 시나리오 같은 건 별로
없다. 그럼에도 심리적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은 나쁘지 않다.

꽤 괜찮다고 느끼면서도 무언가 아쉬운게.... 그걸 모르겠다.
재미도 있고 구성도 좋고 별로 흠 잡을게 없는데도 무언가 아쉽다.
여자 게이고 정도 되려나? 근데 게이고 소설은 중독성이 있는데...
이 작가의 작품도 계속 탐독하면 중독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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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는 예수 - 종교의 거짓말과 철학적 지혜
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지음, 유승종 옮김 / 어문학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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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난 기독교인이 아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시한다고 하면서도 기독교에 대한 서적이나 비판 서적을 필독서로 탐독하는 것도
그런 강박증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사실 이 책을 집어 들고 살까 말까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더 이상 기독교를
비판하는 책을 읽어 무엇할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이문열을 싫어하기 이전, 난 사실 기독교를 버릴 때, 이문열의 도움이 컸다. 그의 소설 
'사람의 아들'은 정통적 기독교 시각을 탈피해서 이단의 시선으로 기독교를 바라보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초기만 해도 결론이 어쩡쩡해서 그렇지 이문열의 문제
제기는 첨단을 달리는 데가 있었다. '영웅시대'만 해도 감히 좌익사범을 소설의 중심에
놓았다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시절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어쩡쩡한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결국 미심쩍은 작가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으니...그래서
더더욱 이문열을 싫어 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은 교회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 번 읽으라고 권한다.

더불어 이 책의 저자들이 지은 책이 기독교인들에게 꼭 권하는 책이다. '예수는 신화다'
라는 제목의 책인데, 내용은 현란한 증거들을 끌여들여 예수의 존재는 신화를 유대식으로
다시 꾸며낸 것이지 역사적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책이다.
기독교인이 믿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그저 신화 속 이야기라는 주장은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예수의 권위를
그냥 허구의 이야기로 깔아 뭉개버린 탁월한 책으로 기억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허구의 존재로, 아니 영지주의적 비유로 본다.
이 책이 비판하는 대상은 '문자주의' 종교다. 지금의 유대교, 기독교, 카톨린, 이슬람교가
모두 해당 될 것인데, 결국 신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가지고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경전을
믿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인들에게야 정말 죄 받을 소리지만, 이젠 이 소리가 나는 너무 당연하게 여겨진다.

다만, 그렇다고 성서나 코란을 모두 부정하지 않는다. 다른 식으로 긍정한다.
그 경전들은 비유로서는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영적인 고양을 하기 위한 풍부한
텍스트로서의 경전은 보존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옛 이야기를 진짜로 믿고 그
당시 야만적 윤리를 신의 뜻으로 포장하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말이다.
더불어 영지주의적 일자에 대한 현대적 풀이를 늘어 놓는다. 철학의 이름으로... 

과연 영지주의 철학은 가능할 것인가. 과거 플로티누스의 이론을 토대로 한 것 같은 일자론이
이들 저자의 현대 영지주의다. 이것에 동의하던가 말던가는 독자의 선택 나름이리라
다만, 철학이라 하기에 너무 종교적이고 종교라 하기엔 철학에 치우쳐 있어 이도저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아쉽다.
그래도 이들의 싸움이 소중한 것은 아직도 '문자주의'신앙자들, 근본주의자들이 이 사회와
세계에 가하는 폭력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것 보단 그래도 덜 극단적이면서
중도적인 것이 답이 될 수도 있겠다.

난 아직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이들의 설명은 묘하게
친근하다. 우리는 하나다. 그러니 더 이상 분열하고 갈라서서 싸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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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10-20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경은 제대로 읽어도 24금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위험한 포르노가 있었겠습니까. 사람의 아들이 70년대에 쓰여졌다는 건 신의 은총입니다. 방대한 양의 자료며 신학, 철학적 문제의식이 지금 진보를 자처하는 신학자들 수준보다 오히려 나으니까요.

리뷰를 보니 대충 저와 비슷한 생각의 궤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약간의 차이점이라면 아직도 저는 그 동네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끔찍하게 싫어하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정도. ㅎㅎ 저는 가까스로 신앙이라는 걸 제 나름대로 다시 정의하고 신학이라는 것의 외연을 멋대로 넓혀가면서 버티고 있지요.

예수는 신화다는 즐겁게 본 책인데 그 책의 저자들이라니 한번 읽어 볼 법 하군요.

머큐리 2009-10-20 21:33   좋아요 0 | URL
앗~ 아름다운 말미잘님이닷!!!
(언제 함 그 미모를 확인해야 할 텐네요...ㅎㅎ)

뷰리풀말미잘 2009-10-20 21:46   좋아요 0 | URL
저는 라주미힌님 발에 신들메도 매지 못합니다. ㅎㅎ

머큐리 2009-10-20 22:04   좋아요 0 | URL
흠 알라딘 여성들의 평가는 안그렇던데요...으흐~

비로그인 2010-05-12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으로 쏙!

머큐리 2010-05-12 11:47   좋아요 0 | URL
최근에는 이 책이 좀 끌리던데요 '우주에는 신이 없다'

비로그인 2010-05-12 17:47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우주에는 신이 없는데 머큐리님 방엔 나를 꼬시는 지름신이 살아~~~~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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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 나오는 소설들이 스산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오늘(2009년 10월 19일) 같이 스산한 날에 이 책을 읽었기에 내가 스산하게 느꼈을 쁀이다.
여기서 나오는 소설들은 모두 고통과 소통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고통을 이야기 하면서도 저류에 흐르는 따스함이 있다. 물론 절망도...
이야기를 또한 이야기 하고 있다. 거기에는 자신도 모를 우연과 필연이 교묘하게 중첩되어  
있어 마치 순환적 환상에 빠지게 된다. 나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이 작가의 소설을 아직
난 이해하기 힘들다.  

막연하게 느끼는 것은 소통하지 못하고 외톨이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자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느껴진다는 것.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 시선의 따스함과
결코 그들과 동화되지 못하는 존재의 갈등(?)이라 해야 하나? 그러니까 뭐라고 표현 해야
할지 아직까지 잘 표현하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내 자신이 이런 분위기와는 쉽게 감응하지 못하나 보다.  

다만 '내겐 휴가가 필요해' 에서 나온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묘한
울림을 주고 있다. 무언가 일어난 존재적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 홀로 떠나 도서관에서
사건에 대해 정리하려고 독서를 하던 자살한 노인의 이야기는 어쩌면 책과 지식으로 해결
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통찰이나 과거에 대한 해결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달로 간 코메디언'에서 느끼는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그 사이에 흐르는 침묵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 저자의 생각은 때때로 침묵이 가지는 그 커다란 생의
울림을 연상시킨다.  

어줍잖게 주저리 거려도 난 아직 소설속의 글들을 모두 소화하기가 힘들다.
그건 같은 연배의 작가보다 철없음으로 내 존재에 대한 고민이 덜해서 그런건지
머리가 나빠서 그런건지, 아니면 감성이 떨어져서 그런건지....  

하기사 오늘 통화한 후배가 '김연수'소설을 읽고 있다고 하더니 비웃더라...내 취향이 아닌데
왠일이냐고...그건 아마도 스산한 가을이었기 때문일거다.
취향이 아닌 책을 한번쯤을 읽어 줘야 하는 계절 가을 때문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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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6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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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다 보니 책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흥미가 갈 수 밖에
없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나름의 독서법들도 있는 모양이다. 책 열권을 동시에 읽는
독서법이라 흥미로운 주장이다. 나 같은 경우는 어쩔수 없이 이리 저리 읽다가 만 책들을
읽다보니 열권은 아니라도 몇권씩은 본의 아니게 동시에 읽는 경우들이 있는데 사실
그렇게 독서하다 보면,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오히려 죄책감을 더욱 조장하는 제목으로 책을 냈으니 당연 흥미
로울 수 밖에... 최연소 마이크로소프트 일본법인 사장이라는 화려한 성공배경까지 있으니
더욱 신빙성도 강하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단순하게 하나의 책만 읽는 사람 내지 한 종류의 책만 읽는 사람은 창조성이 떨어지고 결국
지식사회의 경쟁에서 낙오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열 권을 동시에 읽는 것이
과학적이냐에 대해서는 확증해 주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성공이 이런 독특한 독서로 부터
나왔다고 강조할 뿐이다. (근데 의외로 이런 주장이 먹힐 것 같다. ) 

직장인이면서도 성공과 처세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을 경멸한다는 점에서는 좀 신선했다.
(이미 어는정도 성공해서 그런가??) 자식에 대한 교육도 교과서 보다 독서에 치중한다는
말에는 정말 어느 정도 신념까지 느껴진다. 텔레비젼에 대한 적대적 태도야 많은 독서인
들이 공유하는 문제이니 만큼 별로 신선하지 않아도, 성공한 사람이 그렇게 당당하게
미디어권력을 비판하는 건 그만큼 책에 대한 매니아적 태도 때문인 모양이다.  

과학적 근거는 없더라도, 최근의 인지심리학이나 뇌과학에서 나타나는 패턴인식을
적용해보면, 그리 근거없어 보이진 않는다. 더구나 책을 읽기 위해 바쁜 와중에도 조각
시간을 내서라도 책을 읽는 열정은 감탄이 나온다.
다만. 책을 읽는 가치가 너무 성공과 연결되어 있어, 살짝 거부감이 일기도 한다.
성공과 상관없이 책을 읽는 순수한 즐거움은 결국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는 것일까? 

그래도 자신의 독서의 끝자락에 자신의 독서법을 설파하는 사람이 미워보이진 않는다.
다만, 책을 읽고 꼭 성공까지 하는 것 보다, 성공하지 못해도 책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미묘한 차이가 살짝 맘에 들진 않는다. 역시 난 성공한 사람들을 질투하는
쫀쫀 유전자의 영향이 강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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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0-19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뭐 한 스무권 동시에 읽고 있습니다만 내용이 생각이 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