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운동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2
이성재 지음 / 책세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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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다닐때 (아 까마득해라~ ) 까지도 윤리과목이 있었던 것 같다.
주로 반공이데올로기와 충효사상에 대한 왜곡된 이념교육을 그럴 듯하게 풀어서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맞나?) 그때 보았던 단어가 '신좌파'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새롭건
낡았건 좌파란 좌파는 그냥 빨갱이 이상이 아니던 시절이니 신좌파가 내세운 이념이나
가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을 수 없었다. 그때 내가 공부한 신좌파가 결국 68운동이었
음을 아주 한 참 후에 알게 되었다.  

또 한때 이념적으로 마르크스와 레닌주의가 나름 위세를 떨치고 조직과 혁명의 대의가 논의
되던 시절...신좌파를 삐딱하게 볼 수 밖에 없었다. 기성세대를 반대하면서 자본주의와
러시아 공산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운동을 진행했던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반공주의의 벽은 사실상 전체주의로 흘러간 공산주의에 대해 정확한 시각을
견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조직도 없이 무분별하게 진행된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에서야 68운동이 지닌 진정한 가치에 대해 알 수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들이 외쳤던 구호와 그들이 행동했던 가치가 군사 파시즘을 극복하고 일정정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된 시점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이 땅의 자본주의 발전이
굴뚝을 넘어서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이미 서구에서는 40여년전에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당시와 지금의 시대적 차이는 분명하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다.
자본주의와 기성의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약자와 연대하고, 전쟁에 반대하며, 생태적으로
새로운 대안적 사회와 문화를 꿈꾸는 것... 이것이 바로 68운동이 궁극적으로 희망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이러한 68운동의 시작과 전개를 요약하고 정리하고 있다.
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긴 하지만, 68운동에 대한 개략적 정리
는 깔끔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자세한 공부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입문서로만
적당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68운동과 가장 유사한 운동의 형태를 2008년의 촛불과 비교하는
대목에서는 나름 생각할 거리도 던져준다. 운동이 지속화 되려면 생활을 바꾸어야 한다.
견고하게 버티는 기성의 관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져 주기 위한 거대한
흐름은 이제 시작된 것일 뿐이다. 68운동이 스러져도 그들이 추구한 정신은 그 사회의
변화의 축으로 남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자 그럼 촛불이 던진 문제의식은 어떤가?
그 흐름이 일상에까지 흘러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가?
두고 볼 일이지만... 결코 바관하진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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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도시 2 - The Border City 2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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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내내 불편해야 했다. 그건 내 자신에 대한 것이다.
송두율교수가 이땅에 와서 뜨거운 논쟁의 와중에 있을 때, 나 역시 이 땅에서 숨쉬고 살고
있었고, 그가 떠난 후에도 이 땅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증언하는 얼마되지 않는
그 시간을 송두리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어쩌면, 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저 관람자의 시각이상을 가지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때 송두율 교수 편을 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잊어버리고
지나간 것이다. 결국 그 시대를 증언한 사람은 송두율 교수 자신과 이 영화뿐인것 같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아직도 집단적 반공이데올로기에 맹목적인 이 사회였고, 철학자
이전에 인간에 대한 실존적 기록이었으며, 좌나 우나 하나의 인간을 자신의 시각으로 재단
했던 집단적 광기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몸 속에 배어버려 이제는 있는지도 모르는 맹목적
자기 검열이었다.  

어느새 국가보안법에 대한 논쟁은 사라져버리고 없다. 그리고 사형제도는 다시 부활하려
하다. 보호감호제도도 부활하자고 한다. 집권당이 사법부를 길들이겠다고 난리다.
어느새 우리는 계속 후퇴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어디까지 후퇴하고 있는지
가늠하지도 못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 불편한 물음에 답하고 싶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니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무언가 일어났고 계속 일어나고 있음에도 그저 묵묵하게
모른척하고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제 기억하라고 한다.
맹목적 광기의 그 집단적 광태를 기억하라고 한다. 그건 지금의 이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
보라는 이야기다.  

37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경계인에게 조국은 흑아니면 백을 강요한다. 그러한 강요가 싫어
외국에서 37년을 체류하고 살아온 사람에게 그 기나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전향하라고
강요한다. 무엇을 전향할까? 이곳도 저곳도 속하기 싫어 경계에 살아온 사람에게 이 땅에서
살려면, 경계를 버리라고 한다. 경계는 회색이고 회색인은 이 땅에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
이 땅에서 살려면 확실하게 정체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경계인이
아니다. 그건 적이다. 같이 살 수 있지만, 적이다. 그걸 인정해야 이 땅에서 살 수 있다.  

9차례나 조사를 받고,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보여주는 진보진영의 모습도 가슴 아프긴 마찬
가지다. 그들은 이 땅의 운동을 위해 다가오는 총선을 위해 송두율교수에게 무엇을 요구 했
던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라고 응원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양심을 버리고 전술적으로
사죄하라고 한다. 그가 지켜온 인생의 가치와 사상의 편력이 이 땅에서는 경계인으로 살아
남기위한 전술적 가치보다 더 하잘것 없는 것이었다.
결국, 언론에 두들겨 맞고 친인들에게 쓴소리 들어가며 전향서의 이름이 붙지 않은 전향을
발표하고 송두율은 구속된다. 그리고 세인들의 기억에서 멀어지면서 그는 싸음을 진지
하게 진행한다. 훈수두는 사람들 없이 홀로 고독하게.... 

어쩌면 파국 앞에서 두려워서 갈팡질팡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구속된 이후에
담담하게 자신을 돌아봤을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싸움끝에 그는 독일로 돌아갔다.
그의 조국 방문이 남긴 것은 아직도 이 땅은 기본적 자유가 억압되어 있고, 그 실체는
아직도 건재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알게 모르게 그 억압의 기재는 스스로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 언론을 믿지 말고 특히 보수언론을,,, 그리고 진보적이라면서도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거나 의제를 잘 선정하지 못하는 진보언론을....

믿어야 할 건 양심이 시키는 자신의 의지다. 그는 초반에 의지의 싸움에서 패배했으며,
마직막에는 자신의 의지로 이겨냈다. 국가보안법을 상대로 한 상처투성이의 승리였다.
변한 듯 변하지 않고 후퇴해버리는 우리의 자화상이 끔찍해 보이는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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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3-22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보려고 마음만 먹고 있습니다.
개봉한 곳이 많지 않을텐데.

머큐리 2010-03-22 13:43   좋아요 0 | URL
이 영화땜시 처음으로 이대로 들어갔다능~ 이대 안 모모에서 상영하고 있어요 시간되는대로 오이지군하고 꼭 보시길~~ ^^
 
어둠의 왼손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서정록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구판절판


<고려할점>: 누구든 원하는 것은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 얼른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심리적 효과는 매우 크다. 오티에님이 말하는 것처럼 17세에서 35세 사이의 모든 사람들이 '해산에 매여 있다는 사실'은 역으로 이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세계의 여성들처럼 생리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완전히 '출산에 매이는'일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부담과 특권을 거의 동등하게 나누어 갖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선택에 대해 똑같이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세계 남성들처럼 그렇게 자유로운 남성은 하나도 없다. -132쪽

<고려할 점>: 아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에 대해 정신적, 성적 관계에 매여있지 않다. 행성 겨울에 오이다푸스에 관한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132쪽

<고려할 점>: 상대방의 동의없는 성교나 강간은 없다. 인간 이외의 다른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성교는 상호욕구와 동의가 있어야만 이루어질 수 잇다. 그렇지 않은 경우 관계는 불가능하다. 물론 유혹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시기적으로 아주 적절해야 한다. -132쪽

<고려할 점>: 이른바 인간성에 대한 강한/약한, 보호/피보호, 지배/순종, 주인/노예, 능동/수동 따위의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고를 하는데에서는 이원론에 대한 경향은 강한 이곳에서는 그 정도가 낮거나 둔화되어 있는 듯하다-132쪽

<최종결론>: 여러분이 게센인을 만난다면 남자와 여자가 있는 양성사회에서 하듯 행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같은 성 또는 반대성 사이의 양식화된 즉 남녀간의 상호작용을 기대하고 그들에게 남자 또는 여자의 역할에 상응하는 행동을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적, 성적 상호작용이 보여주는 그러한 양상은 이곳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타인을 남자와 여자로 보지 않는다.-132~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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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3-19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둠의 왼손을 읽으셨군요.이거 재미있으셨으면 황금가지에서 나온 르귄 3부작을 추천드립니다.
어듬의 왼손에서 나오는 게센인은 양성인이죠.근데 얼마전에 신문을 보니 영국에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인(이분 원래 남성이셨는데 여성으로 성 전환했다가 이것도 아닌가 싶어 중성인으로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죠)이 나왔다고 합니다^^

머큐리 2010-03-23 10:32   좋아요 0 | URL
황금가지에서 나온 르귄 3부작은 뭔가요?
 
성난 서울 - 미래를 잃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건네는 스무살의 사회학
아마미야 카린, 우석훈 지음, 송태욱 옮김 / 꾸리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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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극우들은 망언으로 우리에서 심심치 않게 그 존재를 드러내곤 한다. 가끔 일본의
젊은 사람들까지 전쟁의 망령에서 깨어나지 못한 노망난 우익의 선동에 놀아난다고 생각
하곤 하는데 아마미야 카린은 무언가 독특하다.

펑크 음악의 리드싱어로 천황파에 가까운 극우적인 노래를 하는 이 젊은 여자가 어느날
전향해 버렸다. 그것도 왼쪽으로... 가끔 우리나라에서는 좌쪽에서 날선 발언을 하다가
우향우하는 창백한 지식인들을 봐왔지만, 이렇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급선회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 그 존재 자체가 신기하기만 하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단순 명제로만 보면 그녀의 좌향좌는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이나 여기나 20대에게 절망적인 것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으니까..... 오히려
극우 일본 젊은이까지 돌아서야 하는 현실에서 여기의 젊은이들이 왼쪽으로 좀 더 가지
않는 것을 더 신기하게 여겨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도 젊은이의 실업문제는 그 정도가 심한 모양이다. 오늘 뉴스에 청년실업이 백만
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이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제는 일본 청년들이 일본의 미래에
대해 별 희망을 품지 않는다는 기사까지 나왔으니 일본이나 여기나 미래에 대한 전망이
젊은 사람들에겐 암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서로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심화시키고 배우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니야 카린의 목표는 "위협받지 않고 일하며 살 수 있는 사회"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를
위해 이제 국가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녀는 빈곤의 문제가 심각한 곳은 어디든 달려가
연대하고 고통을 나눈다. 이 책은 한국을 방문한 그녀가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녀가
본 한국사회에 대한 보고서다. 왼쪽 오른쪽을 이야기 했지만 그녀에게 전통적인 그런
방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녀는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난민화하는
젊은 세대들이 그저 편안하게 노동하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사회를 꿈꿀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에 대한 연대로 한국을 찾았을 뿐이다.  

낯선 이방인의 시각은 항상 그 속에 살고 있어 둔감해진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간파해 낸다. 그것이 그저 스쳐가는 것일지라도 그 시각의 신선함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한반도의 남쪽에서 대안적인 삶을 희망하는 사람들이다.
거기에는 88만원 세대인 20대의 젊은이들도 있었고 빈집을 찾아 점거하는 예술가들도
있으며, 코뮌을 만들어서 연구하는 연구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있다. 이들 모두 빈곤의 문제로 고통받으면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현실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문화적 변화를 준비하는 과도기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과거 68운동과는 다르게 빈곤으로부터 태어나는
이 세대는 어쩌면 풍요속에서 절대적 빈곤을 경험하기에 향후 사회에 또 다른 가치와
운동을 부여할 지 모르겟다. 물론 그것은 이 세대가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연대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경쟁으로 내몰려 자신의 무능함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세대에게 가능성을 발견하고 극복하기 위해 연대하려는 작은 몸부림에서 어쩌면
새로운 문화의 힘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했던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했던가? 
이제 그녀는 이렇게 외친다.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 

프레카리아트 : 불안정한(precarious)이라는 형용사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를 합성하여 만든 신조어로 신자유주의 경제 하에서 불안정한 고용, 
                  노동 상황에 있는 비정규직 및 실업자를 총칭하는 말이다. 국적, 연령
                  혼인 관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시간제 근무자, 아르바이트, 프리터,
                  파견노동자, 계약사원, 위탁노동자, 이주노동자, 실업자, 니트 등을
                  포괄한다. 그 밖에 빈곤을 강요당하는 영세 자영업자, 농업인등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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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러브 - The Fair Lov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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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엇보다 그 존재를 흔드는 힘이다.
그리고 사랑은 서로에서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자신의 존재적 흔들림을 감수하고 특정한 타인과 소통하고자 열망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러한 존재의 흔들림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나이나 국적이나 인종적 차이에 따른 차이가 존재할까?
난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사랑은 그 차이를 지우는 폭력적인 행위라고 본다.
자신도 모르게 갈등하면서도 이끌려 들어갈 수 밖에 없는 마술적인 힘 앞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행복하거나 절망하거나 도전하거나 패배한다.   

부녀지간이라 해도 될 나이 차를 가진 두 남녀의 사랑은 그래서 애틋하다.
사회적 인식의 차별이 두렵고, 나이가 두렵고, 살아갈 미래가 두렵다. 그럼에도 둘의 사랑은
아니 그렇기에 둘의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과 비교되고, 일반적인 사랑이 드러내지 못하는
지점을 포착해 낸다.  단순하게 끌림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존재를 걸어야 하는 것이
사랑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자신이 살아온 것에 대한 부정이어야 하며,
친한 지인들과의 관계마저 파탄에 이를 수 있는 모험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끝임없는
의혹에 대한 점검이었다.  

그럼에도 사랑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이다.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욕망(욕정이 아니다)
을 투영하면서 둘 사이의 갈등은 시작된다. 이건 사랑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보편적인
함정이다. 다만, 세대차이가 심하게 나는 두 사람의 갈등은 특이점은 서로에 대한 미래를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미래를 설계하기에 남자는 너무 나이가 많이 들었고
여자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오십이 넘도록 사랑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노총각(?) 형만은 카메라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평범한 기계공이다. 그는 기계속에서 부품과 부품과의 관계는 알아도 살아 움직이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서툴기만 하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 별것 없고 그저 착실하게
살아가기만 고집하는 그에게 친구의 딸이자 사랑하는 사람이 되버린 남은이란 존재는
그의 삶과 인생에 대해 무지막지한 쓰나미와 마찬가지의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었다.
그의 삶이 변화하길 바라는 남은은 사랑하는 사람과 무언가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싶어
하지만, 형만은 현실적인 문제를 들먹이며 주저한다. 사랑하지만 두려운 것이다.
남은과 미래를 설계하기엔 그는 이미 너무 늦었고...그럼에도 사랑은 그를 가만히 안주
하지 못하게 한다.  

당돌한 아가씨 남은... 아빠의 친구를 오빠라고 부르고,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이 사랑스러운
아가씨는 사랑에 있어서만은 형만 보다 노련하고 용감하다. 하지만 사랑이란 서로의 차이를
지우는 마법인 법... 둘의 인생의 차이나 나이의 차이나 경험을 차이를 넘어서 사랑하는
사람들 그 본연의 설레임과 수줍음과 아픔과 희망을 이야기 한다.  



둘의 사랑이 어떻게 될까? 그런데 사랑에서 결말이 중요한 것일까?
영화는 시종일관 그 둘의 사랑이 얼마나 애타며, 질투하게 만들며, 아프고, 또 행복함을
이야기 한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지는 아름다운 것.
여기서 둘의 사랑이 이루졌는지 둘의 미래가 함께 되는지 그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평생을 살면서 가슴 시리게 어느 한 사람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사랑이 주는 행복아닐까....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사랑이 주는 행복을 참 이쁘게 담아냈다. 

역시 국민배우 안성기... 그리고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부터 좋아했던 이하나의 깜직한
매력 역시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라면 이유다 . 
그리고 영화 속의 음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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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3-1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현실에서 일반 소시민 남자가 저런 사랑을 하고자 하면 원조교제라고 욕먹지요.저런 나이차가 있음에도 주위에서 인정받으려면 남자가 월등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되지 않을까요?

머큐리 2010-03-11 08:40   좋아요 0 | URL
그렇겠지요...그래서 주인공도 많이 갈등했었구요...하지만 획일적 보편적 시선의 폭력까지 감수하려는 사랑의 힘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았구요. 사랑 역시 돈과 지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니까 아직은 세상이 조금은 낭만적이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