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많이 불던 날이다.
황사 때문인지 하늘은 노랗게 물들고 
사람들은 저마다 입과 코를 가리고
총총걸음한다.  

거리에 평소보다 인적이 드물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사람들 사이에 온기가 느껴지지 않고
그저 바람부는데로 흘러다닌다. 

노란 하늘을 쳐다보니
내가 딛고 있는 이 세상이 지워지고
다른 세상에 서있는 듯 하다.
여기는 어디인가? 

책방에 들러 이것 저것 들춰보고 만지고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이 순간을 포획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순간을 잡을 수 없음을 난 알고 있다.  

문득 그 날이 떠올랐다.
토요일이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때였지만
아침공기는 차가웠고 바람이 불었다.
커피를 마시고 책을 조금 들여다보다
포기하고 음악을 들었다.  

그때의 바람과 지금의 바람은 틀리고
그때의 아침과 지금의 오후는 다를지라도
내 몸과 내 기억은
같은 바람임을 느낀다.  

그 차가운 공기를 떠도는 회상이
순간을 붙잡기 못하는 내 손 끝에서
자꾸만 미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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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 2010-03-2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을 붙잡기 못하는 내 손 끝에서
자꾸만 미끄러진다. "
이 부분을 보니 맘이 휑~ 해집니다. 아... T T 저는 순간을 버리며 사는 것 같아요..
 

자정이 지나기 전 오늘은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만난 날이고 

차가운 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던 날이었으며 

따뜻한 온기가 그리운 날이었다.   

 

여전히 음악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날이고 

오랜 통화로 귀가 아픈 날이었으며 

그럼에도 쳇바퀴 돌 듯 길게 길게 돌아서 돌아서 

결국 아무런 결론을 맺지 못한 날이다.  

 

오늘은 다시 돌아오는 내일일 것이고 

계절이 봄으로 바뀌고 여름으로 바뀌더라도  

다시 기억하면 언제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 

어디론가 떠밀려 가는 느낌으로 남아 있는 날일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은 

냉정과 상심의 추를 왕복하며  지나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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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3-1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데요. 이 時.

새벽은 묘한 힘을 가지고 있죠, 나를 감수성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머큐리 2010-03-14 22:52   좋아요 0 | URL
그렇죠...자정..새벽의 힘은 놀랍죠...깨면 조금 그래서 그렇지..ㅎㅎ

[해이] 2010-03-14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에요 시에요?? ㅋ 정말 좋네요... ㅎ

머큐리 2010-03-14 22:53   좋아요 0 | URL
그냥 끄적거린거에요...좋았다니 다행이네요 응?!

다락방 2010-03-1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만난 날이었으면 좋았을거에요, 제게도. 그러나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저는 역시 계속 만나지 못했어요.

머큐리 2010-03-14 22:53   좋아요 0 | URL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락방님이에요...ㅋㅋ
 

오늘따라 몇몇 신문기사들이 눈에 밟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합니다.  

고대생이 취업준비생을 기르는 학교를 거부하고 자퇴서를 냈더군요.
88만원 세대의 아픔이 요즘처럼 절절하게 느껴지는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20대의 문제지만, 결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고 교육의 문제이고 또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철학이 신학의 시녀로서 지내왔던 중세처럼, 교육은 이제 기업과 이윤의 시녀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내 아이들에게도 공부란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기 무서운 시절입니다.  

어제 후배와 식사하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형 애들이 형이 원하지 않고, 사회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형은 그걸 용납할 수 있나?"
물론 상황과 조건의 구체성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질문이지만, 일반 통념과 다르게
자신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왠지 몰라도 내 스스로가 불안해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반대할 확율도 많겠지요...통속적으로 아직 어리고
세상살이 경험이 부족하고... 여러가지 이유를 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일반적 통념이란, 정규교육과정을 마치고, 대학을 진학하고 원하는 자신의
일을 찾아 가는 거지요...여기서 정규교육 도중 이탈이나 대학의 포기 등은 아직
스스로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고, 아마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많이 당혹해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대학교가 취업자격증 발급처로 전락해 버린 시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학교을 졸업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뿌리 깊는 사고을 발견한 셈이지요. 

나이만 먹다보니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었고, 기성세대로서 무언가 이루어놓은 것이
없다보니, 후대들의 생활은 점점 팍팍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자괴감이지요.
관념적인 전진이 아닌 생활 속의 전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도 내 몸과
사고는 완강한 틀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자퇴를 결심한 한 대학생의 문제제기가 타당하고 올바르다고 느끼면서도 그가
뼈저리게 느낀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축적된 것에는 이런 사고적 경직성과
현실과 타협한 기성세대의 안이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학을 거부한 학생의 글에서 참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됩니다.
주어진 현실을 걷어차고 자신의 의지를 선택한 그 학생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빕니다.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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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를 하나 발견했다.
책갈피에 끼여있어 14년 동안 잠자던 엽서... 과거은 가끔씩 그렇게 습격한다.  

   
 

 친구가 못견디게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때면 전화하지만 어느 누구도 너희 집에는 전화를 받지 않더구나. OO이 고시공부는 어찌되는지? 너도 올해는 아기 아빠가 되려는 목표에 접근했는지? 많은 친구들이 그립고 보고 싶다. 오늘은 위에서 술을 달라는 날이 있듯이 마음에 친구가 필요한 날이었다. 이사를 한지 3주가 되는 날이다. 3번째 집이며 학교와 가까워 20분가량 걷는다. 당분가 이곳에 정착하려 한다. 영어는 생각보다 늘지않고 몸무게는 날로 늘어난다. 빵만 보면 짜증내고 화내는 나의 모습을 보며 웃는 사람들 앞에서 그래도 먹는 속도와 양은 가장 월등하게 인정 받고 있다. 지금까지 쓴 글을 읽어 보면 마치 군대 편지나 무슨 선언문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웃어도 본다. 그 곳의 정치상황에 대한 관점이 많이 흐려져서 향후 어떻게 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고 있다. OO아 마누라에게 사랑 받으려면 열심히 생활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12일이 넘게 날씨가 흐리고 비가 내린다. 빨래는 옷장에 가득하고, 에구 햇님이 그립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볃들날 있겠지.... 
         OOO화이팅.   1996. 4. 22 . 02:00
holiday기간에 타즈메니아 다녀온 후배가 준 엽서의 전면 그림이 내 마음 같아 보낸다. 오늘은 나에게 3가지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빌어본다.
김치찌게, 소주....그리고 친구들...

 
   

 1996년이면 지금부터 14년전이고... 이 엽서는 한동안 들여다 보지 않은 책 속에 끼워져 있었다.
그때면 지금처럼 어학연수를 떠나기 쉽지 않았던 시절이고 주변에서 어학연수라고 간 사람들도
손에 꼽았던 시절이 아닌가 한다. (뭐 내 주변이 워낙 척박한 사람들 뿐이라는 사정도 있고)

2~3년에 한 번 정도 뜨문 뜨문 만나는 이 친구... 내가 엽서를 발견하기 전까지 엽서를 받은
사실조차 잊고 있었으니...아마 이 친구도 젊은 시절 외국에서 외로움에 몇자 적어 보낸 자신의
엽서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전화라도 한 번 해야겠다. 나도 그 친구의 안부를 묻고 ... 잘 지내는지....그리고 가끔은
정말 네가 보고 싶다고 얘기해야 겠다. 삶은 그렇게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서로에게 힘을
주면서 가는 길일테니까.... 

타즈메니아의 엽서 그림은 하얀 백사장에 초록빛 바다와 푸른 하늘이 맞닿아 있는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인적이 없는 고요함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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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09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심봤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면서 정말 보고 싶었다고 하면 좋아하겠죠.
나는 중학교때 전학왔기 때문에 고향 친구들이 보낸 편지 엽서를 많이 갖고 있어요.
중학교 동창 사이트에 악동들 P군 K군의 연서를 올려서 전국을 들끓게 했었지요.ㅋㅋ
물론 여학생들의 정갈한 글씨의 편지와 엽서도 스캔 받아 올렸고요.
그래서 중학교 동창들에게 나는 보물창고로 통한답니다.^^

머큐리 2010-03-09 09:5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심봤다!^^ 였지요

무스탕 2010-03-09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방비 상태에서 맞이한 과거의 급습에 예정에도 없던 시간여행을 하셨군요 ^^

머큐리 2010-03-09 09:52   좋아요 0 | URL
음.. 불현듯 그 당시 기억이 났어요.. 답장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외국으로 편지를 보낸적이 없어서요 --;

카스피 2010-03-09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과거 추억이 새록새록 나시겠네요^^

머큐리 2010-03-09 09:53   좋아요 0 | URL
달콤했지요..ㅎㅎ 그래도 그때는 지금보다 빛나던(?) 시절이니까요..ㅎㅎ

L.SHIN 2010-03-09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엽서도, 머큐님의 글도 왠지 멋저요.

"오늘은 나에게 3가지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빌어본다.
김치찌게, 소주....그리고 친구들..."

"타즈메니아의 엽서 그림은 하얀 백사장에 초록빛 바다와 푸른 하늘이 맞닿아 있는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인적이 없는 고요함 이었다"

저는 늘 사람들 속에 있어도 '친구'가 갖고 싶고, '인적이 없는 바닷가'를 걷고 있는데
말입니다..^^;

머큐리 2010-03-09 15:46   좋아요 0 | URL
엘신님도 재미있는 번개모임하시고는 왜 그러세요...ㅎㅎ
 

나에게 항상 즐거움을 던져주는 공간인 '숨어있는 책' 건물 전면에
1층과 지하를 세놓는다는 광고가 붙어 있었습니다.

몇일 전에 그 길을 지나시던 분이 문자로 알려와서 설마 했지만
오늘 외근 중에 땡땡이 치고 가서 확인했지요
순간 가슴이 덜컥 했답니다.
아~ 내가 아끼고 내게 많은 추억이 서려있는 이 공간도 사라지는가?

지하의 조까치박사님과 여사장님께 사연을 들어보니, 책방을 아주
접는건 아니고 근처로 이전한다고 하는군요
근처 건물 지하에 좀 큰 평수가 있어서, 지금 1층과 지하로 나뉘어 판매하던
책들을 하나의 공간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간간히 들르는 손님들 모두 한결같이 물어봅니다.
무슨일 있냐고? 책방 접는거냐고?
웃으면서 대답하지만... 사실 신촌일대의 임대료 상승이 이전을 결심하게
만든 주요한 요인 중 하나임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정든 공간이 사라지는 것도 아쉽지만... 그래도 없어지는 것보다
이전하는 것이니 만큼 안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책들을... 아무리 가까운 곳으로 이전한다고 하지만
어찌하려고 하실지...
이전이야 그냥 옮기면 되지만, 배치하고 분류하는 일은 정말 고되고
힘든 일일텐데... 괜히 걱정부터 됩니다.
기간이 좀 많이 남아 있지만, 이전하게 되면 새롭게 익혀야 될 것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보니 이 공간이 사라지기 전에 사진으로라도 좀 남겨 놔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억은 희미해져도 사진은 지금의 숨책을 그대로
보존시켜 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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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0-03-0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어 있는 책 이사간다고 하니 서운하네요.
그래도 책방을 다른 곳에서 연다니 다행입니다.
사진 찍어서 올려 주세요.^^

머큐리 2010-03-09 00:05   좋아요 0 | URL
후애님 꼭 사진 찍어서 올릴께요... 사진 솜씨는 형편없지만..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