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많은 고비를 넘어야 하는 모험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었다. 지금 그들은 부부다. 그러나 그들이 부부로 엮이기까지는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고, 그건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90년대 초반 백수였다. 일정한 직업은 없었으며 계속 학업을 한다고 대학원진학을
위해 고분분투 했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스펙이 필요한 시점도 아니었고 IMF전이라
대학만 졸업해도 웬만한 기업은 취업을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다만, 그 남자는 흔히
말하는 사상이 불량한 빨간줄이 그어져 있었고, 남들 다 취업하는 시기에도 번번히 면접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러니 4년 내내 하지 않았던 공부라도 해야 했었다.
여자는 홀연히 출가를 감행했었다. 부모와 주변에게는 알리지 않고 편지한장만 남기고 집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녀는 당시 위장취업을 하기 위한 준비를 했으며, 그녀가 지금껏 가진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떠나버렸다. 그 기득권 중에는 남자도 포함되었고... 남자는 이별
통보에 대해 순순히 인정했다.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국제정세가 바뀌면서, 국내 내부정서도 돌변하는 시점에서 그 남자와
그 여자는 다시 만나게 된다. 남자는 여전히 공부만 하는 백수였으며, 여자는 현장에서
실패하고 마음을 잡기 못하고 방황하던 때였다. 공백이 있었지만 둘은 다시 관계를 회복했고
공일오비가 부른 '오래된 연인' 처럼 하루에 전화 한 번, 일주일에 데이트 한 번...이렇게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남자측 부모는 백수로 홀로 썩어갈 자식의 미래를 염려하여
애인이 있을때 결혼시키려고 했었다. 물론 남자측 부모의 일방적 생각이었다.
남자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기에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일 결혼을 한다고 하면 그녀와 해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그 남자의
주변에 결혼할 만한 여자라고는 그녀 밖에 없었으니까... 아마도 다른 여자가 있어 선택을
했어야 했다면 그는 결혼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첫번째 장애는 미신적인 요소였다. 남자의 어머니는 여자의 사주를 보고나서 남자 앞길을
가로 막는다는 점괘에 결혼을 반대했다. 남자는 그럼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남자의
아버지는 다른 곳에서 다시 한 번 사주를 보자고 타협했다. 다른 곳도 안좋다고 나왔고
마지막으로 본 곳에서 괜찮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니까 궁합이 잘 맞는다고 나올때까지
남자는 버텼고, 남자의 아버지는 조정했으며, 어머니는 반대했던 것이다.
두번째 장애는 여자의 어머님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여자의 어머니는 여자의 출가 원인을
그 남자의 영향으로 보았고 (그런거 보면 부모야 말로 자식을 가장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얼굴도 모르는 그 남자는 여자 어머니의 최대의 적이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자식을 꼬드겨 부모를 배신하게 한 나쁜 놈에게 자신의 딸을 줄 수 없었다.
더구나 그 놈은 백수에 장남이기까지 한 하나 볼 것 없는 놈이었다.
여자와 결혼하고 싶었던 남자는 여자의 부모님깨 인사드리려 갔지만, 처음 인사하는 자리
에서 여자의 부모는 돌아 앉아 버렸다. 사실 남자는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느꼈다.
둘 다 평범하지 않은 젊은 날을 보내며, 부모 속을 썩힌 터라 다정하게 대해주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 되었을거다. 그렇게 모든 섭섭한 상황이 너무 당연한 상황이 되어버리니
오히려 더욱 담담해 졌다.
이런 갈등과 오해 속에서 결국 둘은 결혼하고 만다.
둘 사이의 문제는 부모와의 갈등 속에서 묻혀지고, 오히려 결혼 후 터져나온다. 하긴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들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심도 있게 이야기 하지 못했기 결혼 초기는
정말 전쟁터 분위기 였다. 지금도 그 시절의 여파는 남아 있어 가끔씩 전투를 벌이기도 하지만
최근 전세는 남자가 찌그러드는 분위기다. 이 추세는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계속 이어질 듯
하다.
낭만적 연애의 뒤에는 이런저런 사연들이 없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런 사연을 극복하지 않고 그런 사연하나 없이 결혼했다면... 아마도 결혼 후에
더 많은 난관들을 극복하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결혼이란 결국 상대방과 나와는 끊임없는
변증법적 상호교통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 이게 무슨 말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리고 내가 왜 그 남자와 그 여자에 대해 쓰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