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자면, 이것은 네트웍에서 일정한 수준의 물질적 댓가를 주면 승낙한 상대는 댓가를 지불한 이에게 육체적인 봉사를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구. 한마디로 채팅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네트에서의 자발적 매춘을 이르는 은어다.

이 말이 어떻게해서 파생되었는지에 대해선 두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세이클럽에서, 지금은 지워졌지만 근간에 있었던 대대적인 업데이트 이전에는 자신의 의도를 설정하는 메뉴에서 '지금만나기'라는 메뉴를 고를 수가 있었다. 아주 분명하게 번개의사를 표현하는 이 메뉴칸은 자연스럽게 상업적 의지가 발현되는 용도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채팅의도가 이 메뉴로 맞춰져 있는 이들에겐 유난히 많은 쪽지가 쏟아졌음이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이 줄어서 ㅈㄱ이 됐다는 설.(참고로 세이클럽에서 ㅈㄱ은 금지용어다) 하나는 흔히 가격을 제시하는 이들이 쪽팔림 및 사이버 폴리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지금만남', 혹은 '조건만남'이란 말을 썼었는데 이게 줄어서 ㅈㄱ이 됐다는 설.

이러한 ㅈㄱ이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규모로 이뤄지는지 정확히 파악하긴 힘들다. 왜냐하면 철저히 개인적이거나 군소적인 단위로 이뤄지는데다 각 사이트 방들의 영역 전체에 걸쳐 광범위한 범위를 보이고 있으며 ㅈㄱ의 제시 당사자들이 사이버폴리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둔 방을 금방금방 지워버리거나 겉으로 봐선 그런 의도인 줄은 알 수 없게 만들기 위해 엉뚱한 제목을 써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엔 러시아 매춘부들을 일괄적으로 공급하는 업자나 보도방 업주들의 유입을 통해 조직적인 면모를 보이는 이들도 눈에 띈다.

ㅈㄱ의 소비층은 대부분 남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며 간혹 자신의 몸을 내놓는 남자들도 보이지만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는지는 알 수가 없다. 대개의 ㅈㄱ은 소비자가 대상에게 ㅈㄱ의 의도를 물어본 다음 값, 조건, 장소 등등의 뻔한 절차를 거치며 이루어진다. ㅈㄱ은 네트웍이란 이점을 이용하여 나이를 불문하고 이뤄지는데, 가출한 이들이나 핸드폰비, 방세 미납자, 피시방 이용비가 없는 이들 등등 막연하게 돈이 필요한 이들이 곤경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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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눈 뜰 때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1992년 8월
평점 :
절판


(1)
언젠가 장정일은 인터뷰에서 왜 자신의 소설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자신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에서 받은 영향은 적지 않은 것이며 그것이 작품 속에서 내재되어 나타나고 있다고. 과연, 그는 첫 소설인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에서 그 스스로도 불만이라고 한 크로닌적인 구원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담이 눈뜰 때'는 제목에서부터 구약 세계로 화두를 밀어넣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은행원은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된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는 아예 재즈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담이라고 하는 종교적 키워드가 의미하는 것은 태초, 그리고 순수함일 것이다. 야훼는 아담부터 창조하고 이후 이브를 만들어낸 다음, 지식의 나무에의 접근을 막음으로써 그 두 피조물이 무지함과 무감함을 통한 순수의 세계에 머물러 있길 바랬다. 이 '아담이 눈뜰 때'에서 장정일이 차용해 오는 이미지는 아담의 순결함에 대한 것이고 그것은 순수에 대한 강박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경박해져가는 시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위한 것이었다.
민주화 운동이 가지는 의미는 단일후보화 실패에 따른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자발적으로 망가져버렸고 세상은 패스트푸드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프리섹스와 단발마적인 감각으로 가득한 90년대 초에 순수를 끌어들이는 장정일은 그 코드로 60년대 히피즘의 세계를 한국땅 안에 펼쳐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익숙한 히피즘의 아이콘들-짐 모리슨, 제니스 조플린, 지미 핸드릭스, 유치하게도 60년대의 3J라 명명되는 그들-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죽음으로 순수를 성취해낸 이들에 대한 매혹이 순결을 담보한다고 주장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그에 따른 타나토스적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자기파괴적인 그들의 행동은 그를 통해 정신적 순결성을 지킨다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그것은 소설 속에서 후일담적인 영역을 차지하는 '비겁한' 형에 대한 아담의 비판에서도 발견된다.

형은 한다면 하는 완벽한 이기주의자다.... 간장에 밥을 비벼먹던 국민학교 시절부터 이 나라에서 달아나고 싶어했다는 형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장학금을 받아 공부할 형의 모습과 쓰레기 리어카를 끌고, 요령을 흔들면서 지하 상가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도무지 내 심정 속에서 용해가 되질 않았다....
-25P

그러나 속도의 천박함이 주는 감상에 절어버리길 거부하는 이들은 자본의 힘, 거대한 권력의 힘에조차 순수하다고 비웃어 줄 정도로 무지하다.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60년대의 3J라는 아이콘이 레코드 회사의 전략적 상품으로써 형성됐고 정작 히피즘 운동을 겪지 못한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일종의 성역화된 환상으로 발전했다는 걸 인식 못한다. 이것은 비단 음악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작품 내에서 쉬지 않고 비판되는 '포스트~'의 열풍 또한 서구에서 70년대에 끝난 이론을 80년대 말에야 일부 비평가들에 의해 수입되어 회자되었던 것 아닌가. 여기엔 문화식민지적 슬픔이 있다. 또한 이것은 한국 사회의 문화적 양상이 속도전에 가까운 강박 관념을 가지게 된 근거를 마련해준다.

(2)
열 아홉 살의 아담은 자신의 생을 관통할 릴리스와 이브를 만나게 된다. 아담의 바람난 아내가 될 운명인 릴리스는 은선이고 이브는 현재다.
은선은 '생리를 한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압적이었던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대학 입학이라고 하는 기성 사회의 통과 의례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자신을 옭아매던 속박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런 그녀에게 아담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던 속박을 풀어제낄 소도구에 다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일탈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성 사회의 인정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녀가 스스로 꽉 막힌 고등학교 생활의 탈출구로 여겼고 성공적으로 편입했다고 여겼던 기성 사회, 그 상징적인 현장인 대학은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는 또다른 억압의 현장이었고 그 속에서 그녀는 생명을 잃은 베낀 시의 창작을 통해 그들과 한자리에 서게되지만 결국 배반당하고 적응하지 못한다.

"들어가고자 한 대학에 들어갔었고, 시인이 되었어.... 모두들 박노해니 백무산이니 하는 시집들을 보거나 김남주나 김지하 시집들만 보는 거야. 꼭 고등학생들처럼 말이야. 게다가 집체까지 들고 나와서 나 같은 건 저리 가라는 거야."
-116P

아담의 이브인 현재는 아담의 시선에서 뭉크의 '사춘기'의 주인공인 여자 아이와 동일시된다. 그래서 현재는 그 자체로 결벽증적인 세계, 순수한 세계를 상징한다.

"그런 것들은 듣지 않아요. 요즘 음악은 아주 타락했으니까."
-37P

현재는 분출되는 욕구의 명징한 상징이자 비타협적 순수함을 표상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아직 고등학생인 그녀는 대입으로 상징되는 통과의례를 견디지 못한다.

그녀의 섹스 또한 순수 고독의 형식이다. 그녀의 섹스는 사랑을 위해서나, 출산을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사랑과 출산을 위해 쓰여지는 섹스란, 섹스 그 자체엔 이미 불순스런 것이다.
-46P

자아와 세계 사이에서 충돌하는 그녀의 의식은 극단적으로 나아가 자살로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현재가 가진 '사춘기'에 집착하는 아담은 현재를 자신의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에 좌절하고 그녀를 '사춘기'의 그녀로 취급하는 페티시즘적 행동을 보인다. 이것은 역설적으론 그녀를 우회적으로 포기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여기서 아담이 보인 행동은 그녀를 필요로 하면서도 그녀에게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이중적인 자세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그래서 현재와의 정사는 시간이 갈수록 화자인 아담이 자신이 증오하는 이들, 돈으로 사람을 살 정도로 속도전의 세상에 물든 이들과 얼마나 닮아있는가를 반증한다. 결국 그-아담에게서조차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현재는 스스로의 의지로 목숨을 끊는다. 그래서 그녀가 60년대의 영웅들과 정확하게 오버랩되는 순간, '비겁하게' 살아남은 아담은 자신이 찾던 정신의 낙원이 가짜였음을 알게 된다.

그녀가 절망에 처하였던 그 때에, 나는 야비한 방법을 써서 그녀의 관심을 내게서 끊도록 유도했다. 나는 울지 않기로 했다. 내가 눈물을 흘리면 두 눈에선, 네온이 흐를테니까.
-108P

나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큰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가짜 낙원에서 잘못 눈을 뜬 아담처럼. 내 이브는 창녀였으며, 내 방은 항상 어둡고 습기가 차 있다. 어쩌다 책이 썩는 냄새를 없애려고 창문을 열면, 네온의 십자가 아래서 세상은 내방보다 더 큰 어둠과 부패로 썩어지고 있다. 나는 내가 눈 뜬 가짜 낙원이 너무 무서워서 소리내어 울었다.
-109P


(3)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인 등가 교환의 법칙에 따라 아담은 두 사람을 만나서 섹스를 하게 된다. 그 첫 번째로 코스모폴리탄인 여자 화가는 그 자체로 가속도의 세계에 대한 비판을 보여준다. 재밌게도 그 표현은 섹스를 통해서다.

그녀의 다리는 무척 길었다. 나는 경부선 고속도로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긴 시간을 들여, 그녀의 발등에서부터 두 다리 사이까지를 입술로 물었다....
그녀는 내 허리를 그녀의 긴 두 다리로 꽉 부여잡고 있었다.
-55P

하지만 세상의 속도전과 경박함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던 이 커플은 음악사에 대한 무지를 뻔뻔스레 드러낸다.

"맞아. 요즘 가수들은 기껏해야 골반이나 흔들 줄 알지, 너도 나도 새까만 선글래스를 끼고 말이야. 사내 자식들이 꼭 시스터 보이처럼 해가지고는 색정광처럼 신음을 흘리지. 이렇게."
-52P

저 대사는 그들의 영웅들이 자신들의 선조로 삼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처음 음악사에 등장했을 때 기성 세대들에게 들어야 했던 비난과 다를 바가 없다. 경계짓기의 어리석음은 이렇게 우회해서 이들의 가치 준거라는 게 새로운 세대를 감지하지 못하는 기성 세대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진부하다는 걸 알려준다. 이들은 진짜, 진짜를 찾아다니지만 그 결과는 오독이었다. 이것은 앞선 비판, 세상에 대한 무지-어쩌면 작가의 무지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바이다. 아무튼 그녀와의 공감대 형성 및 섹스의 댓가로 아담은 뭉크 화집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가 유난히 좋아하는 '사춘기'의 부분은 뜯겨져 있는 것이었고 이것은 아담으로 하여금 현재, 살아있는 '사춘기'의 소녀에게 페티시즘적 집착을 불러 일으키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두번째로 아담이 등가교환을 위해 만나는 중년 게이와의 정사는 작가 자신이 가진 소년원에서의 경험이 반영된 터라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특화되고 있다. 게이와의 정사가 보다 정신적인 교감이 필요하다는 건 우스운 얘기다. 다만 그 과정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아담은 이 정사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턴테이블에의 욕구가 이뤄낸 결과이고 그 때문에 스스로의 위선을 발견하게 만드는 열쇠가 된다. 그래서 아담은 현재가 자신에게 그대로 해달라고 해서 자신이 당한 것을 그대로 행하라고 명령받을 때,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를 저지른 것인지 깨닫게 된다.

나는 내키지 않았다. 스스럼 없음을 가장하여 나는 그녀에게 가장 큰 상처를 입힌 건지도 몰랐다.... 솔직을 가장하여 곧이곧대로 내 치부를 다 이야기 한다는 것은, 나는 이런 놈이니 알아서 하라는 식의 과시 밖에 아니며, 결국 나한테 너는 그렇게 소중하지 않다는 뜻이다. 비밀이 필요한 곳에서 비밀이 옳게 지켜지지 않으면, 경박함밖에 남는 것이 없다.... 그리고 거기에 부응하는 나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이기주의자다.
105P~106P

(4)
현재의 죽음 이후 아담은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에게 속죄를 하고 자신이 도피하던 세상으로의 진입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강헌의 유명한 탈주극을 보게 되고 자신이 앞으로 살아야 할 시스템인 자본주의를 깨닫게 된다.

어떤 사건이건 자본은 그것을 센세이셔널하고 상업적인 것으로 바꾼다.... 모든 의미를 희화화하고 무의미하게 만든다. 사건은 충분히 소비된 다음, 잊혀진다. 다른 흥미를 찾아, 개발해야 하니까 '무전유죄, 유전무죄' 따위는 더 이상 연구거리가 되지 못한다.
-113P

이렇게 우회해서 그는 자신의 영웅들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착취당했는가를 깨닫게 된다.(다만 그 이후에 있어선 틀렸다. 자본은 한 번 잡은 먹음직스런 상품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확대 재생산을 꾀한다. 소비될 자산은 한정되어 바닥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획일화되고 무의미한 세상이며 작중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탬버린 남자로 형상화되는 미래이다.
서울로 올라가서 그런 획일화된 세계가 그대로 재현된 것을 본 아담은 두통을 느끼고 의미없이 도시를 방황한다. 그리고 배설의 욕구를 느껴 창녀와 섹스를 하게 되는 아담은 돈과 육체의 교환이라는 지극히 1차원적이고 물질적인 거래를 망설이지 않고 되려 그 시스템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욕구에 비해 그의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질 않지만 아담은 창녀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망가진 이들 간의 교감, 혹은 상처 받은 이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위로. 다소 천박하긴 하지만(표현상이든, 그 뻔한 도식성으로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엔 그가 그토록 찾으려고 했던 순수, 결국은 공허하기만 했던 그 표상이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를 통해 아담은 그의 형이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이기주의자가 됐던 것을 극복한다.

방황의 끝에서 그제야 낙원의 뒷문에 서게된 아담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 중 마지막 것인 타자기를 가지게 된다. 타자기는 뭉크 화집이나 턴테이블처럼 훼손된 욕구의 상징이 아니다. 드디어 생산의 수단을 갖게 된 아담은 글을 쓰리라고 다짐한다. 과거 문학 속의 청춘들(생존자들)처럼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를 마친 아담은 유년기적인 의식의 유치할 정도로 노골적인 기호들로 가득 찬 세계를 벗어나 보다 늙고 침착해졌으며, 비로소 초연함이라는 미덕을 얻게됐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과 탄식이 곁들여진 너절한 절망을 겨우 끝나고 스스로 짐을 짊어지게 된 자아가 '길안에서 택시를 잡는 것'처럼 수행해야 할 고난에 찬 앞길의 시작이기도 하다. 성서의 아담과는 달리 혼자서 길을 걸어가게 된 그의 죄는 무화과를 무화과로 보지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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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나인 인치 네일스는 곧 열쇠다.

http://music.bugs.co.kr/Info/album.asp?cat=Track&menu=m&Album=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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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창한 일요일날, 나른한 오후로 데려다주는 음악. 나나난 키리코를 생각나게 만드는 쟈켓에 비해 꾹꾹 눌러지듯 귀에 새겨지는 노랫말들은 도시적 삶에 대한 삭막한 연상이란 측면에선 나나난 키리코의 정서와 공명하지만 그 작가가 보여주는 독기가 사라진, 슬프고 쓸쓸한 환상들 속에서 다정하고 따뜻한 질감으로 청자를 위로해주는 소박한 상상들이다. 수면용, 산책용, 야밤의 지하철 여행용으로 탁월.

http://music.bugs.co.kr/Info/album.asp?cat=Track&menu=m&Album=16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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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게임기든지 특유의 킬러 타이틀이 있기 마련이다. 오직 그 게임을 위해서 게임기를 산다고 하는, 말하자면 주객전도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영향력의 게임. 어떤 이에겐(아니, 상당수의 사람에겐) 파이널 판타지가 그런 존재였고 드래곤 퀘스트가 그런 위치였으며 버추어 파이터도 그런 역할이었고 근간엔 메탈기어 솔리드가 그런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단지 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 드림캐스트를 샀다. 스트리트 파이터 3.


승룡권과 파동권만 가능하면 무적이었던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1.


전설의 시작. 승룡권을 마스터하지 못해서 맨날 블랑카만 골라야했던 기억이 쓰다.

스트리트 파이터3의 제작이 발표됐을 때, 아케이드 유저들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그 시점에서 업계의 전설이 되어 있는 저 스트리트 파이터의 후속편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신작이 받을 스포트라이트는 충분했다. 거의 혁명이라고 불려도 무리가 아닐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등장은 당시까지 슈팅과 횡스크롤 액션, 퍼즐 등등의 한정된 장르 속에서 상호 복제를 거듭하던 아케이드 게임계에 떨어진 핵폭탄이었다. 단순히 게임장르를 넘어서서 하나의 트렌드로까지 발전한 스트리트 파이터 2는 본편은 수퍼 스트리트 파이터 2 터보라는 길기도 한 제목으로까지 진화되어 있었고 외전격으로 제작된 제로 시리즈도 성공적으로 나름의 팬층을 만들어내면서 자체적인 아우라를 양산하고 있을 때였다.


제로 시리즈 중 가장 인기가 좋았던 2. 교복 오타쿠들의 로망 사쿠라의 첫 등장. 전통적으로 제로 시리즈는 애니메이션적 질감이 나며 이는 후에 다크 스토커즈 시리즈로 발전한다.


재난의 시작.

물론 오락실들은 이 희대의 '작품'을 오직 그 이름만 믿고 CPS3 기판의 무지막지한 가격을 감내하면서 앞다투어 들여놓았고.... 그리고 망했다.


그러고보니 올해가 킹오파 10주년. 오래도 욹궈먹었다.... 신작은 나오미 기판으로 만들어진다는 듯.

시대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이하 킹오파)가 대세였다. 캐릭터성을 극대화한 필살기들과 한방마저 허용하는(물론 버그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킹오파 시리즈가 가진 시스템적인 불안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화려한 연속기, 세명의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다는 양적인 이점과 스피디한 전개 속도, 그리고 매년마다 신작 업데이트(전작에서 캐릭터 연산을 그대로 빼와 붙인다는 소문이 있었지만)가 되는 점은 킹오파가 세대와 맞춰간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B급 감수성의 발현이랄까.... 암튼 이기면 저랬다.

그런데 정작 공개된 스트리트 파이터 3는 번쩍이고 화려하며 양적인 과잉이 넘쳐나는 킹오파의 세계에서 허우적대던 대전 격투 게임 유저들의 시야로는 당최 이해가 안 가는 게임이었다. 우선 캐릭터부터, 전작에서 이어지는 캐릭터가 달랑 둘, 류와 켄뿐으로 유저에게 익숙치 않은 인상을 주었다. 그런데다 고를 수 있는 캐릭터가 10명. 보스캐릭터인 길을 합해봤자 11명. 킹오파는 24명 이상이 기본이었던 상황에서 이 숫자는 다양성의 결여로까지 보였다. 그렇다고 새로 만들어진 캐릭터들이 킹오파의 캐릭터들만큼이나 눈에 찰싹찰싹 달라붙었느냐, 그렇지도 못했다. 개개의 캐릭터들은 분명 강렬한 캐릭터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캐릭터들은 킹오파만큼의 예쁘고 눈에 착 와닿는 대중친화성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또한 킹오파에선 넘쳐날만큼 존재하는 화려한 필살기들이 여기선 대전격투게임의 기본 패턴만을 차용한 정도로 제한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초필살기는 세 개 중 하나만을 선택해서 써야될 정도로 금욕적이었다. 대쉬는 매우 짧았고 기본기에서부터 필살기까지 기술 발동 시간들은 대부분 느릿해서 묵직한 느낌을 받도록 고안되었다. 당시 막 개발된 CPS3 기판의 위력은 게임 그래픽을 환상적으로 높여놨으나 그마저도 화려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동작의 묘사를 위한 프레임 향상을 노린 결과였다.


블로킹. 마스터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새로 도입된 시스템인 블로킹의 존재였다. 상대의 공격에 맞춰 레버를 상대쪽으로 순간적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공격을 방어해내고 기술입력을 통해 즉시 재반격이 가능하게 만든 이 시스템은 한마디로 너무 난해했다. 상대의 공격에 맞춰서 레버를 들이댄다는 개념 자체가 지독한 심리전을 요구하는 행위였지만 그런 개념 자체가 당시로선 너무 낯설었고 또한 그 포인트를 맞추기가 여간 쉽지가 않았다. 당시엔 쓸모없다고까지 여겨졌던 블로킹은 그러나 시간이 흘러 뒤로 가면서 고수들이 속속 등장함으로써 블로킹을 터득한 자와 터득하지 못한 자의 갭이 너무나 벌어지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3 시리즈는 스트리트 파이터 본편을 따르는 시스템적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 심지어 폐차 만들기 보너스 스테이지까지.

타격감이 살아있는 묵직한 공격과 고도의 심리전. 이 게임은 대전 격투 게임의 본령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2의 세계로 되돌아가려 했던 게임이다. 한마디로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이었다. 솔직히 나도 너무나 재미없게 플레이했었으니까. 내가 이 게임을 보면서 좋아했던 것은 순전히 노출도가 가장 높았던 엘레나 덕이었다. 그녀의 선택 초필살기중 하나인 힐링은 사용시 닳아있던 라이프 게이지를 3분 1가까이 회복시킴으로써 상대의 복장을 터지게 만드는데 매우 유용했다.


세컨드 임팩트 자이언트 어택. 엘레나의 초필살기인 힐링의 대폭적인 약화로 즐겨쓰는 캐릭터를 휴고와 고우키옹으로 바꾸게 만들었다.

이 게임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던 것은 스트리트 파이터 3 세컨드 임팩트 자이언트 어택이라는 길기도 긴 제목을 달고 나온 일종의 확장판 덕이었다. 전통적으로 하나의 게임이 나오면 그에 대한 업그레이드 차원에서 시리즈로 게임을 내놓는 캡콤의 전통에 따라 에반게리온에 영향을 받은 듯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이 게임은 당시 관계자들로부터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다면 망하진 않았을 거다'라는 평을 들었다. 그만큼 이 두번째 버전은 처음보다 훨씬 대중친화적이었다. 일단 캐릭터가 셋이 더 늘었고 전체적으로 단조로웠던 전작의 색감과 배경에 비해서 이 작품은 훨씬 다채로운 색감의 세계를 보여준다. OST부터 힙합과 트랜스, 레이브 등등 당대의 트렌드를 차용하여 가볍고 신나는 인상을 주었으며 블로킹의 사용이 보다 쉬워졌다. 그리고 엘레나에게 새 승리포즈가 생겼다.... 뭐 그렇다는 거다. 그러나 그외엔 시스템상으로 변화가 크게 없었고 워낙 전작이 악명을 떨쳤던 탓에 국내 아케이드센터엔 그 모습을 찾기가 사이쿄의 타락천사를 플레이해보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또한 대만판 복제 기판으로 퍼질대로 퍼진 킹오파에 비해서 CPS3 기판은 복제가 불가능한데다 망가지면 국내에선 고칠 수 있는 데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비쌌다는 점에서도 게임의 파급력을 떨어뜨리는 데 일익을 담당했음이다.

내가 이 게임에 뻑 간 것은 이 시점에서부터였다.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3 세컨드 임팩트 자이언트 어택(헉헉)이 맘에 들었다. 킹오파가 만들어내는 버그와 캐릭터성을 강조한 탓에 벌어지는 밸런스 붕괴에 지쳐있던 나에게 이 게임은 농담을 할 줄 모르는 해군하사관 같았던 전작의 딱딱한 이미지가 없어진 동시에 시리즈 자체가 가지고 있던 평균 이상의 퀄리티가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것은 나로 하여금 블로킹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이 게임을 맘에 들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돈도 땡전 한푼 없으면서 기판을 사야겠다는 맘이 든 건 그때부터였다.


서드 스트라이크. 허벅지 여왕님의 귀환.

스트리트 파이터 3 서드 스트라이크라는, 전작에 비해 훨씬 얌전해진 제목을 달고 나온 시리즈의 세번째 버전이자 마지막 버전은 가히 2D 대전 격투 게임의 정점이라 할만 한 퀄리티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픽, 음악, 밸런스 등등. 전개는 보다 시원시원해졌고 캐릭터는 네명이나 더 불었다. 특히 이미지 캐릭터라 할 만 한 춘리의 가세는 게임의 시리즈적 연속성을 높임과 동시에 올드유저들까지 끌어들이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나로선 꿈을 이루기 위해 기판을 두개씩이나 사야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고 말게 됐다. 그게 싫으면 노량진 오락실까지 원정을 가서 플레이를 해야 할 판이었으니.... 쫄딱 망한 덕에 이 게임의 희소성은 그리도 컸다.


드림캐스트용으로만 나온 3 원판과 세컨드 임팩트 자이언트 어택의 합본판인 더블 임팩트. 이제는 중고로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은 경제적인 평준화를 이끌어내는 법. 영원한 2인자 세가에서 절치부심하여 만들어낸 차세대 게임기인 드림캐스트는 스트리트 파이터 3 시리즈의 컨버전을 차례로 발표했고 나는 드림캐스트만 보면 파블로프의 개마냥 침을 질질 흘리게 되는 증상을 갖게 되었다....

이후, 내가 드림캐스트를 중고로 구입하게 되는 것은 세가가 하드웨어 산업에서 손을 뗀지도 한참 지나서의 일이었다. 물론, 오직 스트리트 파이터 3 서드 스트라이크를 위하여....

 


스트리트 파이터를 몸소 시전중인 사람들. 이 게임의 심원한 영향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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