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지의 작업은 노동자의 그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제이지라는 가수는 자신이 하는 일을 철저하게 직업으로 인식하며 꾸준하고 성실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그것은 금욕적인 생활 태도와 데뷔 이후 매해마다 한 장씩 꾸준히 낸 앨범도 그렇고 그 앨범들이 하나 같이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준다는 점이 그렇다. 이 앨범으로 그는 은퇴를 선언했지만 힙합하는 양반들이 은퇴 번복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알고 있다면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는 말이다(얼마 전에 린킨 파크와 합작한 앨범을 냈다). 제이지의 경우는 그의 목표가 음악적 완성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의 은퇴는 음악이 아닌 거시적인 영역(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는 사업가가 되길 원하고 있다. 그는 힙합이 젊었을 때나 하는 것이지 평생동안 먹여 살리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으로의 확장으로 보인다. 하긴 재산만 3억 달러를 모은데다가 힙합으로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은 다 먹어치웠다면 달리 더이상 뭘해야 할지 곤란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공룡이 된다는 건 어쩔 수 없이 거부감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http://music.bugs.co.kr/Info/album.asp?cat=Base&menu=m&Album=19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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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본론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제가 오늘 읽어보는 여덟 편 중에서는 가장 우수하십니다.

 

일단, 일반적인 작업 방식에 관해 몇가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자극적인 인물설정을 포함한 시놉시스를 먼저 제작해 주십시오.

 

주인집 아주머니와 내가 있었는데,

어느 날 아주머니의 목욕 장면을 살펴본 내가 아주머니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그날밤에 아주머니 방에 침투하니 먼저 유혹하시더라

오랄섹스와 정사를 나눈 후, 아저씨에게 걸렸다.

아저씨에게 맞은 나는 복수를 위해 아주머니의 안에 씨앗을 남겼다.



아주 흔하면서도 가장 잘 팔리는 대략의 소재입니다.

인물 설정 자체가 야하다면 좀 더 쓰기가 쉬워지죠(매우 중요)

요즘 잘 나가는 인물 설정은, 유부녀. 입니다.

걔중에서 친구아내 등등이 잘 나가지요. 아줌마도 잘 나가고…

물론 처녀도 잘 나갑니다. 가장 잘 나가는 건 친구엄마와의 정사 입니다



그리고 스토리.

스토리가 복잡한 에로 영화는 망한다. 라는 정설이 있습니다.

스토리는 양념, 사건은 필요악 입니다.

주 메인은 음란한 대화체와 성애 묘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묘사는 으뜸을 차지하되, 심리 묘사 등을 배제한

성애 묘사가 가장 주류를 이루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처음부터 끝까지 줄창 야하게만 쓰는게 최고라는 거지요.

또한 삭제되어도 무방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 쉽게 말해 컨텐츠의 음란성을 떨어뜨리는 주인공의 독백 등등 인데요

전체적으로 너무 밋밋한 묘사들이 많습니다.

빙빙 돌려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세밀하고 가능하다면 천박한 묘사가 좋습니다


글 자체나 표현 등등은 나무랄곳이 없지만,

음란성의 수위가 너무 떨어집니다.

글을 직접 보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아... 하아....

오빠와 나의 숨소리가 엉망으로 뒤엉켜서 방안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눈깜빡할 순간의 일이었다. 두 평이 채 안되는 좁은 자취방 안은 제멋대로 흩어진 옷들과 가방, 책들로 널려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그 난장판의 한가운데에서 하의만 벗은 채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방안의 묘사는 필요악이므로 어쩔수 없지만, 사랑한다고 말해줘. 라는 부분에서 수많은 컨텐츠 이용자들이 접속을 종료할 것입니다. 음란성의 수위를 심각하게 떨어뜨립니다.



오빠는 대답 대신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가 결코 말하지 않을 것임을, 그는 이 순간 내 육체만을 탐하고 싶은 것뿐이란 걸 안다. 나쁜 남자.... 하지만 그를 생각만 하면 축축하게 젖어버리는 나는 어떤 여잘까.


-주인공의 심리 독백은 별로 필요하지 않으며, 더군다나 자극적이지도 않습니다. 삭제해도 무방한 부분입니다. (실제로 검수 때 삭제해서 납품합니다)



"들어간다...."

"살살 들어와줘... ...."

단단하게 굳은 오빠의 뜨거운 물건이 거칠게 후비듯이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 내 그곳은 깜짝 놀라 급하게 수축했지만 이내 끈적한 애액을 흘리면서 성난 그의 것을 몸속 깊숙이 받아들였다. 강렬한 쾌감이 아랫배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잘 쓰시네요... 하지만 문학적 냄새가 짙게 나는 묘사인 관계로 음란성의 수위가 떨어집니다.


 

“아.... .... 아파....

“잠깐.... 움직일 거니까.

“안돼, 잠깐.... , !

오빠의 하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끄러웠다. 환한 형광등 아래에서 힘줄과 핏줄로 덮힌 오빠의 단단한 기둥이 내 몸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었다. 내 애액에 담궈졌다 나오는 그것은 불빛이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선영이 여기.... 따뜻해. 기분 좋아....

“정말?


-이것 또한 필요없는 부분입니다. 은유법 등등은 “그의 그것은 말의 것처럼” 이면 충분합니다......




여성의 시각에서 쓰신 것은 좋은데, 성애묘사에서는 흥분하는 여성의 모습보다는

혀를 내밀고 있는 남성의 얼굴이 계속 떠오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컨텐츠의 자극도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인 것 같습니다.

 

일단, 전체적으로 문장의 기법 등등에 익숙하신 듯 하니 조금만 노력하시면 더 나은 작품을 제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현재 수위의 자극도로는 검수가 불가합니다.

 

검수하실 때는 직접적 성기묘사 등등도 빼셔야 하니

이보다 자극이 더 떨어지게 되니까요.


저희가 보내드리는 파일들을 참고 하시고 다시 한 번 더 짧게.

(솔직히 성애 묘사 몇 줄만 쓰셔도 됩니다. 한 열 줄?)

작성해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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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꽤 괜찮은 작가가 될 가능성이 있는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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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연령 등급의 리뉴얼 버전 DVD. 2002년 7월 발매로 업계의 관습인 우려먹기 스킬을 충실하게 따라서 같은 타이틀의 세번째 발매품이라는 사실이 아름답다.

 

처음 택틱스의 1997년작, moon을 플레이했을 때, 나는 시즈쿠도 안 해봤고 키즈아토도 접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애초부터 트렌드에 입각하여 게임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내릴 소양은 충분히 부족했던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moon을 플레이했던 시간은 나에게 게임을 함에 있어서 가장 강렬했던 시간들 중 한 순간을 제공해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리프 돈벌이의 본격적인 시작, 비주얼 노벨 2탄 키즈아토. 아울러 열광적인 팬덤의 형성. 가문과 혈통의 비밀과 연쇄 살인, 십대 소년적 낭만, 혹은 망상의 제례. 이후 비슷비슷한 다크물의 양산을 불러왔다.


당시의 택틱스는 여러 면에서 리프의 후발주자 면모를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일단 18금 업계의 전반적인 코드는 엘프가 만들어낸 기존의 다크물들, 하원기가의 일족이나 노노무라 병원의 사람들 같은 끈적하고 가학적인 취향의 다크물과는 구별되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스타일을 살린 새로운 경향의 다크물인 리프의 시즈쿠-키즈아토 라인의 성공이 이끌어낸 다크물의 전반적인 상향추세와 F&C의 프랜차이즈 '피아 캐럿에 잘 오셨수'을 필두에 세운 순애물의 두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택틱스의 게임들은 일단 다크물(moon)에서 순애물(one)에 이르는 그 도정이 리프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한마디로 노골적인 후발주자이자 안전빵 영역의 잠식자) 일단 그 캐릭터 디자인부터 이타루라는 양반이 도맡아서 그렸는데 이 양반이 극로리 취향의 캐릭터들을 즐겨 그렸고(물론 타락할대로 타락한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별 것도 아니지만 당시로선 초등학생한테 고등학교 교복 입혀 놓고 10대 후반 20대 초반이라고 우긴다고 개탄했을 정도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리프의 캐릭터 디자이너였던 모씨(?-_-기억이 안 나는구만...)의 노선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후 회사에서 상여금 지급 불가를 선언한 모양인지 주요 스탭들은 택틱스를 빠져나가 역시나 연애 시뮬 전문 회사인 '키'를 설립하고 카논으로 대박을 터뜨리게 되지만 그것은 훗날의 이야기.... 별 상관도 없는 이야기....-_- 아무튼 당시 택틱스의 사업 전략은 리프 꽁무니를 따라가기... 쯤으로 설명이 된다.


리프의 투하트 직후 택틱스에서 제작한(아울러 캐릭터 디자이너 이타루를 중심으로 한 스탭들의 택틱스에서의 마지막 결과물인) one... 사람에 따라선 투하트보다도 높게 쳐주는 물건. 개인적으로 저놈의 캐릭터디자인은 정자세포 형성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_-


이 moon도 그 자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게임이 여타 다크물과 구분이 되는 점이 있긴 한데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더럽게 무겁고 어둡다는 거다. moon은 기존의 다크물이라 불리우던 것을 제대로 업그레이드시켜서 플레이어를 감정적으로 바닥까지 끌고 내려간다.



이쿠미의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교단 FARGO로 들어간다. 그리고 6년만에  돌아왔던 어머니. 잠시동안의 행복. 그러나, 원인불명으로 어머니까지 죽는다. 그 순간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던 이쿠미는 진실을 알기위해 FARGO로 잠입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하루카와 유이를 만나게 된다....


이 게임은 일단 장르는 어드벤쳐다. 뭐 이쪽 업계가 다 그렇고 그렇지만 어드벤쳐로서의 기능이 특출나게 특화됐다곤 볼 수 없고 재수없게 경비원에게 걸리거나 길을 잘못 들면 굿엔딩과 배드엔딩이 조각조각 나뉜다는 정도라는 점에서 딱 업계 표준이다.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이쪽 업계의 실수요자 대부분이 남성이란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드물다고 할 수 있을 여성 '화자'인 이쿠미가 되어 교단에 잠입한 후 겪게 되는 해괴망측한 일들을 대면해야 한다.

그런데 이 게임이 재밌는 것은 플레이어가 여성 캐릭터가 되야함에도 불구하고 감정이입에 크게 문제가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화자인 이쿠미는 교단에서 행하는 실험에 반강제적으로 끌려다니면서 거의 고문에 가까운 일들을 당하는데 그것은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가학적인 실험들이다. 빛과 어둠을 이용해 따로 나뉘어진 폐소공포증적 공간에서 반복되는 의식적인 제의를 통해 이쿠미는 자신의 과거와 욕망을 말그대로 '직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묘사하는 과정은 남성 소비자들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주인공이 겪는 오묘한 즐거움과 가학-피가학적인 도해가 보일듯말듯 은근슬쩍 묘사되면서 해면체 부풀리기에 일조를 해야 마땅할 것이지만 놀랍게도 이 게임에선 그 모든 과정이 '고통스럽다.' 시나리오 라이터의 섬세한 손길은 이쿠미가 교단에서 겪는 폭력적인 일상이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벌어지는 얘기란 걸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공간적으로 어둠과 빛의 극단적인 대립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이쿠미로 감정이입된 플레이어는 이쿠미가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보게 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바라보게 됨으로써, 어머니와 친구들의 과거를 하나씩 알게됨으로써 얻게 되는 상처를 그대로 느낀다. 이게 참 신기한 일인데 적당한 수준의 센티멘탈리즘으로 채색되어 일견 달콤한 상상의 나래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던(동시에 처녀 숭배 경향이 있었던) 리프의 다크물과는 달리 이 게임이 보여주는 표현상의 과격함과 하드보일드 성향은 전혀 남성 지향적이지가 않다. 그 과정은 말그대로 고통의 순례 그 이상이 아니다. 주인공이 여성이어서 겪어야 하는 고통과 운명이 만들어내는 고통, 그리고 자신의 지저분한 영역을 들여다본다는 데서 오는 고통. 그 지저분함이란 것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측면이란 것을 인식하는 데서 온다. 아마도 이것은 플레이어와 캐릭터간의 성공적인 감정이입을 가능케 하는 스토리와 화자의 주안이 분명하게 '여성'인 이쿠미에게 맞춰진다는 점,  그리고 비주얼 노벨이 아닌 명목상이나마 어드벤쳐라는 장르적 특성이 주체인 플레이어와 이쿠미 간의 일체화에 강하게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달리 말이 필요 없는, 어둠의 공조자들을 위한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고백록.


moon은 제법 드문 경우인 '끝까지 몰아부쳐서 원본보다 나은 결과를 얻어낸' 일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레이시디에서 굴러나온 립버전으로 플레이를 해야 했던지라 나는 BGM으로 포티쉐드 1집을 깔고 플레이를 했었다. 그래서 게임 내내 지워지지 않는 고통과 눈물은 그리도 절묘하게 기능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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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쫑났지만 친구놈 회사에서 캐릭터 디자인 잡부할 때의 쥐꼬리만 한 보수를 지급해준다고 해서 학교에서 민증하고 통장을 스캔하고 메일을 부치기 위하여 네이트를 열었더니 알라딘에서 웬 메일이.... 물론 정보메일이야 맨날 받는 것이지만 이건 그 제목의 무게부터가 달랐다.




'적립금 3000원 지급'!!




오오... 이게 무슨 일이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아니 그건 그렇고 이게 대체 몇개월만이냐. 리뷰 편당 500원 적립 사항이 사라지고, 그 전에 몇 번, 이주의 마이리뷰로 당첨이 되는 덕에 잠시간 행복한 나날을 지내야 했던 그 시대 이후로 대저 몇개월만이란 말인가. 대체 왜지? 어째서지? 남몰래 행한(정말 남몰래) 아름다운 선행 탓일까? 학교를 걸어 올라오는 길에(이 염병할 놈의 학교는 말이 걸어 올라오는 거지 거의 등산 수준이다) 문득 두환이형이 시공사 옆 도로에다 투자했다는 기사가 생각나서 '씨발 두환이 영감탱이, 노숙자들 민증 빌려서 계좌 몇 개 텄다고 하던데 나한테나 좀 주지!' 라는 너무나도 쓸모없는 상상을 한 탓에 소비된 칼로리 때문이었을까? 당연히 그럴 리는 없다.




'추천해주세요 이벤트에서 당첨되셨으니 3000원을 넣어드리는 겁네다....'




오호, 그렇군. 잊고 있었는데.... 사이트 개편하면서 벌인 이벤트였던 추천도서 리플 달기에다 사운드트랙과 SF소설의 두 개를 써넣었던 건데 그게 당첨이 된 결과랜다. 아.... 아무튼 이걸로 현시연 5권은 확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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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come-lately 2004-11-30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받아 마땅 당연하십니다. ^^

hallonin 2004-12-01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흑.
 

화사(花蛇) --- 서정주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뿐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보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설
스며라, 배암!



 * 출전 : [시인부락]2호(1936)


 


화사를 꾸준하게 관통하고 있는 이미지는 달리 찾아볼 것도 없이 뱀의 이미지다. 여기서 뱀은 강렬한 자극이 있는, 그래서 취할 수도 있는 공간을 배경으로 미와 추를 동시에 아우르며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이미지의 여행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뱀이라는 아이콘이 역사와 문헌들, 신화들 속에서 어떻게 다뤄져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시가 가장 먼저 차용하고 있는 뱀의 이미지는 구약성서에서 이브를 유혹하여 인간을 타락시켰던 뱀의 이미지다. 그래서 이후 기독교 시대 내내 서구에서 뱀은 사악함의 상징으로 취급받아왔다. 그러나 이 흥미로운 히브리 민족의 일대기 외에 다른 오래된 민족들의 전설 속에서 뱀은 신성한 동물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식을 날라주던 헤르메스가 뱀 두 마리가 서로 얽힌 지팡이를 들고 다녔던 것처럼 세계 여러 민족의 신화와 전설 속에서 뱀은 지혜와 지식을 전해주는 입장이었으며 달의 대리자이자 다산의 상징이었고 허물을 벗는다는 특성 때문에 또아리를 튼 모습, 혹은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이 되어 무한과 영생을 상징하기도 했다. 사악한 피조물로 묘사된 구약성서에서의 뱀조차 이러한 뱀을 상징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지 않고 있다. 뱀은 이브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야를 준 것이며 그 열매는 지식의 나무라 불리운 것이었다. 성서에서 뱀과 동일시되는 루시퍼는 성서 외전에서 야훼가 가장 사랑했던 동시에 가장 강대한 힘을 가졌던 천사로 묘사된다. 그러나 루시퍼는 힘과 지식에 근거한 오만함으로 신에게 저항하다가 지옥으로 추락해버린다. 성서는 문명의 불가피함과 그 파멸적인 속성을 보여줌으로써 신의 권위를 강화하고 있고 그것은 다신교 문화였으며 당대의 가장 강력했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된 유대교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성서에서 뱀은 유대교외의 종교들이 경배했던 신성함이 거세된 유혹자 이상이 아니었지만 다른 민족들에게도 뱀은 숭배하는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뱀이 금기가 된 것은 그 신성한 동물이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고대 사람들이 잊지 않았던 것 때문이다. 그래서 뱀은 위험인 동시에 유혹의 상징이라는 모순적인 양상을 가지며 총체적으로는 인간이 가진 지식-지각에 대한 본능적인 갈구와 위험을 가리킨다.


'화사'의 화자 또한 그 모순의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4연까지 화자는 뱀에 대한 혐오와 매혹을 반복하며 왔다갔다 한다. 여기서 뱀에 대한 혐오는 뱀이 가진 독, 그리고 미끈한 몸뚱이가 만들어내는 징그러운 인상으로 인한 것이지만 그 묘사가 모호하여 쾌히 충분하진 못한 반면에 화자로 하여금 뱀에 대한 매혹을 끌어내는 것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강렬하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 매혹은 뱀이 가지는 성적인 요소들 때문에 일어난다. 뱀은 앞서 말했듯 다산의 상징이며 종종 남성기와 동일시된다. 공간적인 묘사에 있어서도 사향과 박하 같은 후각을 자극하는 소재들의 쓰임은 화자가 서있는 곳을 흐릿한 환몽과 같은 상태로 만들어준다. 또한 그런 공간 안에서 뱀에 대해서 언급할 때 신화적인 설명에서 빠지지 않았던 지적인 측면이 유혹 그 자체의 인상으로 전이된다(~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이것은 뱀이 가지는 육체적인 유혹의 강화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시에서 처음 쓰이는 붉은색의 표현이다. 붉은색은 이후 시에서 내내 감각적인 힘을 발휘한다. 이후 화자의 모순적인 감정은 점점 강해져서 뱀에게 취한 화자는 푸른 하늘을 물어뜯으라고 응원하기까지 한다. 여기서 푸른하늘은 성서적 의미에서 야훼의 대체물로 봐야할 것이며 붉은색과 대비되는 색으로 질서와 차분함, 침잠과 차가움을 뜻하는 것들에 대한 반항적 표현이라 봐야할 것이다.


화자는 결국 돌팔매질로 뱀을 쫓아내기 시작하지만 이내 홀린 듯 그것을 뒤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화자는 뱀에 대한 매혹을 온전히 고백해버린다.(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가뿐 숨결이야.) 그런데다 뱀을 따라가는 길은 사향(박하가 빠져있다는 것을 주목하자)과 아름다운 꽃들이 널린, 첫부분보다 더 화려해지고 성적으로 자극이 강해진 공간임을 짐작 가능하다. 화자는 뱀에게 완전히 매혹되고 그것은 소유욕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는 이어서 꽃대님과 같았던 뱀을 꽃대님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의 의식은 이집트로 날아간다. 정확히는 꽃대님보다는 더 유명하고 구체적이며 아름다운 상징을 찾아나선 것이리라. 그 대상은 클레오파트라다.


클레오파트라는 뱀과 무척 친한 여자였다. 뱀을 숭배했던 이집트의 여왕이었던 것이 그렇고 안토니우스와의 연애로 인해 파멸적인 여자를 상징하기도 했으며 죽을 땐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 기구한 인생과 절대적인 미를 표상하는 이 여자의 피는 전통적인 원형으로 봐서 곧 생명이고 그녀의 대체물이다. 그녀의 피를 먹었다는 것은 그녀의 생명-그녀의 미美라는 상징의 전이됨을 가리킨다. 동시에 피가 묻은 입술은 앞서 묘사됐던 석유-석류로의 의미전이의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피와 석류로 인해 붉게 물든 입술은 유혹적이고 성적으로 발현된 상태로 화자는 그 안에 뱀이 스며들라고 소망하고 있다. 여기서 석유-석류는 동시에 붉은색의 감각으로 귀결된다. 붉은색은 불, 뜨거움, 정열, 유혹 등등의 활동적이고 위험할 수도 있는 요소를 갖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원형이다. 그렇기에 붉은색은 금기를 나타내는 상징으로서 유혹과 금기라는 뱀이 함께 품는 이중적인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7연에서 대상은 뒤에 이어지는 순네와 앞서 꾸준히 묘사된 '화사'와의 경계가 불분명하기에 실제적으로는 '화사'와 뒤에 이어서 등장할 순네가 융합되고 있는 부분으로 보여진다. 그 이유는 순네라는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감각이 앞서 얘기된 성서-클레오파트라와의 지리적, 인종적인 이질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순네는 앞서 꾸준히 이어져 온 뱀의 유혹적인 양상과 클레오파트라의 미를 계승한다. 그녀는 또한 막 성년에 이른 스무살이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만개할 나이, 말하자면 가장 유혹적이고 성적인 아우라로 둘러싸일 시간이다. 그래서 화자는 그녀를 묘사함에 있어 고양이를 불러들인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는 성스러운 숭배의 대상이었지만 앞서서 클레오파트라가 나왔다고 하여 굳이 이집트로까지 이을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여기서 고양이는 앞서 등장했던 뱀이 가지고 있던 신화적 신성성이 희미해지면서 뱀의 관능적인 면에 힘을 보태는 것으로 전이된 것처럼 소위 요물로서의 고양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고양이는 길들이기 힘들고 이기적인 성미와 아기 울음소리를 연상케 하는 울음소리를 지니며 짝짓기 때의 요란스러움 때문에 여성성이 요사스럽게 발현된 화신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여기서 보여지는 순네는 고양이로 표상되는 총체적인 유혹의 힘이 스며든 입술을 가지고, 화자는 그에 만족 못하고 따로 나뉘어 강조한 절(스며라, 배암!)을 통해 뱀의 이미지가 그녀에게 더해지길 보다 적극적으로 소망한다. 연을 따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붉은색-입술의 연장선에서 해석되는 이 부분은 동시에 클레오파트라와의 동질성의 증거로 반복되는 구절이기도 하고 또한 석유-석류로 보여졌던 이중적 유희가 재발견되는 부분으로 오럴섹스의 구현을 은근히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화자는 성서와 클레오파트라 같은 비교적 동떨어진 원형적인 상징과 인물들을 지나 순네라고 하는 현실적인 인물에게 귀착되는 의식의 여정을 끝낸다. 여기서 결과이자 목적으로서의 순네는 그 이름에서 오는 느낌으로부터라도 앞서 얘기된 성서-클레오파트라를 주변화시키고 그에 대한 낯선 감각들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그 낯설음이 지리적, 인종적인 차이만으로 만들어지는 문제라는 걸 인식하면 이 동떨어진 요소들의 긴밀한 협조가 만들어내는 자장의 스무스함으로 인해 도리어 신화, 원형적인 이미지들이 가지는 보편성을 반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 안에서 혼재되어 날아다니는 의미들은 흡사 뱀의 움직임처럼 이리저리 이동하며 의미와 언어의 충돌과 자극적인 감각을 생성해낸다. 만약 해석에의 머뭇거림을 포기한다면, 그 모든 것들이 지향하는 바가 삶, 보다 정확히는 생생하게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에 대한 원형적인 의미에서의 지향점을 갖고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뱀과 얽혀 죽음을 얻게된 이브와 스스로 죽음을 택한 클레오파트라의 운명은 죽음에의 의지와도 연결되는 바가 있다. 에로스적 양상과 타나토스적 양상에서, 비록 시에서 드러나는 바는 지극히 에로스적인 양상이지만 뱀이 전해주는 파멸과 두려움의 상징 또한 잊혀지진 않고 있고 그것은 서로의 의미를 상쇄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는 욕망 자체를 지향하는 이미지의 흐름, 그 뒤를 쫓는 해체적 작업의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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